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예배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예배(5)

시139:1-12, 창28:10-19, 롬8:12-25, 마태13:24-30
생명에 주목하라 / 2014.7.13

▼정금교 목사(대구 누가교회, 목정평 의장)

   
 

기억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사람은 1시간만 지나면 기억의 절반을 잊어버리고,
하루가 지나면 70%를, 한 달이 지나면 80%를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예배를 드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는 우리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시간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는 의지입니다.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관행을 걷어내고, 제대로 된 사회를 기어이 만들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바꾸겠다는 의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보겠다는 소망이 우리의 힘입니다.
이 힘은 반대하고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보다 더 큰 힘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세상을 소망합니까?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이 세상은 변화 가능한 곳이고,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꿈꾸고 만듭니다.
히틀러는 집권하면서 독일국민들에게 세계를 향한 자신의 꿈을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상대의 생각과 소망을 무시하고, 타인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에고이즘이 독재이고 폭력입니다.

우리가 박근혜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의 독단을 반대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국민을 환원시켜 나가기만을 바라는 태도라서 반대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는 상당히 높은 차원의 윤리입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요청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것은 더 놓은 차원의 윤리입니다.
이보다 더 나아가는 것이 타인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것, 즉 대신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대신 죽는 것이야말로 절대로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선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읽은 성경말씀에서 선을 어떻게 행하는가를 보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하늘 나라를 설명하면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그런데 그 밭에서 가라지도 자랍니다.
종들이 와서, “주인님, 밭에 가라지가 있습니다, 원수가 뿌린 것이니 뽑아버릴까요?” 하고 묻습니다.
그 때 주인은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안 되니까, 거둘 때까지 그냥 두어라.“ 합니다.
추수할 때 가라지는 구별해서 불태워버리겠답니다.

가라지 같은 악한 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바로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였구나…
말하자면 지금 여기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현장이라는 깨우침입니다.
악이 횡행하여 하나님도 없고 정의도 없고 그래서 모두 죽을 길만 있는 것 같은 현장에서
신적 정의를 발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 인식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선한 세상은 이미 도래한 것이라는 것, 그 꿈을 향한 길이 외롭지 않으며,
신적 차원의 고귀한 꿈이라는 인식이 우리를 힘 있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를 사는 모습이었고, 부활은 그 증거인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오늘로 89일째입니다.
학자들이 말하는 망각곡선은 여기서는 무의미합니다.
여전히 생생한 아픔이고 가슴이 저립니다.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아직 하나도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신적차원의 일이며, 신이 함께 하며, 동지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이 땅의 쓰레기 인간들, 가라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신이 심어놓은 생명과 창조의 현장에 주목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 곧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 목숨까지 내주면서 사는 신의 나라를 힘차게 살아갑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약속,
최소한의 장치가 법이라고 봅니다.
 
———————————————————————–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예배(4)

마태13:3-9
생명의 씨앗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총장,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법은 이 땅에 살면서 서로가 최초로 동의하는 최소한의 약속인 것입니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입니다. 상식을 벗어난 법은 법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이 있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상식과 양심을 따라 삽니다.

상식과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저는 사소한 사례에서 보았습니다.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심었던 방울토마토 모종을 통해서 입니다.
자라면서 꽃대마다 정확히 다섯 개의 꽃이 폈고,
그리고 그 자리마다 보석같은 방울토마토가 열렸습니다.

거름이 많은 옥토도 아니고, 바람과 볕이 충분한 텃밭도 아닌데
이들은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의 길을 따라 자라났습니다.
저는 이것을 생명의 본분이라고 봤습니다.

오늘 읽은 성서는 씨앗을 뿌리는 이야기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데, 손으로 흩뿌리는 방식이었던가 봅니다.
길가에도 떨어지고,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떨어지고, 좋은 땅에도 떨어졌습니다.
그 사정에 따라 씨앗이 제대로 자라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씨앗이 땅을 선택하지는 못하네요.
어디에 뿌려지든 자기 속에 담긴 생명의 길을 따라 살았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씨앗은 자기 길을 갔고 그것이 그의 믿음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씨뿌리는 이야기, 이 비유는 내게 이 믿음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는 상황이 어떠튼 내 속에 있는 생명의 길을 가고 있을까,
우리 사는 세상이 어떠튼 우리는 생명의 길을 살아내야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자신이 어떤 상태이든 하나님은 나를 믿고 생명을 심으셨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생명의 길을 이해하고 품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좋은 땅입니다.

매일매일 뉴스에 분통이 터지고, 선보다 악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할지라도 우리가 사는 일은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기필코 우리 안의 생명을 키워내고, 자라게 합시다.
가시덩굴 같은 악한 새누리당이 정의를 막고, 무거운 돌덩이 같은 자본이 우리를 억눌러도 선한 양심을 드러내고, 정의를 행합시다.

나 자신이 생명의 법을 담고 있는 씨앗이라고 시인하는 그 자리가 좋은 땅입니다.
생명의 담지자인 것을 매일매일 감사하며, 매일매일 행동합시다.
여러분 자신이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 그 자체입니다.

 

대구 누가교회 정금교 목사와 마가교회를 은퇴하신 서일웅 목사님께서 대구에서 시작하신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예배" 가 5회를 맞이했습니다. 바라기는 이러한 작은 몸짓과 모임이 많은 곳에서 계속해서 이어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왼쪽이 정금교 목사, 맨 오른쪽이 서일웅 목사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