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가 나온 이유
한국교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성공과 부흥을 이루었다. 그 이면에는 선교사 입국 당시 시대상이 이조 말기로 반상의 이반과 일제식민지로의 전락한 사회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후 개화와 자주독립의 실천적 기반이 되는 이상이 기독교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기독교는 서구화와 근대화에 기초를 놓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초기 근대 지식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중에서 나왔다.
한국사회의 근대화는 생활상만이 아니라 교육과 건축 교통수단이나 의료 과학과 스포츠 등 여러 면에서 미국의 것들이 정착된다.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배재학당이나 이화학당을 비롯하여 경신학교등 기독교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중 미국 유학에 오른 이들이 다수다. 이렇게 기독교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 우리사회 인재들로 양성되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나 도산 안창호와 같은 민족 지도자들과 독립운동가는 기독교에서 많이 배출될 수 밖에 없었다.
조선 말기와 일제식민지 시대 유교와 불교는 민족의 위기에 대처하는 대안이 되지 못하고 조건 왕조와 함께 몰락했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민중들에게 접근한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전략이나 노력이 돋보였다. 초기 선교사들은 주로 복음주의적이었으나 근본주의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1920년대 한국교회는 암울한 식민지현실과 미국교회의 근본주의 영향을 받아서, 근본주의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세대주의 전천년설 종말론이 확산되었다.
1884년 전후 입국한 선교사들과 달리 해방 후 이 땅에 온 미국 선교사들은 프린스턴 등 미국의 대표적인 장로교 신학을 공부한 이들로 바뀌는 데 당시 장로회신학대학은 프린스턴 계열의 선교사들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 한국의 당시 지도자인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나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는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이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후 북한의 교회 지도자들이 월남하면서 반공사상이 자리집고 신신학적 경향의 조선신학교가 총회 직영에서 배제되고 남산에 총회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 |
||
한국장로교의 분열사
1950년 4월 21일 제36회 총회가 대구제일교회에서 열렸는데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에 항거한 이들에 대한 멸시와 이들에 대한 소외로 교회 순결과 재건보다는 교권에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 신사참배 거부로 인하여 감옥에서 나온 출옥 성도들은 현실과 타협한 교권주의자들을 공격하며 교권에서 물러갈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도 우리도 어려울 때 교회를 지켰다는 식으로 논란이 붙는다. 결국 1938년 제27회 신사참배 결의시 일본 경찰이 출동한 이래 두 번째로 경찰까지 출동한 총회가 된다.
장로교의 분열의 요인으로 보면 첫째는 당시만 해도 인물들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신파를 대표하는 인물은 한상동 목사이며 한국 장로교 분열에도 영향을 준다. 시초는 지도자들 중심으로 합동은 박형용 박사이고 통합에는 한경직목사와 그지지자들이 있었다. 기독교장로회를 만든 김재준 목사는 장로교댜서 제명당한 바 있다. 둘째는 신학교 운영권으로 고신은 고려신학교, 합동은 총회신학교, 통합은 장로회신학교, 기장은 조선신학교로 나뉜다. 셋째는 신사참배 문제와 자유주의 신학 문제와 마지막은 WCC 신학 노선문제와 교권주의로 합동과 통합이다.
당시 미국 장로교도 먼져 보수인사들이 직영신하쿄인 프린스턴을 장악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밀려 나가 만든것이 웨스트민스터나 이들이 만든 국제적 선교단체인 ICC의 맥킨타이어 박사는 한국 장로교 분열에도 개입한 것으로도 본다. 당시 미국은 새로운 이민자들의 급증으로 서부로 도시가 확장 중이었다. 도시의 활력을 주는 각종 광물자원으로 새로운 일자리와 터전들이 마련된다. 신흥도시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거주지와 교회는 세워졌다.
그후 공립학교의 시초가 되는 주일 학교도 생기게 된다. 춥고 가난한 이들은 내세의 신앙에 기대며 가나안 땅의 정복과 같은 성서적인 비전을 품고 살아갔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국가와 기독교는 하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신앙이 필요했고 열심들이 있었다. 보수적인 신앙으로 무장되여 법보다는 개인윤리성이 강조된다. 나다나엘 호돈의 주홍글씨와 같은 소설들의 배경이 되는 신도시를 보면 실감이 난다.
