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목사 북치고 장고 치고 춤까지
“총회장님, 너무 감격입니다. 총회장님 한계 어디까지입니까?”
“지금까지 이런 총회장님은 없었습니다. 이런 목장기도회는 없었습니다”
지난 5월30-6월1일에 총회장 소강석목사가 시무하는 용인 새에덴교회에서 합동측 목장기도회가 열렸는 데 소강석목사가 받은 찬사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합동측 행사로 명칭이 ‘목장기도회‘지만 그렇다고 기도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9월 교단 총회에서 이전 처럼 교권의 돌출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사전 조정이라고 보면 되는 게 총대급 인사들이 다 모이기 때문이다.
올해 열정적인 총회장이 나와 합동측에 큰 바람을 일으키며 등장하더니 퇴장도 유난스럽게 하고 나간다는 평이다. 소강석 목사가 이미 부총회장 시절에 기획하고 준비한 "불의 연대기" 다. 보여주기의 달인 소강석목사의 대본과 기획속에서 작곡과 연출만 전문가들이 감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게 바로 공교회성의 무력화로 공교회의 사유화 혹은 총회장 취미 생활의 도구화라는 비판이다.
소강석목사는 처음 이 행사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선을 보이려고 준비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목장기도회와는 별도로 새에덴교회가 올리는 뮤직칼로 하려다가 여의치 않차 어렵게 준비한 것을 자기 네만 보기 아까워 목장기도회에 끼워 넣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바쁜 대형교회 목회자에 교단 총회장이 이런 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는 대단한 일이고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사실 교단의 수장이라면 뒷전서 말없이 있는 게 정상이지 앞장서 설친다는 인상은 안좋다.
내용적으로도 여러 말 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 돈 드려 자체 행사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극 혹은 시대를 조망하는 일에는 상대가 있으니 좀 생각들이 있었어야 한다. 자기들만 피해자고 고생했다는 식인데 분열의 상처는 모두의 것으로 나간자나 남은 자나 그 아픔은 한국교회의 것이고 우리모두의 것으로 누구도 승리자가 아니기 대문이다.
그런데 자신들만이 개혁신학과 순수 복음을 지키다가 광야에서 복음을 지킨 것 처럼 연출하는 것은 신앙안에서 연합운동을 하는 주체들이 할 일이 아니다. 이는 우리교단이 몇 년전 1959년 당시 조선신학교 교수였던 김재준목사를 제명한 것을 복권하는 결의를 총회에서 한 것과는 비교된다. 당사자들로는 이제와서 웃끼는 일로 치부하지만 당시 신앙과 신학이상의 것으로 정죄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에 뮤직칼로 올린 내용들중에는 자화자찬이 지나쳐 교회사적인 고증없이 자기 의와 사적감격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학문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그러나 교단의 지도자들이 모여 기도중에 단합을 위한 자리라니 이해을 한다. 그렇다고 언론들까지 나서서 소강석 총회장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불의 연대기로 불리우는 이 행사는 소강석목사가 대본, 작사 총감독을 하고, 음악예술감독 류형길, 작곡 신찬미, 김신, 정아현 등이 함께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지킨 선진들의 이야기란다. 특히 WCC 문제로 통합과 갈라진 후 남산사옥에서 신학교를 세우고 지금 사당동 총신이 종합대학이 되기까지의 지난 115년의 역사를 담아낸 뮤지칼이다.
![]() |
||
언론들의 보도는 용비어천가
보도에 의하면 이 모든 행사의 경비 전액 (개인 진단키트, 목장기도회 경비, 불의연대기 갈라콘서트, 진행 중 지역 상권을 위해 참석자에게 2박 3일 간 개인에게 지급된 1만원권 지역 식사권)을 새에덴교회가 부담했다는 보도도 빠지지 않았다. 이는 총회장이 총회에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총회장이 되었다고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총회장이 언제나 대형교회 목회자일 수 없고 교회 돈도 맘대로 갖다 쓰는 풍조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총회장이 되었다고 총회의 행사에 아무리 자기들이 돈을 덴다고 하지만 개인적 관심 행사를 끼워 넣고 코로나 시대에 그런 매머드행사는 자제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이 비판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총회장이 되면 공직에 대한 구분없이 이를 혼돈하여 자신의 영광과 이름 명예을 드러내는 게 다반사다.
