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박사의 투서와 사건일지에 대한 C 교수의 반박문
5월 25일부터 시작된 000 박사의 투서와 두 차례에 걸친 사건일지의 내용에 대한 반박의 글을 보냅니다. 지금까지 본인이 어떠한 대응을 하지 않고 침묵한 것은 믿는 우리 영신공동체의 평안과 질서를 위함이었고 한편 어떠한 이유에서 건 교수들의 일로 학생들에게 누가 가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제 내가 이렇게 간략하나마 반박을 적어 보내는 이유는 허위내용을 투서하고 유포한 것에 대한 진상을 밝혀 본인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고자 함입니다. 가만히 있는 무방비의 나를 허위내용으로 세 번이나 이렇게 명예를 훼손한 것은 참으로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000 박사가 퍼뜨린 투서의 내용은 사실과 전혀 무관하며 사건일지는 사실의 선후 상황을 배제하고 편파적으로 조립되어 악의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000 박사에게 실망스러운 것은 제가 규정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고 생각되어졌다면 이러한 문제는 해당부서에 정당한 절차를 따라 접수했어야 하는데 (이를테면 교수연구윤리에 관한 건은 대학원 소관이므로 그 소관 기관에 접수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교무위원이나 교수들 등 불 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살포한 것은 진실여부를 떠나 목사교수로써 할 일이 아닙니다. 내용적으로나 방법적으로 합당치 않은 이로 교수로써 목사로써 스스로의 인격과 명예를 실추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너무나 안쓰럽습니다.
이 문건은 학교총장(권용근교수), 담당소관 대학원장(허성군교수), 그리고 교수대표 교무처장(이원일교수)에게 함께 발송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000 박사는 정당한 절차를 따라 소관 부서에 접수하지 않고 무작위로 살포했지만 본인은 정당한 절차를 따라 소속부서장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보고 드리니 앞으로 000 박사도 참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먼저 투서건에 대한 반박…(29월 날짜로 대학원장께 제출한 변(辯)과 대동소이하므로 그대로, 혹 조금 부연 설명하는 형식을 위하고 첨부합니다.)
1. 논문 대필에 대해.
본인 채승희는 000 학생에게 석사 논문 대필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000 학생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도를 부탁했을 뿐입니다. 특히 외국인(중국인)으로 한국말이 서투를 수 있으니 문장을 고쳐줘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니 교수님(000)의 특별한 관심과 지도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000 박사를 존중하여 학기가 시작된 3월 여러번 (식당에서, 연구실에서, 차를 태워주면서..등) 지도교수를 권했지만 본인이 사양했고 내용상 학생을 성실히 지도하겠노라고 거듭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학기가 끝나갈 즈음 지도교수변경을 신청하는 가운데 당시 대학원장(권용근교수)이 다시금 내용상 지도에 성실히 임하라는 권유가 있었고 000 박사는 그렇게 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을 성실히 지도해주기 바란다는 이 모든 권유들과 격려, 부탁들이 대필압력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조000 박사에게 제가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성실히 학생을 지도하고 도와야 할 교수가 학생에게 베낄 참고자료를 주었다는 것은 교수로써 논문지도의 자질을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000 의 논문은 내용과 절차에 있어 지도교수와 주심, 그리고 부심(본인 000)의 책임성있는 검증을 통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다시한번 알려드립니다.
2. 폭언에 대해…
폭언 한 적 없습니다. 과의 선임자로서 과의 질서와 공동체적 움직임을 위해 이를 이탈하는 여러번 000 박사에게 지도를 한 적은 있지만 언어적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음을 밝힙니다. 비 정년 후임 교수가 과의 학사와 행정에 대해 개별적으로 행동하고 결정하고, 그리하여 타과와의 질서와 학교전체의 행정적 무리를 일으키는 것을 선임으로써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여러번 타이르기도 하고 질책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하거나 지도를 할 때 0 박사의 인격내지는 성격을 비하 하거나 학문성을 비하하거나 가족을 거론하거나 하는 등등 폭언과 막말에 해당하는 어떤 언어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도리에 어긋난 일에 대해, 잘못을 한 행위나 사건에 대해 질책했을 뿐 이며 그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졌던 경우가 종종 있었을 뿐 그것은 막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선임자에게 꾸중을 듣거나 질책을 듣는 것 자체로 인격적 모멸감을 느꼈다면 본인이 반성하면서 고쳐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먼저인 줄 압니다.
설득도 하고 질책도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화도내고 했지만 전혀 행동에 변화가 없음이 놀라울 뿐입니다.
3. 000 학생건에 대해..
000 교수가 마지막에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부실한 논문임에도 사인을 했다면 000 교수 본인의 선택이고 책임일 뿐입니다. 본인은 선임자로 권력을 남용하여 논문심사를 위해 압력을 넣은 적도 권고한 적도 없습니다.
이 사례에도 학생을 도와주고 부족한 것을 지도해주라고 거듭 거듭 부탁했지만 000 박사는 ‘함량 미달입니다’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000 박사에게 교수는 학생의 논문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량 미달된 논문을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지 그 부족함을 지도하는 사람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나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논문을 봐 주는 듯한 000 박사의 학생논문 지도태도와 자세는 선임교수인 저를 무척이나 분노하게 했음도 알려드립니다.
모든 우여곡절 끝에 논문심사의 자리에서 조금 더 수정하고 수정내용에 있어 지도교수 채승희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것으로 하고 세 분 교수의 합의적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000 학생의 학위논문은 지도교수, 주심, 부심의 책임있는 사인으로 합법적으로 통과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건일지 내용에 대해서 반박을 드립니다.
