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목사의 글에 답한다.

이정환 목사의 글에 답한다.

왜 인명진 서경석 김철홍 목사를 권징하라는 것인가?

   
 

사람의 행동은 생각에서 나온다. 그 생각은 자신의 경험에서 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서있는 자리와 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다.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라고 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작금 화제가 된 통합교단의 3인방 목사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말로는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애국을 위하여 그런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거짓말까지 한다. 이런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함께 해 왔던 동지로서도 그렇고 목회자로도 크게 어긋 났는 데 이들의 저런 태도는 어디서 기인할까?

앞으로 이 대목은 연구할 대상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명예도 누릴 만큼 누렸고, 자리도 가질만큼 가진 분들이기 그 이유가 더 궁금하다. 일설에 의하면 자기의 존재감, “나 아직 안 죽었어”라는 식의 인정 욕구가 한 몫을 한 것 아니냐? 는 분석도 있다. 그래도 과거와 달리 특정 정당을 위한 활동은 무슨 말로도 변명할 수 없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들이 이를 공론화하고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언행이 도가 지나쳤는 데 특히 인명진, 서경석 목사의 경우는 과거 이들이 보여준 행보에서 크게 일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이 보수적이라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것에 대한 보복이나 비난이 아니라는 것은 공개된 문서나 기사를 통하여 여러 번 밝혔다.

보편적 신앙의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 교단은 한국 장로교단 중에서도 그나마 상식선에서 좌우를 포괄하는 중도적인 입장에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3분 모두 좌측에 서 있던 분들이다. 정확히 말해서 인명진 목사는 김영삼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는 양지를 향해서 살아온 분이다. 서경석 목사도 미국에서 귀국한 88년 이후로 우 클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철홍 교수도 역시 미국에 가서 변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다가 생각이나 정치에 대한 입장을 바꾸는 것은 자연스럽고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 이분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탓하는 말이 아니다. 목회자가 정치적 입장은 있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 시 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의 정치적 색을 드러내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소신있는 일이고 또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 이분들의 언행은 교회 안팎에서 큰 비판의 소리가 드높다.

그런 차에 우리 교단의 존경하는 선배 이정환 목사께서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친히 이 분들을 변호하는 글을 주신 것에 대하여 일단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비트는 말이 아니라 이런 일은 논리구성이나 팩트에 상관없이 주제어로 택하고 공개적으로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풍토라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하여 성실한 답변과 함께 잘못된 인식에 대하여는 비판을 하니 마음에 두고 좋은 모습으로 인생을 마무리하시라고 권면드리고 싶다.

이것은 선동이 아니다.

선동이란 용어는 한국사회에서 좋은 의미로 쓰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설명을 좀 드리려고 한다. 학술적인 개념으로 보면 “선동(Agitation)은 언어와 같은 상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신념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행위, 기존 이데올로기에 대립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동은 선전과 비슷하나 선전이 상대적으로 메시지의 논리적 구성을 강조하는 반면, 선동은 증오와 공포, 애정 등 인간 감정에 호소하는 경향이 짙다.“

사설적으로도 선전과 선동이라는 두 단어만큼 본연의 의미와 상관없이 역사적 편견 때문에 부정적 취급을 받아온 단어는 없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이 “선전과 선동”을 운동권들의 공작적이고 파괴적인 용어라고 비판하고 교육시켜 왔다. 서구에서도 무솔리리나 히틀러, 공산혁명 과정에서의 자기 선전과 논리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선전과 선동이란 용어는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이정환 목사가 그런 역사적 사실과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상정하여 썼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우리가 동료 목회자들을 망신 주고 비판이나 하려는 일로 오해가 될까 해서 그런다. 그러니 우리가 하려는 일의 내용을 가지고 말해야지 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안 된다.

우리의 목적은 목회자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교단이 묵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허락하고 있지 않은 극단적인 정치활동(특정 정당 가입활동과 정당의 이익을 위한)에 대한 비판과 경고도 겸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정환 목사의 문제 제기로 인하여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목회자들에게 회자되고 논쟁을 유발하게 하였다는 면에서 감사하고 더 이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의 주장은 권징이다.