총회장이면 계획된 기도회 전체의 내용과 진행에 관심을 갖아야 하는 데 소강석목사는 오직 갈라콘서트 ‘불의 연대기’ 공연중 실수가 나타나지 않을까 손에 땀을 쥐고 몸을 흔들며 기도했다는 간증이다. 그렇게 끝나니 자신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서 주변을 보니 모든 참석자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더욱 진한 감동에 눈을 감고 앉았는 데 눈을 뜨니 모두 일어나 환호의 기립박수를 치고 있어 자신도 그 때 일어나 같이 박수를 쳤다고 SNS에 썼다.
공연이 끝난 후, 격려와 문자로 “그 어떤 설교보다도, 백번의 설교보다도 한 시간의 갈라콘서트가 큰 감동을 주었다. 정말 총회장님 말씀대로 얼마나 총회를 사랑하고 총신을 사랑하는지 그 진심을 예술적 감동으로 보여 주었다” 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집회의 주 목적은 목장기도회이니 주제에 충실하는 것이 정상인데 이것 때문에 정작 기도회는 뒷전이 되고 만 것이다.
![]() |
||
장로교 양대 산맥
한국장로교회의 두 축은 통합과 합동측이다. 한때 선진들이 뿌린 분열의 씨가 자라면서 반목하고 비난하면 보내온 세월에 비하면 지금은 총회 임원회가 매년 공식적으로 교류하는 등 태평성대다. 이런 좋은 결과를 가져온 공신은 한기총 사태다. 그리고 합동측 내부의 연쇄적 분열로 인한 사회적 공신력 약화나 여성안수 거부등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낙후성으로 지성인과 젊은이 여성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지난 2012년 촉발된 한기총 사태는 당시 임기가 끝나는 우리교단의 이광선대표 회장과 갈자연 전임 회장이 후임자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시작된다. 이후 교단으로 전화되였고 우리는 결국 탈퇴를 선언한다. 이렇게 합동측과 공식적으로 결별한 것이 전화위복이 되는 게 한기총 대표회장인 부천 경서교회의 홍재철목사 때문이다. 합동의 비주류인 그가 합동으로가 신분 세탁을 하고도 합동지도부와 결별한다.
한기총 대표회장이 소속한 총회의 말도 듣지 않은 체 마이웨이를 하고 아들은 제 교회을 물려주고 자신은 합동을 탈퇴하여 은퇴없는 교단을 만든다. 그렇게 후원자 길자연목사도 배신하고 돈을 받고 이단을 해제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다. 합동도 나오고 사법적 판단을 받게 된다. 먼져 나온 통합은 백석과 고신 대신 합신를 모아 한국교회 제 3의 연합단체인 한교연을 만드는 데 한기총을 고사시키자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다.
그러나 한교연출발도 회장단과 실무진들간의 소송과 여의도 순복음의 비협조로 자립하지 못한다. 특히 합동측이 빠진 연합기관이 명실상부한 기관이 될 수 없어 경잼과 징검다리로 한기연을 또 만든다. 그러나 여기도 합동측이 함께 하지 못하고 연합운동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가 합동측도 한기총서 나오고 2016년 합동측을 망라한 전체 연합운동의 판을 통합하기 위하여 한교총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한기총도 전광훈이라는 목사가 대표회장 시절 이단으로 판명된 교단들을 받고 연임과정에서 불법으로 판명나 현재는 법원에 의하여 직무 대행 체재이다. 한교총이 한교연을 흡수 통합하려고 하지만 직원들과 부채등으로 인하여 진행이 안된체 현재 한기총 한교연이 여전히 존재하는 데 큰 그림은 한교총으로 통합을 하자는 게 교단들의 입장이다.
