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장애인 주일과 이동권

                    4월 30일 장애인 주일에 생각할 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는 1989년 2월 제38회 총회에서 모든 회원 교단의 ‘장애인운동위원회’ 설치와 ‘장애인 주일’ 제정 권고를 결의한 이래 매년 4월 20일 직전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제정하고 함께 지켜왔다. 올해도 장애인 주일을 맞아 “혐오의 바다를 건너 평등의 들판으로” 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공동기도문을 통하여 함께 기도하기를 바란다.  

   
              * 이홍정 총무 자의 사임은 실행위서 결정될 때 까지 그 직은 유지된다. 
   

      

   
 

 

                            언론의 역할 중요해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사회현상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도만으로는 부족한데 과거 처럼 스트레이트기사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언론이라면 어떤 사건에 대하여 기있는 사실 그 자체를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언론은 ‘왜’라는 문제의식으로 사건을 보고 심층을 취재하여 독자들에게 알려서 이를 판단하게 할 의무가 있다. 바로 장애인들의 이동권문제로 지하철 탑승 투쟁에 대한 얘기다. 이들에 대하여 우호적인 지원을 하는 곳은 종교단체들이 유일하다. 불교와 기독교가 현장을 방문하고 사회적 환기를 한 바 있다.

작년 부터 시작된  장애인단체의 목소리가  ‘지하철 운행 지연’의 원인이고, 그래서 수많은 ‘시민들’이 출근길에 불편을 겪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사회적 약자와 아픔에 대한 공감능력이 너무 없어 보인다. 장애인들은 지금 시민들과 투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첫번째 희생자는 출근하는 시민들인 것은 사실이다. 이 의미를 진정모른다면 그는 기자일수도 지식인 일수도 없다. 서울시 혹은 정부의 주부무서인데 대회가 불통이니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건강한 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그런식으로 했다면 그런 비판을 듣고 외면을 받아도 할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언론가 막힌 장애인들이고 누군가의 가족이고 이웃이다. 

그러나 언론들은 장애인들의 뜻은 제대로 전달되기 보다는 이익집단으로 폄하한다. 심지여 시위에 나섰던 장애인단체인 전국차별철폐연대의 홈페이지가 사이버 테러로 다운되었고, 시위하는 장애인단체를 처벌하라는 국민청원이 뜨는가 하면 한 시민은 전국차별철폐연대 사무실에 찾아가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했다고 <한겨레신문>은 2월 15일자 기사를 냈다. 장애인단체의 시위로 무고한 시민들이 출근길 불편을 겪고 있다는 기사들을 앞다퉈 내던 그 수많은 언론들은 자신들이 옹호했던 ‘불편을 겪는 무고한 시민들’이 ‘혐오’와 ‘차별’로 무장한 채 장애인단체를 공격하자 모르쇠로 돌아서고 있다.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일이다. 언론들이 대변한 비장애인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은 사실 장애를 가진 시민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한 결과로 이뤄진 그들만의 평화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각하지 않는 비장애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은 장애를 가진 시민이 열등한 존재여야 가능한 셈이다. 감히, ‘병신'(장애라는 비정상성을 가진 자들)들이 우리(비장애란 정상성을 가진 자들)의 권리와 동등해지려고 하는 그 괘씸한 시도는 그래서 언론들에게는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먹잇감이다.

언론들이 출근길 비장애시민 수백 명, 수천 명이 지하철을 타고 내린다고 해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지 않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시민 수십 명이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한다고 해서 운행이 지연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부실한 지하철 운행 시스템 속에서 인구의 5%나 되는 장애시민들은 어떻게 출근하면서 생계를 이어갈까 알려고 하지 않으며, 265만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며칠째 이어지는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로 겪는 자신들의 불편을 어쩌면 평생 견디고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문조차 하지 않는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권리, 배제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함께’ 누리자는 장애시민들의 하소연이 언론을 통해 ‘억지’와 ‘민폐’로 해석되는 천박한 태도 대신에 서로의 연대를 통해 환대와 지지를 받는 그날은 전제일까? 

