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 퀴어문화축제 서울 신촌 일대서 열려

성소수자들 퀴어문화축제 서울 신촌 일대서 열려

자기 신앙과 신념을 강요해서는 안돼

   
퀴어집회를 찬성하는 지지 공연

7일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문화축제(Korea Queer Festival)가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주제를 걸고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렸다. 이러한 소수자들의 대중집회가 공식적으로 공개되고 전면화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는 최근 우리사회에 만연된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증)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로 그들의 정당성을 보이기 위한 집회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축제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 사이의 견해는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다.

이들의 축제나 행동에 대하여 우려를 넘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한국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는 8일 한 논평에서 ‘홍대에서 쫓겨난 동성애 퍼레이드, 신촌에서 개최하다 대학생ㆍ시민 1만여 명과 대치’라는 제하의 혹평을 냈다.

이 밖에도 이 집회를 비판하는 단체들은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의 확산을 국민의 힘으로 막지 못하면, 지금 서구 사회가 겪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한국에서도 겪게 될 것"이라며 "현재 서구의 동성애는 단순히 동성애로 끝나지 않고, 동성결혼법, 일부다처제, 수간 결혼법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법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에이즈 환자에 대한 치료를 국가에서 전적으로 부담해 주는 상황에서, 동성애로 인한 에이즈 환자의 급증으로 인한 국가적 부담은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편 동성애를 개인적인 ‘성적 취향’으로 보는 일부 관용적 입장의 사람들도 지금과 같은 식으로 자기들의 존재를 선전하고 정당화하고 때로는 보여주기식의 퀴어문화축제와 같은 방식은 왜곡된 ‘성’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성애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이들은 ‘동성애는 유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등의 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또 퀴어문화축제에 앞서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축제 전 무대가 꾸며진 신촌 일대 사거리 앞에서 홀리라이프 등의 주최로 반대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이 예배는 신촌 아름다운교회 이 규 목사와 홀리라이프 이요나 대표, 한국복지선교연합회 박영률 회장 등이 주도했다.

반면,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지지하고 찬동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한국성공회와 섬돌향린교회 등이 함께 한 ‘퀴어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과, ‘퀴어한 기독교인 여기 있다’는 현수막을 내건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차세기연)’도 퀴어문화축제에 힘을 보탰다. 성공회 참가자들은 무지개색 성공회 묵주를 팔거나 성공회 소개 전단을 나눠줬고, 섬돌향린교회 성도들은 임보라 목사와 함께 성가대 가운과 스톨을 입고 행진했다.

퀴어 이론 신학적으로 더 연구되야
Queer(퀴어)는 “다른, 이상한” 이라는 어원을 가진 영어 단어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용어에서 비정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여 왔다. 그리고 이 퀴어 이론은 1990년대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영화비평, 문학비평, 문화이론에서 꽃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신학계에서도 이 퀴어 신학 이론에 대하여 연구하고 책도 출판되고 있다.

이 이론을 체계화하고 성과 젠더의 담론 지형을 바꾼 사람은 주딧 버틀러이다. 기존 페미니즘에 의하면  여성은 3가지 성을 갖고 있는 데 첫째로 섹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이며 둘째 젠더는 후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 환경에 의하여 학습된 것으로 세째는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로 본다. 그러나 퀴어 이론은 이러한 주장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전통적인 페미니즘은 억압자 남성과 피억압자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등식의 제도 담론으로 사실 퀴어 이론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심지여 성서 페미니즘 비평도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성 평등론자들이 유일하게 사용하는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나…..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창1:27의 말씀은 이성애의 버팀목 역할을 할 뿐이니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쓰일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퀴어 비평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여성 해방의 전용구처럼 받아드려졌거나  양성평등이라고 했던 것들을 퀴어 이론에서는 용납하지 않지 않는다는 것이다.