59년 이후 예장합동에서 나온 교단 80여개
합동측이 79년 대구 동부교회에서 정규오와 이영수 목사를 축으로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진다. 이후 방배동에 총회신학교를 세우고 자신들이 합동측의 정신을 보수한다는 의미의 ‘보수측’란 교단을 만든다. 여기에 충현교회(김창인목사) 동도교회(최훈목사) 부산중앙교회(노진현목사) 평화교회(김상도목사) 총회신학교(박윤선목사) 광주중앙교회(정규오목사) 거물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비주류였고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1981년 9월 광주의 정규오목사를 중심한 이들이 분열해 나가고 청담동에 다가 총회본부와 개혁신학교를 열었다. 그래서 세칭 청담측이라 물렀는 데 이때 광주측엔 2100여개 교회가 합류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았다. 이후 박윤선목사와 김명혁목사 박아론박사(박형룡의 아들) 이 다시 나가 합동신학교를 만들고 현재 합신이라는 교단으로 남아 있다.
이후 보수측은 홍은동으로 이전하고 ‘합동보수’로 하여 월남한 황해도 출신들과 호남을 축으로 하여 총회를 운영했으나, 84년부터 다시 분열이 나서 호남을 대표하던 김인승목사을 중심으로 약 300여 교회가 이탈한다. 그리고 다시 85년에 황해도 후예를 대표한 백동섭목사가 400여 교회, 손치호목사가 300여 교회, 박병진목사가 400여 교회, 87년에 윤관목사가 150여 교회, 92년에 이광복목사가 250여 교회를 거느리고 각기 딴 살림을 차리거나 타 교단으로 합류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이 모두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 장신의 후예을 자처하고 한기총등에 가입되어 있지만 총회 행정의 공공화 직영신학교가 아닌 교회에 야간으로 운영하는 방식의 신학원으로 안수도 총회가 준다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어 성직자의 질적 저하의 원인이다. 한편 자료에 의하면 홍은동에 끝까지 있던 최선재목사를 중심으로 총회신학교를 운영해왔다.
그러다가 98년 가을 전격적으로 이들 갈라진 교단들이 합동을 시도, 호헌총회(대표 신응균목사)까지 합류한 9개 교단 합동이 이루어져 그해 12월 전주동부교회에서 9개교단 합동총회를 열고 ‘개혁’총회를 구성했다. 총회본부는 방배동에 두었다. 이때 개혁총회 깃발 아래 모인 전국교회는 5300여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개혁총회는 각 세력 간 서로의 교권과 이권이 충돌하여 2000년 9월 총회에서 노량진측(대표 조경대목사)과 광주측(대표 변한규목사)으로 갈라졌다. 이때 교세는 노량진측이 3000여 교회, 광주측이 2300여 교회였다.
그리고 곧 이어 11월 광주측은 변한규목사를 중심한 800여 교회와 최선재목사를 중심한 홍은동측 1500여 교회로 분리된다. 그리고 이듬해 9월 총회에서는 다시 홍은동측에서 신응균목사와 엄신형목사가 800여 교회를 이끌고 나가 최선재목사를 대표로 하는 홍은동 개혁측은 700여 교회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2002년) 9월 국제측과 합동하여 개혁국제측이 탄생했다.
그러나 개혁측 교단들은 이러한 이합집산에서도 불구하고 금년 9월 총회에서 더 심각한 분열현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광주측이라 불리우는 성내동 총회(총회장 홍정이목사)가 합동측(총회장 서기행목사)으로 합류한다는 원칙을 정했으나 이 또한 일부세력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광주측은 3000여 교회가 합류해 있으나 그 절반 정도인 1500여 교회가 합동측으로 갈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합동측 일부에서는 교단 합동이 아니라 영입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개혁측과의 합동을 반대하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어 이 또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합동측으로 합류하지 않고 남아 있는 세력도 분열할 조짐이 일고 있어 교단이 두개가 될지 세개가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최근 종로5가 여전도회관으로 총회본부를 옮긴 개혁측은 총회장 정상환목사를 중심으로 한 임원회측과 총회발전연구회(회장 이윤구목사)를 중심한 비대위측이 이미 여름 수련회를 각각 따로 모여 행사를 치렀다.
비대위측은 개혁신학대학원대학교(이사장 조경대목사) 를 중심으로 총회발전연구회란 이름으로 총회장측을 압박하고 있고, 총회장측은 총회신문을 따로 발행하는 등 심각한 분쟁을 하고 있다. 또 이쪽도 저쪽도 가담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이참에 광주개혁측을 따라 합동측으로 합류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또 개혁국제에 합류해 있는 최선재목사측이 분열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바, 최목사측은 조경대목사측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이처럼 종잡을 수 없이 휘둘리고 있는 구 합동측 비주류계의 교단분열과 이합집산은 도무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로서 하나의 그리스도의 교회란 말이 무색하게 만들고 있어 한국교회를 심각히 오염시키고 있다.
