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식 목사에 대한 다른 시선

                                        목회가 가장 힘든 것이다.

볼리비아 안데스 산맥에서 정부군과 조우한 토레스 신부와 동지들은 선제 공격을 당하지만 차마 총을 쏘지 못한 토레스신부는 죽음을 맞이한다. 볼리비아 출신의 토레스는 페루 출신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érrez)와 벨기에 루팽대학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쿠티에레즈는 훗날 기념비적인 저서 ”해방신학“ 을 낸다. 홍인식은 아르헨티나의 한 책방에서 이 그 책을 처음 보고 ’본 어게인‘ 했다고 고백한다.

한국판은 분도 출판사에서 성염신부가 번역했는 데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필독서였다. 금서였지만 복사판이 돌았다. 뭐 해방에 대한 전략이나 전술이 있는 책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왜 라틴 아메리카는 가난한지 그 가난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극복이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배경에서 저작된 책이다. 해방은 자유이고 놓임이며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해방신학(解放神學, Liberation theology)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콜롬비아 메데인 회의(1968년)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진보적인 신학운동으로 신정통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흑인신학, 생태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 등과 더불어 현대신학의 한 부분이 된다.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 혼 소르리노, 세군도도 그렇고 이들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주의적 계시와 구조로 경직된 성서 해석보다는 가난한 자들의 경제적 억압을 분석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주의 사회분석 이론으로 신학의 지평을 넓혔다.

   
 
   
 

 

 

 

 

 

 

 

 

 

 

 

 

 

 

 

홍인식의 인생전환
가난을 떨치고 돈을 벌기 위하여 남미로 이민를 떠났던 한 학생이 부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기로 하고 다시 고국의 장신대로 유학을 왔다. 그리고 목사가 되여 다시 남미로 가서 개신교 해방신학자 호세 미구에스 보니노의 지도로 장로교 목사로는 처음으로 해방신학으로 박사가 된다. 그리고 쿠바의 신학교로 한국 교회로 다시 멕시코 장신대로 그리고 다시 순천의 한 대형교회로 지난 5년전 부임했다. 그리고 조금은 아쉽게 그의 제도교회에서의 목회를 2020년에 마무리 짓는 다.

토레스 신부는 평범한 사제로 목회를 하지만 미국의 다국적 기업의 편을 드는 정부군에 희생당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 하나 둘 씩 안데스로 들어간 남자들에 대하여 더 이상 기도만 하지 않기로 한다. 여기에 내 교인들이 없다면 그들이 있는 것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홀연히 고별미사를 마치고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은 교구에서의 영성체를 중단하지만 언젠가는 이 땅에 평화가 오면 다시 평범한 사제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그러나 신과 역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 홍인식은 왜 안정적인 교회를 떠나는 가 알 수 없다. 그의 설교나 목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외부 활동에 대한 문제로 보인다. 세습반대운동에 대한 부담도 없지 않았다고 본다. 대형교회라면 어느 교회고 자기 네 목사가 나가서 목회가 아닌 일에 시간과 돈을 쓰면 좋아 할리없다. 나는 교단개혁만큰 중요한 것이 지교회의 목회라고 보는 사람이다.  자기 교회를 잘 돌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보는 사람이다.   

지금부터 쓰는 글은 홍인식 목사에 대한 비판 글이다. 홍목사 처럼 많이 배운 이들, 해외에서 공부하고 신학박사인 분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자 한다.  지금도 목회전선에서 개혁을 꿈꾸는 분들, 한국교회를 위하여 목소리를 내는 분들도 포함한다.  사람을 평가 하는 글은 위험하다. 얼마 전에도 동업자로부터 신의를 져버렸다고 내침을 받았다. 그래서 쓸 수 밖에 없는 게 운명인가 보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글은 몇 개 더 쓸 것인데 감사할 줄 모르고 남 탓만 하는 이들 때문이다. 

