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홍동에서 열린 정농회 50주년 기념비 제막

정농회 설립 50주년 기념행사가 일본 아이농(80년)과 중국의 신농포럼(10년)대표단이 참여 한 가운데 지난 9월 9일(수) -10일(금)까지 홍동의 정농회관에서 기념식과 비석 제막식이 있었다 행사는 부회장 한주희목사의 사회로 회가 ‘우리 정농하리라’ 을 제창으로 시작했다. 지난 50년을 추억하며 다가올 100년을 향한 선언문을 채택하고 낭독했다. 이어 정경식 회장의 개회사와 일본 애농회와 중국 신농포럼 대표의 축사에 이어 그간 공이 있는 고문과 회장을 지낸 오영환,김준혁, 홍순명,임락경, 주형로선생께 공헌패를 드렸다.

* 공헌패를 받으시는 역대 회장과 고문들
또 국제 스로우푸드 한국지부와 MOU를 체결화였으며 주제 강연으로 홍순명 전 풀무원학교 교장과 정농회 회장을 역임한 홍순명고문이 ‘삼국의 농민과제’ 로 다음의 4가지를 제안했다.
1.유기농은 생명을 살리는 농업이다. 2.노동과 학문을 같이해야 한다. 3.학교와 지역이 결합해야 한다. 4.농촌과 도시는 협력해야 한다. 5. 북아시아 농민은 이웃사촌이다.

홍동면 씨앗도서관 자리에 세워진 회관은 풀무원학교를 세우고 홍성을 생명농업의 메카로 만들어 오신 분들의 공이 컸다. 이날 제막된 50주년 기념비에는 한국정농회가 1976년 일본인 고다니선생의 방문으로 원경선, 오재길 오영환선생이 시작했다고 쓰고 있다. 이후 대전에서 ‘타악’ 판타지 농악 공연에 이어 저녁 만찬과 뒷풀이 친교의 시간을 갖었다.
이날 함께 한 한,중,일 3국의 농민단체들이 모두 출발 당시 독실한 기독교신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정신도 모두 성경 말씀에서 왔다. 이 날 제막한 기념 비문에도 성경 요15:1. 5:17 말씀인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그 분이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라고 써 있다. 중국의 신농포럼도 한국을 방문한 후 10년전에 조직된 곳으로 농사 분야로는 유일하게 한,중,일이 함께 하는 시민단체다.

부천 고 원경선 선생의 풀무원 농장서 시작된 정농회(딸 원혜덕 선생 부천 콩나물신문 인터뷰 참조)
이렇게 ‘정농회’ 는 1976년 1월 부천 도당리에서 풀무원에서 시작된다. 당시 원경선 선생이 뉴욕 유니온 신학교을 다녀오시며 일본을 들러 일본 유기농 단체인 ‘애농회’ 창립자 고다니 쥬니치 선생을 만나 의기투합을 한다. 그 때 고다니 선생은 당신을 만나고 보니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시어 원경선은 귀국후 도당리 풀무원 농장에 초청해 지인들 30여명을 모아 강의를 듣는 다. 숙식 장소가 여의치 않아 닭장을 수리해 임시 숙소로 하고 큰 마루서 강의와 숙식을 해가면 지낸다.
고다니 선생은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고통을 준 것을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애농회의 회장들은 정농회에서 인삿 말을 할 때 마다 이와 같은 사죄를 한다. 고다니 선생은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는 일본의 죽음의 농사를 따라오지 말라고 하며 10년 있으면 한국도 틀림없이 일본과 같이 농약과 공해의 피해가 나타날 것인데 하루 빨리 돌아서라고 하였다.
당시 일본에서 산업화로 인한 폐기물이나 공해, 농약과 제초제 사용이 증가하여 우리보다 먼져 이런 일을 겼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해인 고다니 선생을 다시 초청해 먼져 강의를 들었던 이들을 불러 양계장을 숙소로 하여 풀무원 공동체 연수생식으로 처음 참석한 김중권선생(포천 평화농장)은 그 분들 시중을 들다가 이후 원혜덕 선생과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모인 이들 가운데 가장 젊은이었지만 이후 원경선 선생의 뒤를 이어 풀무원 농사 일을 하며 정농회 총무, 부회장, 회장을 지냈다.
연수회 마지막 날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제까지 잘못된 농사를 지었다고, 이제부터는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농사를 하겠다고 결심을 모아 우리도 단체를 만들자고 하여 처음엔 한국 애농회로 하자고 했다가 원경선 선생이 “한국 애농회라고 하면 일본 애농회 한국 지부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만이 아닌 다음 세대까지 생각해서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바른 농사를 짓는다 의미의 정농회가 어떠냐?” 라고 하자 모두 동의해 한국 정농회로 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래도 이 일을 시작한 원선생에게 정농회 초대 회장을 맡으라고 권유하지만 원경선 선생은 “나는 평생 전도를 하기로 하나님께 약속한 사람이다. 정농회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는 두 가지 일을 다 잘 하는 사람이 못 된다” 고 하면서 다른 분을 추천하셨고 그럼 부회장은 맡아 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초창기 10년 넘게 정농회 부회장을 하신다. 이렇게 해서 부천 풀무원서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 단체인 정농회는 생겨났고 겨울 농한기에 단기대학이라고 이름을 붙여 해마다 사람들을 풀무원으로 불러 공동체 연수생들과 함께 학습과 훈련을 한다.
전문인 강사들도 초청해 유기농에 대한 실제적이고 이론적인 지식도 가르치며 일본인 강사도 있었지만 당시 민족지도자들 함석헌선생, 문익환. 문동환 목사, 한완상 박사등 가깝게 지내시는 소위 민주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하자 정부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거기서 함께한 이들이 모두 유기농업의 지도자가 되었고 사람과 자연과 생태를 살리기 위한 사람들이 된 것으로 농민운동 농민단체등 모든 것들의 모판이 된다.

