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학자 이종록 교수의 “시편 태클”

                                                         시편태클 46편. 속내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구나. 시편 46편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문맥을 보면, 큰 어려움을 겪은 게 분명해 보인다. 시를 엮는 주요 단어는 "피난처"이다. 46편은 세 문단으로 나뉘는데, 각 단락에 한 번씩 나온다. 이것은 시인에게 피난처가 시급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고 하는 건 그가 고립무원의 곤경에 처했다가 구원받았음을 암시한다. 경천동지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만큼 시인이 두려워하는 것을 반증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는 그가 주님께 나아가 밤새 기도했음을 알려준다. 시인은 8편과 23편 시인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당당하게 나아가려 한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큰 고통 속에서도 내색않고 믿음갖고 묵묵하게 걸어간다.

시편태클 37편. 악인 

   
 

악인과 의인 중에 누가 이 세상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가?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는 것은 전적으로 시인의 몫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구분하는 것이 그리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의인보다는 악인이 성공 가능성 100 퍼센트에 가깝다. 시편 37편을 천천히 읽으면. 그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는 흉악한 악인들이 날뛰고 그들이 잘 나가는 상황을 전제한다. 시인은 이런 상황에 대한 결론을 1절에서 내린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새번역)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시인은 악한 자들과 불의한 자들이 세상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저주한다. 이 세상에서 악인이 잘되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는다. 하나님이 그들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리신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인들이 득세하는가? 노! 그렇게 왔다가는 악인들이 줄 서 있다, 끝없이. 

   
 

 시편태클 22편. 전환 

처절하다. 이미 익숙해졌어야 하는데,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 익숙해서 더 처절한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묘사가 생생하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 생생함과 강력함은 아무리 본문을 여러 번 읽어도 약해지지 않는다. 낡아지지 않는다. 그만큼 이 시는 문학적으로 탁월하다. 우리는 이 이 시가 어떻게 시작하는지 잘 안다. 그런데 잘 알기 때문에 더 긴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 하나님이여!"를 읽는 순간, 핏줄이 굵어진다. 이어지는 "내 하나님이여!"를 보면서, 우리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소리를 듣는다. "어찌 나를 멀리 하려 돕지 아니하시오며…" 버림받음에 대해 이토록 가슴 무너지게 하는 구절이 또 있을까? 그런데 우린 이렇게 격동하는데, 시인은 의외로 참참하다. 시인은 자신을 벌레로 규정한 다음, 시인이 처한 막막한 상황, 비웃음 당하고, 겁박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들을 꼼꼼하게 꼬박꼬박 나열한다. 헌데 이 분위기는 22절에서 급격히 찬양으로 바뀐다. 탄원에서 찬양으로의 격한 전환. 그게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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