공부 많이 하고 능력있는 분들
목회자도 그렇고 해외서 학위를 받은 실력자라도 모두 원하는 자리를 얻고 하고 싶은 목회나 연구, 강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그런 자리와 기회를 얻은 분들은 감사해야 할 것이다. 목회와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서 오늘도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한다면 비정년자리도 감사한 일이다.  강의를 할 수 있고 연구실이 있고 자리와 역할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모두가 가고 싶은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도 동정을 구하는 분들도 있다. 사람들은 과연 누구에게 더 마음을 쓸까? 나는 정직하게 말해서 버리고 나온 사람보다는 거기서 버티고 사람 일을 찾는 사람에게 격려와 성원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만큼 하고 무슨 이유가 되었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 다른 결단을 한 것도 귀하지만 그것을 다른 이유를 들어 변명을 하는 것은 옳치 않다.

지금도 대형교회에 무임승차하고 교인 하나 전도도 못하고 건물 하나 짓지도 않은 후임자들이 선배들과 교인들이 이뤄 논 터전위에서 제 집인양 편하게 목회를 하면서도 감사 불감증에 걸려 불만들이다.  신종 양몰이 목회자들이 없지 않나? 예전의 선배들과 달리 고상한 취미와 지적유희를 즐기는 이중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자에 좋은 후배들중에도 학교를 떠났고  홍 목사는 목회지를 떠났는 데 모두들 미련들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말하기를 문제가 있거나 나가라고 해서가 아니라 자신은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은 진실이지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만 두웠으면 그만이다.  그만두는 데도 잡지를 않는 다고 구명을 안해준다고 불만할 일도 섭섭해 할 것도 없다.

   
 

그만두는 게 대사는 아니다.
옛 말에도 ”떠날 때는 말 없이“ 라는 말이 생각난다. 떠나는 사람으로 인하여 그 후유증을 없에 자는 것이다. 나는 진보적지만 목회자로 시무할 때 거기 최선을 다했다. 한 교회로 부임받은 목사는 그 교회 목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늘 새벽기도와 심방 설교에 메여 살았다. 그리고 떠날 때는 말없이 정을 끊는 심정으로 처신했다. 그리고 지금 까지도 당시 숙식을 제공하고 목회의 여건을 내준 교회와 교인들에게 감사한다.

이것이 의무였고 목사들의 첫 번째 사명이어야 한다. 큰 부르심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부임한 곳에서의 충성이 제일이다. 그 다음에 지역이나 노회, 총회, 연합회가 되야 한다. 그러나 목회 좀 한다는 분들을 보면 오히려 순서가 뒷전인 것을 본다. 지금 자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드리고 만나는 사람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한번 돌아보면 그것을 알 수가 있다.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말이다.

목회는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다. 자기의 몸과 마음이 어디에 있는 지를 말한다. 즉 무게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 지 시간과 정성을 어디에 두는 지가 중요하다. 물론 목회를 하다가 보면 개혁고 해야 하고 법안지킨다고 비판도 해야 하고 회장도 해야 할 때가 오는 것은 사실이다. 교수로 있다면 국제회의도 가게 마련이다. 

지금 임지는 적고 목회자는 많아 자리가 없다 그래서 무임이나 전도목사가 한둘이 아니라 아니 임지가 있어도 단독 자리가 안나서 나가지도 못하는 분들도 많다. 이들에게는 개혁이고 교단이고 헌법이고 세습이고는 큰 관심거리는 아니다. 우선 자신이 살고 봐야 하니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팔자 좋은 분들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이번 105회 총회가 끝나고는 제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교단이나 노회의 사안은 거기 맡겨두고 자신의 목회에 전념하기를 기대한다.

홍인식 목사 왜 사임했나?
뒤에서 하면 비난이지만 앞에서 하는 것은  비판으로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사실 홍 목사는 우리 교단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해방신학자다. 다른 교수들처럼 공부(학위)만 하고 온 것이 아니라 남미 해방신학의 한 복판인 쿠바와 멕시코 현지에서 신학교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또 현지 학자들과 함께 연구서를 내고 국내에서도 대형 목회까지 소화한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가 순천의 한 대형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첨 듣고 나는 홍 목사 보다는 그 교회에 감사했다. 자격이 안되는 사람을 청빙해줘서가 아니라 해방신학자라고 정직하게 고백을 한 그를 믿고 받아준 것이 너무 귀해서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열심히 목회했고 인정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가서 대접도 받고 현장도 둘러 봤다. 그러나 얼마만큼 현장의 기대에 부응했느냐는 모르겠다.

