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10차 한국총회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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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지난 11월 29일(금) PCK내 에큐메니칼운동에 참여해온 구룹들의 정기모임에서 지난 WCC총회에 대한 평가를 하기로 하고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화들이다. 초청자가 있지만 이 내용은 그들의 원고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이심점심으로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이 모임은 그동안 PCK내에서 청년 대학생 시절부터 에큐메니칼운동과 신학을 배우며 참여해왔던 이들이 그동안 두 갈래의 작은 모임으로 모여왔다. 그러나 WCC총회를 지내면서 2014년 부터 하나의 모임으로 나가기로 하였으며 그 첫번째로 준비된 모임이였다. 이들은 앞으로 PCK에게 주어진 이 시대의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주신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자질들을 PCK와 함께 쓰임 받기를 원하여 연구하는 교제하는 일을 계속해나간다는 자세이다.
WCC 총회 준비를 위하여 가장 마음고생을 했던 한국준비위는 12월중 백서를 내고 해산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NCCK와 가입교단에서도 나름대로 자체 평가들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소 이 문제에 대하야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던 우리들로써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자유롭고 편한 마음으로 모여서 나눈 대화이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평가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공개된 자리나 책임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참석중에는 WCC 준비위 실무자, PCK 실무자, 새로 선출된 중앙위원, 신학적으로 에큐메니칼신학을 연구하고 변증하며 대변해온 교회사학자와 선교학자들도 참여를 하였다. 또 총회전에 열린 사전대회와 마당, 현지 신학교(GETI) 현장 교회 사례, WSCF(세계기독학생회) 와 PCK URM(일하는 예수회) 30주년, 여성대회등으로 참여한 구룹들의 보고도 있었다.
대표 발표자
배현주 교수(부산 장신대, PCK총대, 준비위 성경연구 위원,중앙위원)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 WCC 반대론자들과의 논쟁)
김혜숙 목사(여교역자회 총무, 사전 여성대회)
장창일 기사(기독공보 기자, 현지 연합 보도 팀)
변창배 목사(총회 기획국장,총회 자문위원)
한편 평생의 에큐메니칼운동에 참여하여 큰 획을 긋는 한국총회 유치와 막후에서 일해 왔으며 지난 WCC가 치룬 5번의 총회(나이로비, 벤쿠버, 캔버라, 포토 알레그로, 부산)에 참여하고 중요한 아젠다를 내고 활동했던 김용복 박사가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PCK 신학자로써는 유일하게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유일한 분이다. 그가 통찰하는 세계교회의 크고 작은 흐름을 에큐메니스트 원로 답게 우리에게 큰 지평을 열어 주셨다. 또 각 분야로 참여한 이들의 실질적인 대화와 토론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준비위 홍보국장 천영철 목사의 남모를 고민과 수고를 격려하기도 하였다.
들어가는 말
우리 한국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총회는 한국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구룹들에게 큰 기대와 도전이 되었으며 또 이와 못지 않게 많은 과제를 주었다고 본다. 긍정적든 부정적이든 우리가 이 총회를 둘러싼 문제로 부터 교훈을 얻고 그 문제점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면 그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책자와 선배 에큐메니스트들로 부터 들었던 WCC 에 대한 막연한 이상과 전설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고 보고 느꼈다는 면에서 기대가 충족되였지만 무언가 체워지지 못한 아쉬움도 남아있다. 특히 이 총회가 채택한 한반도 평화에 대한 문서에 대한 의의나 진심이 전 교회적으로 확산되지 못하였고 우리사회의 갈등을 푸는 데도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잔치로 머물렀고 오히려 보수주의자들의 반대로 인하여 기독교의 분열상만 노출된 면이 있다. 이제라도 위대한 세기의 이 총회의 가치와 의미를 전교회적으로가 확산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해야 한다.
또 세계는 경제의 양극화와 회원교단들의 쇠락과 사무국의 축소로 향후 이와 같은 규모의 매머드 총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평이다. 실제로 역대 총회중 참가국이나 인원등에서 최고의 총회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뤄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총회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젊은 총무 울라프 픽쉐 트베이트다. 그는 이렇게 잘치러진 총회 덕분에 2년후 있을 임기연장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회예배 설교를 한 아르메니안 정교회 총대주교 카레킨 Ⅱ세의 외모도 그렇고 메시지가 진중하고 사려깊으며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라는 자긍심은 감동적이였다.