혼자 북치고 장고치는 드라마 왜 나왔나
소강석목사가 시도 쓰고 문학에 조예가 깊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의 칼럼로 보인다. 저작도 많다. 그런 만큼 구설수도 많다. 작년 총회장 당선 예배서의 광고 코메디나 이전에 박지원 국정원장을 불러 놓고 한 지나친 덕담등 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는 평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광화문의 전광훈목사와는 선을 긋고 장로교단 답게 정중동의 행보는 다행이다
광장의 보수로 부터는 좌파라느니 문재인의 똘만이라는 등 온갖 오명을 받지만 호남사람으로 현 정부를 그렇게 적대시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자감이나 즉흥성은 3맨(맨손, 맨몸, 맨땅) 목회에서 다져진 것으로 누구도 못말리는 것으로 보인다. 손도 커서 총신대도 그렇고 교회 돈을 맘대로 쓸수 있는 몇안되는 사람중 하나로 줄지언정 받는 성격은 아닌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럼 왜 이번에 이런 큰 뮤지컬 드라마를 만들었는 가? 진정으로 합동교단에 대한 애정 때문인가? 하는 질문에는 여러 의문들이 많다. 이에 대한 단서가 하나 나오는 것이 이미 작년에 자기 네 교회에서 이상교 교수등을 불러 박형용과 장규호를 동급에 놓고 띄우는 분위기로 학술 세미나를 한다. 그것은 소강석 목사 자신이 합동측 주류인 총신대 출신이 아니라는 열등감으로 영원한 서자취급에 대한 것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합동측의 주류는 명실상부하게 총신대 학부에 신대원 출신이어야 한다. 과거 김영우 총장이 총신대를 그 지경으로 해놓고도 버틴 것은 총신대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총신 이사장 뒷담화에서도 소강석이 총신도 안나온 게 무슨 이사장이냐다. 김영우 총장 당시 총신 교수회는 사랑의교회 오정현의 학사기록을 까는 데 오정현도 총신 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교갱협이 학생회를 후원하여 김영우 지지하는 교수들을 졌다는 후문이다.
소강석은 광신신학교 출신이다. 그 학교는 정규오가 세우고 그의 아들이 1944년인데 만년 총장을 하고 있다. 합동측과 통합했지만 합동안에서는 여전히 물과 기름이다. 그런 소강석이 어떻게 총회장이 되었는 가는 바로 합동측의 총신대 사태와 사랑의교회 문제 때문이다. 오정현의 동생 오정호(대전 새로남교회)가 2019년 소강석목사와 부총회장 경쟁을 할 때 둘이 약조하기를 소목사에게 양보를 하면 사랑의교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조건이다.
오정호가 총회장이 된다고 해서 사랑의교회 문제가 더 잘풀릴 수는 없다. 이에 질러 스타일의 소강석가 해법을 낼 것으로 믿고 양보를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합동측 최초로 비총신대 출신으로 부총회장이 되고 약속대로 사랑의교회 문제를 총회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수습을 한다. 그리고 총신대 이사장 결등에서도 언감생신 꿈도 못꾸는 판에 소강석을 견제하는 교갱협과 척을 지면서 중도를 지킨다. 소강석은 적극나서지도 못하는 가운데 이사장 자리는 정읍의 김기철목사에게로 넘어간다.
이런 전체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비총신 비주류 소강석은 이 문제를 정면돌파한 것인데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과거를 불러낸 것이다. 분열의 과정에서도 지키온 개혁신학 보수신앙은 다시 하나가 되었고 이제 주류의 박형용 비주류의 정규오을 화학적 결합을 하여 하나되는 총신 하나되는 합동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원한 광신 지방신학이라는 딱지를 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치밀하게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불의연대기라고 보여진다.
이건 순전히 약자 컴프랙스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과거를 지우고 싶어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계층을 상승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귀고 치장하게 마련이다. 미인이나 학식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알아준다. 안되니까 치장을 하고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최고가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데 이런 인정욕구와 보여주기는 가히 병적이다. 같은 DNA는 언제든지 사고 위험이 있다 하겠다.