![]() |
||
보수화를 넘어 극우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변화된 양상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시작되고 있다. 바로 교회와 정치의 관계가 이전과 다르게 급변하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 기독교인들이 극우 정치적 행동에 함몰하는 행동은 주류 교회는 아니더라도 다수의 보수적인 고령층의 기독교인들 참가가 늘고 있다. 기성 장로교인과 감리교인들의 다수가 그런 과격한 정치발언에 동조하면서 기존 교회와 정치 집회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 든든한 노년 층이 극우적 정치 행위를 물질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많은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남북 분단을 체험했고, 그들이 이룩한 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이들은 납세와 시민의 의무에 대한 책임 의식이 약한다. 부자 감세를 강조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이념 공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 세대들이 깃발을 들고 마음과 몸으로 길거리 집회에 주역이 되고 있다.
한국의 보수교회가 정치 집회에 동원되는 현상은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3년 “반핵반김 자유통일 3.1 국민대회”의 시청앞 집회가 그 시작이었다. 이듬해 10월 한기총-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국보법사수 대회에는 한기총(길자연 목사)과 대형교회가 주도적으로 교인들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후 국정원과 정부 사주를 받는 노인들 중심의 태극기집회가 시작되는 데 그때까지만 해도 동원에 일당을 주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노인 일자리 차원이기도 하고 당시 야당과 진보 기독교에 대한 대응 전략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가짜뉴스와 결합한 정치 둘러리
2014년 박근혜 탄핵 당시 한나라당과 기독교 일부가 노골적으로 탄핵 반대 집회를 시작했다. 장신대 김철홍 교수도 이때 등장을 하고 소위 주사파논쟁을 일으켰다. 정권 교체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전광훈이 등장하면서 문재인은 간첩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청와대의 담을 넘는 일도 일어났다. 이 때에 체제화된 탈북동포들이 여기에 합류했고, 이후 북에 선전풍선을 보내는 박상 형제들도 등장했다.
기성교회에서 설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광화문 광장 집회의 강성 발언에 이끌렸고, 이런 상황을 적절히 이용한 전광훈은 국내외서 이름을 얻게 된다. 그는 초기 집회부터 영어 동시통역을 하면서 국외 동포들의 지지세를 넓혀갔으며, 민주당 집권에 불만을 가진 이들을 조직화하고 정부를 공격하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게 된다. 그러나 전광훈은 단순한 기독교적 보수가 아니라 기성 정치 권력 획득을 목표로 정당을 만들었고, 한기총을 장악하는 등 교권 장악에도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정치인들과 함께 가다가 결별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교회는 초기에 보수정치를 지지하면서도 정치 참여와는 거리를 두었고, “예수천당, 불신 지옥”으로 표현되는 거리 전도에 열심을 두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보수 신앙에 정치적 칼라를 덧입힌 자들은 소위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한 서경석, 김문수, 김진홍 같은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보수 정치인들의 지지를 힘입어, 자신들이 한때 사회주의자 혹은 마오이스트였다고 말하면서, 한국도 이대로 가다가는 공산화된다는 식으로 공포감을 준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판문점에서의 역사적 만남은 비판자들에게는 오히려 이 자리에서 문대통령은 북에 한국의 원자력등 다수의 정보를 유에스비에 넣어서 북에 전달했다고 간첩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선관위 부정이나 중국과의 연계도 그렇고 모두 가짜뉴스다. 이러한 엉뚱한 주장들을 순진한 기독교인들은 그대로 믿으며 마음에 위기와 분노를 조성했다. 아스팔트 시위대들도 일당을 받던 노인부대에서 주옥순의 엄마부대와 같이 신앙적이고 이념적인 대오로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과거 한국교회의 보수의 주류는 민주당과 진보 야당들이 연합하여 제정을 추진했던 차별금지법에 대한 강력한 반대 세력이 되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논리는 동성애 합법화가 이루어지면 군대 내 항문성교가 이루어지고, 출산률 저하로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비과학적이고 자극적인 홍보가 전개되었다.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관으로 보면 이러한 논리는 어렵지 않게 연결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세력은 공산주의자이고 그들은 무신론자이고 기독교와 한국을 부정하는 이들이며 그 세력은 민주당이라는 도식으로 교회 파괴주의자로 연결된다.
