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사관의 분류

                        한국교회사 사관의 분류
1. 선교 사관 
백낙준(1895-1985)은 예일 대학교 라투레트(K. S. Latourett) 교수 밑에서 1927년에 교회사로 박사 학위를 마쳤다.  그의 논문한국개신교회사(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는 한국 교회사 연구에 기념비적인 토대가 되었다. 그는 서구 역사의 실증적 역사 방법론과 선교 신학적 해석을 종합했다그의 역사관은 그승 라투테트의 가르침을 따라 선교사(宣敎史)(인문)과학의 한 영역이며,1  “교회사는 본질적으로 선교사2라고 보았다.  교회사를 선교 역사로 보는 그의 연구 경향성은 1970년대까지도 지속되었고, 현재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Kenneth Scott Latourette (1884-1968)
  • 극동 아시아 역사가, 기독교 확장사의 최고 전문가,  침례교 목사
  • 미국 오레곤주 오레곤시 출생, 1910년경 학생자원자운동(SVM)에 자원하여 중국선교사가 됐으나 건강 때문에 선교사를 사임하고 교회 역사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 40권 이상의 기독교 확장 연대기를 집필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A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 7 volumes

  •  Christianity in A Revolutionary Age, 5 volumes이 있다.
  •  미국 예일 대학교 종교학과 학과장

백낙준(1895-1985) 전 연세대학교 총장
초대 장로교 7인 목사 중 한 분인 양전백 목사가 세운 선천 신흥 중학교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조지 맥큔 (평양 숭실교장)의 집에서 일하며 공부했다.  1911년 가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 과정에서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권총을 운반했다는 누명을 쓰고 공모자로 수배 받던 중 도피 생활을 했다. 1913년 매큔의 추천으로  중국과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유학했다.  1927년 예일 대학교에서 교회사 연구로 최초의 한국인 박사 학위자가 됐고, 그해 연희 전문의 교수로 부임했으나 1937년 일제에 의해 해직 당했다. 1949년 연희 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했고, 1950년 제2대 문교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위의 사진: 문교부 장관 시절(1951.8) 교과서를 인쇄하기 위해 수입한 종이 앞에서)
  
2. 주체적 수용 사관  
김양선은 백낙준이 고려하지 못했던 한국 쪽의 고백과 증언을 정리하려는 시도를 했다.  (김양선 외에도 오문환, 장정심, 채필근 등이 이런 입장을 표명했다. ) 김양선은 최선을 다해 사료를 수집했고, 그 결과 숭실 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이 탄생했다.  그의 교회사 연구 관점은 ‘주체적 수용사관’으로 칭한다.
 
김양선은 불국사에서 경교 흔적을 발굴했고실학과 천주교 관련 서적과 유물을 수집하여 실증적 객관적 역사 서술을 시도했다.    「한국성서번역사」와 「한국기독교 해방10년사」 등의 저술을 남겼다. 
 
김양선 목사 (1907-1970) 호:  매산(梅山).
목사·고고학자·교회사학자.
신성중학교, 평양숭실, 평양장로회신학교
 
1929년 광주 학생 운동 때 평양에서 시위를 주도하여 구속됐다.
1928년 이후 방대한 한국사, 한국교회사 사료를 수집했다.
민족 분단 이후 부인 한필례(韓弼禮) 여사는 남북을 3차례 왕래하며 사료를 반입했고, 부인과 차녀 김경숙(景淑)은 함께 사료를 운반하기 위해 분단선을 넘다가 피격돼 사망 했다김양선은 부인과 딸의 희생의 결과로 수집 된 자료를 기초로 숭실대학교 기독교역사박물관을 설립했다. 1954년 숭실대 교수, 1967년 고고학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3. 민족 사관  
1968년부터 민경배(연세대학교)는 민족주의 관점을 가지고 한국 교회사를 서술했다.3 그는 선교사(宣敎師)를 한국 교회사의 중심으로 보는 교회사 기술(記述)을 극복하고, 동시에 한국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교회사를 서술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교회가 민족에 대해 에큐메니칼한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의 교회로 형성된 정신과 과정을 밝히는 것을 역사의 임무로 생각했다신앙의 내연(內燃)이 민족교회로 외연화(外延化) 되었다는 독특한 논리를 주장했다.  그는 외국 선교회들이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민족교회설립의 방해가 되었던 점을 지적하였다.
  