남의 이야기만도 아냐
우리 안에도 소위 지방신학교 출신이라는 이름으로 목회장벽에 좌절된 이들이 없지 않다. 그렇게 해서 한 때 나온 게 바로 신총연(지방신학교 동문들 연합)이다. 이들이 연대하여 지방신학교(목연)출신 총회장을 몇 명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연합은 결국 다른 파벌에 의하여 밀려나는 것이다. 숫적으로나 양적으로 큰 배나 물이 들어오면 이전 것은 물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올라오는 것이 장신대 학부출신들이다. 이미 김정서 총회장을 낸 바 있지만 지역과 호남구도였기에 이번에 진짜 학부 적자로는 현재 부총회장인 류영모목사를 친다. 현재 학부 출신들은 우리교단의 중추세력들이다. 현 총회 서기 윤석호목사를 비롯하여 대전의 최태순, 도림의 정명철, 정릉의 박은호, 덕수 김만준등 장신대 총장들도 그렇고 이제는 학부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역사속에서 특정 세력의 등장은 파벌의 승리자가 아니라 통합자라는 책임을 동반한다. 나하나 잘되고 출세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단의 발전과 통합을 위한 견인차가 되는 것이다. 제대로 배우고 경험한 세대들이라면 교회의 공적사명과 헌신이 먼져지 자신의 이름내기가 되서는 안된다.
따라서 소강석목사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신앙으로 승화시키기 보다는 우회적으로 역사적 통합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의도와 일부 언론들의 보도와 띄우기가 성공을 했을 까? 합동측 총회 기관지 기독신보를 보면 아니올시다로 보인다. 총회 기관지 답게 담백하게 스트레이트기사로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의 보도에 그치고 있다.
이는 기독신보의 사장이 현재 사장으로 이사회로부터 횡령이나 직권남용으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서도 나온 기사로 기자들의 대단한 용기와 프로정신이라고 본다. 적어도 총회 기관지라면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된다. 총회장이라고 해서 돈을 많이 내고 큰 교회라고 해서 특별한 대접을 원해서도 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기록된 역사는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합동측의 신학교 (문교부 인가)
광신대학교(광주 북구), 대신대학교(경북 경산시),대전과학기술대학교(대전 서구, 전문대학), 중부대학교(충남 금산군, 경기 고양시), 총신대학교(서울 동작구), 칼빈대학교(경기 용인시), 부산의 경성대학교와 인가된 각종 학교였던 부산신학교(경성대 신학대학)는 모종의 사건으로 경성대와의 관계가 끊겼다.
합동측 교단 인정(문교부 비인가)
칼빈신학교, 광주신학교, 서울신학교, 부산신학교, 대전신학교(1983년 창립된 중부대학교의 신학부가 분리 독립한 학교로, 지금은 대전신학대학교로 승급), 전북신학교, 인천신학교, 청주신학교, 수원신학교
출처/ 대한예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작성자 석응재
불의 연대기 대본 중 일부
해방 후 강북구 수유리 화계사 입구에 조선신학교가 생겼다. 그 땅은 전 국회의원이자 지금은 온누리교회 다니는 유재건 장로의 장인이 땅을 희사했다. 평양신학교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문을 단은 후 평양신학교에서 가르쳤던 김재준 박형룡 교수 등이 평양신학교를 복원시킨 것이다. 그런데 정규오를 비롯한 신학생 51명이 김재준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들었고, 강원용을 비롯한 학생들은 김재준 교수를 옹호하였다. 조선신학교는 강원용파와 정규오파로 나뉘게 되었다.
결국 신앙동지회로 불리는 정규오 등 51인의 신학생들은 박형룡 교수와 함께 수유리를 박차고 나와 장로회신학교를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교단도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로 나누어 졌다. 김재준 교수가 세운 경동교회를 미국 유학다녀 온 강원용 목사가 물려받았고, 정규오 목사는 박형룡 박사를 옹립하여 총회신학교 즉 지금의 총신을 세웠다.