기억하기는 홍목사는 부임 다음 해에 순천노회에서 총대 선출 선거에 지원했다. 총대는 어느 노회고 가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 경쟁이 심하다. 홍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의 위상으로는 사실 총대로 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런데 온지도 얼마 안되는 사람이 총대가 되려고 지원을 한 것은 좀 이르다는 생각이다. 나는 전화를 해서 총대가 된다면 모르지만 안되면 상처가 된다고 했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러나 총대로 선출은 되었다 또 총대가 되는 것을 봤으니 사퇴하라고 했다. 그러나 사퇴하지 않았고 처음 총대로 나가 발언도 했다. 사람들은 총대가 되면 무슨 큰 일을 하고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보는 데 그렇치 않다. 홍 목사가 82기니 그 동기들이 총회적으로 한참 일할 때니 함께 총회를 위하여 할 일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목사가 큰 교회고 많이 배웠다고 총대가 된 것에 대해서 노회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 까?

이는 순천만이 아니라 대형교회에 부임한 목사가 일정 기간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 나대면 바로 어떤 식으든 그 댓가는 돌아온다. 부임한지 1년만에 총대가 되고  듣고 배우기 보다  평가를 하려고 한다.  선배들이 입이 없고 몰라서 말을 안하는 것이 아니다. 동역자들과 수준을 맞춰서 시기를 보고 개혁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이번에 홍 목사가 사임을 했을 때 그 노회의 반응은 무엇이었을 까? 

요즘 대형교회 목회자들에 대한 동역자들의 평은 선배들이 일궈놓은 곳에서 전도 한 사람, 건물하나 안짓고도 감사한줄 모르고 편하게 목회한다는 비판이다. 그러고도 목회에 전념하기 보다 총대나 가려고 하고 해외나 드나들고 마이크만 잡으면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남의 교회 이야기를 함무로 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꼴볼견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홍 목사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굴절시키면서 목회를 하고 싶지 않았는 말을 공개적으로 여러 번 한 바도 있다. 즉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구걸식의 목회는 안하는 사람이라는 프라이드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은 소신을 드러내고 멋진 목회자가 될 것이지만 그렇치 못한 다른 동역자들의 심적 고통은 생각지 않게 되는 것이다.

홍 목사 사임만 문제 아냐
홍목사 사임 소식은 전국적으로 관심과 기대를 걸었던 이들이 많았다. 나도 소식을 듣고 바로(6월 8일) 문자를 보냈는 데 답장을 받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답장이 오기를 사임서는 내지 않았다고 했고 해서 나는 절대로 사임서 개인적으로 내면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임은 결정되었고 더 이상 묻지도 탓하지도 않았다.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그후도 더 묻지 않았고 홍 목사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몇 개의 글과 인터뷰에서 밝혔는 데 사임 처리는 9월 총회 이후로 하고 7월부터 유급 안식월을 받아 강단은 서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후 나오는 사임 배경은 세습반대, 동성애지지, NCCK 인권쎈타 이사장 때문이라고 한다. 개중에는 개혁적인 목회를 반대하는 일부 장로들 때문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문제는 설교나 심장이나 목회사역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활동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위임 목사가 뚜렸한 잘못없이 왜 사임하느냐? 는 데 있다. 지금도 위임 목사들 중 이런 저런 문제로 목회를 버티는 동역자들이 적지 않다. 후임지가 마땅치 않거나 출구가 없어서다. 이런 이들에게는 이런 소식은 절망이다. 위임 목사가 소신으로 사임을 하면 버티는 목사는 뭔가? 노후가 준비되고 거기 아니어도 생존이 가능하고 할 일이 있는 목사라면 몰라도 오직 목회만이 천직인 동역자들에게는 이건 아니다.

잘못해서 사임한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홍목사는 위임목사의 지위를 너무 가볍거나 개인적으로 처리한 것이라는 비판인데 최근에 그것을 인정했다. 그런면에서 그는 훌륭하고 정직한 후배다. 머리 좋은 홍 목사가 사임을 가볍게 처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곳이 아니어도 자신을 원하고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목회적으로는 치열한 현장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싶다.

