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선교사전"출판 기념
이 단체의 설립에 기초를 놓으시고 지금 까지 후학들을 지도하고 계신 이만열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의 ‘회고와 감사’ 를 축약하신 것을 소개한다.
![]() |
||
이만열 교수(전 숙명여대, 국사편찬위원장)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1980년대, 첫 선교사 아펜젤러․언더우드 선교사의 내한 100주년을 맞는 시기, 그 100년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는 역사의식이 공유되던 때에 출발했습니다. 당시 이런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비교적 젊은 ‘신앙과 학문의 동지들’이 뜻을 모으게 된 데에는 당시 기독교문사에서 간행한 총 21권의 ‘기독교대백과사전’의 편찬도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백과사전에는 한국기독교사 관련 항목이 많았고, 이를 집필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때 기성의 학자들 외에 신진 학도들이 많이 드러났고, 이들이 백과사전 편찬에 참여하면서 동지적인 유대를 형성, 한국기독교 100주년이라는 역사의식과 사명감까지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100주년을 맞는 한국 교회가 자기 역사를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고 뜻을 같이 했고, 차차 이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광장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들은 서로를 ‘신앙과 학문의 동지’라고 아꼈습니다.
![]() |
||
그 즈음 한국교회사 연구의 인적구조에 변화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한국교회사가 신학의 일부로써만 이해되어 왔는데, 이 무렵 국사학을 전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한국교회사 연구에 접근해 왔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사 방법론을 강조했습니다. ‘기독교대백과사전’ 집필을 위해 수집됐던 자료들이 공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면 혼자 움켜쥐지 않고 공유했습니다. 이점은 선배들과는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연구의 공공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러자니 발표와 토론의 장이 절실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1980년대 초의 연구모임에는 YMCA의 산증인인 전택부 선생과 일본에서 한국교회사를 연구한 오윤태 목사님이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몇 차례의 회합을 거쳐 10여명의 ‘신앙과 학문의 동지’들이 1982년 9월 27일 ‘한국기독교사연구회’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 때 선교사가 처음 내한한 4월 5일과,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가 탄생한 9월 27일을 중요시했는데, 9월 27일을 연구회 창립일자로 정했습니다.
![]() |
||
한국기독교사연구회 시절에 많이 지도해 주신,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선배들이 있습니다. 구세군의 장형일 부령님, 아동문학가로도 이름높은 최영일 목사님, 지적기술로 뛰어난 리진호 장로님, 일본인 동지 사와 마사히코(澤正彦) 목사님과 구라다 마사히코(藏田雅彦) 교수님입니다. 또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많은 문헌자료를 발굴, 제공하여 우리의 연구를 뒷받침해주신 심한보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분은 기독교대백과사전을 간행한 기독교문사의 한영제 장로님입니다. 장로님은 후학들에게 자료를 제공해주시면서 여러 항목의 한국기독교사를 집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고, 설날이 되면 당신의 집으로 젊은 학인들을 초대, 떡국으로 대접하시면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실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한영제 장로님의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1982년에 출발한 연구회는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가졌고, ‘한국기독교사연구’라는 정기간행물도 약 30여회 간행했습니다. 그러나 연구회 시스템으로써는 자료와 연구의 축적이 어려웠고 월 1회정도의 모임으로서는 연구성과를 담아내고 교류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런 고충과 반성을 거듭하면서 연구회를 연구소로 발전시키기로 의견을 모아갔습니다. 이런 공감대가 1990년 9월 27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창립이라는 더 진전된 성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연구회를 시작한 지 8년 후입니다.
![]() |
||
연구회와는 달리 연구소는 연구공간과 상임연구원이 필요하고 거기에 따라 재정적 뒷받침 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 때 저희들의 이런 연구계획에 공감, 재정적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연구공간의 전세금을 마련해 주신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님은 그 뒤 그 전세금을 연구소의 기본재산으로 삼도록 조치해주셨고, 그 뒤에도 아시아미션의 정재철 이상준 두 분 대표를 통해 지금까지 연구소 운영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연구소 출발 때부터 여러모로 도와주신 홍정길, 옥한흠, 하용조 목사님, 당시 영락교회 담임의 임영수 목사님과 그 교회 장년부 회원들, 할렐루야 교회의 김경현 이정수 김복윤 문일석 님들, 서울중앙교회의 우창록 장로, 그리고 저 시골 함안 군북교회와 그 교회의 박태이 장로도 저희 연구소를 힘껏 도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연구소를 도와주시는 20여개 교회는 저희 연구소의 버팀목입니다. 연구소는 처음부터 일용할 양식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저축없이 시작했고 40년을 지나오면서 이 믿음이 연구소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연구소는 그 뒤 연구회를 통합, 계승하여 40년의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40년의 역사에서 우리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용산구 청파동에서 시작, 수서와 마포로 옮기면서 독립건물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홍정길 목사님께서 이사장을 맡으셔서 이룩했습니다. 연구소는 세계 각국에 산재한 한국교회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여 이젠 한국교회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료의 보고로 만들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교회사 통사류 6권을 포함하여 논문선집 7권, 인물총서 8권, 번역총서 12권, 연구총서 26권, 자료총서 57권 등을 간행했습니다. 연구소는 회원수 250여명에 월례연구발표회 409회를 가졌는데, 이는 한국의 일반 역사학 관련 학회에서도 갖지 못한 연구모임입니다. 연 2회로 간행하는 학회지는 56호에 이르렀고 많은 논문들이 수록되었습니다.
그 동안 연구소는 한국교회의 당면과제와 관련, 두 가지를 염두에 둬 왔습니다. 『내한선교사사전』과 『북한기독교사전』입니다. 그 중 『내한선교사사전』을 오늘 내놓습니다. 국배판 1,520쪽에 걸친 이 사전에는 1985년까지 한국을 다녀간 선교사 3,179명 중 2,749명을 수록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외국 교회로부터 받았던 은혜를 학문적인 차원에서 갚으려고 한 것입니다. 『북한기독교사전』도 이른 시일 안에 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년동안 출애굽의 광야길에서처럼 우리 연구소를 이끌어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이끌어주실 것을 믿으면서, 제 ‘회고와 감사’의 말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