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의 자세
예배에서 인도자 설교자 기도자 성가대 헌금위원은 모두 예배위원들이다. 공예배에서 공중기도 혹은 대표 기도자를 하는 분은 그 비중이 중요한데 최근 서울의 한 대형교회 장로가 주일 낮예배 대표 기도에서 한 내용이 구설수다. 그럼 우리교단의 헌법 예배 부분에서 평신도들의 대표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언급되여 있나? 을 환기하면서 어긋난 것이 있으면 바로 잡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
2-1-1-5. 공중예배 순서에 평신도가 드리는 기도는 목회기도가 아니므로 그 내용은 경배와 감사와 찬양과 자복과 은혜의 말씀을 사모하는 내용으로서 목회기도와 중복되지 않도록 함이 좋다.
2-1-1-6. 공중예배에서 기도를 인도하는 목사나 평신도는 반드시 성경을 숙독하고 기도에 대한 서적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언제나 공중예배의 기도를 위하여 자기 마음을 안정하고 기도의 내용을 준비하여 마음과 몸의 자세를 경건하게 가져야 한다.
모든 공 예배(주일 낮)는 주로 장로나 안수집사들이 오후나 수요기도회는 집사나 권사들이 대표기도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표 기도 순서를 기대하고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부담스러워 하고 피하거나 사양하는 분들도 없지 않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가 남 앞에 서는 것은 큰 부담이다. 처음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들 서지만 시간이 가면 달라진다.
장로로 임직 받고 신앙 년조가 좀 되고 많은 공중 기도로 훈련이 좀 되는 분들중 기도를 잘한다고 자부하는 분도 없지 않다. 그리고 누구나 기도 순서가 되면 마음의 준비들을 한다. 따라서 대표 기도자는 그날 목회자가 제시한 설교 본문도 찾아보기도 하고 교회의 현실에 잘 조화되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치 않고 자기가 맡은 순서라고 주관적으로 하고 싶은 기도를 하면 안된다.
그래서 어느 교회는 반드시 원고로 써 완성도를 높혀 중언부언이나 사적감정을 빼는 훈련을 하고 자료로 남기기도 한다. 나중에 교회 역사나 문집을 낼 때 좋은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냥 순서대로 하기 일쑤고 길지만 않게 하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그래도 때에 따라 기도자가 사적감정을 담아 구설수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공중기도 혹은 대표기도에 대하여 헌법의 예배모범을 가르쳐야 하고 평신도들은 들어야 한다. 대표기도는 설교와 마찮가지로 모든 회중이 듣는 것으로 그 내용이 성경적이어야 하고 정직해야 하며 은혜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로 준비하고 교회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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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비상식적인 내용을 기도하고 하는 것은 문제다. | ||
대표기도에서 주의 할 점
한국에서 대표기도시 전체 순서를 참조하여 길지 않아야 하는 데 한 5분 혹은 3분 이내로 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시간을 재서 끊을 수는 없고 감동을 받으면 자기도 모르게 길게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준비되고 절제된 내용으로 목회자를 돕고 교회 유익을 위하고 교인들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어야 한다.
둘째는 개인이 한다고 하여 사적인 평가나 내용을 기도에 담지 않아야 한다. 어떤 대상을 의식하여 그것을 지적하거나 비판하고 찬이나 두둔하는 것도 금물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목회자에게 보조를 맞춰 공적으로 유익한 내용들을 정중한 언어로 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은 목사의 설교도 예외가 아닌 데 타인이나 어떤 정치사안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질타하는 것을 담아서는 안된다.
물론 목적 있는 예배 혹은 기도회에서는 무방하나 일반교회에서는 특히 정치 사안에 대하여 찬성이나 반대 갖은 것을 담을 필요가 없다. 좀 한다면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인애와 사랑에 대하여 언급한다면 모르지만 청중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언어는 사용치 말아야 한다.
또 감정적으로 흥분하거나 큰 소리나 울면서 하는 것도 결례다. 하나님께 아뢴다는 의미이니 정중하고 바른 언어로 모두가 알아듣도록 분명하게 천천히 하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들도 준비를 잘하는 분들은 목회기도도 써서 하듯이 대표 기도를 맡으면 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보고 하지 않는 다 하다라도 메모나 써서 하는 것이 좋다.
두가지를 명심해야
첫째는, 교회가 직면한 과제나 목표에 대하여 담아야 한다. 교회의 현실적인 고민이나 선한 사업에 대한 열망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일꾼들과 부서 지역에서의 본질적 사명에 대하여 환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가 경연이나 경쟁적 산물이 되면 안된다. 그런데 목회과정에서보면 기도는 은혜스러운데 실제 삶의 모습은 다른 분들도 없지 않다. 눈감으면 죄인인데 눈뜨면 의인이라는 말이 나오니 아이러니다.
