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의 역사속의 오늘
장 깔뱅
1535년 8월 23일 <기독교강요> 초판이 완성되었다. 출판되어 독자들을 만나는 것은 다음 해이지만, 서문 혹은 헌정사에 적힌 날짜가 탈고한 날이라 여겨진다. 처음에는 평신도를 위한 참 복음의 요약과 안내로 집필되었다. 이후, 증보를 거듭하면서 신학생들의 교과서로 활용되었고, 최종판에 이르러서는 적지 않은 분량의 신학을 집대성한 작품이 되었다.
깔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장애물들을 잘 극복해야 한다. 먼저 그의 대적자들의 글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당대에도 그를 비방하는 문서는 천주교에서 많이 나돌았다. 또한, 그를 추앙하며 맹종하는 해석에도 주의해야 한다. 매우 훌륭한 신학자이지만, 역시 실수를 저지르며 약점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 20세기 이후 깔방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글도 그대로 따를 것은 못된다. 코끼리의 어느 한 부분을 만지듯, 일부를 보고 가장 핵심인양 주장하기 십상이다. 마지막으로 깔방 그 자신의 글이 독자들을 현혹한다는 점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어느 주제를 놓고서도, 신학의 여러 내용들을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저자에게, 독자들이 제 정신으로 독서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글로 많이 번역되었으면서도, 난삽한 글이라고 보이기도 한다. 번역자의 미숙함도 문제이지만, 우리 신학의 수준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게 이유이다. 깔방의 글은 간결하고 명쾌하다. 법학을 공부한 그의 경력이 이를 한층 더 분명하게 말해준다. 주장을 분명히 하고, 오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법률가의 수련의 기본이지 않는가. 칼빈, 깔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깔방이 더 낫다고 본다. 음악가 쇼팡, 연기자 장 가방과 비교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