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 왕인가 종인가(3)

                                     권위와 권위주의

권위(Authorty)는 직책이나 인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지도자에겐 꼭 필요하다. 부모나 어른, 지도자들에게 이 권위가 없다면 끝이다. 높은 직위의 사람은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하기에 합당한 예우와 의전을 하는 이유도 다 권위를 위해서다. 군대는 장군과 영관 위관, 하사관과 병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알 것이다. 한국군은 식사도 장교는 사병과 같이 못하도록 만들었다. 휴식시간이라 여유롭고 격의없는 자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곧 군기문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정치적 다원성의 거부, 정치적 현상유지를 위한 강력한 중앙 권력의 사용, 민주주의의 축소, 권력분립, 시민자유, 법치주의의 축소를 특징으로 하는 독재적 정치 체제다.

그러나 이런 건 모두 과거적 발상으로 직책 자체에 권위가 있다고 보는 사람은 줄지만 그래도 직책으로 권위를 부리자면 이를 권위주의라고 한다. 권위는 그 직책이 주는 것과 그 직 수행에서 오는 두가지가 맞아야 한다. 가령 최근에도 문제가 된 국회의원들 갑질의혹이 바로 이런 케이스다. 의원이 곧 권위라는 생각은 구태다. 이젠 하는 일이 다를 뿐 다 공적 사명자라는 것이다. 이는 일찌기 칼빈에 의하여 직업은 소명과 같은 의미로 가르쳤다. 성직만 귀하고 세속의 직업은 천하다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칼뱅(John Calvin)은 세속 직업도 신의 소명으로 간주해 금욕, 근면, 시간 엄수을 강조했으며 이것이 자본 축적과 근대 자본주의의 내면적 토대가 된다. 그리고 막스 베버(Max Weber)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에서 이를 발전시켰다. 근면 자조 협동과 같은 구호들도 바로 여기서 나온 다. 

그러나 이 권위{영력}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종교분야다. 위엄있는 사찰이나 성당 교회가 모두 그런 위용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국가나 종파를 막론하고 성직자들은 구별된 복식을 한다. 불교는 일상과 예전과 똑같이 성직복식을 한다. 스님들은 법복을 벗지 않는 다. 그런데 얼마전 한국의 스님들이 가발쓰고 태국가 골프 친 영상이 나왔는 데 국민들이 뭐라고 했을 까? 천주교 신부도 일상에서는 조금 간소하게 그러나 예전에서는 번거로울 정도로 복식과 스톨, 영대까지 걸친다. 안에 입는 것 조차 몇 개가 되는 것을 본적이 있다.

특히 주교나 주임 신부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건 그 사람이 하고 싶거나 즐기고 권위를 부리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신자들로부터 구별된 자라는 시각적 의식으로 몸을 함부로 놀리고 아무데나 오고가고 하지 않토록 엄중함을 지키는 것이다. 이미 제도로 그런 복식을 정해 논 것이다. 다소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엔 신의 대리자 혹은 중보자로 무언가 성별됨을 원하기 때문이다.

   
 

복식이 권위는 아니나

그럼 우리 개신교는 어떤가?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전 정부 반대 데모에 목회자들은 가운이나 스톨을 갖고 나오라는 공지가 있었다. 이유는 참가자의 신분을 분명히 함과 성직자들도 이 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래도 그냥 가는 분들이 더 많은 데 대게 복식을 귀찮아 해 길거리서  권위잡으려고 갖고 가는 분은 없다. 그런데 왜 목사도 신자처럼 평범하게 않고 까운들을 입고 나왔냐? 하는 비판은 일견은 맞아보이는 것 같지만 다 사정은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은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교회에서 조차 까운입는 것을 못마땅이 여기는 분들이다. 격의 없이 권위 없이 모두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성직자의 권위 혹은 지도자를 구분하는 것 조차 사라지는 것은 문제로 본다. 이게 기성 교단 교파 옹호주의라고 비판을 받는 다고 하더라도 제도로써 종교라면 또 그걸 원하는 교인들이 있는 한 복식은 필요하니 취사선택하면 된다.