둘째는, 예배기도라는 점을 의식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찬양으로 시작하여 죄의 고백과 탄원 감사와 예물, 헌신과 결단으로 연결되여 한다. 기도는 연약한 인간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이자 탄원이다. 따라서 연약함의 고백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수다. 그래서 반드시 정형화되고 모범된 기도문을 읽고 타인의 기도를 주시하고 좋은 언어와 방식으로 기도자가 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흔치는 않치만 목회자들중에는 장로들 사적기도 때문에 속상해 하고 아예 목회기도로 대치한 교회도 있다. 그러나 일반 목회자들이 그렇게 했다가는 장로들로부터 “ 그럼 우리는 무얼 하라는 말이냐”? 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답은 장로고 목사도 예배 그 자체가 큰 의미로 알아야 하는 데 그것도 벼슬이라고 대표기도를 사모하고 으쓱대는 분들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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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몸소 본을 보여야
또 어떤 교회는 평신도들이 목회자만이 아니라 은근히 자기가 지지하고 좋아하는 이들을 지칭하여 기도에서 언급하는 분들도 있는 데 특히 갈등이 있는 교회에서 편당을 만들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은근히 나나 우리는 누구를 지지한다는 식의 기도시위를 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목사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장로도 주의를 주지 않으면 그 예배와 기도는 그야 말로 단합대회가 될 것이고 대표기도 무용론이 나오는 경우다.
사실 서구에는 평신도들의 대표기도 없는 곳이 많다. 이것이 정착된 것은 처음 선교사들이 들어와 한글에 익숙치 않고 교인들 사정을 다 알 수 없으니 교인들의 대표격인 장로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맡긴 것이 그 원조라고 한다. 지금도 천주교나 정교회 성공회같은 곳은 예배를 집례하는 곳은 평신도들이 대표 기로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WCC(세계교회협)이나 개신교 단체들은 평신도들만이 아니라 여성 청년들로 예배의 순서자로 함께 참여하는 게 대세다. 따라서 잘못하거나 안되니 빼는 것보다는 제대로 잘 가르쳐서 모두의 예배가 되도록 참여하는 것이 좋다. 어느 교회는 성경봉독도 평신도들이 하게 하는 등 예배자로 참여하는 곳도 있는 것을 보면 다 운영의 묘가 아닌 가 한다.
따라서 기도의 내용이나 형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도 아직은 우리 헌법에 명시되여 있는 데로 장로의 대표기도를 빼는 것은 문제다. 인내하며 가르치고 때를 기다려야지 너는 틀렸고 맘에 안드니 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 자체로 문제가 되어 목회 전반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사 자신이 먼져 기도에서 그 중심을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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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9일 서울의 한 대형교회서 한 장로의 대표기도 내용 | ||
공중기도는 주의 해야
오늘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2월 11일자 국민일보에 서울의 한 대형교회 주일 낮 예배(9일)에서 기도하는 장로가 현 시국과 관련하여 주관적 내용을 기도에 담아 문제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교회에는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나 설교나 기도에서 그런 내용을 담는 것은 금물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나가서 활동하는 것은 몰라도 교회 공동체안에서 이를 표현하는 것은 덕이 안될 것이다.
작금의 한국 현실은 서있는 자리와 인식에 따라 서로 다른 평가를 할 수 있고 그것이 다양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따리서 어떤 사안의 찬성자도 반대자도 모두 국민이고 소중한 사람이고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표기도를 맡은 장로가 생각 없이 혹은 의도적으로 다중을 교육이나 홍보대상으로 생각하고 하는 표현은 금물이다. 당회는 단단히 주의를 주어 엄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오는 2월 20일(목) 우리교단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비상 시국기도회를 한다고 광고가 나갔다. 이런 기도회를 왜 하냐는 분들도 있을 것이지만 지교회서가 아닌 뜻이 맞는 분들이 모여서 기도회야 할 수 있다고 본다. 개중에는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찬반의사를 보이는 일체의 종교행위는 반대하는 분도 있는 데 유신이나 군사독재시절인 5공때야 집회 결사 출판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여 기도회를 빙자한 정치집회를 한 경우도 없지 않치만 지금은 집회결사 자유가 있으니 필요 없다는 얘기도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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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과 평가
그런데 우리교단은 아니나 이미 전광훈목사가 광화문의 정치예배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으며 거기다가 김진홍목사, 김철홍교수도 그렇고 활동중이다. 그러나 이에 맞대응은 아니나 혼돈의 시대에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구하는 의미 있는 모임을 지교회서는 어려우니 연합으로 시국에 대한 토론과 기도회를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이것을 교단이나 노회가 강제로 한다면 문제지만 자발적으로 질서에 맞게 하는 것은 무방하다.
이런 기도회 광고가 나가고 대항적 성격인지는 모르나 우리교단의 한 언론인이 앞장서 전 총회장 최병두, 이광선목사를 모시고 2월 22일 광화문 코리아나 호탤에서 비상 시국기도회로 모인다고 한다. 아마 탄핵을 반대하며 내란죄 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구명하며 불복하자는 극우 시민과 괘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기도한다고 해서 다 옳고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어보인다.
따라서 어디서 누가 모이든 대한민국의 국법을 존중하고 폭력과 무질서가 아닌 평화적인 모임이나 토론회나 기도회는 왜 문제겠나? 신자라도 유권자로 정치적 호불호가 있으니 이를 실현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우리 기독인으로써는 개인의 판단 보다 먼져 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아니겠는 가? 작금의 현상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지는 아닌 지는 살펴는 것을 마다하거나 못하게 할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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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신대 교수였던 분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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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교단 전 총회장이라는 분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