지난 3월 7일 종로5가의 기독교회관에서 모여서 토론한 주최자인 ‘예장목회자시국토론회’는 큰 의미의 정치적 시국의 문제보다는 그런 큰 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교단의 최근 현실을 논한다’는 면에서 “시국” 이라는 표현했다는 것을 밝힌다. 전국에서 모인 목회자들은 이미 기독공보와 예장뉴스가 보도한 것에 대하여 숙지한 이들이었다.

따라서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위 박근혜를 지키는 예장 목회자 3인방의 일탈에 대한 반감에 특심이 있는 분들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정환 목사가 인용한 대로 이 모임의 첫 계기는 지난 3월 2일(목)에 긴급 소집된 모임에서 였다. 거기서 최근 이 3인방에 관련된 문제가 거론 되었고 이 문제를 이대로 간과할 수만은 없다는 것과 어떤 식으로든 공론화 하자는 결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 3인방에 대하여 이미 성명을 낸 우리 교단의 “일하는예수회”와 “교회개혁예장목회자연대”에서 “정치를 하려거든 목사직을 내놓고 하라” 는 의미의 비판에 대한 선배들의 응답이라고도 보면 된다. 그래서 한 번 더 권면하는 의미에서 토론회도 연 것이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서명을 통한 압박으로 목사직을 내놓든지 지금이라도 돌아오도록 하자는 의견이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징계나 권징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교단법에 의한 “치리(권징)”이라는 말을 처음 쓴 이들은 오히려 인 목사가 직접 조직한 “일하는 예수회” 라는 민중선교 모임이었다. 우리총회 헌법 상 목회자의 품위에 반하는 목사들의 일탈에 대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정환 목사가 이런 목회자들의 긴급 현안 토론회를 소위 박근혜 대통령을 편드는 목사를 징치하라는 선전, 선동이라고 본 것은 유감이다. 우리는 그럴 여유도 필요도 없다.

신학교 교수에 대한 이미지

김철홍 교수는 안정된 지위로 우리 교단 산하 장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인데 보수적인 의견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학교 밖으로 뛰쳐나와 편향된 모임에서의 부적절한 기자회견이나 강의, 칼럼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일을 하였다 그와 같이 활동한 김평우 변호사와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은 지금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박 대통령 파면)에 불복하고 있다.

그러면 이들과 같은 소신 언행을 한 김 교수는 지금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늦었지만 자신의 잘못된 견해에 대하여 사과를 하거나 학교 밖으로 나가 저들과 함께 박근혜를 지켜주는 일에 앞장을 서는 것이 김철홍 교수다운 태도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사회의 언론과 정당에 있는 좌파 세력이 집권 혁명에 성공하지 못하도록 복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이런 사고를 가진 분이 더 이상 학교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이미 동료 교수들로부터도 그런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교수라면 학문적으로 학회나 합법적이고 중립적인 매체에 자신의 주장을 펴나가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성 짙은 활동을 일삼아 왔다. 그래서 이미 이사회로부터 징계도 받았고 공개사과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일어난 일만해도 몇 건에 이른다. 그런데도 과거의 김 교수답지 않게 침묵으로 비웃는 듯한 태도는 유감이다.

이런 분에게 더 이상 학생들을 맡겨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논쟁을 하는 분도 아니지만 교수고 학생이고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는 면에서 그렇다. 또 학교에서 학생들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을” 이기에 그렇다. 장신대에 보수적인 교수들이 많이 계셨어도 일찍이 이런 분은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정환 목사도 인정했듯이 목회자가 말이 거친 것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이 거칠다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은 이들에게도 경고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이상 없기 위해서는 동료 목회자들에게 이에 관련된 정보를 나누고 권징 서명을 하는 기간을 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러는 동안 저들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고 심각성을 깨닫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선동”하는 행위로 본 것은 오해라는 말씀을 드린다. 아무리 잘못한 죄인이라고 변호사 없이는 재판하지 않는 것처럼 다행히도 이정환 목사가 나서서 이들을 변호해 주니 감사하다는 말을 드린다.

정치행위와 정당활동은 다르다.