민주화등 요구별 시위에서 성직자들에게 가운이나 스톨을 갖고 오라는 경우는 자칫 과격시위로 발전하여 진압과정에서의 물리적 폭력으로 부터의 보호와 지연의 의미도 있다. 이건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군사독재정권과 대결구도에서 종종 성직자들이 가운을 입고 앞장서서 행진하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인데 군대나 경찰들도 막상 성직자들에게 마구 폭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직자의 복식은 외국의 경우도 그렇고 성별의 의미와 그 자신의 자각과 성실의무 고취라는 의미에서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 존경받는 역대 총회장들 현재 림인식목사님만 생존        

권위는 어디서 오나

원래 취지로 돌아가서 직책이 권위가 있다고 했는 데 직급이 높을수록 근무년한이나 실적 평가를 이겨내고 올라간 것이기에 나름 경험과 경륜으로 직원들로부터 존중과 배려를 받는 다. 그러나 직급 자체에 권위가 있는 것은 옛말이고 그 직위에 걸맞는 능력과 수행에서 존경심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로 직무 수행에서 오는 존경심이 크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개신교 특히 우리교단에서의 성직자들의 권위는 어떤가? 헌법에는 3개의 치리장으로 당회장, 노회장, 총회장을 둔다. 그러나 이것은 행정상의 직임으로 당회장외에는 임기가 존재한다. 따라서 의장으로의 공정하고 질서 있는 회의를 주재하고 해당 치리회에 맞는 예식에서의 절도 있고 의미 있는 진행과 메시지가 그 평가 기준이 될 것이다. 그 외 그의 출신자나 나온 학교나 학위 섬기는 교회의 위치나 사이즈, 타는 차량은 부차적이다.

좋은 차는 비싸고 부자들이 타고 권위를 부리려는 사람들이 탄다고 보는 것이 세상 눈이다. 그러나 그런 차를 탄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돈만 있어도 타고 지교회서도 여건되면 타는 것이다. 그런데 근자에 목회가 아닌 외부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고급차를 선호하는 데 나가서 과시하고자 하는 인본주의 발상이다. " 나 교회서 이만한 대우받는 다"  하는 과시다. 물론 안정성과 편리성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지도자는 자기 동네, 교인들 수준봐서 정도 껏 해야 한다. 

억지로 남의 돈으로 고급차 타면 편하고 즐겁기 보다는 가시방석 일 것일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은 우리 목사님이 하시고 싶은 것 다하시는 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야박해진다. 잘못해서 실수하면 관용보다는 책임 추궁이 앞서도 할말이 없다. 그러니 목회도 그렇고 자신에 대한 예우는 과유불급이 아닌 좀 모자르는 듯 하는 게 좋다는 게 선배들의 조언이다. 그 옛날 승합차로 만족했던 때가 있었는 데 지금은 목사들도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도 못타는 고급차를 선호하니 하는 말이다. 

   

                        * NCCK 에큐메니칼 1세대 활동가 PCK 고 조남기,김형태,서광선, 김용복목사 

우리교단은 어떤가? 

우리교단 안으로 이 문제를 가져와 보자 과거 총회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라 그런지 정말 영력도 있어 보이고 힘도 있으셨다. 총회장으로 처음 본 분이 62회 총회장 임택진목사님이신데 청량리중앙교회에 65년 부임해  81년 총회장 끝나자 65세로 조기은퇴 하신 분이다. 그후 장신대에서 목회실습 강의도 하시고 목회행정과 관련해 책자도 냈다. 일화는 당시 고영근, 인명진목사가 구속된 상태였는 데 새문안교회서 총회 주최로 석방기도회를 주관 했는 데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권위는 나이나 사이즈 설교 톤이 아닌 직무에서 나온 다는 것을 봤다. 그리고 72회기 총회장 연동교회 김형태목사는 처가가 조선일보 방씨네 사위로 연동서 장청대회 인권집회등을 하게 하신 분이다. 후임 이성희목사님이나 지금 김주용목사도 개혁모임이나 에큐메니칼 청년등에 대해서는 언제나 환영이다. 미국 유학후 연세 신과 교수를 자내고 KSCF 총무도 하셨다. 또 WCC 총회에 사비를 드려가시고 나중에 벤쿠버 총회서 중앙위원이 되셨다.

