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형 전도사와 청주산선
조순형전도사가 고영근목사님의 뜻을 기리는 제 4회 목민상 수장자로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반가운 일이다. 목민상은 그동안 1회 차선각, 2회 김병균, 3회 김규복 목사로 모두 남성들이었는 데 이번 4회는 여성이라는 말에 반가웠고 그것도 조순형전도사라는 말에 더 좋았다. 조전도사의 첫인상은 매우 여성스로운 분인데 이런 분이 어떻게 산업선교를 했을 까 하는 마음이다.
항상 웃는 얼굴에 목소리도 작고 욕을 해봐도 귀여울 정도다. 그런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였기에 댓가없이 지금 까지 청주산선에 이어 청주 노동교회를 이끌고 계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조전도사를 말하려면 매부인 정진동목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데 벌써 세상 뜨신지가 17년이 넘는 다. 최근 오마이에 구술사가 연재되고 있다.
시상식은 장신대에서 했는 데 목민상 단체상도 이번에 처음 수여되는 데 최헌국목사(전 촛불교회)가 수상했다. 그외 학술발표와와 음악회등 다체로운 행사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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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년 양관에 있던 청주성경고등학교 2회 졸업식 | ||
정진동목사와 청주산선
정목사는 축북 옥산 호죽리 출생으로 가난하고 어렵게 성장하고 청주 성경고등학교를 2회로 졸업하고 서울의 대한신학교에 입학한다. 공부에 얼마나 목말라했던지 야간으로 단국대학교에서 사학과에 편입하여 공부하여 두 학교를 동시에 졸업한다. 이미 신학교 4학년부터 고향 호죽교회 전도사로 부임한다. 1958년 졸업과 동시에 안수를 받고 호죽교회 목사가 되지만 우리교단 신학교와 지역 충북노회 소속이 아니라 뒤 늦게 장신대서 청목을 한다.
호죽리서 3년 시무후 정식 우리교단 목회자로 진천 덕산교회(61-72년)서 시무한다. 그리고 호죽리에 자신이 세운 영광고등공민학교에 가서 성경과 영어, 역사를 가르쳤다. 그렇게 농촌에서 14년의 목회를 하면서 늘 장신대서 같이 공부한 조지송을 생각했지만 만난 수가 없었는 데 어느 날 충북노회에서 조지송 특강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 다
만나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이 갔더니 막 강의를 시작할 떄다. 자그마한 몸짐의 조목사가 신학교 졸업 직후 강원도 태백의 장성탄광에서의 노동 체험을 이야기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강연을 듣고 불연 듯 농촌목회가 아니라 조지송 처럼 도시의 노동자들을 상대로한 산업선교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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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등포산선에서 훈련을 한다고 하여 지원을 하여 갔더니 인명진목사도 장신대를 68회로 졸업을 하여 둘이 지원을 해 훈련을 받았다. 인목사는 무궁화유지의 비누공장에 정목사는 나이가 많아 공장이 어려워 버스에서 타고내리는 사람을 파악하는 계수원에 지원했다. 그후 인목사도 청주에 내려와 넝마주의도 하는 등 같이 훈련을 받고 정목사는 청주에 인목사는 영등포산선에 자리를 잡는 다.
이게 바로 청주산선의 출발이다. 조순형 전도사(1950년생)는 정목사 막내 처제로 실무자겸 전도사로 같이 사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목사는 충북노회에서 탈퇴하게 되고 기장으로 입적을 했다가 거기서도 나오게 되어 나중에는 독립적으로 산업선교를 했다. 또 영등포나 인천등은 주로 노동자선교었다면 청주 산선은 운전사 청소부등 도시 빈민문제까지 폭넓게 사역을 한다.
그후 정목사는 청주지역의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청부시장까지 도전해보지만 실패하고 소천한다. 그리고 조순형전도사는 홀로 청주산선을 이끌어 온 분이다. 산업선교 현장에는 주로 남성목사들이 활동을 하였다. 그 분들의 사역이나 성과에 대해서는 많이 소개도 되고 출세도 하고 보상도 충분히 받은 분들이 계시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름도 빚도 없이 사역하다가 사라져갈 뿐인데 이번에 조전도사의 사역에 대하여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은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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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업선교의 여성 사역자
산업선교에서 가장 먼져 이름이 나오는 여성은 영등포공업전도대의 강경구전도사이다. 조지송목사 이전에 공장에 파송받아 여공들을 위하여 기도회와 예배 상담을 해 온 분이다. 그후 조지송목사와 함께 합창발표외 추수감사제 성탄캐롤 부르기 등 여공들의 교양과 문화를 위한 구룹활동을 지도하신 분이다.
그리고 감리교단의 조화순목사가 계신데 감리교는 일찍이 여성안수를 주었기에 인천산선서 일하셨다. 그리고 영등포산선에 명노선전도사가 계셨다. 회원들은 주로 여성이지만 조지송 인명진목사가로써는 감당할 수 없었던 분야를 체워주신 분이 바로 명목사이다. 명목사는 퇴직후 기장교단 목사가 되어 카나다 유학까지 다녀와 목회상담분야에서 일하셨으며 지금은 은퇴후 강동구 요양병원에 계시다. 또 한 분은 고애신전도사인데 장신대 학부 졸업후 경서노회의 부름으로 구미에 산업선교를 시작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남성목사도 감당하기 힘든 산업선교를 구미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작도 하기전에 감시와 미행으로 사무실에 출입자를 검색하여 사람들이 올 수 가 없었다. 또 노회적으로도 전통적으로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말잘듣고 농떙이 치치말라고 설교나 하고 참고 인내하고 견디라고 기도하라고 불렀더니 노동자의 권익과 인권을 꺠우치니 장로가 사장인 회사에서는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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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우로부터 조순형전도사 정진동목사 이관복선생 | ||
겨우 한명을 전도하였는 데 그 분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자취가 대구에서 큰 열매를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당시 산선활동을 하는 3분의 여성들을 기억하면서 교단에 있지 않은 조순형전도사가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조순형전도사는 10월 24일(목) 장신대에서 열린 목민 고영근 학술제와 목민상 시상식에 참석하여 축하를 받고 감사했다. 정진동목사의 처음에는 사람들이 없어 처제 조순형전도사외에도 처제들의 도움이 컸다는 증언이다. 남성들의 이름과 업적에 가리워 저평가 되었던 여성들의 이름과 목소리가 남겨지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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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선교사 조순형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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