목회자 중에서는 탄핵을 당한 국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하여 동정심을 갖고 탄핵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찬성한 분들이 더 많지만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이게 우리의 목회 현장이다. 그래서 목회자의 처신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과 정당 활동은 천양지차다. 인명진 목사는 무너져 버리는 자유한국당을 살린다고 그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갔기에 정당 권력의 최고 중심부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서경석 목사는 그 당의 당원 100만 명을 가입하자는데 앞장 선 분이다. 그들의 시국관이나 목회에 대해서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75% 이상이 찬성한 탄핵에 가장 책임이 큰 정당을 살리자고 하는 것이 과연 목회자의 사역이라고 볼수 있을까?

목사도 국민이니 특정 정당을 선택하고 지지하는 것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에 가입하거나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을 정당 지지라고 하지는 않는다. 백번 양보하여 기존 보수정당이 아닌 진보적 가치와 노동자 서민 등을 대변하는 연약한 정당을 두둔하는 행위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인명진 목사의 경우 그가 과거 노동자 선교를 통하여 명망을 얻고 해외도 가고 온갖 특혜와 명예를 다 얻었는 데 이제 와서는 기득권 권력에 기생하여 그런 권력을 누리려는 태도에 대해서 누군가가 비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인 목사는 이런 문제로 자신이 대표로 있던 경실련으로부터 영구 제명을 당한 불명예를 얻은 바 있다.

서경석 목사는 또 어떠한가? 그는 지금 일반 목회를 하는 분이 아니다. 인명진 목사는 은퇴한 분으로 그렇다고 쳐도 서 목사는 조선족이라는 특수한 계층을 대변하며 그들의 신앙과 인권을 위해서 부단히 투쟁해온 목회자로 인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것 외에도 여러 문제들 목회자의 건덕성으로는 해서 안 되는 일로 말들이 많았다. 

더구나 주어진 목회와 관련있는 활동도 아니다. 이미 사안들마다 재벌과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일에 부역하여 왔다. 4대강 사업 찬성, 철도파업 반대, 제주 강정마을 개발 찬성, 대립이 있고 이권이 있는 한 축에서 언제나 얼굴을 내고 이름을 내왔다. 무슨 돈으로 그런 일들을 할까 의심하는 분들이 많다. 이것은 목회가 아니라 전문 시위꾼도 아니고 앵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철홍 교수는 학교에서 물러나야

김철홍 교수의 첫 행보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장신대 역사신학 교수들의 성명에 대한 반대로 시작이 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정도의 비판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장신대 교수들의 신학 선언에 대해서도 교수들이 일체의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제외시키고 있다. 

언어 순화의 문제가 아니라고 서두에서 밝혔다. 인식의 문제이고 이런 분이 학교에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고 우리 사회를 구원해야 하는 사명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사회를 편 가르는 증오와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나쁜 선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철지난 국정교과서 문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하나도 채택된 학교도 없고 이 정부를 끝으로 100억대의 돈이 들어간 교과서는 사장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사회

일반 목회자들 가운데 다양성을 인정하는 인식을 가진 분들이 솔직히 말해서 몇이나 될까?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교단 법통이라 하는 이정환 목사가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반갑다. 지금 대통령이 탄핵된 우리 사회의 적폐를 비선이니 친박이니 대재벌이니 1%의 지배층이니 하며 별 말을 다해도 나는 단언컨대 딱 한 가지라고 본다. 그것은 다양성을 거부하는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양성은 반대파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각에 청와대에 기업에 교회에서도 나와 생각을 달리는 사람을 밀어내고 부정하고 탄압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는 이유들 중 하나로 든 것도 대통령이 하는 일을 제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언론의 감시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주관적으로 참 나쁜 사람, 배신자라고 하면 달려들어 뭇매를 놓는 식의 정치를 해온 것이다. 기업인, 언론인,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 예술가에게 그토록 가혹하게 하였다. 그런데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을 두둔하는 논리로 인-서-김 3인방에 대하여 변호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다. 달리 시국의 인식과 역사의 해석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정치, 시국토론회가 아니다.

