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2013년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옛날 어느 신문 만화에서 보았던 내용이 생각났다.
어느 도시 넓은 광장에서 카톨릭 성당 연합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영광스럽게도 교황께서 친히 오셔서 집전하는 집회이었다. 그림 내용은 이렇다. 그 자리에 예수님이 당나귀를 타시고 지나가시다 자신의 이름으로 모인 큰 집회이기에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들러보시려 하셨다. 입구에 다다르자 집회 진행요원이 다가와서는 누구며 어떻게 여기에 왔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내가 바로 나사렛 예수요”라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그 진행요원은 “그래도 여기 들어가시려면 신분증 제출하시고 지참하신 물건 검색은 물론, 저 신체 검색대를 통과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시라고요? ”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나사렛 예수란 말이오….”. 그러자 진행요원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 잘됐네요. 그냥 가세요. 저기 예수님을 대신하시는 분이 이미 오셔서 다 하고 있어요 !!!! 당신을 대신하는 분이 이미 와 있다구요… ” 예수님은 기운빠진 나귀를 타신 채 그냥 터버터벅 지나가시는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어느 외국의 유명한 신학자가 한국을 방문하고 여러 교단과 교회들을 찾아보고 초청하신 분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말했다고 한다. “한국 교회는 <교회성장, 그것도 대형교회화로의 성장>이 하나님 보다 위에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그 교회의 목사님이 있고요… … ”
어느 신학자는 “하찮아진 하나님”이란 말도 하였는 데, 또 “만신전의 하나님”이란 말도 하고… …. 교회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면서도 그 하나님은 정말 하찮아지고, 교회 마다 곳곳 마다 “저마다 하나님“이 천태만상이다. 온갖 싸움판 분탕질 해대며 눈이 뒤집혀 있는 사람들은 이른 바 잘 나가는 대형교회들에 있지 아니한가? 왕들이 많아서 왕들의 전쟁터가 되어 있어 보인다. 다윗에 대항하는 압살롬과 압살롬이 벌여놓은 싸움판 처럼! 곳곳이 도무지 ”그리스도 예수의 왕권(만왕의 왕이란 말 까지 할 것도 없다)을 인정하지도 존중하지 순종하지 않는다. 모두 자기가 왕인 까닭에! 그러니 교회 마다 “왕들의 전쟁터”이다.
우리는 어떤 실재가 없는 구호나 선동과 선전의 대중조작을 통하여 어떤 무엇을 쟁취하고,쟁취한 무엇으로 세상을 어찌 해보려는 망동과 허위를 떨구어버려야 한다. 이것이 지난 <12.19 대선>의 교훈이다. 선동자들, 여론 조작들은 선동되고 고무된 대중 들 속에 비겁하고 음흉하게 숨어 책임있는 행동을 하지 않고, 다음 기회를 또 꾸밀게다. 나는 내년 4월이나 5월 쯤 적당한 구실이나 틈만 보이면 또 한번의 촛불군중대회나 무엇이 터뜨려지지 않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런 방법론으로 대중을 선동하여 세상을 뒤집어놓는 패러다임을 즐기는 자들이 있고, 언제나 그런 꿍꿍 속셈을 작당 모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을 교회가 배워서 한다는 데 참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역사는 선동된 군중이나 대중에 의해 변화되지 않는다. 쓰나미 처럼 뒤집고 혼란스럽게만 할 뿐이다. 소명감과 사명감, 책임과 용기있는 진실함으로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꾸어 왔음을 주목하자.
참으로 중심과 방향이 속도와 결과 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사회나 국가나 교회 역시 리더쉽이 매우 중요하다. 신뢰와 존경, 책임과 헌신, 용기와 능력과 권위를 확보해 나가는 리더쉽을 기대하며 갈망한다. 정치적으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렇게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 존경과 사랑받는 리더쉽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한국 교회 역시 무슨 영웅주의자들이 아니라 “십자가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바로 그 예수의 길을 걸어가는” 리더쉽이 출현하기를 고대한다.
한국교회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교회의 건전성, 신앙과 진리의 선명함, 신학과 사상의 깊이와 넓이, 이단과 사이비 대처, 영성의 통속화 경계, WCC세계 대회 준비와 진행 등등….. 이런 중차대한 현실과 과제를 앞에 놓고, 걸핏하면 “무슨 무슨 대회‘나 벌이고 사람들 동원하고 무슨 궐기대회 하듯 하는 것으로 호도하려고만 한다. 그런 허영심과 거품 리더쉽을 버려야 한다. 사실대로, 진리를 따라서, 진솔하게, 책임있게, 실속있게 맡은 자들이 겸손히 ”주 하나님의 일’을 하면 될 것이다. 공명심에만 마음 설레는 이들의 이합집산으로, 정작 예수님은 들어오시지도 못하고 쓸쓸히 다른 데로 가시게 해드리는, 예수 이름으로 “자기들의 잔치만”벌이는, 바리새인 시몬(눅7:36, 43-46) 같은 경우를 언제까지 해나갈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