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증폭 피곤한 이 위대한 허기사회를 사는 방법”
빌립보 지역은 에게해를 건넌후의 마케도니아의 입구로서 초대 교회시대 유럽의 첫 관문이었다,
유대땅이 아니고 유럽땅이고 로마 헬라 문화가 본격적으로 지배하는 땅이었다,
로마풍의 로마의 식민도시 빌립보 지역에 입성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하늘 시민권을 생각하라"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시민권(헬, 폴리튜마)은 ‘국가’ 또는 ‘식민 도시’를 가리킨다.
우리를 통치하는 국가 또는 정부가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사도바울이 바로 로마라는 제국에 대해 교회는 로마가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로 그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 함으로 로마의 통치권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문구이다.
여기서 빌립보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 풍 헬라문화의 특징을
<위대한 개츠비>라는 최근 상영한 영화를 통해 한번 드러내 보자!!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1920년대 미국은 1차 대전 이후 초 호황기를 맞아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상황. 흥청망청 과시적인 파티장은 졸부들로 미어터진다.
당시에 사람들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주식호황 속에 흥청망청 살아갔고,
(밀주법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술을 먹게 만드는 다 조직 폭력배와 밀주업자들이
성행한 아이러니의 시대이었다
사람들은 파티의 호스트인 개츠비에 대해 수군거리지만 누구도 그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위대한 개츠비>의 사회는 말하자면 그 화려함 속 불륜, 과음, 사기, 폭력 등 온갖 ‘관계적 과잉’의 징후들이 뒤엉켜있는 ‘포만감 사회’ 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을 한줄로 요약하면 결국 낭만주의자 개츠비가 나름대로 고군분투했지만 이런 관계적 과잉의 현상들에 의해 압사당했다는 이야기 이다.
주창윤 교수라는 분이 최근 허기 사회라는 책을 썼는데 오늘 우리 사회의 이러한 정서적 허기는 바로 미국의 1920연대 개츠비의 시대와 성서의 로마사회의 나르시즘과 허기 문화와 통한다고 생각 한다.
정신의학자 굴드는 탐식환자들을 심리치료하면서 왜 사람들이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를 탐구했다. 이 환자들의 기저에는 ‘무기력증’이 있었다고 한다.
그 환자의 식욕은 자신의 무기력증을 채우기 위함이고, 그래서 아무리 먹어도 무기력증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정서적 식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폭식이나 탐식은 먹는 문제가 아니라 특정 개인이 처해 있는 마음의 문제였다. 우리는 이미 맛있는 밥을 먹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빈 그릇을 보면서 허기를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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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사회를 쓴 주창윤 교수는 90년대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겉으로는 과잉 포만 사회이지만 그 속은 ‘정서적 허기’에 시달리면서
(1) 퇴행적 위로(복고/힐링 열풍), (2) 나르시시즘의 과잉(타진요/슈퍼스타K), (3) 속물성에 대한 분노(나는꼼수다/도가니), (4) 관계맺기의 집착(스마트폰/SNS)과 같은 ‘관계적 결핍의 현상들’로 표출되고 있다고 흥미롭고 뜨끔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 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 가운데 여러가지 허기가 있다,
우선 국정원 개입과 같은 정치적 허기가 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국정원사건을 네가지로 요약 한다.
1. 우선 한국판 메카시즘이요 2. 둘째로 거짓말 쟁이 닉슨을 물러나게한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3. 셋째로 4 .19를 유발시킨 이승만 대통령의 3.15 부정선거의 재판이다. 4. 네번째 한국판 위키리크스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불안 증폭 피곤사회에서 정서적 허기 사회로 가고 있다.
현실 외면하는 퇴행적 복고 현상 비현실적 나르시시즘의 과잉 현상들이 있을 뿐 아니라 "50대, 협동조합으로 새 길 찾자" 대졸이상 고학력백수 300만명 돌파…역대 최대”라는 신문 기사 제목에서 불수있듯이 사회 경제적 허기도 위험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시대 당시 기독교는 로마사회의 이러한 허기를 채워 주었다.
그러나 오늘 기독교는 시대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는데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천 지역 출신 김봉준 화백의 페이스북 글에서 이러한 자살을 불러오는 불안 피곤 허기 사회의 헛된 세상의 성공과 스팩과 승리를 따르지 않는 빌립보서의 바울의 하늘의 시민권을 연상케하는 희망의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오늘 우리지역사회 문막에서 발제한다. 원주로 이사 온 지 20년만의 일이다. 지역문화는 공동체운동론의 기본개념이지만 자칫 피상적 원리론에 빠지기 쉽다. 우리사회가 이토록 가벼워지고 물질주의가 되고 자본 정치 권력화하고 관료주의화 하였는지를 살피고 공동체운동의 현재 특성과 공동체문화운동의 역활을 찾고자 한다. 요즘 협동조합운동과 마을 만들기가 붐처럼 일지만 공동체문화 없는 공동체 경제주의에도 경종을 울리고 싶다”.
사도바울시대의 로마와 1920년대의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와 같은 이 불안증폭 피곤 허기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2000년전 사도 바울이 로마의 식민도시 빌립보인들에게 쓴 빌립보서의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장 20절)라는 말씀 처럼,
채워도 채워도 허기진 불안하고 피곤한 이 허기 사회에서의 출세와 성공의 스펙 사다리를 이제는 걷어차고,
오직 하늘 시민권을 항상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공동체 문화를 세워나가며,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그 나라의 주인을 모시고, 이 땅에서 굳세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는 길 그 길밖에는 이 허기사회를 허기를 채울 다른길이 없는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