잘한 것이 더 많은 총회
한국은 그동안 2번의 총회유치를 시도하였는데 첫번째 9차 총회 유치는 실패했다(브라질의 포토 알레그레) 그리고 두번째로 가까스로 총회를 유치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교회의 지도자들은 10차 총회도 그렇게 흔쾌한 마음으로 우리를 지지하거나 결정해주지 않았다. 우리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하였던 중동의 시리아는 지금 어떤 곳인가? 중동의 화약고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묵인아래 모슬림의 박해를 속에서 고난 받는 연약한 교회로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세계교회와 연대함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자 하였지만 그들의 꿈은 무산되였다. 누군가 웃을 때 누군가는 울게 된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한국기독교는 세계교회와 중동의 그리스도인 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세계교회의 역사에 비춰보면 이얼리쳐지지만 혜성 같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WCC 총무자리와 총회장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과욕을 부렸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총회유치는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신앙의 힘만으로 무엇을 이룬 것은 아니다. 세계냉전 시대의 유물 유일한 분단국가으로 인한 전쟁의 상존속에서 평화의 문제를 고민하는 한국교회에 대하여 세계교회의 지도자들은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WCC는 보수주의자들의 등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선언을 채택함으로 우리에게 크게 보답한 총회다. 또 이번 계기로 인하여 용공 좌경으로 매도되였던 WCC나 에큐메니칼운동이 보편화되고 일반화 되였다는 공도 있다.
한국 총회는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기록된다. 61년 인도의 뉴델리이후 42년 만이다. 그러나 그간 세계교회를 리드해온 유럽의 교회는 쇠락했고 아시아의 교회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다. 동아시아에서의 다양한 아픔들 전쟁과 분쟁, 가난과 저개발, 군사독재 민주와 문제등 그 고통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기독교는 성장했고 세계교회의 일원으로 부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두에 한국교회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책임을 동반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WCC 총회는 주제선정이 반이다.
이번 총회의 주제는 간단하게 정해지지 않았는데 주제선정에 대해 장윤재 교수(이화여대)의 회고에 의하면 WCC에서 정의라는 주제가 선택된 것은 최초였는데 총회의 주제 선정은 향후 6년간의 WCC의 방향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희년 총회를 명명되는 8차 남아공 하라레에서의 총회 주제는 “하나님께 돌아가자 소망중에 기뻐하자(Ture To God, Rejoice in Hope) 였다. 당시 총회를 준비한 책임자는 5대 총무인 콘라드라이져(독일) 박사였다.
학자들은 이 총회로 부터 WCC의 주제는 기독론 성령론에 이어 삼위일체론으로 확대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50년을 맞는 희년을 염두에 두고 “돌아가자” 는 의미로 회복과 갱신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롬 12:12 의 고통당하고 있는 피조물의 위로를 의미한 것이다. 당시 콘라드는 “철저한 회개와 방향전환 자기평가 특히 에큐메니칼운동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주신 화해와 일치로 희망의 공동체에 대한 메시지” 라고 하였다. 또 브라질의 여성신학자인 웬다 데이펠트나 일본의 고야마가 언급한 홈리스 문제나 향유옥합에 관한 해석은 새로운 관심을 끌었다.
특히 8차 총회에서는 세계교회는 만연된 여러형태의 폭력에 대해서 언급하며 폭력극복을 위한 10년 (2000-2010)을 DOV를 선언했다. 폭력은 물리적 구조적 문화적으로 넓게는 전쟁과 작게는 가부장제와 문화의 소외까지를 포함한다. 특히 제 3세계에 대한 부채탕감문제를 제기했고 이 과제를 당시 WARC(세계개혁교회연맹)의 협력과 증언부 총무였던 박성원 박사와 WCC의 마틴 노브라가 연대하여 세계화의 구조인 WTO에 반대하는 신학적인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회무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했는데(Healing) 에큐메니칼운동의 대중화를 위하여 파타레(열린마당과 같은 의미)을 열기도 했다. 또 에큐메니칼운동의 이해와 비젼을 담은 CUV 문서나 대안공동체 대한 논의도 했었다.
희년(50주년)을 지나 9차 총회는 브라질의 포토알레그레에서 열렸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회집된 최초의 총회였다. 2006년 2월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 시키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 라는 주제로 모였다. 그리고 당시 세계는 자연재해와 태러로 인한 생명의 살상이나 아픔이 화두였다. 2001년 미국은 9.11태러로 2004년에는 동남아에서의 쓰나미로 인한 재해, 2005에 북미를 강타한 카타리나 태풍은 엄청난 희생을 가져왔다. 이렇게 WCC는 언제나 그 시대의 아픔과 화두를 피하지 않고 연구하고 제시하였다.
