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필리핀에서의 PCK 선교

필리핀, 한국 선교사들의 천국인가?

글 싣는 순서 

 1. 지정학적 위치와 국가와 기독교 정보 
 2. 한국식 전도 언제까지  

 3. 한국교회의 필리핀 선교역사 
 4. 필리핀에서의 PCK 선교 

   
* 이철용 대표와 캠프 본관 앞에서

 4. 필리핀에서의 PCK 선교 역사

우리교단의 필리핀 선교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은 데 1981년 유동원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필리핀 선교가 2010년에는 50번째 선교사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식의 신학교를 세운 것은 1983년 6월 29일 개교한 필리핀 장로회 신학교(PTS)가 있고 합동교단 중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1990년 마닐라 성서신학원(MPTS) 로 다시 1992년 마닐라 장신대(RCB) 가 되었고 당시 학장으로 신기찬(홍은숙) 이 사역하였다. 그리고 2004년 총장으로 NCCK총무와 CLS 사장을 지낸 고 김소영 목사가 부임한다. 그후 2006년 CCA의 국장으로 있던 이홍정 목사가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필리핀 아시아 태평양 장로회 신학대학(Asia Pacific Christian College and Seminary, 일명 아태장신대)"으로 개명하고 외곽 몬탈반으로 이전을 하여 교사를 신축한다.

그 후 이 총장은 6년 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고 전 총회장 김영태 목사가 총장으로 부임을 한 바 있으나 2015년 이순창 목사가 이사장으로 대폭 개편을 하고 대전영락교회 김등모 목사를 총장으로 부총장은 명성교회 부목사 출신 황상호 목사가 맡고 있다. 필리핀의 신학교 역사는 류동원 선교사의 전기 “내가 여기 있나이다” (서울: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부, 1990)에 잘 나와 있다.
http://www.pckworld.com/news/articleView.html?idxno=49437(졸업식) (기독공보에 보도된 아태장신대의 기사)

   
 

국내에서 현지 사역을 돕는 단체 중 방파선교회(방글라데시아 파송 선교회)는 역사도 오래 되고 모범적으로 운영된다는 평이다. 초기 파송된 정성균 선교사를 돕기로 시작된 이래 그가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유지를 받들어 이것 저것 하는 선교회다. 이 선교회의 정체성이 무언지 모른다는 평도 있지만 매년 총회 때마다 이름들을 내고 모이는 것을 보면 간단하지 않은 조직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호남출신 인사들을 기반으로한 온땅선교회도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다.

이번에 나는 짧은 기간이지만 필리핀을 다시 방문했다. 개인적 업무가 있었지만 몇 명의 선교사들을 만났다. 오랜동안 현지에서 사역을 한 분들에 비하여 현지 사정에는 문외한이지만 반대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한 문제를 바로 보기 힘들다.  

자료에 의하면 필리핀에서의 PCK 선교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고 아직도 많은 선교사들이 사역을 하면서 끊임없는 구설수가 있었다.  과거 언론에 크게 보도된 김ㅇㅇ 선교사  문제도 그렇고 장기 선교사들 가운데 사실 사역을 정확히 확인할 수도 없고 이것저것 나눠주는 일을 선교랍시고 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현재 필리핀에는 우리교단의 선교사들이 증가하여 사역별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여  4개로 분화되어 있다. 발전적인 면 보다는 현지 사정에 의한 인위적인데 분화는 지역과 사역내용, 특성들을 고려한 분가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선교사 개인이 주도하는 것은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될 우려가 큰다.