무엇보다 NCCK가 1988년에 발표한 88선언을 우리교단 73회 총회서 반대가 나오자 눈물로 호소하시여 채택되여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큰 교회고 부자셨지만 신학적으로 공교회적으로는 직무 수행은 정도를 지킨 분이다. 그 만큼 총회장 자리는 중요한데 앞으로 지금과 같이 권역 제한속에서는 노회장급 총회장 나온다는 말 안들으려면 총회 일하려는 분들은 어디 유명대학 명예학위 보다 총회 역사와 자료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 다. 

지금은 총회 임원회를 전국적으로 임원들이 섬기는 교회를 순회하면서 하는 모양이다. 지난 7월 임원회가 부천지역 모교회에서 열렸는 데 임원이기도 한 분이 총회장과 임원들을 맞이하는 준비들을 정성스럽게 하는 게 보였는 데 현수막도 걸었다. 이렇게 총회장은 먼져 임원들로부터 존경심과 존중함을 받아야 한다. 이건 개인숭배가 아니다. 총회장이 특정 지역으로 가는 것은 총회가 그 지역 노회를 방문하는 것이다. 그러니 노회장이나 남녀선교회 임원, 당회원들은 나와 환영하고 영접하는 것은 당연하다.

   
 

평가와 결론 

총회장 되었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닌 게 이미 총회에는 60여명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공채로 들어와 사무총장과 5개 부서 총무들의 지휘아래 일하고 있다. 따라서 전임 감독제가 아닌 총회장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서 총회서 할일은 많치 않다. 연합사업과 초청받은 해외교회 방문과 연합기관이나 신학대학등은 파송이사들을 통하여 행정을 한다. 그 외 행사에 총회를 대표해 위로와 격려 축하방문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총회때는 총회 회록과 크고 작은 사건들 역대 총회장들의 전기나 중요 일들을 찾아보고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전에는 기획국이 부총회장을 보좌하는 곳으로 해외 동역교단이나 에큐메니칼관계등 이전에 경험이 일천한 것들을 관장했다. 따라서 지금은 자신이 계속 총회를 배우자는 열심이 없으면 회의 쫒아다니고 밥먹고 대접받다가 끝날 수 있다. 그러니 시간있을 때 역대총회록등 자료들을 많이 봐둬야 한다(김수진목사 저 역대 총회장 전기) 

   
 

우리나라도 옛날에 왕이 될 왕자에게는 오전 오후 시간을 두워 혹독한 수업을 시켰는 데 이를 경연(  )이라고 한다. 이를 게을리하는 왕자에 대하여 선왕이나 담당교사는 매정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또 왕도 신하와 대담을 통하여 식견을 넓려가는 시간을 갖었는 데 너무 과하게 한다는 기록도 있다. 이게 다 나라를 위한 것이 듯이 총회 지도자들이 부총회장 되였다고 손 놓치 말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씀 처럼 해야 한다.  

* 경연(經筵) 왕이 될 이에게 고전인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국 한나라 때 유학자들이 황제에게 오경을 강의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원·명·청 때는 형식적인 의식으로 변질되었다. 우리나라는 공민왕 이후에 틀이 갖추어졌고 조선 세종대에 집현전 관원을 중심으로 하여 기본적인 내용이 갖추어지고, 성종 때 예문관을 거쳐 홍문관으로 다시 복구되면서 개편 정비되어 경국대전에 실렸다.

경연(經筵)은 왕과 신하들의 공부, 논의, 소통, 토론의 공간 역사(朝鮮時代歷史) – YouTube

지금은 왕조시대는 아니다. 이전 정부에서도 그렇고 가까운 전 총회장에게서도 봤듯이 훈련되지 않은 지도자의 판단이나 생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똑똑히 보았다. 총회급 지도자가 되서도 언행을 유의해야 한다. 총회 일을 교회서 하는 식으로 해서는 은혜나 관성으로 하면 안된다. 새로되는 부장이나 위원장도 감투전쟁만 하지 말고 목회는 일단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상회의 맡은 분야의 정보와 실력으로 평정하기 바란다. 더 이상 교권정치로 생존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실력과 능력 영력으로 인정받는 풍토가 되기를 바란다.  

   
   * 87년 민주화 대투쟁시 총회장이신 장동진목사 인권위원장 조남기목사 명의의 성명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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