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이론에 머문 “공정과 상식”

                    존 롤스의 정의론

최고 시청율로 최근 우리 청치의 민낮이 라이브로 근 1달째 전국민과 세계에 방영중이다. 여기서 정치 지도자는 무엇이며 국가는 어떤 것인가를 전국민이 공부 중이다. 정치로 부터 멀어졌던 2-30대 특히 여성들도 이번 계엄령 파동으로 인한 참여도 이채롭다. 다행인 것은 아직은 대한민국의 입법과 사법은 정상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정치학자 몽테스퀴가 주창한 3권분립의 중요성이 실감 나는 때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2년 7개월의 비정상과 퇴행을 딛고 세계화속에서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써의 리셋을 제대로할 수 있는 길목에 있다. 차기 대권이 누구에게 갈 것인지를 떠나  정치 지도자나 정당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실시간으로 교육중이다. 이제 적어도 진실 혹은 정의나 공정 상식은 더 이상 속여서도 속일 수도 없는 가치가 된 것이다.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을 체험하고 누가 이를 지연시키고 왜곡하는 지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그만한 국민적 시간과 희생을 지불한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의 정치는 정치인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며 시민들은 군이나 경찰로 부터 입법부를 그리고  나라를 지킨 것이다 이 점은 모든 정치인들이 실감하였고 인정하는 바이다. 시민들 특히 청년등이 아니었으면 이 나라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 까? 를 상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다원화 되는 중이다. 과거에는 국가나 공동체 조직의 자유나 이익이 먼져였고 개인은 희생되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개인의 자유를 규제하거나 억압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따라서는 국가는 개인의 가치관을 자유롭게 추구하면서도 타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핵심 과제가 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 죤 롤스가 《정의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최소 수혜자(the least advantaged)’를 우선 배려한다는 전제 아래 정의의 구체적 내용은 시민 간의 자유로운 논의를 통한 중첩적 합의의 결과로서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거를 통한 정당제도이고 국가는 이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을 보호하고 그것을 지지한 시민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지난 4월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다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까? 그렇다면 아마 계엄령이 필요없이 통치권이라는 무소불위의 권위로 군림하였을 것이지만 상상조차 하기 싫은 대목이다. 따라서 국민들이 만들어준 이 비율을 무력화 시키고 대통이라고 해서 깨려는 행위는 안된다는 것이다. 시민은 민주당이나 야당 혹은 이재명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중이고 지금은 위법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회적 갈등 해소의 기초는 바로 정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계층, 세대, 젠더, 빈부, 이념외에도 정치인 혹은 진보든 보수든 이름내기 돈벌이에 숙주가 된 감이 있다. 이 같은 다양한 갈등을 조정할 기본 잣대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의의 원칙" 이다.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언젠가 맞이하게 될 통일 한국의 사회적 균형을 위해서도 정의의 문제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정의는 우리 시대가 고심해야 할 화두이자 시대정신이라 할 만하다. 

그런의미에서 롤스의 정의론은 불평등한 자질을 제거하거나 평준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소 수혜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 성원에게 혜택이 가도록 이득과 부담의 체제를 편성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더욱 중요한 것은 천부적 자질과 사회적 지위의 우연성을 처리함에 있어 우리가 자신의 여건을 행사하는 방식을 바꾸는 대신에 그 재능으로부터 나오는 이득을 주장하는 도덕적 근거를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이 가진 자질이나 그로부터 얻게 되는 이득의 독점자가 아니며 자연적 재능의 분배를 공동 자산으로 간주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러한 분배에서 나오는 이득에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행운의 임의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우연히 배당된 재능의 소유자이기보다는 그것의 경영자 내지 관리자(stewardship)임을 내세우게 된다. 천부적으로 보다 유리한 조건을 타고난 자들은 혜택 받지 못한 자들의 처지를 개선(교육의 부담을 지고 더 불리하게 타고난 자들을 돕는 등의 방식)해준다는 조건에서만 자신들의 행운으로부터 이득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정의의 이론이 아무리 정연하고 우아하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에게 정의를 실현하고 실행할 의지와 역량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학자들은 ‘정의’를 정당화(justification)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사실상 이론이 제시된 다음에 더욱 중요한 것은 실천 의지를 단련하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동기화(motivation) 작업이다. 지난 수십 년간 ‘정의론’ 배우고 연구한 우리사회 엘리트들은 이기심과 출세주의로 뒷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론》은 기필코 실천을 향한 덕윤리(德倫理)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설사 정의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안다고 해도 그것이 내면화되고 체화되어 실천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천 의지와 실행 역량은 결코 하루아침에 함양되지 않는다. 작금의 사태를 보더라고 공정과 상식을 외치던 정치 지도자의 말로를 보면 여전히 우리시대는 아직도 훈련되지 않고 준비되지 못한 지도자들이 과도한 정치 포플리즘에 의존하여 대중을 기만하는 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정할 정 (正), 옳을 의(義)’로 이루어져 있으며, 핵심적 가치는 공정성, 평등성, 책임감, 존중, 신뢰 등을 포함하고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혹은 "사회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를 말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의 각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의 상태를 <정의>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평등과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자원과 혜택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분배적 정의>와 불공정한 것을 바로잡는 <교정적 정의>로 나누었다. 소크라테스 시대의 비평가 트라시이코스는 <정의는 이익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비아냥대듯이 정의했으나,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이론의 핵심이 되었다.

