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신앙칼럼

                              난 진정한 크리스천인가?

윤재석/ 저서: 나의 살던 서울은,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1952년생 신일고, 서울대, 미국 미시건대학 언론학 펠로우, 프레시안 이사, CBS 객원 논설위원, 2005년 국민일보 논설위원, 2004년 국민일보 편집국 부국장, 1999년 국민일보 국제부장, 1998년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지사, 1994년 중앙일보 국제부 차장

석탄일 사찰 방문 후기

어린이날과 겹친 올해 석가탄신일,  시내 서점 몇 곳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사찰엘 들렀다. 조계종 산하 금화사. 오전에 버스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다 흘긋 보니 석탄일 관련 무슨 행사가 열리고 있는 듯, 평소엔 적막강산이던 절이 좀처럼 북적였다.  

석탄일 행사라는 생소한 문화가 궁금했지만, 불자(佛子)도 아닌 자가 무슨 점심 공양이나 얻어먹으러 가는 것 같은 눈치가 보여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맘먹었다. 오후의 절간(?)은 한산했다. 마당에 정렬되어 있던 간이의자는 모두 한쪽으로 치워졌고, 경내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엔 올라가니 초로의 아낙과, 일행인 듯한 청년 하나가 연신 엎드려 배(拜)를 올리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훤칠한 청년의 이어지는 부처님 배알(拜謁)이다. 무슨 소원이 저리 절실하기에 쉼 없이 배를 이어가는 걸까? 그러다가 문득 종교에 관해 생각을 하게 됐다. 언필칭 ‘예수쟁이’로 살아온 지 어언 40년이다. 신학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 자만에 빠질 정도로 열정적일 때도 있었고, 가톨릭의 냉담(冷淡)처럼 차가운 지경에 빠져 요식적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때도 있었다.   

   
 

섬기던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곤, “교회가 세상보다 못할 수도 있다. 아니 못하다”는 생각도 해 봤고, 그로 인해 한동안 침체의 늪에서 헤매기도 했다. 뒤늦게 말씀에만 몰입하는 목회자가 섬기는 성전에 안착한 것은 어쩌면 말년에 얻은 축복이라고 자족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신앙생활은 교정의 여지가 적지 않다. 그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타 종교인들의 모습에 비춰보고 느낀 점이다.  우선 직계 피붙이로 유일하게 생존하고 계신 고모를 보자. 미수(米壽)가 낼모레인 고모는 소시부터 불자다.

홀시어머니를 모시는 맏며느리로 살아온 그 분의 삶은, 옆에서 보기에도 한마디로 인고(忍苦)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신은 소녀시절부터 모셔온(?) 마음 속 부처님에 의지해 신산스런 모든 것을 억누르고 삭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심지어 승려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던 하안거(夏安居), 동안거(冬安居)를 저 먼 산속 고찰까지 들어가 수행하고 오신다고 한다. 그런 불심 덕분인가? 작년 말 60년을 해로한 부군이 별세한 후로도 씩씩하게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

또 한 사람의 불자를 보자, 대학생 때 농촌 활동 가서 만나 친구 된지 어언 50년이 넘은 충남 예산의 영원이라는 친구다. 군 생활을 빼곤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이 친구는, 스스로 ‘날라리 불자’라고 칭하지만 내가 보기엔 생불(生佛)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인격자다. 

특히 감리교 권사님인 모친이 한산(韓山) 이씨(李氏) 충장공파(忠莊公派) 장손 가문에 시집와 층층시하 시집살이도 모자라 한 달에도 몇 번씩 지내야 하는 시제(時祭)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재래식 부엌을 서양식으로 직접 뜯어 고치는 등 많은 형제 중에서도 유독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서울깍쟁이인 나를 친구로 맞아준 너른 품의 그 친구는 “절간은 놀러간 김에 들르는 곳”이라는 시니컬한 주장이지만, 기실 평소의 삶 착하기론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그런 그와 나를 비교할 때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또 비참하다.

가깝게 지내는 가톨릭 사제 몇과 신자인 지인 몇을 봐도 그렇다. 흔히 가톨릭에서 주초(酒草)를 허용하는 것을 빗대어 개신교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헌금 역시 마찬가지다. “천주교의 천이 하늘 천(天)이 아니라 지폐 천원의 천(千)자”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이도 더러 있지만(신부 포함), 이들의 믿음은 소문과 달리 진중하고 묵직하다.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이따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남 구산(龜山)성지엘 가 본다. 성당까지 자리한 경내는 미사가 없을 땐 그냥 고즈넉한 대정원이다. 9명의 순교성인 진묘(眞墓)가 자리한 곳이라 더 숙연하다. 거액의 비자금 운용, 교회헌법을 무시한 불법세습 도미노, CC-TV가 적발한 교단 수뇌의 불륜 의혹 등 도떼기시장을 방불하는 요즘의 개신교계에 비하면 그야말로 청정지역이 가톨릭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광경이 또 하나 있다. 2007년 동남아시아 취재를 위해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싱가포르 항에서 빈탄 섬으로 가는 허름한 여객선에 탑승해서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정오쯤 되었을 때, 멀쩡하게 생긴 한 청년이 갑자기 담요를 바닥에 갈고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주위에서 주섬주섬 담요를 깔고 같은 포즈를 취하는 사람이 한둘 아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살라’로 불리는 하루 다섯 번 정해진 기도 중, 정오 기도인 ‘주흐르’를 드리기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주일 예배와 오후 예배, 수요예배 만으로 대충 교인 행세를 하면서 이따금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걸 무슨 벼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나는 미지의 그 청년 무슬림보다 한참 뒤지는 종교인에 불과한 것 아닌가!

석탄일! 절에 와서 잠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되새겨본 어줍잖은 나의 신앙 점검이었다. <蛇足>절을 떠나기 전 경내를 휘익 둘러본다. 조금 황당한 것은 이 사찰 요사채 벽에 걸린 현수막 문구다. ‘남을 위해 등불을 밝히다 보면 내 앞이 먼저 밝아집니다.’  

그게 왜? 이 문구는 일본에서 천태종의 아류(亞流)로 니치렌슈(日蓮宗)를 창시한 니치렌이 설파한 명언이다. 여기서 창가학회, 일련정종, 그리고 요즘 한국에서 청년 대상으로 공격적인 전파를 시도하고 있는 불교식 신천지, SGI가 다 여기서 파생한 이단 종파다. 

그래서 인가? 정통 조계종 산하 사찰에 걸려 있는 이 문구를 보니 공연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수다한 불교 명구(名句)를 두고 말이다. 그것도 종교 다양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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