* 원경선 선생과 고다니 회장
중국 신농포럼과도 교류
정농회 30주년에는 1955-2004년 까지의 활동과 내용을 모은 정농회보 2집을 모은 “21세기와 정농정신이라는 30주년 기념 특집을 낸다(518쪽) 내용으로는 정농회와 함께한 지도자들과 경험등 을 담은 글로 장차 정농회 역사와 연구가 될 귀한 자료다.

* 30주년 기념 특집 목차
또 지난 2026년 4월에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유기농업인 단체가 정보와 기술 협력, 동양 평화를 위한 교류를 시작한다. 중국에서 저우리(周立) 중국 인민대학 농업농촌발전대학 교수를 단장으로 한 중국 신농회(神農會) 회원 17명은 지난 12~13일 홍성군 홍동면과 장곡면에서 한국 정농회 회원들과 교류회를 갖고 기념 강연, 좌담회, 공동체 활동, 시설 견학 등을 했다.
이들은 홍동 밝맑도서관, 문당리 환경농업마을, 초록이 협동조합, 장곡면 오누이마을협동조합 등을 견학하고 홍순명 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교장의 ‘정농정신과 농업 농촌의 미래’에 대한 주제 강의와 신소희 협동조합 일소공도 연구원의 장곡면 사례를 중심으로 한 농촌 지역사회 발전과 돌봄공동체에 대한 강의를 청취했다.

