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게랄라주 코타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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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최초 교회로 기록되는 교회는 인도 남부 케렐라 지방에 일곱 처소중의 한 곳으로 성경에 나오는 도마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후 182-189년에 많은 교인들이 회집하고 있었고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도 대표가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AD 52년에 시작된 아시아 최초의 교회 마르토마 쳐치((Mar Thoma Church)는 인도 서남부 케라라 주로 인구의 약 25%가 기독교이다. 인도 전체 평균 3%에 비하면 성지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중국에는 635년 경교(經敎)라는 형태로 기독교가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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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고된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네스토리우스가 주장한 기독교 일파의 중국 명칭)는 9세기 이후 중앙아시아 몽골에서도 기독교 유적으로 발견 되었다. 이후 19세기부터 개신교가 아시아에서 선교를 시작하는 데 공식적으로는 인도가 1793년, 스리랑카1808년, 중국 1807년, 미얀마 1813년, 태국 1831년, 인도네시아 1833년, 일본 1859년, 한국 1884년, 필리핀 1899년, 라오스 1902년, 베트남 1911년, 캄보디아 1911년에 개신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가톨릭에 비해 아시아 선교가 늦은 이유는 준비된 선교사가 없었고 포르투칼, 스페인의 해양 시대로 이들의 무역과 재정의 풍요가 있었기 떄문이다. 그리고유럽은 루터파와 개혁파 교회들 간의 다툼이 지속되었기에 해외 전도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후 화란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해 식민지화하고 함께 기독교도 전해져 인도네시아 교회가 설립된다.
CCA는 1957년 아시아교회협의회로 창립했는 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짐하는 대담한 출발이었다.” 고 전해진다. 이런 주제로 발표을 한 바 있는 안재웅박사는 처음엔 아시아교회협의회가 조직되는 것을 서구는 반대했다고 한다. 특히 WCC 지도부는 조직을 만류하러 오기도 했지만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프라핏섬에서 창립 준비 모임에 한경직목사가 참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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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립 부터 함께한 한국교회
창립 초기 부터 한국은 아시아 교회들과 함께 한 것이다. 이후 “1984년 WCC와 CCA의 협력을 바탕으로 일본 도잔소에서 채택된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선언문은 역사적인 문서였다" 고 회상했다. “도잔소 선언문은 그 후 1986년 글리온에서의 남북교회 만남과 1988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교회의 선언문 발표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CCA는 1940-1960년대 제3 세계 국가들의 서구 독립과 탈제국주의 의식의 발현으로 시작된 탈제국주의, WCC·IMC 등 서구중심적 신학과 신앙, 선교 현상에 대한 비판, 제3 세계 독립교회의 등장(AICs, 아시아 등 교회의 독립) 등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결국 CCA는 1957년 동아시아기독교협의회로 발족 이후, 1959년 쿠알라룸푸르에서 창립 총회와 1973년 아시아기독교협의회로 개칭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어졌다.
이번 총회에 한국에서는 약 40여명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CK에서도 성직자 청년 여성등이 참석을 하기 위하여 출국했다. 총회장 김의식목사와 사무총장 김보현목사 NCCK총무 김종생목사등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총회는 마토마쳐치(도마가 세운 교회을 중심으로 해서 열리며 사전대회와 각종 강연과 세션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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