000 박사는 전면으로 사건일지에 대한 내용이 사실과 무관함을 사과해야 합니다. 사건일지에서 그려지는 채승희의 인격을 모두 000 박사의 조작이며 앞뒤 전후 사정을 배제한 편협적 짜깁기임을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나와 0 박사의 불협화 된 관계, 내지는 불신은 000 박사의 잦은 거짓말과 실수들, 그리고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나에 대한 비방으로 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후임교수를 최대한 인격적으로 대하고 모든 것(과의 발전을 위한 것)을 상의하고 함께하고자 했지만 000 교수는 처음부터 나를 한번도 선임교수로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지가 뭔데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냐..’ 식의 말이 음성적으로 들려왔지만 한번도 내색하지 않았고 0 박사를 동료교수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000 박사는 늘 예기치 않는 행위로 나를 당황하게 하고 곤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오인호 지도교수 변경 건이나, 오택현 교수님이 교무위원회에서 000 박사의 말을 빌려 채승희의 강좌개설권을 성토한 사건이 그것들입니다. 000 박사의 거짓말로 시작된 일입니다. 나는 교무처장에게 불려가 해명을 해야했습니다 물론 사실의 진위가 금방 밝혀져 어려운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000 박사의 거짓말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그것에 사과를 한적도 정식으로 해명을 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오택현 교수님이 사과해주셨고 나는 한참이나 선배이신 그분의 사과를 감사와 감격으로 받았습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러오기를 아직도 기다라고 있습니다. 교회사 강사로 오시는 분들에 대한 비방에 대해서도 내게 대신 사과를 하면 받아 들이겠습니다.
사건일지에 구구절절 써놓은 강좌개설에 연관된 모든 말들은 위의 사건을 시작으로 다시 보고 해석하길 바랍니다. 나는 한번도 000 박사의 강의개설권(전공이나 교양이나)을 박탈하거나 그것을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과 선임자로서 나는 누구 누구에게 과목을 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과와의 관계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강사를 쓸 경우, 학교의 대 지역교회와의 관계, 대 노회와의 관계, 동문과의 관계 등도 함께 고려하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임의 역할입니다. 조교수에게 비록 교양과목이라도 나와 상의해달라고 한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입니다.
과와는 아무 상의도 하지 않고 학교 교수들을 만나면서 이과목 저과목을 정하고 선임자에게는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그럴 것입니다. 그것은 조직, 혹은 사회생활의 기본적 자세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절치와 질서가 중요하고 그 질서를 지킬 때 공동체는 아름답게 살아나고 권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한 가지 사과 하겠습니다. 사건일지 II. 9p에 다음학기 개혁교회역사와 신학에 대해서는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나는 그 전주에 내 방에 와서 000 박사가 다음학기 강좌개설을 위해 요청한 과목이 개혁교회역사와 신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씩 깜빡하는 수가 많습니다. 미안합니다
나가면서….
나는 000박사를 위해 기도합니다. 어렵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제게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사건일지에 쓰여진 글을 읽을 때 경제적으로 지위적으로 열악해서 힘들어하는 0 박사의 사정보다 더 저를 안타깝게 한 것은 000 박사의 성숙하지 모습입니다. 사건일지는 마치 ‘내가 배 고프기 때문에 모두가 나를 이해해야한다’ ‘내가 어렵기 때문에 모두가 나를 봐줘야 한다’ 라는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젖먹이 아이나 하는 미숙한 생각입니다. 나의 배고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비 인격자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영신공동체에 그런 분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0 박사의 생활비….나는 000 박사가 호서대학교 교회사 번역프로젝트를 왜 거절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치적인 번역도 아니고 학문성과 무관한 것도 아니고 많은 신학생들이 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훌륭한 작업이고 교수로써 보람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생후 6개월 아기를 언급하면서까지 처절하게 비참한 경제생활을 호소하면서 수백만원이 나오는 프로잭트를 거절한 아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려워도 참고 책을 참고하면서 몇 개월 고생하면 0 박사가 그렇게 안달하던 한 과목당 초과수당급여의 3년치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건전하게 돈 버는 길을 열어준 것은 내버리고 생활비를 줘야한다고 하시니…..
나는 0 박사보다 더 열악한 분을 돕느라 여력이 딸립니다. 미자립개척교회목사지원, 생명나무복자재단지원, international compassion 어린이 돕기, 학생들 장학금, 학교발전기금, 영어권선교회 외국인 근로자들 용돈챙겨주기까지,…나는 누구보다 남을 긍휼이 여기는 사람입니다. 비정년교수 연금인상을 위해 여러 교수님께 호소했고 또 비정년교수님들의 외부학회지 논문 개제에 대한 연구비 지급의 정당성을 건의 중입니다. 나를 너무 000 박사의 안경으로 좁게 보신 듯 합니다. 0 박사는 지금의 상황에서 누구를 돕고 있나요? 분명 0 박사보다 더 열악한 지인들이 많을 것입니다. 돕습니까? 돕는다면 다행입니다..나는 유학시절 내가 굶어도 복지기금을 냈고 선교사를 도왔습니다. 그때도 인도의 어린이를 후원했습니다. 0 박사의 손가락 끝 글 장난으로 이런 인격모독은 내게 가당치 않습니다.
영신 공동체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배고픔을 경험했습니다. 000 박사도 어렵고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고픔 가운데 정도(正道)를 배울 수 있는 성숙한 목사요 교수의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2012년 6월 18일 채승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