교회가 정치로 나오는 계기
미국의 교회는 그동안 직접적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침례교인이던 카터가 민주당 대통령이 되면서 낙태문제와 유색인종의 평등권으로 정서적 배신감을 느끼자 자기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 공화당 레이건 선거에 참여하게 된다. 그등은 백인들이며 보수적인 지방 소도시 거주자들을 기반으로 전국조직(리버티 대학 총장 주도로 도덕적 다수)을 만들어 상하원 선거에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지지하면서 공화당을 선택하게 된다. 그후 이들은 공화당의 부시 부자와 전통적인 공화당원이 아님에도 트럼프 영입해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강력한 역할을 했다.
이런 현상은 최근 트럼프의 재집권에서도 나타났다. 트럼프는 재집권에 실패하자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의사당을 폭력으로 점거하는 사태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으로 살아남았고, 대통령으로 복귀했다. 여론조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지역을 넘어 민주당의 텃밭까지 잠식했다. 구호는 반이민, 관세 부과, 미국 우선주의로 이주민으로 인하여 미국인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로 보복 무역과 무자비한 관세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저강도 전쟁으로 미국의 패권을 유지했던 전략을 수정하고 분쟁지역에서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보수적인 미국인들의 강력한 지지가 있고, 특히 보수적 기독교가 정치에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다. 트럼프는 2025년 2월 백악관 신앙실을 재창설했고 폴라 화이트(Paula White)를 담당 목사로 임명했다. 이것은 미국 보수교회가 트럼프 정권의 든든한 기반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 |
||
| * 트럼프의 오랜 신앙 상담사 폴라 화이트(Paula White) 백악관 신앙실 담당 발령 | ||
미국에서의 기독교
미국은 기독교 국가를 표명했으나 그동안 헌법상 정교분리 입장을 준수했고, 백악관은 철저하게 비종교적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제는 공개적으로 개신교 패권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백인 보수 기독교인들은 트럼프가 범죄자임을 알면서도 영적으로 하나님은 그런 약점이 있는 사람들을 들어 민족과 교회를 위해 쓰신다는 영적 해석을 한다. 그는 술과 담배 마약을 하지 않으며 금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옹호하지만 더 큰 악인 매음과 탈세로 30여 개 이상의 유죄 증거가 있다.
과거 미국을 대표하는 종교는 장로교와 감리교였으나, 현재는 급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장로교단들이 다수이지만, 미국에서 교파교회는 이제 인기가 없으며 독립교회들이 부흥하고 있다. 가장 큰 교단은 침례교이고, 비록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가 역사성이 깊지만, 현재는 오순절파의 성장도 멈추고 독립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적 다양성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미국장로교단 UMC등은 역사가 깊고 정교분립의 원칙을 고수하니 보수적이며 정치지향적인 교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교회 부흥은 1차 대각성 시대에 장로교회가 성장했는 데 미국을 대표하는 교파였기 때문이다. 서부 개척기 2차 대각성 시대에 침례교와 감리교가 성장했다. 정부는 서부를 개척하기 위해 토지를 분배했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이주민들이 이곳에 정착시킨다. 광활하고 통제 불가능한 지역에서 정착민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신앙보다는 감동적이고 정서적인 신앙 요소와 그런 설교에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에는 유럽과는 달리 유명한 대학이나 신학교가 없어서, 성직 후보자는 영국의 에딘버러나 그라스고에 보내 공부시켰다. 그러나 미국교회의 부흥은 그런 시간과 재정을 단축키 위하여 하버드나 프린스턴 같은 기독교 학교들이 설립되고 자체 교육이 가능해지면서 지도자들을 길러내었다. 또 자연과학과 고등교육의 발전으로 유럽에서 도입된 성서비평학이 미국의 신학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세속주의와 비평학이 프린스턴등에 유행이 되면서 보수적인 심성의 부모세대들은 이에 에 저항하여 기독교인도 그렇고 설교도 오직 성경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무디성경학교와 같은 성경학교를 세웠고 신학과 지성에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지성을 도외시 하는 감성적 신앙유행으로 팬사콜라 같은 은사운동들은 설교자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운동이었고, 단순하고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반복되는 설교를 통해 신자를 양산했다. 이것이 나중에 신사도운동으로 분화된 것이다.
