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스 선교사의 제주 탐방기
김인주목사(제주 봉성교회)
이 원고는 김인주 목사가 제주 제민일보에 기고한 것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편집자의 착오가 있었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분에게 죄송한 말씀드리며 원고를 수정해 올립니다.
개19세기 유대인의 제주도 구경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큰 몫을 차지한 피터스가 있다. 우리 이름은 피득이라 하였다. 그는 1899년 2월 23일 제주도에 도착하여, 20일 가까이 머무르며 섬을 한 바퀴 돌아 구경한 기록을 남겼다.
우크라이나의 전통적 유대인 가정에서 1871년에 태어나, 이름은 이삭 프룸킨이었다. 유대인들이 박해를 피하여 이주하던 시절, 23살 이삭은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일본의 나가사키에 이른다. 개신교회를 찾아가 미국 선교사 피터스를 만나고 복음을 듣고 개종한다. 두 사람 모두 독일어가 유창하여, 의사소통은 쉬웠다. 세례를 받으면서 그는 새로운 이름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로 개명한다. 이 소식을 듣고 미국성서공회 일본 책임자 헨리 루미스가, 한국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받아들인 피터스는 1895년 조선에 도착하였다.
한국에 온 피터스는 조선 천지를 돌아다니며 신약의 복음서를 반포하는 권서인으로 일하였다. 2년이 지났을 때, 한글에도 익숙해졌다. 구약성경이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틈틈이 시편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다른 언어를 거치지 않고 모국어인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다. 모두가 이어쓰기 하던 시절, 한글로 띄어쓰기를 시도하여 선구자가 되기도 하였다.
피터스는 영국 성서공회 한국 부총무로 임명되어, 1899년에 총무 켄뮤어와 함께 제주도를 탐방하였다. 그는 여정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긴다. 2월 18일 증기선을 타고 제물포를 떠나 군산과 목포를 거쳐 배를 갈아타면서 23일 정오에 제주 해안에 도착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어렵게 상륙하지만, 한 주간 궂은 일기가 계속되어 한 어부의 작고 어두운 방에서 갇혀 지낸다.
3월 2일이 되어 비는 멎었고 밝은 해를 보게 되었다. 진흙탕 길도 엉망이지만, 냇물이 불어서 4일에야 출발한다. 말을 빌리고 싶지만, 너무 약해서 탈 수 없는 계절이라 하니 포기한다. 길은 매우 험하고 좁았고, 곳곳에 돌벽이 무너져 내려 길이 완전히 막힌 곳도 있다. 주막은 없고, 여행하는 관리들이 이용하는 객사에서 쉬어야 했다. 수행하던 제주사람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헛간에서 밤을 보낸다.
3월 5일에 다시 출발하여 종일 걸어서 대정에 도착하였는데, 돌이 가득한 길은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숙소를 찾지 못하자, 현감을 찾아 도움을 구한다. 마굿간에 붙은 방을 얻어 사흘을 보낸다. 8일 정오에 비가 멎자 길을 나서지만, 다시 비가 내려 빗속에서 걸어 이동한다.
10일에 정의에 도착했다. 여기에도 주막은 없고, 다시 현감을 찾아야 했다. 대정현감에 비해 매우 불친절하면서도, 이튿날에도 다시 찾아와 종일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날도 보러 오겠다고 하자,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떠나기로 작정한다. 강한 바람을 맞으며 출발하여, 도중에 켄뮤어는 앞서 나가고 피터스는 처져서 일행이 나뉜다. 천신만고 끝에 제주에서 이들은 다시 만나면서 일정은 마무리된다.
그는 1900년에 미국으로 가서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에서 신학수업을 받고, 목사로 임직을 받아 선교사가 되었다. 1904년 다시 한국에 와서 1941년 정년 은퇴하기까지 많은 일을 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1911년에 발간되었던 구역 성경과 1938년 새롭게 다듬어 출간된 개역 성경이다. 모두 그의 초벌 번역이 기초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