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에큐메니칼 여성운동의 어제와 오늘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역사정리 모임 

기독교가 한국민주화운동에서의 참여와 성과, 한계을 역사적으로 살피는 모임의 일환으로 이번에 여성들의 참여와 증언을 듣는 집담회가 7월 7일(목) 2시부터 기독교회관 2층에서 열렸다. 시작에 앞서 윤수경 장로(사회복지공동 모금회 사무국장)의 기도와 사업회 신대균 사무총장의 격려사가 있었다. 

   
 

1부 진행은 고성휘 박사(목민연구소 대표)의 사회로 이문숙 목사(전 아시아 교회 여성연합회 총무)가 “한국교회/기독교 여성 에큐메니칼 운동의 어제와 오늘” 을 발표했다.

   
 
   
 

2부는 김은혜선생(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의 사회로 조순형 전도사(청주산선) 가 “청주 도시산업선교회의 역사와 시민운동에 대하여” 사례 발표을 하였다. 이어 장석숙 사모(영등포 산선 활동, 원풍모방)는  “내가 만난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증언하였다.

   
 
   

이후 이문우장로(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의 총평과 은명기 목사의 축도로 모임을 맞쳤다. 
행사에는 한신대 학생들과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원, 기독여민회 총무등이 참여하였다.

   
                                     * 좌로 부터 인명진 목사 000. 장석숙, 고 신복수 동지

평가와 논평

그동안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한국기독교는 전체는 아니더라도 나름 평가를 받고 희생당하거나 공이 있는분들중 보상이나 명예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진보든 보수 가릴 것 없는 데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을 사유화 한 것 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내부에서 직선제를 쟁취하는 1987년 6월 항쟁의 태동을 이끈 ‘국민운동본부’ 을 주도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1997년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가 집권한 이후 일부 진보 기독인사들의 국가직등에 참여한 것에 대한 기독교 내부 평가는 없었다. 

당시 처음으로 집권한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도 있기는 했지만 기독교도 경황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에 대한 평가는 없었고 이후 보수정부에서도 참여가 이뤄 진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독교에서의 정리의 필요성으로도 이런 모임은 의의가 있어 보인다. 

그중에 진보 기독교 내에서도 여성들을 주제로한 이야기는 처음 있는 일로 그 자체로 큰 의미다. 이런 일을 주도한 교회여성연합회 전 총무 이문숙 목사가 그간 기독여성운동 30년사를 조사하여 정리한 것도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외 여신학자들의 활동이나 기여민등 기독여성으로 함께 해온 제 단체와 활동가들이 빠진 것은 앞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한 것은 다행이다.

지역운동(청주)

특히 청주산선을 기독교민주화운동으로 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고 정진동 목사의 청주 산선은 1972년에 예장으로 시작하지만 내용적으로 교단의 정서가 받아드리지 못하여 이별하고 나와 기독교장로회로 소속되지만 거기서도 현장 활동을 담보할 수 없게 되어 나오게 된다.

이후 교단이나 교회의 지원이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청주산선을 조순형 전도사기 이끌어 오셨는 데 이름만 산선이지 지역 민중운동의 효시다. 우암동 토지 배상문제부터 청소부 체불임금 해결등 민중생존권 투쟁의 선봉에 선다.

그 성과로 한 때 정진동 목사는 민중당 후보로 청주 시장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후 조순형 전도사가 청주산선과 노동교회를 이끌어 왔는 데 영등포나 인천 산선에 비하여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여성으로 청주산선을 이끌어 온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조순형 전도사는 생전에 형부였던 고 정진동 목사를 모시고 사역했으며 처가의 온 가족들이 청주산선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협력한 특별한 가정이다. 이외에도 감리교 농촌운동가 고 최종진, 예장의 박종희 선생, 김태종목사 기장 김창규목사, 고 유구영 선생등이 청주산선의 협력자들이다.

청주에서는 고 호죽 정진동 기념사업회가 사후 15년째 매년 시상을 하고 있는 데 이를 운영하고 참여하는 기관은 청주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분들이다. 정진동은 목사였지만 교회가 아닌 지역사회의 시민운동가들이 정목사의 정신과 사역을 기념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도 나와 

당시 여성노동자로 영등포산선 출신에서 목회자 사모가 된 장석숙 씨의 기록된 증언도 의미있는 데 그동안 산업선교에서의 목회자나 실무자들의 신화속에서 간과되었던 여성 노동자 개인들의 진솔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특히 원풍과 영산과의 결별에 대한 다른 시각도 처음이다. 

이외 동일방직,YH,해태,남양 나이론,콘트롤데이타, 원풍등 당시 산선과 연관된 노동운동 평가에서는 산선이 지나치게 민주노조 활동과 방향에 관여했다라는 평가는 오류다. 또 사회 여론화와 정치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여 외부 의존적 성격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기록도(1970년대 민중운동연구, 272, 379쪽(김원) 재평가되야 할 것이다.

또 “도시산업선교회와 1970년대 노동운동”(구해근) 이라는 논문에서도 그 당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필요했던 영웅과 신화가 필요했던 운동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는 노동문제든 학생문제든 그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의미부여가 필요했던 때였다. 그 과정속에서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나 호소를 온정주의로 평가절하 한 것도 역사 기술을 자료에만 의존한 지식인들의 한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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