미국교회 공화당 레이건 때 부터 정치에 등장
미국의 종교인 비율은 1860년 전체의 37%, 1890년 45%, 1906년 51%로 계속 높아졌다. 증가세는 지속돼 1926년 56%, 1980년 62%까지 올라갔다. 1790년 400만 명도 되지 않은 미국 인구가 1850년 2,300만, 1900년 7,600만, 1950년 1억 5,100만, 1980년 2억 2,600만 명으로 급증하는 가운데 종교인 비율이 인구 증가 속도보다 더 빨리 늘어났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미국에서는 비교파교회(nondenominational churches)가 발전했다. 기성교단과 교회의 질서에서 벗어나 은사 능력을 행하는 개인을 추종하는 종교공동체들이 성장했는데 그 기저는 기복신앙과 내세주의다. 이런 교회에서는 카리스마적인 리더가 중심이 된다.
미국의 교회중 부흥하는 교회들인 레이크우드 교회등도 그렇고 찬양이나 은사위주의 집회가 유행이다. 한국도 온누리교회의 경배와 찬양같은 감성에 호소하는 열린예배가 유행하는 데 성경이나 고민없이 강한 비트와 감성으로 자극하는 식이다.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의 다수는 중앙정부가 멀었던 시절, 자신들의 가족과 재산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서부개척시대의 정신을 가지고 총기 휴대를 지지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는 유색인종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민주당을 싫어하며 보수적으로 총기 지지를 옹호하는 공화당을 지지한다. 이들은 낙태를 죄악시하고 학교에서 자녀들에게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반기독교적이고 죄악을 용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사조가 한국교회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주옥순의 어머니부대 같은 원조도 미국이다.
한국기독교의 극우화 현상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대한민국의 위협하는 무신론, 적그리스도, 공산주의는 절대악이고 교회의 적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을 논하는 민주당에게 권력을 넘겨주면 흡수 통일이 되고 가정과 교회가 무너진다는 논리를 편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이재명을 반대한다. 그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소수자들이 존대받아서 이민자들이 증가하여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작년 7월 프랑스 총선과 올해 2월 독일 총선에서 극우 정당들의 약진은 경제적 불황 상태에서 불법 이민자들과 이교도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의 극우세력에게 형상을 주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극우파 세력은 한국도 철학적으로는 프랑크프르트 학파에, 문학과 예술에서는 루카치의 영향 아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며, 박근혜 정부 때부터 영화인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식인들을 좌파로 몰고 학문과 사상 검열을 하고 했다.
이처럼 한국의 기독교는 과거에 없는 일탈을 하는 중인데 교회에서 나와 단순히 정치적 목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천년왕국까지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정치를 통하여 신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탄핵 반대를 외치고 서부지법을 공격하고 헌재를 압박하는 데, 이는 무슬림에서 나타나는 인샬라(자기가 믿은 신의 승리)와 극단적 희생은 보상받는다는 교리와 유사한 형태로 매우 우려가 되는 현상이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국민의 힘의 지지자가 되고 전광훈의 팬이 된다. 그들은 윤석렬과 전광훈에게 흠이나 잘못이 있어도 하나님은 기꺼이 들어 쓰신다는 관용으로 대한다. 그래서 그 가치를 지키는 정점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고 그를 힘들게 하는 야당이나 탄핵하려는 세력들과 대결하여 윤석열을 지키자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인은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 |
||
전광훈에서 손현보로
전광훈은 교회가 자리한 지역의 재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폭력 사태와 코로나 법 위반, 그리고 정치 선동 등으로 시민사회의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사람이다. 그는 윤석렬의 정치환경을 만나면서 물 때를 만났다. 윤석열 권력도 전광훈 세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 탄핵 과정에서 윤석열은 한남동에서 공수처 수사를 거부하고, 헌재의 탄핵이 인용되어도 이판사판으로 싸워나간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전광훈 지지자들의 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전광훈은 광화문에서 손현보는 약간 거리를 두면서 여의도 집결했다.
보수 정치권은 양자를 다 무시못해 일부는 광화문으로 그리고 다수는 여의도로 향했다. 국힘은 전광훈식의 막무가 내가 결코 중도층을 흡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렬지지층을 업은 이들중 윤상현과 윤대통령의 변호인은 광화문을 선호한다. 그러나 전광훈은 앞으로 고소건이 많아 머지 않아 구속될 것으로 보여 그 후를 이를 인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진홍도 손현보와 함께 국회 기자회견에 전한길과 함께 섰는 데 전광훈은 안보였다. 그는 결코 누구 둘러리가 아닌 자신이 만들어 논 정치장에 마이크는 빌려줄지언정 자기를 대체하는 인물은 인정하지 않는 다, 이미 안유환목사 고 심하보, 광주 박영우 목사등과 결별한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다. 이에 오래된 지기들은 떠나고 극렬 지지자와 광장이 필요한 이들의 판을 깔아주는 역할이다.
