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와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앞에서

1952년 4월 25일 한국전쟁 가운데 시작된 최초의 지방선거가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독재정권에 의해 30년 동안 중단되었다. 이는 지방선거가 금품 매수, 정당 파쟁, 이권 청탁, 예산 낭비 등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민의를 반영하는 지방자치 정치가 중앙의 통제와 감시, 쉽게 감독하려는 독재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의 물결 이후 지방선거의 재개가 논의되던 중, 1991년 3월 26일 구, 시, 군의회 기초의원 선거와 같은 해 6월 20일 시, 도 광역의원 선거를 필두로, 드디어 1995년 6월 27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포함하는 지방선거가 전국적으로 동시에 부활했다.
2026년 6월 3일, 실시하는 지방선거는 그동안 이어 온 지방선거의 연장선에 있지만, 지난 31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제도적인 개선과 개혁을 해야 하는 중요한 전환점의 선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국에는 228개 기초자치단체가 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인구가 감소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지역의 소멸을 막고, 지속적인 지방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를 타진하는 선거가 될 것으로 본다. 지역의 일꾼을 단순히 뽑는 선거 절차 이전에 지방 자체가 그대로 존속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심각한 선거이기도 하다.
그동안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확장으로써 지역의 현안보다 당리당략에 휘둘려 ‘지방 없는 지방선거’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공천헌금으로 얼룩진 후보자의 공천 과정이 불투명했고, 지역 정당의 기회를 배제한 채 전국 정당만으로 경쟁했으며, 주민 소수의 득표라도 1등만 하면 막강한 권한을 독식하는 구조였다. 또한 지방선거의 대부분 후보자는 당선 전까지는 표를 의식해서 지역 주민의 일꾼, 지역 주민을 위한 정책을 운운하지만, 당선되기만 하면 공약은 사라지고 군림하는 주인 행세를 했던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역 소멸의 상황에서 여전히 그럴 수 있을까, 아니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심각하게 질문해야 할 때이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만에 치러지는 선거라서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12.3 계엄 이후의 정치에 대한 민심의 동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심판과 민생 회복을 기치로 지방 권력까지 장악해 국정의 동력을 공고히 하려 하고 있다. 제1야당 국민의 힘은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며 보수세력의 반전 기회를 잡으려 하고 있다. 여야 모두가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의 승부가 되겠지만, 투표하는 주민들만은 올바른 민주주의를 정착하고 살만한 세상을 건설하는 것에 주된 관심을 주어야 한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6.3 지방선거에서 권력을 단순히 교체하기 이전에 지방자치의 존립이라는 과제 속에서 영성의 차원과 공공성의 차원을 동시에 견지할 필요가 있다. 영성의 차원을 배제하면 기독교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고, 공공성의 차원을 배제하면 기독교의 책임을 유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정치권력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려고 해서 안 될 것이고, 그렇다고 무관심하게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정치는 우리 삶을 아주 많이 규정하는 실제로 큰 힘을 지닌 영역이라서 정치권력으로 사적 이해관계를 얻고자 하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 되고, 잘못된 정치에 예언자적인 사명을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참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첫째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교인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일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정치세력과 구별되는 신앙공동체이다. 가정에서조차 일치하지 않는 정치적 지지 성향을 교회 강단의 권위를 배경으로 강요하려 한다면, 복음이 특정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목회자의 그러한 강요는 교인들의 양심을 무디게 하는 심리적 지배나 정서적 학대가 될 뿐 아니라, 다양한 입장의 교인들로 구성된 신앙공동체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20대 대선에서 신천지와 통일교 등 사이비 이단들과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이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행했던 범법적인 행위를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다시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동성애나 차별금지법 같은 편협한 이슈를 생명이나 기후 환경, 또는 공공선과 같은 보편적 이슈보다 앞에 놓지 말아야 한다. 이는 신앙적 가치의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적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다. 생명과 기후 환경은 협소한 이슈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며, 공공선은 개인 또는 특정 집단만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익을 향한 이웃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후보자가 동성애 또는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단순한 질문보다 지역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과 공공선을 위해서 어떤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지, 견해가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지, 도덕성과 진실성, 헌신성 위에서 지역의 과제를 잘 풀어낼 수 있을지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 아래서 거짓 정보나 혐오를 조장하는 어떤 것도 전달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 뉴스가 난무하는 환경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질문해야 하고,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의심스러운 정보는 전달하지 말아야 하며, 특정한 진영의 주장을 반복 클릭해서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의 포로가 되기보다 보수와 진보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치우침 없는 중심을 잡아야 하며, 오히려 적대적 진영들 사이에서 중재와 화해를 도모해야 한다. 카톡 단체방을 통해 특정 정보를 무차별로 유포하는 것, 분노와 공포, 또는 음모론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 상대방 모독의 비인간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 등은 절대 금물이다.
넷째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후보자의 진실성과 정책의 실효성 자체를 간과한 채로, 학연과 혈연, 지연과 종교연 등 연고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후보자 자신을 보아야지 그를 치장하는 껍데기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연고주의로 당선된 후보자는 자기를 지지한 연고의 사람들에게 보상해야 하는 이유로 연고 밖의 다른 사람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 연고주의는 정치 영역에서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공정성을 훼손하고, 보편적 책임을 외면하며, 지역사회를 분열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시어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고,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선언이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우리 편만 아니라 울타리 밖의 다른 편조차 함께 위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다섯째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공공복지와 함께 가난하고 병들고 차별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주어야 한다. 선거는 누가 승리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누가 선거의 주인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거의 주인은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자들이 아니라 가장 작은 목소리를 내는 약자들이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어린아이들, 목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노인들, 사회적 편견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장애인들, 낯선 땅에서 차별당하는 탈북민들과 외국인 이주민들, 병들어서 일어설 힘조차 없는 환자들, 양극화된 세상에서 관심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필요조차 채우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지극히 작은 자들을 자신과 일체화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자 구원의 조건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제 6.3 지방선거는 우리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개신교 극우들에 의해서 왜곡된 민주주의를 곧추세우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절망 가운데서 울부짖는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옥과 같은 한국이라며 ‘헬 조선’을 외치는 청년세대와 미래 세대에게는 살만한 세상의 도래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뜻인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정치적 책임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평화가 전쟁과 테러와 폭력으로 고통당하는 지구촌과 척박한 우리 삶의 자리에 풍성하게 임하기를 소망한다.
2026. 4. 4.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대표 정종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