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평화활동가 해초 김하현 청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는 1970년대 유신 군사정권 시절 국가폭력의 실상을 드러낸 인권탄압에 맞서 싸웠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다. 초대 인권위원장 조남기 목사를 모시고 활동했던 필자는 인권위의 역할과 의미를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그 역할에 애정을 갖고 있기에 이번 문제 제기는 사람이나 활동 전체가 아니라 올해 수상자에 대한 다른 시선으로 보자는 공개 제언임을 먼저 밝힌다.
올해로 39회를 맞은 한국교회 인권상은 ‘인권 증진과 민주·평화·평등 실현에 기여한 개인 혹은 단체’ 를 선정해 왔다. 그런데 올해 수상자로 가자지구 국제 구호선단 국제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매들린’(Thousand Madleens To Gaza) 에의 탑승자중 하나인 해초(김아현) 씨로 4일에 수상할 예정이다. 수상자에 대한 기준은 있을 것이지만 해초의 참여가 성공한 것도 아니고 참가한 여러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 그에게 이 상을 준다는 것이 오랜 역사와 무게를 가진 인권상의 기준에 부합하는 가? 하는 데는 의문이 남는다.
해초 씨는 구호선단 참여 과정에서 이스라엘 해군의 검문과 강제 이동, 조사를 거쳐 결국 귀국한다. 전장의 위험 속에서 국제연대에 참여한 활동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나 공동체에 법적·외교적 부담을 자초한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위험 감수 자체가 곧 인권상 수여의 근거가 되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청년 활동가의 1회성 행동외는 알길 없는 전체 삶에 대한 검증없이 즉시 수여하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할 대목이다.

가자평화운동가는 많다.
더 중요한 지점은 인권상 본래의 기준과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을 돌아볼 때 이번 수상이 갖는 괴리감이다. 그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 구축 등 수상자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 독재와 국가폭력에 개인들이 헌신과 희생을 감내해 온 인권운동가와 단체들이였다. 이와 비교하면 이번 선정은 지나치게 파격적이며, 선정 사유 또한 억지스럽다는 인상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 보다 더 의미있게 구조적 위험을 감수하며, 더 고독하게 인권과 공익을 지켜온 이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최근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은폐가 국가 최고 권력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 어떻게 되었나? 의로운 사람들의 용기로 바로 잡는 데 기여한다. 이외에도 계엄하 내란을 막아내기 위한 여러 노력들과 비교하면 해초 씨를 수상자로 선택한 기준과 과정이 과연 맞는 가? 묻게 된다.
더욱이 최근 추세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인물들의 기념사업조차 개인에서 단체로 이전하고 유명하고 업적을 남긴 분들도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념사업이나 추모가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 박형규 목사나 정진동 목사 조승혁목사나 최근 조용술목사 처럼, 진정성 있는 추모와 평가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 이들의 자발성과 기억의 헌신위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더 세심한 검증 필요
이에 비하면 최근 일부 인물들에 대해 충분하고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검증 없이 가족이나 일부 제자들과 지지자들에 의하여 영웅시 하는 기념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의로운 죽음’ 이라는 명분도 문제다. 잘못하면 이를 우상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운동도 그렇치만 이를 격려하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일시적 뉴스나 인물들로 한정되는 시류에 휩쓸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권상은 단순한 격려상이 아니다. 한국 사회 민주화·인권운동의 역사와 무게를 잇는 상이다. 그런 만큼 수상자 선정 기준은 더욱 엄격해야 하며, 활동의 지속성·구조적 기여·사회적 검증이라는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해초 씨 개인의 용기와 선의는 폄하될 이유가 전혀 없지만, 이번 수상 결정이 인권상의 전통과 무게에 부합하는지는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

선정의 기준도 문제
원래 NCC인권위에서 인권쎈타로 또 몇년전 부터는 NCC가 빠지고 ‘한국교회 인권센타’ 가 된다. 당시 이사장은 예장의 홍인식목사고 소장은 기장의 박승렬목사였다가 그후 이사장을 하다가 지난 달에 NCC총무가 된 바 있다. 이름의 변천은 시대적상황도 있지만 주체와 역할의 달라졌기 떄문으로 안다. NCC에서 한국교회가 된 것은 그 의미가 크게 다른다. 공교회가 아닌 뜻있는 사람들과 관심자들이 운영의 주체가 라는 의미다. NCC라는 그늘에서 나와 활동 자유는 커졌다.
이번 시상 이유에 대하여 심사위는 “해초 활동가는 지난 2024년 계엄·내란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군사주의의 유혹을 넘어 ‘평화의 공공성’으로 재정렬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해 왔다”고 밝혔다. 또 그녀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현장에서 비폭력 저항과 연대를 실천해 온 점도 주목했고 단순 구호가 아닌 팔레스타인 난민 참상을 알리며 “국내의 군사주의 비판과 국제적 반전 운동을 평화의 공공성이라는 언어로 긴밀히 결합시키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그의 실천은 한국 사회가 공적 책임과 연대를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강조한다. 수상자 선정 내부위원으로는 최형묵 이사장, 손은정 부이사장, 이종건·김민아 운영이사이며 외부위원은 김소연(비정규노동자센터 꿀잠 운영위원장), 몽(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이원호(빈곤철폐를위한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임태훈(군인권센터 소장) 등으로 알려졌다. 한국교회 인권센타라고 하기에는 무색한 측면이 없지 않다.
평가와 결론
그러나 앞에 여전히 한국교회 라는 이름을 쓰는 한 적어도 보편적인 교회가 인정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한계는 여전하리라 본다. 따라서 인권센터가 향후 특정 사건의 시류나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본래의 기준과 정신에 따라 이어가길 바란다. 인권의 자리는 언제나 인기나 속도보다 무게와 깊이가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초 청년에 대한 의미는 다른 곳에서 또 시간이 좀 흐른 후에 해도 될 일이다.
생각같아서는 1년전 큰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대다수 시민들과 내란 잔당들을 척결하는 과거청산 역사바로세우기가 한창이다. 계엄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한 헌재로 부터 시작하여 매주 토요일 길거리에서 모인 촛불연대도 그렇고 내란의 극복 과정에서 공무원 신분으로 상관 명령은 불복 할 수 없지만 지연과 양심 증언을 한 이들이나 다수의 시민단체와 빛의 광장에 함께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최근 불법계엄으로 판명나고 법에 의하여 정의를 세우는 과정에 있지만 여전히 내란잔당들의 발호와 편가르기 국민주권정부 비난을 하는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특검과 사법부 언론등 나라 바로세우기에 해쓰는 분들을 기억하는 맥락에서 후보자를 찾아봤는 지도 궁금하다. 해초는 개척자들이라는 NPO단체 소속으로 강정마을과 ‘공평해’ 라는 무동력 배로 다수의 일행과 부산과 제주 오키나와 대만을 거쳐 항해하는 평화 세일러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진 평화운동 단체 소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