이 날의 시국 토론회에서 대표 이명남 목사는 “무거운 마음이다. 몇 사람 비난하고 성토하는 자리가 아니다” 라고 에둘러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거기에 모여서 발언한 사람들은 물론 나조차도 이런 정도의 언급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이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기독청년운동 관련 의식의 영향은 서경석 목사에게, 산업선교와 민중선교는 인명진 목사에게서 훈련 받았다. 평생을 멘토로 알고 따른 후배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편향적 정치 활동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미 가르침을 받았기에 그분들 자신이 우리 후배들의 이런 비판에 대해서 입이 열개라도 하실 말들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다가 사적으로 나의 처로 말할 것 같으면 인명진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그가 시무했던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제직으로 시작하여 5.18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에 대한 공로로 민주화운동유공자가 된 사람이다. 개인적으론 정말 그럴 수 없는 사이다. 그런데 이 분들이 모두 나라를 살리는 애국으로 그렇게 하신다니 나도 애국심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윤리로 볼 때도 어긋난 일이라는 것이 나와 거기 모인 목회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명진, 서경석 목사는 노동자들과 민주화 운동의 동료들, 경실련과 환경 운동가들의 헌신을 배신한 것이다. 

또 하나, 목사의 권징은 해 노회에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는 염치도 없는 행위다. 국민으로 하여금 목회자의 정상적인 인식과 태도에 대하여 많은 실망과 낙담을 갖게 한다. 특히 권력에 기댈 뿐 아니라 그것을 영위하려는 기회주의자적인 모습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단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쌓아온 이미지와 통상적인 목사 상에서도 어긋나므로 교단과 동료목회자들의 명예를 크게 훼손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몇 사람이 반대를 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라도 진실하고 의미있는 숫자가 된다. 99% 라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이들의 권징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끝으로 이번에 동료 목회자를 권징하자고 하는 일은 앞장 서는 이들의 고백에서도 나왔듯이 잘하는 일이라거나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가 설 자리는

겉으로 보기에 3인방에 대하여 권징하자고 하는 것을 “선동”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표현은 높은 교육을 받은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을 무시하는 표현이다 그럴 이유도 마음도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꼴을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교회의 지도자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지금 목회자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 박근혜 게이트가 일어나도록 만든 책임으로 국민들에 의해 버려지고 무너지는 정당을 되살리는 일인가? 한 번 묻고 싶다. 

목회자가 어떠한 경우라도 특정 정당에 가입을 하고 그들을 두둔하는 일은 안될 일이다. 그럴 때일수록 자중하고 역사에 무한 책임을 느끼고 양떼들을 돌봐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제발 권력자의 편인 양지에 기웃거리는 일을 중지하고 과거처럼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적 노동자와 청년 알바생, 고령인, 여성 또는 해외 노동자들의 삶을 돌아보고 대변하는 교회 본래의 돌봄 사역 중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기도하기를 이 세 분이 높은 교육을 받고 한 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감옥도 가고 희생을 하여 교회와 사회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첫 사랑을 회복하기를 기도한다. 더 이상 배부른 돼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고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가진 것조차 내려놓기를 원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 아닌가? 

이정환 목사가 이들을 대신하여 변호를 해준 것은 감사하다고 했다.  그 많은 동료 목회자들 중 단 한사람만이 공개적으로 두둔을 한 것이다. 이런 일에는 주관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정환 목사가 누구인가?  철원의 농촌교회를 30년 이상 성실하게 섬기고 있다. 큰 교회는 아니지만 지역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목회자다. 자력으로 공부하고 진화하여 총회적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는 데 특히 총회의 법리 관련 부서들에서 강한 이미지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그의 발언들은 시의적절하고 절도있고 반대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후배들에게도 많은 배움을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처신도 깔끔하다. 부 총회장 선거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소속노회 후보를 밀었다. 모두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연금재단 이사직도 마다했다. 굴직한 재판에 변호인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작년 특별사면위원회 파동 이후 보인 자취는 좀 우왕좌왕이다. 특히 특사위 위원을 지내면서 생산된 문서와 자료들을 총회 허락없이 사용한 것과 개인적으로 총회 직임을 사적으로 사용하여 문서를 발행한 것도 옥에 티로 지적받을 내용이다. 

이번 기회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잘 살펴서 우리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총회와 교회가 되도록 봉사해야 할 것이다. 작금에 명성교회 발 위장세습을 통한 후임자 문제에 대한 사회적 비난도 모두 우리교단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다. 같은 교단 내에서 차마 말들을 아끼지만 일의 중심에 있는 분들의 판단과 지혜로운 결단을 더 기다려본다.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