가치규범적인 개념의 <정의>에 입각해서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자유주의 틀 속에서 사회주의적 요구를 끌어안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정의관을 보편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종전에 통용되었던 <윤리학>, 즉 가치 규범적 학문을 낡고 별 볼 일 없는 학문으로 얕보기 시작했으며, 대신에 프랑스의 <실존 철학>과 영미의 <분석 철학>이 주류였다. <실존철학>이란 이 세상에 본래부터 정해져 있는 가치 기준이나 도덕관 등은 없으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마다 처하는 실존적 상황에서 개인의 결단을 통해 가치 규범이 결정된다는 것이고,

<분석철학>이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올바르게 분석하는 데 달려 있으므로 언어 분석을 통해 우리가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진리와 거짓을 명확하게 가려낼 수 있다는 철학이다. 실존철학과 분석철학의 공통점은 보편적인 기준을 세우는 <윤리학>, <규범 철학>은 필요 없는 일로 부정했다. 아울러 정치철학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실증주의 정치 철학>을 주장했다. 이것은 강대국으로 변모한 미국 학자들은 정치적 이상이나 가치 규범에 대한 답이 미국에 있다고 믿었으며, <정의>에 대해서는 그저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정치 제도를 잘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과 흑인 인권 운동을 계기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수호 국가로 자처하던 미국의 감춰졌던 얼굴, 반민주적이고 반인륜적인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미국인들은 자국의 정치 이념과 원리를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자며 반성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존 롤스의 <정의론>이 출판되었으며, 인류가 다시 한번 가치 규범적 개념인 <정의>에 대한 철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것은 미국 정치 철학 분야에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고, 평등을 존중하고 사회보장을 옹호하는 자유주의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롤스의 ‘정의의 두 원칙’
롤스는 철학과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진리>라면, 사회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의>라고 했다. 정의도 원칙이 있다. 공정한 정의를 위한 제1원칙은 각 개인의 평등한 기본적 자유를 규정하고 보장해야 하는 것이고, 제2원칙은 각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정의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 즉 제1원칙의 <기본적 자유>란 정치적 자유, 언론과 결사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몸을 해치는 행위로부터의 자유, 사유 재산의 자유, 법 밖에서 체포와 구금으로부터의 자유 등이며,

​제2원칙은 소득과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할 필요는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차등의 조건>, 둘째는 <기회 평등의 원칙>이다. 단지, 제1원칙과 제2원칙의 순서가 있는데, 제2원칙을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제1원칙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하게 <정의>를 도출하려면 최초의 상황이 공정해야 하는데, 공정한 조건을 갖춘 최초의 상황을 <원초적 입장>이라고 하며, 원초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특수한 처지 (지위, 계층, 재능, 체력, 심리적 특징)에 대해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무지의 베일>이다. 즉 상호 무관심과 무지의 베일의 결합이 <이타심>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롤스는 주장했다.

롤스는 독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회제도를 직접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원초적 입장에 있는 합리적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즉 합리적 생각의 과정을 4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는 원초적 입장 그 자체로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채 자신들이 처하게 될 정의 원칙을 선택하는 것이고, 2단계는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한 정의의 원칙들, 통치체계와 제헌위원회에 참여하고, 3단계에서 공공정책이나 사회적 경제적 규정을 설정하며, 마지막 4단계는 공공기관이나 일반 시민들이 앞의 두 단계에서 확립된 정책들을 실행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정의론과 공리주의 차이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 사조로 한때 영국이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을 행사한 이론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경제적 합리성>를 추구하는 것이다. <공리주의> 사조는 제레미 밴담(1748~1832)과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확립되었다. 밴덤은 <고통은 악이며, 쾌락은 선이다>라는 <돼지의 철학>이라는 조롱을 받았으나,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쾌락을 <단순한 감각적 쾌락>과 <수준 높은 행복, 지적 쾌락>으로 구분했다.