누가 감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방문해도 좋은 것 잘하는 것만 보여주지 자신의 실패와 경험을 진솔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실패한 선교사, 그래도 시행착오를 부릅쓰고 도전하는 선교사가 귀하다고 본다. 모든 선교사들이 성공하고 사역의 자랑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처럼 SNS가 유행이지만 자신의 사역을 공개하거나 올리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보다 어느 정도 자신의 사역 여정을 공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후원자들과 사역지에 자신을 오픈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어느 선교지든지 자리를 잡고 현지에 익숙하고 오래된 시니어들의 자정 역할과 본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선배들이 후배들을 길들이고 갑질을 하는 문화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필리핀에서의 PCK 대표 사역 기관은 역시 아태장신대학교라고 보인다.  그리고 MK 학교(MK 어학원)과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감당하는 교회 사역과 현지 목회자 리더십 훈련 등으로 알려졌다. 사실 선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는 것이 주님의 분부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고 그래서 자신의 사역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분들은 아무래도 나와서 후원자들을 개발하고 홍보를 해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MK 학교의 경우 현지 선교회가 운영을 하다가 몇 년 전부터 명성교회가 인수를 하여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명성교회가 파송한 현지 책임자들의 갑질로 인하여 선교사회나 학부형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문제는 하루 빨리 잠식되어야 할 것이다. 교단이나 현지 선교사들에게 누가 되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러다가 보면 좋은 점 긍정적인 것을 극대화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것은 감출 수밖에 없다. 사역지는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 그렇다고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업무는 계획-실천-평가라는 사이클을 순환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놓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선교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그 공과는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려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 나라는 우리보다 일찍 민주주의와 서구화를 받아드렸고 기독교의 역사도 그렇고 선진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다. 자체적으로 교단의 통합을 이루고 에큐메니칼운동과 신학 인자들도 많다. 또 우리교단과 필리핀교단(UCCP)간의 맺은 선교협정도 있다. 특히 영어권으로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나온 곳이다.

우리 PCK와의 교류도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나 일부 선교단체들은 아직도 이러한 교단의 공식적인 교류에 대하여 모르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또 현지어 한 마디도 못하면서 학교 운영자를 대표하고 이곳 저곳 교회나 세운다고 돌아다니는 보따리 선교사가 아직도 있는 것 같다.

예을 들어 PCK와 똑같은 선교협정을 맺은 태국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면 선교의 최종 목적지인 현지교회와의 협력과 발전에 있어서 빵점이다. 태국의 한인선교사들은 우선 태국교회의 노회들과 협력하여 선교하도록 되어 있다. 비자도 그렇고 회원권을 갖고 현지 지도자들과 동반 선교를 해야 한다. 선교사들이  아무 곳에나 가서 방 얻고 깃발 꼽고 ‘나 선교사다’ 하는 일을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 것은 선교가 아니다. 무조건 총회나 노회가 지정하거나 협력하기를 원하는 교회와의 사역을 해야 한다. 그것에 비하면 필리핀은 한 마디로 멋대로 선교라고 볼 수 있다.

필리핀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가장 많은 선교사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사역지가 없는 선교사만 해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기독교 국가인 필리핀에서의 사역이 왜 필요한지 답이 있어야 한다. 도시의 문화적 특성이나 계층으로 분석해 볼 때 젊은 세대들을 향한 선교는 유효한지 모른다. 그렇게 하기 위한 젊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통한 사역은 잘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현지교회와 지도자들에게 이양해주고 뒤에서 돕는 식으로의 로드맵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 기독공보에 영국의 한 미션단체 소속으로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역하는 여선교사가 "아프리카를 품자" 라고는 제목의 글을 쓴 것을 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역사와 고난과 아픔을 품기보다 자신의 주관적 사명을 우선하는 듯한 것 같아 아쉬웠다. 이에 대하여 다른 아프리카 선배 선교사는 반대로 우리가 "아프리카의 품에 안겨야 한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 아직도 다른 언어와 문화, 역사적 경험이 다른 나라에서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과거 서구식 방식인 정복 선교 개종선교를 하는 것은 문제다.

마음으로야 열정과 비전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만 그런 자세로 선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겸손히 그들의 삶과 역사를 배우고 친구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개종만을 위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를 초토화하고 게토화하는 것은 올바른 선교가 아니다. 이제는 현지 동역교회들과 협력하는 선교가 필요하다. 이제는 나만의 주관적인 방식으로 하는 선교는 안 된다. 철저하게 현지교회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 보조적인 협력으로 만족해야 한다. 우리는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필리핀 방문에서는 그런 사역의 현장을 방문한 것이 소중한 결실이었다. 

   
* 캠프 타워빌 센터  지도   

필리핀의 새로운 선교 캠프 미션

비가 내리는 날,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필리핀 동북쪽 40km를 벗어나 있는 브라칸주 산호세 델몬테시를 방문했다. 블란칸주는 5개의 연방구역을 관할하는 주 정부가 있는 곳으로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쯤 된다고 한다. 인구 약 62만 명이 사는 도농복합형 주이지만 기본 생활 인프라(학교 의료 복지 일터)는 거의 전무하다.