포토알레그레는 노예송출은 했던 고통의 본산지였으며 이 도시는 그런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생생한 타큐멘트는 일명 "Sory Chapture" 로 알려져 있다. 이 총회에서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세계화의 문제가 거론되였다. 그리고 총회 준비는 케냐 출신으로 감리교 목사인 새뮤엘 코비야 박사다. 그는 아프리칸 최초의 WCC 총무이며 한국과도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지만 전통적인 유럽지도자들의 견제로 연임되지 못하고 도중 하차하였다.
이 총회는 세계평화를 위한 (AGAPE Prosses,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 대안을 제시했다. 기도문 형식의 총회 주제는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였는 데 결론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당시 PCK 기획국장 이홍정 박사(현 사무총장)는 이 총회의 중요한 멤버로 참여 하였고 아젠다를 냈다. 훗날 PCK의 생명살리기 프로그램은 이러한 전통과 연대속에서 진행된 것이였다.
그리고 부산 총회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이다. 주제선정 과정에서 NCCK 신앙과 직제 위원회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생명 평화 치유“ 라는 주제를 제안했고 필리핀도 강력하게 주장한 ”정의“ 를 제안하여 반영된 결과로 본다. 이 총회의 준비는 새로운 총무 노르웨이 출신으로 독일과 가까운 인물이지만 WCC 운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무명의 드베이트 픽세이였다.
한국준비위 역시 한국식으로
한국 준비위원회는 한국식의 스타일로 과시적인 준비위를 조직하게 된다. 이름을 내줘야 돈을 내기 때문이기도 핮디만 한국측 준비위의 상층부는 처음 부터 끝까 거의 개인의 순발력과 판단에 좌우되였고 한마디로 제멋대로라는 평이다. 것이다. 오랜 총회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제네바 준비위를 돕고 겸손하게 경청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다. 총회전 대륙을 도는 물의 순례는 원로들의 사치성 외유성 여행에 불과했고 이는 돈 총회를 예고하게 된다. 평화열차 역시 그 호응도나 북한교회의 비협조로 인하여 그 의미가 이슈화 되질 못하였다. 이런 점들은 철저히 반성되야 한다.
이미 한국은 JPIC대회나 WARC총회 CCA 총회, CWM 총회(PCK)를 치룬바 있는 데도 유독 이번 총회준비위가 보여준 태도와 현상은 한국 정치의 축소판이였다. 그간 WCC의 신학이나 가치와는 정반대의 목회를 하거나 지지하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대표선수가 되여 자리 없이 보수없이 바닥에서 부터 에큐메니칼운동에 헌신해온 이들을 무색하게 하였다. 이렇게 WCC 총회 한국준비위의 위세는 누구도 막지 못하였다.
거기다가 마침 한기총의 분열(통합과 합동의 분열)로 인하여 WCC의 신학과 가치에 대하여 평소 반대하던 보수적인 교단과 인물들을 중심으로 총회 유치 반대를 넘어서 총회기간 내내 그 앞에서 집회를 하거나 시위를 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하여 토론하고 합의하고 일치를 도출하려는 의도보다 비난과 저주의 기저에는 WCC가 그토록 주장하고 극복해내려고 하는 일치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한듯 자기 우월과 극단적 분리주의를 그대로 드러내였다.
준비위 내부에서의 미숙함은 총회 직전까지 그야말로 이 총회가 온전히 치러질 수 있을 까 하는 정도의 불안감을 주웠다. 여기에는 WCC 신학과 중요 운동 파트너인 NCCK의 리더쉽의 표류와 가입교단들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갈등은 증폭되였다. 한기총과의 밀약과 선언, 파기 다시 유효선언은 한국 준비위의 상층부가 생각이 있는 분들인가? 할 정도이다. 그런면에서 이 총회에 고생하고 수고한 사람도 있고 그 의미가 간단하지는 않으나 한쪽에서는 얼마나 제멋대로 였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고도 한국교회 앞에 사과나 반성없이 자화자찬이나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 주소이다.
