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 |
||
| * 베다니 교회 강단에서 피리로 찬송가를 부는 이목사 | ||
이 글은 충북노회 베다니교회 이인수목사에 관한 글이다. 글을 쓴 사람은 이목사가 전도사 시절에 함께 한 노회 기독청년들로 모두 성장하였다. 이인수목사는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후 장신대 학부와 신대원을 나와서 현재 까지 같은 노회서 사역중이다. 베다니교회에서 15여년전 부터 무공해 닭을 기른다. 거기서 난 닭알을 먹은 이들 중 최근 오는 8월부로 더 이상 양계를 하지 않는 다는 문자를 받고 최상일씨가 보낸 글이다.
이것이 공개되자 많은 동역자들이 이인수목사를 기억하면서 안부를 묻는 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공개해준 글에 감사한다. 신학교 졸업후 사명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그곳에서 롱런하는 정주목사회는 쉽지 않다. 교회안 사정도 그렇고 가족들도 있고 또 여러가지 이유로 임지를 옮기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인수목사는 내가 안 것만도 오래인데 충주 앙성면에서 움직이지 않고 지금까지 목회를 하는 중이다. 나도 한때 그가 기른 닭알을 선물받아 먹기도 했는 데 이제 양계도 접는 모양이다.
인근에는 한 때 정신영농조합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동역하는 농촌지역 동역자들이 있었다. 농촌센타가 있는 구만리교회에서 추수감사 연합행사도 갖은 바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점점 더 줄어드는 농촌인구와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되어 년례 이런 행사조차 힘겹다. 모두 예장농목 초대 회원들로 오늘도 농어촌 마을과 교회를 지키는 일꾼들이다.
![]() |
||
충주시 앙성면 영죽리 음촌마을 이인수 목사님
오늘 아침 카톡이 울렸다.
“늘 좋은 시 감사하고 우리가 양계를 8월 말부로 접기로 했어요. 무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
충주시 앙성면 영죽리 베다니교회 이인수 목사님이 보낸 것이었다.
8년 전부터 매월 두 차례 이상 목사님이 직접 키우는 양계장에서 나오는
계란을 받아 잘 먹어 왔는데,
양계장을 8월 말 부로 정리한다는 소식이었다.
농사짓는 농부 목사님과 작은 인연을 이어오는 것이 큰 행복이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인수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35년 전인 청년 시절이다.
한창 기독교운동에 빠져있을 때, 농촌에서 목회하며 신학을 공부하던
화죽교회 김태종 전도사, 백합교회 백영기 전도사님, 거현교회 이기녕 전도사와 함께
증평가는 길에 있는 북이교회(이인수 전독사)님을 만났다
그때 기독교 청년 운동하던 우리의 열정만큼이나
전도사님들의 열정과 민중에 대한 사랑이 뜨겁게 느껴졌었다.
![]() |
||
그후 청년운동 하던 우리들도 다양한 길로 갔고,
전도사님들도 안수를 받고 목사님이 되어
각자 계신 임지에서 자신만의 목회를 만들어 가셨다.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인수 목사님이었다.
다른 분들은 목사안수를 받고도 대개 청주 근처에 계셨는데,
이 목사님은 농사 짓고 농촌목회 하겠다고 충주 어디 깡촌교회로 갔는데
가보신 분들 얘기로는 버스가 들어가기 어려운 촌구석 깡촌에서
열심히 농사짓고 계시다는 것을 어떤 목사님을 통해 들었다.
![]() |
||
그 후로 멀리 계신 만큼, 일하는 영역도 달라 얼굴 뵙기가 참 어려웠다.
그러다 2002년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할 때
충주에서 원주로 가는 순례길에서 충주 농민들과 함께 잠깐 목사님의 얼굴을 뵈었지만
살고 계신 마을과 교회까지 갈 생각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시 목사님의 얼굴을 직접 뵌 것은 한참 후인 2016년이다.
에코메아리에서 충주시 마을만들기 현장포럼을 진행했는데
그때 대상 마을 중 하나가 충주시 앙성면 영죽리 음촌마을이었다.
충주시 주덕읍에서 고개를 넘으면 노은면이 나오는데
노은에서 다시 고개를 넘으면 앙성면으로 들어서고
거기서 또 산 하나를 넘으면 남한강 비끼내가 펼쳐진다
비끼내를 따라 한참을 여주쪽으로 내려가면 영죽리 마을 입구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산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영죽리 음촌마을이 나온다.
들어가며 옛날 자가용이 없고, 버스가 귀하던 시대에는 정말
오고 싶어도 오기 어려운 깡촌 중에 깡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인사하는데,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분이 들어왔는데
바로 이인수 목사님이었다.
![]() |
||
정확히 표현하면 목사님 행색이 아니고 음촌마을 주민, 음촌마을 농부였다.
이 마을에는 절도 있고, 천주교 공소도 있고, 교회도 있었는데
서로 등 대지 않고 화목하게 마을 일을 함께 고민하며 마을 축제도 개최하고 있었다.
지금은 찾기 어려운데, 그때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 중에는
마을 축제에서 퉁소를 연주하는 목사님 사진도 있었다.
“어, 목사님 여기계셨어요? 그러니 뵙기가 어려웠죠”
마을에서 회의를 끝나고, 목사님은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로 안내하였다,
교회는 얼핏 봐도 교인 수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작고 아늑(?)했다.
![]() |
||
더 놀랐던 것은 교회 옆에 만들어논 양계장이었다.
매일 계란을 받아 택배로 보내는 일을 하였는데
교회 안에 그날 받은 계란과 박스가 쌓여있는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목사님은 여기서 적접 농장일을 하며, 농사도 짓고,
같은 뜻을 지닌 분들과 자꾸 소멸되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아파하고
농촌목회의 경험을 나누는 일을 평생 해오셨다.
그날부터 나는 목사님 농장에서 나온 친환경 계란의 애용자가 되었다.
계란을 구입해 우리 먹을 것 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명절 때는 아예 계란으로 선물을 한동안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8년을 이어왔던 유기농 계란과의 인연을 여기서 끝내야 하다니 아쉽기만하다
목사님의 카톡의 프로필은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이다
갈수록 줄어들고, 쫄아들고, 사라지는 농촌에서
멋진 농촌 목회의 꿈을 펼치셨지만, 걸어오시며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남은 시간 먹을 거리를 직접 농사짓고 생산하며 은퇴를 준비하고 있고
혹 기회가 된다면 선교사들에게 ‘양계 경험’을 교육하고 싶어하신다
![]() |
||
| * 예장농목회원들과 인도네시아 농촌을 방문하여 피리를 부는 이목사 | ||
시골에서 목사님이 함께 위로해주고, 복을 나누어 주셨던 나이 드신 주민들과
그리고 먼저 돌아가신 어르신들은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닮은 목사님과 함께하던 모습을 잘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그간 친환경 좋은 계란을 주셔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도 더 행복하고 좋은 농촌목회 이루시길 기도한다
농사짓는 농민,
농사 짓는 목사님,
농사 짓는 예수님,
만물을 키우고 먹이시는 하나님!!
모두 다 하나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환상일까?
(20240729. 겨자씨 석정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