정부 정책으로 강제 이주당한 이들을 위한 생활 토대는 거의 없다.  일자리가 없는 남자들은 도시로 품을 팔러가고 여성들과 어린이들만이 마을을 지킨다. 인근에 농사 지을 땅도 없고 지어도 팔 곳도 없다. 베드 타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캠프 타워빌 센터(Camp Towervill Center, 이하 ‘캠프’)가 자리한 곳은 6천 세대 6만 명이 집단 거주한다. 가구 당 5평 남짓의 가건물의 월간 임대료는 1만 원으로 25년 동안 내야 한다. 주민들의  보건, 의료, 교육, 어느 것도 신통치 않다.

여기서 캠프는 마을 주민들의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한 사역들을 한다. 이들은 과거와 같이 교회를 세우고 와서 세례를 받게 하고 예배를 보라고 하는 전통적인 선교보다는 그들의 삶의 현장에 다가가는 사역을 하고 있다. 물론 캠프 입구에는 전통적인 선교 방식으로 교회당을 지어놓고 어느 한국 선교사가 와서 예배를 인도하고 먹을 거나 주고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캠프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하여 미싱을 가르쳐 필리핀 내수용 봉제사업을 시작했다. 주부들은 공장에 출근하여 일을 한다. 필리핀은 물론 외주 주문방식으로 발주한다. 공장에 올 수 없는 이들은 집에서 핸드메이드 가방을 생산하게 한다. 많은 인원이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가사를 돌보도록 오전 오후반으로 운영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수요자 측면에서는 한 사람이 오래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캠프는 영업이익 목적이 아닌 지역사회와 더물어 상생하는 협동조합식 기업으로 사업 목적은 공익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위한 일터의 나눔이라고 보인다. 실무자들은 한국 보나콤 공동체(충북 보은 소재)에서 배운 양계와 제빵기술 교육, 어린이 교실과 의료 크리닉, 도서관 예술활동 등을 지원한다.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본부의 직원은 전원 현지인이다. 철저히 현지인들과 동역하는 사역이다.

이 캠프의 운영자는 이철용 대표이지만 법인의 이사장은 UP의 Maureen Pagadaun 교수, UCCP 목사 Lunining Liorente, Everlye Garangera(협동조합 익팅 대표) PCK 선교사 임장순 목사(마닐라 주빛교회) 다. 전문가와 현지인들과의 철저한 협력사역이다. 과거처럼 선교사가 나눠 주는 자인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참신한 구조다.

한국의 법인 대표는 이철용 목사이며 이경민(서울의대) 임경원(공주대 특수교육과) 김영석(전 씨즈사무국장) 김경인(움직이는 옷 비아인 대표) 최규근(제일세무회계 사무소, 공인회계사)가 있다. 한국의 사무소도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모금과 배분에 대한 공정성을 유지한다는 취지다.

사실 아시아에 대하여 많은 선교사들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식으로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빈곤의 문제는 전 인류의 공동 과제이다. 이 문제를 위하여 유엔은 지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빈곤인구를 50% 줄이기 위하여 “새천년개발계획(MDGs)을 실천한 결과 약 40%대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이런 통계는 자세히 보면 40% 가운데 90%가 중국의 산업화로 인한 빈곤인구의 감소이지 전 지역적인 것은 아니었다. 결과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서 빈곤을 퇴치하려고 하였으나 그 결과는 초라했다. 이런 결과에도 UN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향후 15년 간 새로운 빈곤퇴치를 선언하고 그 이름을 이미 유명한 "지속가능개발계획“(SDGs)이라고 하여 단순 원조가 아닌 지속가능한 사역들로 빈곤 인구를 줄이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취지에 맞춰 일하는 많은 NGO 가운데 지난 2007년 부터 필리핀에서 활동하고 있는 곳이 바로 타워빌 캠프가 아닌가 한다. 원래는 이 단체도 가난한 이들에게 빵과 복음을 통한 선교사역을 시작했지만 일시적 구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로 전환했다. 한국에서 이미 유명해진 사회적 기업(사적 기업의 반대)과 같은 협동조합으로 주민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해결해 나가게 한 것이다. 캠프는 필리핀 외곽으로 강제철거 당한 이들과 이런 실험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타워빌이라고 명명된 철거민 마을에 들어가 이들을 돌보는 사역인데 캠프는 2015년 이 사역을 통하여 한국국제협력단(KOICA)로부터 해외봉사부문의 최고 평가를 받았다.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은 이철용 목사로 장신대 교음과와 신대원을 졸업하고 일반 목회와 인터넷 방송, 신문 등 IT분야에서 전문적인 사역을 하다가 사역의 변화를 찾기 위하여 우연히 방문한 필리핀에서 그는 비전을 본 것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이미 가난을 경험했고 그러한 가난의 대물림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에 관심이 있다. 자신도 국제구호기관의 자매결연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 작은 도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본격적인 사역을 위하여 필리핀에 법인을 설립하고 타워빌에서 지난 5년 간 이 실험을 해 왔다.