참고 자료
예장합동 105기 총회 임원회는 임원회를 통해 ‘합동·개혁 교단합동 15주년 감사예배-더 큰 ONE을 향하여!’를 오는 10월 29일 갖기로 했다. 이는 2005년 구개혁측과 교단을 합동하고 첫 구개혁 출신의 소강석 목사의 총회장 선출과 연결되어 있다. 합동측은 2005년 9월 27일 대전중앙교회(최병남 목사)에서 1979년 총회에서 분열된 합동의 주류와 비주류가 26년만에 통합하였다.
합동선언문
이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지 120년 동안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한국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하였고 세계복음화 사역의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여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분열과 나눔이라는 아픔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신 사랑을 힘입어 1979년의 분열을 극복하고 지난날의 실수를 뉘우치면서 한국교회 앞에 하나되는 교회의 참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하나. 우리는 개혁주의 보수신학을 우리의 신학적 바탕으로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의 신앙의 토대를 굳건히 한다.
하나.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의 원리에 의한 장로교회의 정치 체제와 그 역사를 계승한다.
하나. 우리는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사역을 극대화함으로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하나. 우리는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이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가 되는 새 역사를 이루었다. 이제 분리보다 일치를, 정죄보다 용서를 분산보다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선포하며, 개혁주의 신학의 아름다운 정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간구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고전10:31)
주후 2005년 9월27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90회 총대일동
이에 앞서 2005년 6월 21일에는 양 교단의 합동 추진위원회에 교단 합동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고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합 동 합 의 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합동측과 개혁측(이하 양 교단이라 칭함)은 성경 요한복음 17:11과 에베소서 4:3의 교훈과 양 교단 제 89회 총회의 결의에 따라 다음과 같이 합동원칙에 합의하고 제90회 총회시 합동하기로 한다.
1. 합동된 교단의 명칭은 1979년도 제75회 총회시 명칭이었던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합동)라 한다.
2. 양 교단의 합동 총회는 2005년 9월 제 90회 총회를 양 교단의 총회장과 서기의 명의로 동일 일시와 장소로 소집하여 개회한다.
3. 합동총회 대의원(총대)은 제 90회 합동 총회에 한하여 양 교단이 인정한 자로 한다.
4. 양 교단 총회산하 각 노회 소속 목사는 공히 그 자격을 인정한다.
5. 양 교단의 노회는 공히 인정하되, 노회의 구성은 21당회 이상으로 하며 이에 미흡한 노회는 3년 이내에 요건을 충족하도록 한다.
6. 양 교단 총회본부의 직원은 합동된 교단 총회본부의 직원으로 한다.
7. 양 교단 총회가 운영하는 신문사는 통합하고 모든 직원은 합동된 교단 총회 신문사의 직원으로 한다.
8. 개혁측 “총회 개혁신학연구원”은 대학원 대학으로 정부의 인가를 받을 경우 총회의 인준신학교로 인정하되, 만일 정부의 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재학생은 총회 인준 신학교로 편입하고 졸업생의 학적 일체는 총신대학원이 관리하며, 교직원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총신대학원이 수용하기로 한다.
9. 광신대학교는 인준신학교로 하되 교육 과정이 3년임을 고려 2008년도 대학원 졸업자(2005년도 입학자)까지는 강도사고시 응시자격을 부여하고, 이후 입학생 및 졸업생은 총회가 2개월 정도의 특별 교육을 실시한 후 강도사 고시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한다.
10. 헌법에 명시된 대회제는 법대로 실시하기로 한다.
11. 합동원칙 합의서 이외의 제반 사항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의 헌법과 규칙을 따르되 “총회의 합동” 정신에 부합하게 합동 교단 헌법 서문 아래로부터 8째 줄의 “공포하기에 이르렀다”를 “공포하였다”로 수정하고, 이어서 “2005년 9월 oo일 000교회에 회집한 제90회 총회에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개혁)와 합동하였고 합동원칙 합의문의 준수와 함께 본 헌법을 사용키로 하였다”를 삽입하기로 한다.
12. 본 합동원칙의 실천과 이에 따르는 후속조치를 위하여 “특별처리 위원회”를 합동측 5인 개혁측 4인으로 구성하여 처리하게 한다.
2005년 6월 21일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대한 예수교 장로회(개혁)
총회장 서기행 목사 총회장 홍정이 목사
[출처] 예장합동, 2005년 개혁측과 합동 기념 15주년 감사예배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