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근 목사 네 번째, 다섯 번째 연행 이야기

고영근 목사, 네 번째 연행 이야기 (1983. 2. 24)

   
 

1983년 2월 24일 종로5가 ‘고난받는 이를 위한 목요기도회’ 때 문부식 구명 운동의 설교,즉 [정의를 일으켜 세우자]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한 혐의로 41일간 남영동 대공수사부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이 사건은 미국의 각성을 촉구한 애국적 행위이며 그들이 자수한 경위를 볼 때 사형언도는 부당합니다. 사법부가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79년 12월 12일 발생한 군 내부의 쿠테타의 주모자와 80년 5월의 광주사태의 책임자를 법에 따라 심판함으로서 정의가 확립되어질 수 있습니다."

목사 고영근의 회고를 살펴보면,

나는 안기부 수사국과 정보국, 보안사령부, 검찰청 공안부, 치안본부와 서울시경정보과, 강서경찰서와 동대문경찰서 정보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수사관들은 나를 쇠줄로 묶어서 취조실로 끌고 갔다. 5명의 서울시경 특별수사관, 6명의 서울지검 공안검사, 10명의 안기부 수사국 수사관들에세 갖은 고통과 멸시를 받아가면서 협박, 회유, 공갈, 4일 동안 잠 안재우기 등의 고문을 받았다.

취조실에는 큰 욕조가 있었는데 내 손목을 욕조에 잡아 매어 놓고 물 고문 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갑자기 두려운 동포가 밀어 닥쳤다. "주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였다.

수사관들은 "이 빨갱이 목사야, 왜 공산주의자 문부식을 변호하는 것이야? 너 이 새끼 오늘 밤이 네 제삿날이야. 네 놈의 사상을 검토해야겠다."

   
 

나는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말 조심해~!! 나는 북한 인민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반공투사야. 네 이놈.
나에게 반공에 대한 훈장을 주지 않고 빨갱이가 뭐냐! 네 이놈. 가까이 오지마.
나는 박치기로 자폭해서 죽을 거야. 내가 죽으면 나는 천당에 가고 너는 지옥에 가게 될 거이야.
그리고 내가 죽으면 목사를 때려 죽였다고 너는 파면될 것이야."

그리고 검사에게 고함을 쳤다. "빨리 정식 재판에 회부하시오. 우리 법정에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전두환이 살인자인가 살인자가 아닌가 결판을 냅시다."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수사관들은 "목사님, 왜 흥분하십니까? 목사님, 감방에 들어가서 쉬십시오."
 

다섯 번째 연행 이야기 (1984. 9. 6)

전두환의 굴욕 방일 반대 성명서를 낭독, 그로 인해 집시법 위반으로 남대문 경찰서에서 심문을 받았다.

요 때부터는 저도 기억이 확실히 납니다.
왜냐고요?
ㅎㅎㅎ 제가 84학번이라는 거 아닙니까?
분명 맞은 편에 아부지가 계셨는데 잠깐 한 눈판 사이에 아부지가 없어지셨지요.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유난히 크게 보였던(사실 크다기 보다 뚱뚱하셨던…ㅎㅎ) 아부지를 첫 눈에 알아보았는데 감쪽같이 사라지셨었죠.
그 날 집에 돌아오지 못하신 사랑하는 나의 아부지.

이때부터 아부지의 연행 이야기는 저의 대학생활을 바꿔놓았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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