김인주의 "역사 속의 오늘"
토마스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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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8월 21일,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따라 평양에 도착하였다. 이 배에는 서양인 5명이 타고 있었고, 동양인 19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당시 평양 감사는 박규수, 조선인으로는 개화에 대하여 가장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관리였다. 그러나, 통상을 허락하지 않던 조선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먹을 것과 땔감을 달라는 요구에는 성실하게 응대하면서도, 돌아갈 것을 종용하였다. 이를 무시하고 상류로 항진하며, 조선군을 억류하기도 하여, 긴장이 고조되었다. 결국, 충돌이 일어나, 셔먼호 승무원들을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9월 2일이었다.
당시, 조선의 기록은 이를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최난헌”의 침입으로 기록하는데, 제너럴셔먼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사에서는 최난헌을 토마스의 한국명이라고, 대부분 잘못 해석하고 있다. 토마스는 이 배에 통역자로 동승했던 영국 회중교회 목사이다. 미국측의 기록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해독해야 한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었고, 5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무력을 동원해서 강압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로서, 이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사태를 보고하는 문서들이 작성되었다. 북한은 이를 외세의 침탈을 분명히 응징한 사건으로 이해하며,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를 그 주역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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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과 한국교회의 증언은 훨씬 더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인용된다. 근래에는 토마스의 고향인 웨일즈 하노버를 찾아 그의 삶과 사역의 흔적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순수하게 조선에 선교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헌신을 인정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제는 제너럴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는 상선이라기보다는 중무장한 해적선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회라도 이용해서 복음의 장벽이 돌파되어야 하는지, 어려운 질문이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