윤석렬 지지자들의 다수는 보수 기독교인들이며 이들은 북의 도발을 막고 민주당 정권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윤석렬을 지킨다는 논리를 확신하고 있다. 지난 서부지법 폭력난동 사건으로 사랑제일교회 특임 전도사가 입건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목회하는 고신측 손현보 목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는 작년 1027 광화문 반동성애 집회를 주도했고, 최근 SAVED KOREA(한국을 구하자)운동을 통해 전한길과 같은 이들을 앞세워 부산, 대전 등 대도시에서 집회를 주도했고, 3.1 여의도 집회를 예정하고 있다. 그는 작년에 전광훈과 갈라져서 다른 길을 걷고 있으나 정치적인 본질은 같다.
국민 분열로 생존하는 보수정치
한국의 극우 정치세력은 양성평등을 주창하는 여성 운동가들을 페미니스트로 몰아 이들이 남성을 억압한다는 논리로 남성연대를 조직하고 성 대결을 조장하여 20-30대의 남성들을 광장으로 모아내고, 대학을 순회하며 탁핵 반대를 위한 원정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처럼 우리 시대는 과거 이념과 빈부의 대립과는 다르게 세대 간, 젠더 간 대립으로 갈등이 변화되었고, 한 집안에서도 부모와 자녀 세대가 갈등하는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편향적 정치세력을 편들어서, 국가와 국민 안에 있는 특정인을 반대하고 추방하고 소외시키는 일에 앞장서면 안된다. 교회의 신앙적 가치와 정신에 비추어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폭력과 갈등, 차별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대도시 고소득층이 몰려 있는 지역의 교회 신자들의 경우 정의와 공정성 보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불의에 침묵하고 폭력을 옹호하는 경우가 심하다.
강남 4구로 일컫는 강남, 서초, 송파, 강동 지역에서 집 값이나 삶의 질은 타 지역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 지역의 교인들은 대다수가 기득권 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목회자들은 그들의 행복과 재산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정치세력을 지지하게 된다. 취약 지역의 국민들을 돌아보고 보편적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기 교회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에 함몰될 위험성이 크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의 기저에는 체제 유지를 통하여 자기의 재산과 지위를 지키려는 세속주의와 기복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 |
||
평가와 결론
최근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대통령 탄핵과 관련하여 지금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가 아니라 기도할 때라고 양비론적 입장을 표명했다.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는 계엄령은 잘한 것이며 무지한 이들을 깨우는 계몽령이라고 칭찬했다. MBC앵커로 사장출신으로 온누리에서 방송선교를 하다가 목사가 되고 베이직교회를 세운 조정민 목사는 이전 탄핵국면 새벽기도회에서 중국인을 비난하며 윤대통령을 옹호하면서 실언을 한다.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는 탄핵을 한 야당의원들과 옹호자들을 향하여 발작 버튼을 눌렀다고 비난했으며 사랑의 교회 오정현은 기도하면 약점은 안 보인다 말하며 국가적 위기 앞에서 정치적 비판을 무디게 하고 있다. 손현보 목사는 주일 설교 제목으로 “이재명은 안된다”를 연속 설교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CBS등을 통하여 이들의 기저를 신사도운동의 한 분파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기독교가 세속정치와 야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큰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고 소위 기독교왕국론을 대망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치도 않다 보수정치는 지지호소와 여론으로 표로 교회를 이용하는 것이지 실제로 국가정책에 기독교적 가치인 정의나 공의에는 큰 관심이 없다. 김영삼정부 시절 타종교로 군목제를 넓히면서 군목숫자가 줄었고 정부나 공공기관에서의 종교성은 더욱 배제되는 게 현대적 추세다. 그럼에도 공공기관내 예배나 조찬기도회나 하고 시장이나 도지사가 교회 행사온 것에 고무되지만 그것과 국가 공공성과는 별개인대도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