   
 

                장애인들이 바라보는 이동권 운동

장애인들이 아침에 출근길 지하철 타기 운동이 시작된지 1년이다. 이 전철타기 억지운동은 지난 2001년 1월 22일 안산 오이도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22년간 장애인 단체들이 요구해온 온동으로 하루아침의 떵깡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를 포함하여 우리사회의 무관심과 냉대는 여전하다. 급기야 장애인들이 직접 길거리로 직접 나섰다. 그러나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젊국민들의 평균으로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 특히 국민의 힘의 이준석 전 대표마져도 이 운동에 대한 왜곡된 의식과 이를 통한 국민 갈라치기는 장애인들의 이런 투쟁을 평가절하하면서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살면서 교육, 근로, 문화·여가 활동과 같은 일상생활을 하려면 이동이 필요하다. 이동을 수반하는 활동들은 대부분 인간의 기본권과 관계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제37조에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는 데 장애인들은 더도덜도 말고 국민으로의 기본권인 평등권, 자유권, 사회권, 청구권, 참정권중 사회권 영역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즉, 헌법상으로 보장된 국민적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유로운 ‘이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은 지금까지 자유로운 이동을 할 수 없었고, 인간이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은 적절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고, 이는 경제적 어려움과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인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동권 보장, 어디까지 왔나? 

이동권 운동의 영향으로 2005년 1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되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2007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며 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이 금지되었다. 이후 저상버스가 늘어나고 대다수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으며, 특별교통수단도 도입되어 22년 전보다 나아졌는데 아직도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22~2026)에 따르면 전국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21년 기준 30.6% 수준으로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서울시의 경우 60% 수준으로 전국 평균보다 높지만, 경기(19.2%), 울산(12.1%), 충남(9.9%), 경북(17.3%), 전남(16.8%), 제주(17.8%) 등의 보급률은 10%대로 매우 낮아 지역 간 격차가 심하다. 마을버스(3.9%), 농어촌버스(1.4%), 좌석버스(0%)의 도입률은 시내버스 보다도 매우 처참한 수준이며, 고속·시외버스의 경우 차량개발과 버스 터미널 및 버스 정거장 개선 등의 추가적인 문제도 있어 도입이 더욱 지연되는 상황이다.

지하철 역사의 경우 서울시가 2025년까지 엘리베이터 설치를 100%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이와 관련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게 편성되어 이마저도 불투명하다.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휠체어 이동 동선에 제약이 있는 역사도 많다. 특히 환승 시 운임구역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진입하거나 아예 역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진입해야 하기도 한다. 일부 역은 대합실과 승강장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무조건 사고 위험이 높은 경사형 리프트를 이용해야 한다. 

장애인콜택시라고도 불리는 특별교통수단은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이동 수단이지만 지역 간 보급률의 격차가 크고 운영방식도 달라 자유로운 이용이 어렵다. 타지역에서 이용과 타지역으로 이동이 어렵고, 휠체어 이용 여부와 무관한 탑승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만성적인 배차 부족으로 특별교통수단 호출 뒤 장시간 대기하거나 배차가 되지 않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22년간 이동권 운동으로 이동권 보장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지만, 자유롭고 안전한 이동은 아직 어렵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곧 차별이 되기 때문에 장애인은 이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이동권 보장을 외칠 수밖에 없다. 

이동권 보장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인가? 

혹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 장애인만을 위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교통약자법에서 정의하는 교통약자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등도 포함된다. 2021년 기준 교통약자의 수는 1,551만명으로 전체인구의 30% 수준이며, 이 중 절반이 고령자이다. 저상버스는 장애인은 물론 모든 시민이 승·하차하기 편리하고, 이동권 운동을 통해 설치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이용자는 장애인 보다 고령자가 더 많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더 많은 사람의 편리함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동권 운동은 장애인만을 위한 운동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운동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지하철 시위 현장에 가면 ‘장애인 권리예산’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장애인 권리예산’은 장애인이 인간답게 사는데 장벽이 되는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예산을 편성해 기본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유엔은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으로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의 권리보호, 장애인의 이동권과 문화접근권 보장, 교육권과 건강권 및 일할 권리 등 장애인의 전 생활영역에서의 권익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한국의 장애인 예산은 2020년 기준 GDP 대비 0.7%로 OECD 평균인 2.0%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장애인 권리예산’에는 장애인 활동 지원, 평생교육, 취업 지원, 탈시설 지원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기본권과 관계가 있다. 쉽게 말해,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면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인 현재 예산만으로는 장애인 권리보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노력에 대한 결과가 예산이라면, 정부가 앞장서 장애인 예산이 OECD 평균 수준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 권리예산이 그 노력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당연히 누렸던 권리 

누군가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가 누군가에겐 죽도록 갈망하고 한 번쯤은 제대로 누려보고 싶은 권리이다. 장애인만을 위한 특별한 정책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할 때이다. 특별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특별교통수단이 늘어난다고 해도 이동권 문제가 쉽게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특별교통수단이 아닌 일반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탈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일본이나 미국, 영국은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 택시를 도입하여 누구나 쉽게 택시에 탈 수 있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물리적 장벽도 제거되어야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허물어야 한다. 나아가 법적·제도적 장벽도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 시민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함께 살려면 모든 장벽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