4. 민중교회 사관 
 주재용(한신대학교)1979년부터 민족주의 사관은 민중이 배제된 엘리트 중심 주의라고 비판하면서4 민중’5 사관으로 한국 교회사를 해석했다.  1970-1980년대의 군사 독재 시절, 고난을 겪었던 일부 진보적인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경험이 민중 신학을 태동시켰는 데, 민중 사관은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 신학에 대해 전통 기독론과 교회론의 가치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가해졌고 민중 사관에도 동일한 비판이 가해졌다.

5.한국기독교사연구회’의 실증주의 사관 

1980년대 일반 역사학자 이만열, 윤경로 중심으로 개인 차원의 연구를 넘어 자료 발굴, 상호 정보의 교환, 역사 해석의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 한국기독교사연구회"가 설립됐다. 이들은 사관을 설정하는 일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 분석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또한 기존 한국 교회사의 잘못된 서술을 교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다음의 과제에 집중했다.
  
연구의 폐쇄성 극복
연구의 지평 확대
실증적 과학적 한국 기독교사 자료 취급
민족 현실과 장래에 대한 책임성 있는 한국 기독교사의 연구
  
실증주의 사관의 공헌은 한국 교회사의  사실 규명, 한국사와 기독교사의 접목 시도, 한국 기독교의 민족 운동 전통의 맥을  발굴민주화 민족 통일에 도움 되는 연구를 했다. 

비판 : 실증주의 사관은 초자연적 영역을 배제하고 이성으로 검증 할 수 있는 역사 만을 재구성한다.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교수) 윤경로 교수(한성대 전총장)
 
6. 1990년대 이후  
김인수의 구속 사관 – 섭리 사관
박정신의 주체적 수용 사관
박용규 복음을 교회사 역사 서술 및 해석의 원리로 강조
김영재 교회사 연구의 규범은 성경, 신학과 전통이며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야 한다.
이덕주(감리교신학대학)토착교회 사관6

이 사관은 기독교의 전통과 토착 종교 문화 사이의 관계를 단절배척이 아니라 연결완성의 개념으로 본다.  선교사들의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복음을 수용해석적용하는 토착 기독교인들의 역할도 함께 강조했다. 피선교지의 정치사회적 상황의 중요성과 함께 토착종교문화적 상황의 중요성도 살핀다
사회 정의와 해방의 문제와 함께 토착종교문화전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7  이덕주의 사관은 선교사적, 민족주의적, 민중적 관점을 넘어서서 한국 토착문화를 교회사 연구에 수용하는데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김인수(LA장신대 총장),  박정신 교수(숭실대),  박용규 교수(총신대),  김영재 교수(합동신학원대학교)
 
* 이덕주 교수와 고 한영제 장로
 
 
7. 에큐메니칼적 통합교회 사관  
1949년 독일의 젤러(Winfried Zeller)는 세계교회사 서술의 두 축을 보편성과 유일성으로 보고,  모든 교회사 서술은 그 안에 공통적 보편성과 함께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성을 수렴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1981년 루카스 피셔는 세계 여러 교회들을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에큐메니칼 교회사 서술을 주장했다이형기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은 다 중심주의이기에, 교회사 연구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교파를 위한 교회사가 아니라 에큐메니칼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큐메니칼 교회사 서술은 자기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내세우면서도 보편성을 향한 대화의 길로 나가야 한다. 지역화와 세계화, 지역 교회와 세계 보편 교회가 맞물리게 하고 이런 긴장 관계 안에서 에큐메니칼적 교회사 서술이 가능해진다. 
 
 
* Dr. Lukas Vischer(1926-02008), 이형기(장신대 명예교수)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