진보진영의 목소리
에큐진보 진영에서는 이러한 난장판 준비위에 최종적으로 총회반납 이라는 카드도 나왔고 직접 WCC 총무에게 서한도 전달하였다. 거기다가 한국측 준비위원장 김삼환 목사의 사퇴파동과 복귀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최고의 오점이였다. 그러니 준비위가 고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안해도 되는 일로 여러사람들을 고생시켰다는 말이다. 거기다가 장소 이전 검토라는 변수도 나왔고 아시아 모임에서는 Plan B(한국의 안보상황과 준비위의 파행으로 총회를 반납하거나 이전 할 수 있다는 설) 는 아시아의 맹주가 되고 싶어하는 인도네시아 교회와 인도교회의 음모인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인도네시아는 역사적으로 보면 아시아의 2번째 총회지가 될뻔한 인도네시아는 자체 불협화음과 준비부족으로 당시 총무 필립포토(도미니카) 에 의해 총회 6개월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개최지를 이전한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소 이전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국가 이전은 말도 안되는 일로 드베이트 총무의 강력한 후원으로 확고하게 지지되였다. 그리고 총회는 한국교회의 저력대로 무난히 치루워졌다. 넓은 장소와 많은 볼거리 한국교회의 환대와 배려는 총회 다수 참가자인 가난한 나라들의 지도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이였다. 한국교회는 이번에도 역시 막판에 뒤짚기에 강하게 저력을 발휘하였지만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한국교회가 잘하는 것은 잘했다고 칭찬해야 한다. 반면 잘못하는 것은 철저히 반성하고 극복해야 그것들중 하나는 물량적 허세다. 우리 사회가 언제 부터인가 모든 것을 돈으로 하려고 하고 평가하는 것처럼 교회도 돈으로 일을 하려고 하였다는 자성이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돈으로 연출한 행사라는 지적도 달게 받아야 한다. 그것에 비하면 미지급금이 약 9억이라니 큰 걱정은 아닌 듯 싶다.
일한 사람이 말을 듣는 일은 당연한 일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들을 말이 없다. 그러니 흉을 보더라도 일을 했으니 듣는 구나 하여야 한다. 우선 PCK는 준비위서 부터 실행위까지 인사독점이라는 많은 비난속에 시달려 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끝까지 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치룬 것도 사실이다. 그런면에서 PCK는 큰일을 했지만 그 공과에 대해서 회피하지 말고 뼈아픈 지성과 평가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진정 배웠어야 할 것을 제대로 우리가 배웠는가? 하는 것에 대한 자성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합의제 토론이나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에 대하여는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PCK의 후배들이 세계교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집안 꼴이 제대로 되야 한다. 자리와 직책을 받고서야 일하는 이들만을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교단이 중요하다. 장윤재 교수는 지적하기를 WCC의 미래는 성직자 학자 1세계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PCK는 이번 총회를 경험하면서 세계교회의 흐름과 우리의 역할을 명확하게 짚은 것 같다는 평이다. 세계교회는 아직도 유럽중심이며 오랜 전통의 루터교회 지도자들은 가난한 동구권 교회들을 엎고 노련하게 총회를 좌우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URM등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북미의 장로교회는 퇴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연대하는 추세다. 그런면에서 한국은 국제기구에서의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인도와 많은 보팅을 보유한 인도네시아 교회, 잠재력이 큰 중국교회와 프랜드쉽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차세대 지도자들은 원대한 꿈을 꾸는 것은 좋치만 지금과 같이 기성세대들의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 먼져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큰 그릇들이 되야 한다. 위대한 자리에 갈 위대한 지도자들은 거져 만들어 지지 않는 다. 그 자리는 대형교회의 뒷다리나 붙잡고 음모와 정치로 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뜻한 마음과 배려, 온순함이 묻어나야 할 것이다.
중앙위 의장 평신도이며 여성인 아프리칸의 등장
특히 이번에 중앙위원 150명 가운데 중앙위 의장에 만장일치로 선출된 케냐 성공회 출신의 사회학자 아그네스 아붐은 최초의 여성의장이며 아프리칸이다. 그가 아직은 유럽중심의 WCC를 어떤 리더쉽으로 통합하여 새로운 에큐메니칼운동의 지평을 열 것인가에 하는 데에는 의문이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강력한 연대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동안 WCC 리더쉽은 1세계, 성직자,신학자 중심이였다. 그가 그런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가 관건이다. 그는 이미 오랜동안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WCC 운동에 참여해왔기에 문제점을 잘알지만 그렇기에 그는 좋은 조건과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으며 실패하거나 성공하는 것은 오직 그가 하기에 달렸다는 평들이다.
하여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총회는 잘치뤄졌다. 모든 정리는 책임있는 자리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돌리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최근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사회의 비판과 청소년들의 교회이탈을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Repo 500(1517-2017)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철저한 분석과 개혁을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밟힘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준비위가 제대로 한번 공개적인 평가회 없이 조직을 해산한다는 소식은 아쉬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