홍순명 전 교장은 강의를 통해 “한국 정농회와 일본 애농회는 30여년 전부터 자매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이제 중국 신농회와 교류를 시작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정농회, 애농회, 신농회 3개 농회가 바로 서야 아시아 평화의 기초가 된다. 아시아에서는 전쟁산업을 그만하고 평화산업으로 가자”고 호소했다.
신농회 저우리 교수는 “2017년에 홍동과 정농회를 방문해 활동 내용을 보고 중국에서 신농회를 만들었다. 중국에도 유기농업은 많이 있으나 서로 연결이 안 돼 신농회가 연결시켜 서로 돕고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은 꽃과 수술처럼 연결돼 있음에도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생명산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들에게는 정치가들과 다른 접근방법이 있다. 유기농업인들이 서로 돕고 협력해 화평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신농회는 정농회와 교류, 지능한 농촌 생태복지마을 만들기, 농촌 인재교육, 농민 문제와 지역사회 대응 등을 목적으로 홍성에 방문했다. 중국 유기농업 농민, 농민교육원장, 농업 관련 대학 교수, 농업 관련 협동조합 지도자, 농촌개발 프로젝트 추진에 종사하는 기독교인들이 참여했다. 신농회는 중국 전국에 걸쳐 80명 내외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 중국 신농포럼 대표 저우리교수로 부터 ‘생명농업’ 휘호를 받는 정경식 회장과 홍순명 전 회장
일본 애농회(愛農會)는 서두에서 언급했다 시피 1946년 일본이 패망하자 고다니 준이치(小谷純一) 청년사범학교 교수가 심각한 식량난 해결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제자 16명으로 결성하고 애농고등학교를 개설하며 출발한 기독교 농민들 모임이다. 회장이 1975년 한국 풀무학교를 방문해 유기농업을 전한 후 1990년대 중반 한국 정농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20여 차례 상호 방문 교류 행사를 진행해 왔다.
한국 정농회(正農會)는 1976년 기독교 농민들 34명이 경기도 부천 풀무원 농장에서 창립한 우리나라 최초, 최장의 유기농업인 단체다.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과 정신의 바탕에서 기독교 성서를 정관으로 삼고 조직을 운영하면서 유기농업 실천 행동강령을 만들어 반세기 동안 실천해오고 있다. 전국에 1000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한국 정농회 본부는 현재 홍성군 홍동면 씨앗도서관 자리에 있다.

정농회(正農會)는 1976년, 건강한 땅과 바른 먹거리를 고민했던 농민들이 만든 단체로 이들은 일찍 부터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업을 한국 최로로 시작한 농민운동 단체다. 시작은 일본 유기농을 시작하고 농민 단체 애농회愛農會를 조직한 고다니 준이치 선생이다. 그는 일제가 36년간 조선에 저지른 만행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한국 농민에게 유기농업을 전수했다. 1975년 고다니 준이치 선생이 처음 방한하면서 시작이 된다.
‘유기농’이라는 말이 생소할 때 선각자들은 정농회를 만들었는 데 거의가 개신교인이었으며 그 정신은 모두 성서에서 온 것으로 그렇게 해서 바른 농사를 짓는 다는 의미에서 정농회가 된 것이고 그게 이 단체의 제1강령이다. 성경의 ‘경천애인敬天愛人’, 의 정신도 그렇고 정농회는 창립 초기 신앙 공동체 성격이 강했는 데 초대 회장 오재길 선생이나 부천 풀무원 원경선 원장(1914~2013) 모두 류영모, 함석헌선행에게 영향을 받은 이들이다.
이들은 일제하 민족 독립운동을 정치적으로만 아니라 각계 각분야에서 시작하여 민족교육이나 농업등으로 흩허졌는 데 우리교단 농촌부를 설립해 초대 총무를 지낸 배민수 목사는 부친의 독립운동 정신으로 농민운동을 이어받아 기독교 목사로 교단의 중심부에 들어가 일했고 사후 전 재산을 연세대 농업개발원에 기증하고 통합교단과 함께 농촌지도자 교육에 써달라고 유언했다. 일가 김용기장로는 가나안농군학교라는 형식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데 참여했고 이찬진선생(서울대 이기백교수 부친)은 홍성에 풀무원학원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정농회의 비전
정농회는 2016년부터 토지 공유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헨리조지포럼·희년함께·토지+자유연구소 전문가를 초빙해 ‘토지 공유화 제도’ 강의를 듣고, 국내외 토지 공유 모델 사례와 공익 토지 신탁, 농지 공적 관리 등을 공부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7월 정농영농조합(주형로 대표)이 탄생했다. 정농회는 풀무학교 홍순명 교장이 내놓은 8000만 원을 초기 자본금으로 삼고 충남 홍성군 홍동마을 내 1200평 땅을 매입했다. 주형로 회장도 집안 대대로 농사를 짓고 있는 땅에서 400평을 정농회에 기부했다. 주회장은 풀무원고등학교를 나왔으며 고교생때 고다니선생강의를 직접 들었으며 한국 최초로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시작한 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농회는 단순히 땅만 싼값에 빌려주는 게 아니다. 청년들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학교 강의나 책에서 배울 수 없었던 노하우를 익힐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준다. 농사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분야로 품종도 다양하고 토양도 지역마다 다르다. 생산부터 유통, 시장까지 공부해야 할 게 많다”고 했다. 전문 기관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정농회 선배들에게 배운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