공리주의의 쾌락은 옳음의 기준 없이도 어떤 것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되었으며 옳음을 원칙이 선행되어야 하며, 분배의 문제가 사회정의에서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다. 즉 공리주의에 따른 성장지상주의는 개인 능력차에 의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빈부격차가 격화되어 결국 사회 협동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론’ 이 주는 교훈
현대는 어쩌면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론처럼 강자가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즉 강자가 되기 위한 경쟁을 당연시하고,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경쟁에 내몰려 서로를 비교하며 좀 더 높은 위치를 점유하려 애쓰고 각자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가 시민들에게 더 많은 이익과 발전을 제공할 수 있을까?

결과는 뻔하다. 더 나은 인생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절망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 모순 구조를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롤스 의<정의론>에서 강조하고 주장하는 핵심, 자본주의가 사회의 암덩어리가 되지 못하도록 건강하게 관리해야 하는 데 이것이 바로 시민운동이다. 서구에서는 NGO, NPO로 명명되는 바 국가나 정부(지방자치)를 견재하고 시민들의 자유와 복리를 꾀하는 시민운동의 대두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시민운동이라는 것도 이미 님비현상으로 비판받듯이 지역이기주의 혹은 계층이나 종교이기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문제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이론과 철학적 기초가 바로 론스의 정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라는 말을 쓰는 사람의 환경과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거의에는 공공선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돌봄이 없이는 안되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 

한국의 시민운동 이전에는 기독교 인권운동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7-80년대 박정희 개발독재와 이후 신군부의 통치속에서도  끊임없이 저항하고 연대한 것은  진보 기독다. 이들은 당시 압박받던 정치인이나 정당, 언론 대학사회등과 연대하며 민주화에 대한 염원과 의지를 다져오는 큰 프렛홈이었다. 구속자들을 돌보고 국제적인 연대를 하는 등 법률지원과 기도회등을 통하여 구속자 가족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김영삼정부 이후 어느 정도 사회민주화의 공간아래 전문성을 갖고 대오을 정비한 것이 한국 최초의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정의실천연합" 이다. 은 당시 가장 기우려진 부의 분배 문제가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박세일교수, 서경석, 인명진목사등이 시작을 한다. 그러나 무너지고 기우려진 것은 경제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마치 경제만 해결되면 한국사회문제 다 끝난 것 처럼 인식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나온 것이 박원순 변호사등이 만든 "참여연대" 다 광범위하게 모든 영역에서의 시민참여를 주장한 것이다. 박변은 당시 서구시민운동을 공부하기 위하여 영국의 옥스팜등을 공부한다. 그리고 당시 급증하는 젊은 변호사들로 하여금 지식인의 사회적 기여를 위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 의 탄생도 가져온다. 법관들로는 좀 더 유연하게 "우리법" "국제법" 연구회로 당시 엘리트들의 일단의 사회적 공공적 고민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일단 우리사회의 공공적의 영역속에서 자기 전문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돌봄을 상정한 것이다. 노동법연구회도 그렇고 이어 노무사들도 기층 노동자들의 일상적 기초적 노사업무에 대한 연대와 참여가 실현된다. 훗날 이를 운동권이라거나 좌파라고 낙인 찍지만 사상에 있어서는 그들보다는 좌측에 있었다고는 하나 한국적 지식인의 최소한의 공적기여에 불과하다.    

   
 

이 책 역자 황경식 교수
저자 황경식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존 롤스의 《정의론》을 번역한 후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받아 1980~1981년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방문 연구원(visiting fellow)으로 있으면서 롤스에게 지도받았다. 그 후 한국윤리학회, 철학연구회,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동국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2018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및 의료법인 명경의료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사회정의의 철학적 기초》, 《개방사회의 사회윤리》, 《이론과 실천》, 《시민공동체를 향하여》, 《철학과 현실의 접점》, 《자유주의는 진화하는가》, 《덕윤리의 현대적 의의》, 《정의론과 덕윤리》, 《법치사회와 예치국가》 등이 있다.

존 롤스(1921-2022)
미국의 정치철학자로 40년 동안 오직 한가지 ‘정의’ 라는 주제만을 연구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의 저자다. 20세기 중반까지 언어적, 개념적 분석에 치중하는 분석 철학(analytic philosophy)이 유행하던 영미 철학 지형에 『공정으로서의 정의(1958)』와 『정의론 (1971)이라는 텍스트를 발표하면서 윤리학, 정치철학에서 규범적 논의를 부활시킨 일등 공신이라는 평을 받는다.