퀴어 이론으로 본 성서의 에로티시즘
퀴어 신학은 성서해석 분야에서 가장 최근에 출현한 막내지만 가장 인기있으며 논쟁이 많은 이론이다. 그러나 어떤 신학 이론이나 비평도 그것이 처음 소개될 때는 모두 이단시 받았고 때론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비난 받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성으로 성경을 더 깊고 자세히 받아드리고 해석하기 위한 것으로 모두 유의미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성서해석의 학문적 성과들을 자신의  유한한 상식과 신앙 혹은 교리적 전통의 틀로  보거나 이해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지적 선각자들의  진지한 성찰과 연구에 대하여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는 서구가 전해 준 신학을 베끼고 복사하는 수준에서 독자적인 영역으로 나가야 한다. 무슨 주장이든 제기되면 학자들은 이를 공부하고 알아보지도 않고 비판하거나 배척하는 데 이는 학문적인 태도가 아니다. 어떤 것이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퀴어 비평은 그 과격하다는 페미니즘도 비평하는 데 이 퀴어 비평을 옹오하는 테드 제닝스 같은 학자는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야훼, 사울, 다윗, 요나단 등 남성 인물들을 모두 동성애적 비평으로 본다.  여성 구약학자 유연희는 일본의 소년 무사들의 예을 들기도 한다.  오랜 전장에서 무사들은 소년병들을 데리고 다니며 그들에게 무기나 침구, 식사 개인용품을 관리하게 한다. 신라의 관창과 같은 화랑제도도 그런 종류이다. 이들은 잘 생겼고 용감했고 충성스러웠다. 사울(삼상9:1-2)이나 다윗(삼상16:12)도 잘 생겼다고 성경은 묘사하고 있다. 성서의 소년병들도 무기병(armor beare)이었다. 다윗은 사울의 무기병이었다(삼상14:1) 다윗은 무기병이 없었는 데 이는 야훼와의 각별한 관계 때문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야훼는 탁월한 전쟁 영웅 무사로 나타나는 데 때론 거칠고 맹종을 요구하고 변덕스럽고 속이 좁고 때론 유능한 전략가로도 묘사된다. 법궤를 가져 오고 벌거벗고 춤추자 노여움을 풀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렇게 다윗을 야훼의 무기병으로 보는 것이다.

론 스탠리는 느헤미야를 환관(eunuch)으로도 본다. 그는 그는 페르시아왕 아닥사스다왕 1세의 술 따르는 관원이었다. 고전에 의하면 시음관은 왕의 독살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음식을 먼저 맛 보는 자이다. 때론 왕의 수라상을 주관하고 왕의 깊은 침소에 동숙하거나 가장 아끼는 물건들을 돌보며 옥새도 보관하고 왕 가까이서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거세된 자들이었다.  300년 전 궁중에 살았던 이사야는 그의 책 56:4-5에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아들 딸을 두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낫게 하여 주겠다.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한 명성을 그들에게 주겠다." 라고 했는데 환관의 몸에 대한 오명이나 후손이 없는 것에 대한 불명예를 제거한 것이다. 

찬성과 반대는 법의 테두리와 상식선에서 해야 
최근 우리사회에는 저항 집회들이 유행이다. “애국청년학생” 집회에는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참사와 진실을 밝히라는 “유모차 부대”에는 “어머니연합”이 집회를 벌인다. 자기들의 주장하는 바를 실현하는 독자적인 집회를 하지 않고 남이 하는 집회나 행사를 반대하는 집회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정치 집회도 그렇지만 이러한 퀴어 집회에도 그대로 두면 그만인 것을 이것을 반대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집회를 그것도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하는 것은 문제다.

사회는 점점 평등화 되어 간다. 차별금지법도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이 있다. 기독교인들이 자기 신앙이나 가치의 사회적 실현을 힘써 기울이는 일보다 다른 것을 반대하거나 금지하는 것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식당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킬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법과 상식 범죄가 되지 않는 한 각자의 취향과 관심을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보장되야 한다.

   
퀴어집회를 반대하는 집회자들이 행열을 가로 막고 있다.

그런데도 어떤 집단이 주장하는 집회을 합법적인 과정을 통하여 하는 데도 이를 자기의 신앙이나 신념과 반대 된다고 하여 반대하거나 막는 것은 사회적으로 불법이며 상식적으로도 용납 되어서는 안 된다. 이단도 종파적으로는 비평ㆍ비난할 수 있지만 그들을 공격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권리는 사실 누구에게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집회를 그대로 두면 될 것을 굳이 반대를 하는 집회를 하는 것이나 찬성하는 집회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회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이런 곳에 사람들을 동원하고 참여하여 충돌을 하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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