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에서 가장 이상한 이단판결

김인주의 "역사속의 오늘" 

교회사에서 가장 이상한 이단판결

 431년 에베소에서 모인 공의회는 적절한 절차를 밟지도 않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 하였다. 교회정치적인 선택만으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381-451)를 추방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것이다. 2년 남짓 콘스탄티노플에서 총대주교 직위에 있던 네스토리우스는 안디옥에 있는 수도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405년 8월 3일 황제는 그를 아라비아로 추방하였고, 결국에는 이집트로 보내, 유배인으로서 생을 마감하도록 하였다. 시릴과 황제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았지만, 이단자는 끝내 복권되지 못하였다.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의 맛이 다른 것도 문제이지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경쟁이 이런식의 웃픈 일을 만들어냈다. 양측은 적절하게 타협하였다. 조건은 네스토리우스를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사상은 이단의 굴레를 벗어났지만, 그는 끝내 이단의 누명을 벗지 못했다. 문제는, 유배지에서 쓴 그의 글이 백년쯤 전에 다시 알려지면서, 교회사가들은 그의 신학이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문제가 될 만한 생각은 스스로 검열하고, 문제 없을만한 글을 남긴 것은 아닐까?

그를 지지하는 교회가 동쪽으로 계속 진출하여, 경교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도 전해졌다고, 혹은 신라에까지 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네스토리우스와 경교는 별 관계가 없으며, 경교는 시리아 교회가 동쪽으로 전교된 것이라 보인다. 조금 더 세심한 구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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