마닐라 조토와 협력하며 필리연합교회(UCCP)와 마닐라북노회(MNC)와 협력하고 있다. 현지 교회와는 종속적 관계가 아닌 현지교단이나 교회들과의 동반자적 선교를 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업과 판단의 기초는 현지 지도자들과 그들의 방식을 돕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을 선교라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자기만족이고 자기 공로에 불과하다.

   
* 타워빌 캠프 내 봉제 센터

이철용 대표가 설명하는 캠프의 사역을 5가지로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로 교회나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의 도구가 된다.
2.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를 한다. 빈곤과 정신을 같이 구제해야 한다. 빵만이난 영적문제만이 아닌 현실의 문제를 다룬다.
3. 자립선교(Self) 를 지향한다. 외부에 전적으로 의조하는 선교가 아닌 사회적 경제적 소득을 창출한다.
4. 동반자 선교(Partnership)중심과 주변이 아닌 상호간 공감으로 현지인을 세우는 일을 한다.
5. 커뮤니티선교(Community)를 한다. 지역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그들의 Need를 살피며 공동체를 세우는 선교를 지향한다.

울산의 전하교회가 지원하여 세워진 타워빌교회도 단순히 주민들의 예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중심으로 모이고 토론하고 축제하고 나누는 장이다. 현지인 사역도 지역의 목회자에게 일임했다.  나는 이번에 이철용 대표가 새롭게 사역하는 캠프의 사역이 다른 선교에 비하여 낫다거나 유일하다는 말이 아니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의 영혼도 귀하지만 그들의 삶의 욕구와 미래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선교사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결  론

과거 한국에 파송된 다양한 서구의 선교사들의 사역은 다양했다. 학교나 기관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시설에서 평생 롱런을 한다. 평생 간호사로 은퇴 시까지 소록도 같은 오지에서 사역한 스웨덴인도 있다. 산업선교와 같이 노동자의 인권이 억압받는 현장에서 기업가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적 노동관을 가르치고 인간적인 경영을 호소하다가 추방을 당한 청년 선교사 스티븐 빅터 라벤더(Stephen V. Lavender, 1951~, 한국 명: 나병도), 미국 감리교의 조지 오글(George E. Ogle) 선교사, 천주교 JOC(가톨릭 노동 청년회)의 제임스 피터 시노트(James Peter Sinnott, 1929~)  신부의 사역도 귀하다.

아직까지 한국 선교사들의 소명과 사역 동기, 사역지에서의 열악한 환경과 후원 문제로 인하여 자신의 개성을 살려서 창조적으로 사역을 하기 보다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자신의 사역지에서 과거보다 미래로, 전통적인 구원관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들의 현실적인 삶과 비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브라질의 슬럼가 레시페의 대주교였던 돔 헬더 카 마라(Dom Hélder Pessoa Câmara,1909~1999)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나눠주자고 하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왜 가난한지에 대하여 말하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한다"  이런 악령은 한국에도 서구에도 특히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렇다고 선교사가 세상의 오해와 법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선교와 질서, 관심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 된다. 선교사가 생존이나 사역이 우선인가? 사명이 우선인가? 한 번 자문해야 할 것이다. 성직자에서 선교사로 한 번 더 헌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문해야 한다. 그렇다고 현지의 민감한 문제에 대하여 반드시 개입하거나 발언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움"의 의미를 알아야 할 것이다.

선교 재벌이라고 비판받는 몇 명의 시니어 선교사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제보도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공론화할 것이다. 선교지에서의 사역이 결코 개인 사역이 아님에도 은퇴를 하고서도 끈을 놓지 못하고 연연하는 것은 개인의 욕심과 더불어 구조적인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총회 세계선교부의 조사, 지침, 대안이 나와야 한다. 후임 사역지를 선교부나 파송단체나 지역의 후배들과 민주적으로 공론화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처분하거나 자신의 명의로 된 건물을 임대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여전하다는 후배들의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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