최근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공부하여 목양지에 부임하여 철저하게 현장의 눈높이에서 적대자들을 포함하여 시간을 갖고 목회를 하기 보다는 빠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 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말로는 섬기고 낮아지자고 하면서 실제로 자신은 경험이나 지식에서 낮아지기 보다는 전문가라는 권위를 못버리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영성과 신학으로의 요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회 현장의 니드이다.

그런데 나는 성 문제나 돈 문제등 다른 지저분한 문제로 그만둔 것이 아니라 말로 자위하는 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게 그건 자랑이 못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직도 겉보기는 주변의 위임목사들도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전히 살얼음을 걷는 동료들을 한번이라도 생각했는 지 묻고 싶다. 거기서 버티는 그 길이 바로 십자가이며 교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격려하기 보다는 난 잘못 없지만 그만두고 싶어 그만둔다는 청산주의다.

할 일은 어디서나 있다.
이번 사임과 관련하여 홍목사는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언론들은 그냥 두지를 않는 다. 이것이 바로 제도교회와 쌈을 붙이는 속성이다. 페이스북과 미국뉴스 M과 뉴죠에 난 기사를 보면 순천중앙교회 사임을 여전히 사적으로 본다는 느낌이다. 이점도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그 결과를 생각해보면 달라질 것이다. 홍 목사는 교회 돈을 사사로히 쓰지 않았고 주변에도 그렇고 통 큰 기부를 하여 힘든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교도 그렇고 그러나 이래서 홍목사는 개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이번 사임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NCCK 인권센타 이사장 취임도 목회를 위해서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답이다. 총대도 다음 해에는 출마를 안했지만 올해는 또 출마해서 총대로 선출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사임을 총회 이후로 한 것을 보면 총대까지는 가겠다는 것으로 보이고 가서 할 말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말에 무슨 힘이 있고 의미가 있을 까?

내가 아쉬워 하는 것은 홍목사의 사임은 우리 교단 개혁구룹이나 개혁에 큰 손실이라는 점이 결론이다. 좀 더 기다리고 준비하고 적절한 때에 역할을 해야 하는 데 아쉽다는 마음이다. 이는 홍 목사를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아직은 치열한 목회 현장에서 버티고 이겨내는 동역자들에게 용기를 내고 힘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목회 현장이야 말로 가장 어렵고 힘든 현장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개혁운동에 앞장서는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참 대견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하루 틀이지 그 교회도 못할 노릇이다. 당회나 교인들이 적극 협력한다고 해도 장로교법상으로는 어차피 목사와 교회는 해당 치리회 관할이니 그 정도 해도 되는 문제다. 그렇치 않고 과거에도 그렇고 남의 치리회 문제를 너무 심각하고 과도하게 대해서는 교단이나 자신이나 덕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
지난 8월 30일(주일) 홍목사는 소속 노회장에게 총대 사임서를 냈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총대권은 바로 다음의 후보자에게게 이양될 것이다. 그 사람은 기분이 좋을 것인데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노회는 그를 사심없는 동역자로 받아 주기 바란다. 홍목사는 더 이상 제도교회에서의 목회는 하고 싶지 않아 목사 은퇴까지 생각하지만 내가 만류했다. 그만두는 것은 급하지 않다고…..

그러나 그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들 곁에 있을 것이다. NCCK에서의 역할도 임기를 마치기를 바란다. 더는 교파교회에서의 목양의 길을 걷지는 못하지만 그가 갖았던 비전과 철학들이 아직은 우리에게 유효하고 자료로 남아 있고 또 듣기를 원하는 분들은 초청도 가능할 것이다. 홍목사는 좋은 여건의 목회자리를 떠남으로 더 성숙해졌고 자유로워졌지만 그 댓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인내하며 버티는 동역자들을 생각하면서 이겨내기를 바란다. 

우리교단 전체 1만명의 목회자들중 임지 없는 무임목사는 10%가 넘는 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는 실업자에 해당한다. 그들중에는 사역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사역의 기회을 얻지 못한 분들이다. 예전 같으면 개척도 할 수 있지만 이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누구라도 임지가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충성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노회도 다른 사업보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신학교에서 나오는 목사 후보생들의 사역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총회도 위임목사만 두도록 한 법도 개정하여 담임목사도 부목사를 두고 공동목회 협동목사등 법에 없다고 외면하지 말고 동역자들과 함께 사역하고 사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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