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록 교수의 시편 태클

                                              

   
 

  시편태클 146편. 찬송

한 사람을 떠올려보라. 어떤 생각이 나는가? 하나님을 떠올려보라. 어떤 느낌인가? 원망? 경외? 신비? 시인은 주님을 찬양하겠단다. 그래서 145편과 이어진다. 주님을 일평생 찬양하며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왜? 시인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것같다. 우리 인생은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다. 너는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사람을 의지하지 마라. 그들은 힘이 없다. 죽으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오직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시는가? 주님이 억눌린 자들, 주린 자들, 갇힌 자들, 맹인들, 비굴한 자들, 나그네, 과부, 고아들을 돌보신단다. 주님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신다. 그리고 악인들은 멸망케 하신단다. 시인은 그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이다. 시인은 찬양한다.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시편태클 147편. 맞섬

 

시편이 세상에 대한 태클인 까닭은? 시인은 주님을 찬양한다. 왜? 주님이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사람들을 상심케 하고, 주님은 그들을 고치신다. 악인들이 세상을 장악하고 의인들을 괴롭게 하지만, 주님은 악인들을 거꾸러뜨리고 겸손한 자들을 붙드신다. 주님은 힘센 준마같은 능력있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 그의 인자하심(헤세드)을 기다리는 자들을 좋아하신다. 이렇게 시인은 주님이 이 세상, 이 세상을 장악한 자들, 이 세상의 가치관과 맞서신다고 노래한다. 주님은 분명 세상 맞은 편에 서 계신다. 시인이 보기에 주님은 이 세상 악함에 태클을 거는 분이고, 시인은 그분을 찬양함으로써 자신이 사는 불의한 세상에 태클을 거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평화롭게 지켜주시고, 모두를 배부르게 하신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과 모든 만물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보여주셨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분 뜻대로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사는 세상에 태클을 거는 것이다.

 

시편태클 148편. 합창

 

시편은 어떤 책인가?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책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어떤 것들을 찬양하는가? 하나님 찬양! 얼마나 숭고하고 거룩한가?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시편을 읽으면서 확인한 것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이 주님께 드린 간구에 곁들인 찬양이었다. 그런데 이 시는 다르다. 시인은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과 바다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 찬양에 초대한다. 주님의 모든 천사, 주님의 모든 군대, 해, 달, 별, 하늘의 하늘, 하늘 위에 있는 물, 용, 바다, 불, 우박, 눈, 안개, 광풍, 산을, 모든 작은 산, 과수, 모든 백향목, 짐승, 가축, 기는 것, 나는 새, 왕들, 모든 백성, 고관들, 모든 재판관들, 총각, 처녀, 노인, 아이. 시인은 이 모든 것들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한다. 그들 모두가 부르는 온 우주적 합창! 아! 감격스러운 상상이다.

 시편태클 149편. 결국

 

새 노래. 새로운 노래. 뭔가 다를 것 같다. 지금까지 부르던 노래들과 전혀 다른 그런 노래일 것 같다. 새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시인은 사람들, 주님의 백성들, 성도들을 주님 찬양으로 초청한다. 주님께, 그리고 성도 모임에서 새 노래를 부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님은 이스라엘을 지으셨다. 그리고 주님은 시온 주민을 다스리시는 왕이다. 이것을 즐거워 하라고 한다.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 춤추며 소고를 치고 수금을 연주하면서. 무엇을 찬양해야 하는가? 주님의 이름. 주님은 주님의 백성들, 겸손한 자들을 구원하신단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주님을 영광 중에 찬양해야 한다. 특히 잠들기 전에 기쁨으로. 그래서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단다. 이게 새 노래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다고 한다. 그 칼로 보복하고, 왕과 귀족들을 포로로 사로잡고, 판결한단다. 이런 영광을 성도들에게 주신단다. 이게 새 노래인가? 결국 보복하는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 새 노래인가?

 시편태클 150편. 소원

 

그러면 좋겠다. 매일 매순간 주님 찬송하면서, 감사하면서, 그렇게 살면 좋겠다. 시인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삶이란 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감사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무조건 감사? 그렇지 않다. 감사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감사할 일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하는 것이다. 시편 146편에서 150편까지는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할렐루야 시편이다. 그런 삶,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삶, 얼마나 완벽한가? 주님 찬양하는 삶.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 그래도 시인이 하는 말을 그냥 넘기기는 뭣하다. 시인은 우리에게 주님 찬양에 대한 중요한 것들을 알려준다. 어디서 찬양해야 하는지, 무엇을 찬양해야 하는지,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 누가 찬양해야 하는지, 간단하면서도 충실하게 알려준다. 명석한 문체. 탁월한 필력이다.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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