1970년대에는 자유지상주의 진영의 로버트 노직과의 ‘자유지상주의-평등주의적 자유주의 논쟁’, 1980년대에는 공동체주의 진영에서 마이클 샌델이 존 롤스의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촉발된, 마이클 왈저, 찰스 테일러,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등과의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주역이었기도 했다. 후에 신실용주의(neo-pragmatist)를 대표하는 리처드 로티, 비판이론을 대표하는 하버마스도 참가했을 정도로, 서구 지성사의 메인이 되는 논쟁이므로 롤스의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롤스라고 하면 『정의론』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그의 저서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후기 롤스의 저서인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 1993)』와 『만민법(The Law of Peoples, 1999)』도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전공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연구소가 나올 때마다 영미 정치 철학계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었고, 그만큼 영향력이 컸음을 뜻한다.

존 롤스의 생애와 여정
롤스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저명한 변호사인 윌리엄 리 롤스(William Lee Rawls)와 여성 유권자 연맹의 지부장이었던 애나 에이벨 스텀프(Anna Abell Stump Rawls) 부부 사이의 다섯 아들 중 둘째였다. 어려서 동생 둘이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병을 앓다가 죽어 어린 시절 생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이겨냈다. 볼티모어의 칼버트 학교를 졸업하고 코네티컷의 성공회 예비 학교인 켄트 학교를 졸업후 프린스턴 대학교에 다녔다.

프린스턴과 코넬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인 노만 말콤의 영향을 받았다. 프린스턴에서의 마지막 2년 동안에는 신학의 교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는 성공회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하려고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고민하는 와중에, 종교적으로 매우 강렬한 논문인 《죄와 믿음의 의미》라는 제목의 181페이지 분량의 논문에서, 롤스는 "펠라기우스의 접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면서 펠라기우스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능력의 불평등이 사회의 부의 분배에 대한 정당한 결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비판한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에서 부분적으로 도출된 것이다. 롤스가 무신론자가 된 후에도 그가 사용한 펠라기우스 비판할 때 언급한 내용은 이후 쓰여진 《정의론》에서 반복된다. 그는 이 논문으로 1943년 프린스턴 대학 인문계열 학부에서 최우등 졸업을 한다.

1943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태평양 뉴기니와 필리핀에서 복무하며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이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잃고 무신론자가 된다. 일본의 패전으로 맥아더 장군의 휘하 점령군으로 직업군인인 상사로 진급한 후 히로시마 원폭의 참상을 보고 군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하금병사의 징계 앞에서 ‘어떤 처벌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불복종했고 이등병으로 강등되 1946년 제대한다.

   
 

교수 생활과 학문 여정
1946년 초, 롤스는 프린스턴으로 돌아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49년에는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마가렛 워필드 폭스(Margaret Warfield Fox)와 결혼했다. 그들은 앤 워필드, 로버트 리, 알렉산더 에모리, 엘리자베스 폭스 등 4명의 자녀를 두었다. 1950년, 《윤리적 지식의 근거들에 대한 연구》 라는 논문으로 프린스턴에서 박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52년 미국 국비장학생 자격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잠시 있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유주의 정치이론가 이사야 벌린과 법률 이론가인 허버트 하트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코넬 대학에서 처음에는 조교로, 그 다음에는 부교수로 재직했다. 1962년 그는 코넬 대학에서 철학 정교수가 되었고, 곧 MIT에서 종신직 교수를 얻었다. 같은 해에 하버드 대학교로 옮겼고, 이후 계속 있으면서 하버드대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게 된다.

1960년대에는 흑인과 가난한 미국인들을 차별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베트남 전쟁 징병을 반대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갈등은 그로 하여금 부당한 전쟁을 무자비하게 추진하는 미국 정치시스템의 결함을 분석하고, 시민들이 정부의 지나친 정책에 양심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려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무렵에 펼쳐진 마틴 루터 킹의 흑인 인권운동 등에 롤스는 깊이 영향을 받았다.

1971년에는 이런 연구 결과들을 집대성한 그의 대표작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을 내놓았다. 여기에서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강조하여 학계에 수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롤스의 이 작품은 경제적 의미에서 명백히 ‘재분배주의’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이는 학자와 정치인들 및 이 책을 읽은 대중들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주장은 자유지상주의자 로버트 노직과 공동체주의자 마이클 샌델과 같은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철학자들을 자유주의 논쟁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9년 롤스에게 국가예술훈장(National Medal of Arts)을 수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 요구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회’를 증명함으로써, 존 롤스는 거의 혼자 힘으로 철학과 윤리학이라는 학문을 되살려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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