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열박사 회고록 출판

                  농촌교회 장로교단 아들에서 세계교회 지도자로 

   
                                                           * 설교하시는 안재웅목사 

격랑의 시대 북한 철산에서 출생해 중국 만주를 거쳐 서울과 광산촌, 농촌과 독일, 세계를 가로지르며 정의, 평화, 생명, 사랑을 노래하는 에큐메니칼 순례자, 이삼열박사 그의 꿈과 열정의 회고록 ‘에큐메니칼 카라반’ 자전적 회고록을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9월30일(화)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있었다.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이사장 김영주목사)가 주최하고 크리스찬아카데미와 한국기독교사회발전협회, 도서출판 동연(대표 김영호)가 협력했다.

1부 감사예배는 김영주 이사장의 인도로 김혜숙목사(기사발 사무총장)이 기도한 후 성경 롬 12: 2을 봉독한 후 안재웅목사(YMCA전국 연맹 유지대단 이사장)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언했다. 이어 축사는 에큐메니칼 최고 원로 박상증목사(전 CCA총무)와 김종생총무(NCCK)가 했으며 송솔나무 선교사가 플릇연주로 축하했다.

3부는 대화마당으로 채수일박사(크리스찬 아카데미 이사장)의 사회로 김흥수교수(목원대) 이정배교수(전 감신대) 배현주박사(WCC 전 실행위원, 부산장신대)와 저자인 이삼열박사가 참여한 북토크식의 대화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원희사무총장이 인사와 알림의 시간을 갖고 민영진목사의 축도로 행사를 마쳤다. 이후 인근 전주 완산골에서 친교와 지녁 식사를 나눴다.

   
 

이박사님은 대학 졸업후 당시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설립하신 강원용목사를 만나 초기 실무자를 거치면서 그의 인생은 큰 전환을 이룬다. 막연하게 신실한 목사 지망생에서 분단과 군사독재를 경험하면서 시대를 고민하는 철학자가 된다. NCC 장학생으로 독일로 유학중에도 학위만 한 것이 아니라 재독 유학생들을 조직하여 국내 윤신독재에 대한 반대성명과 집회를 조직한다. 이로 인하여 반한인사로 낙인찍힌다. 장신대를 입학도 하지만 더 넓고 깊은 고민과 사색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독일 괴팅엔에서 사회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한 후 마침 재독 광부들을 만나고 독일교회로 부터 보쿰지역의 노동자들을 돌보는 상담역을 거쳐 WCC URM의 요청으로 전 유럽산업선교URM)책임자도 지내셨다. 이런 경험을 갖고 국내로 들어오려고 하였으나 각종 사건의 연속으로 피하게 하셔서 학위를 완전히 끝내고 귀국하기에 이른다. 귀국 길도 순탄치 않았는 데 국가기관의 조사를 거쳤고 각서도 요구받지만 교계의 보증으로 기독교 대학인 숭실대학교 교수로 사회봉사학을 처음으로 한국에 알리며 활동을 하셨다.

   
 

PCK사회부와 함께 지역 목회자 훈련도 하고 k한국철학회나 참여연대등 시민운동과 NCCK 88년 평화통일 선언문 초안자로도 참여하시고 현대교회 장로로도 사역했다. 또 정년 퇴임후 유네스코 활동을 하시면서 교회에서 시작하여  대학과 사회분야 국제활동을 하게 된다. 이박사의 이런 시작은 1957년 농촌교회 목사 아들로 기독공보에 난 미국북장로교가 주최하는 해외 학생들 카라반(3개월)에 선발되 참여하면서 눈뜨게 된다. 당시 최고 선진국 미국의 경험은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았던 그에게 큰 꿈과 이상을 갖게한 것이다.  

가족으로는 손덕수교수(전 효성여대)와 지형(한의사), 민형(교수) 1남 1녀를 두웠다. 친동생으로는 고 이단열교수(성악가)와 막내  이승열목사(하이델베르크 사회봉사학 박사) 로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를 지냈으며 현재 킨슬러 한국 재단 사무총장으로 있다. 여동생들로는 영자, 은자, 복자가 있다. 부친이 고 이성찬목사로 모친은 김세옥권사는 북한 철산읍교회 개척자로 105인 사건의 주역인 장관선목사의 외손녀다. 부친은 만주 봉천(심양)서 신학공부도 하시고 중국인 교회를 개척해 사역하시다가 한국전쟁으로 월남하신다.

   
                                                 * 6남매 형제 자매들과 후손들 

그후 첫 부임지로 오지인 강원도 강원도 탄광지역인 장성중앙교회를 설립하시고 이후 풍기 성내교회,영양읍교회,철암교회, 부산 대성교회를 거쳐 마지막은 경남 하동읍교회서 정년 은퇴하셨다. 이박사가 처음 장성에 올때 7세였고 이후10세에 영양으로 12세에 풍기로 부친을 따라 옮겨다니다가 서울 사대부고로 유학와 동신교회에 출석하면서 서울영락교회도 나가 한경직목사의 설교서 큰 감동을 받아 목회자가 되기로 작정하기로 한다.  

이 책의 제목 ‘에큐메니칼 카라반’ 은 그 의미가 깊은 데 카라반의 원 뜻은 사막을 이동하며 장사하는 대상들이 타고 다니는 낙타무리를 뜻한다. 그후 산업화 시대엔 차량에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승용차에 달아 여행지를 돌며 묵는 차량을 카라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박사는 이런 의미들을 담아 자신의 변화무쌍했던 삶의 자리에서의 생존과 학업 그리고 사역을 꾸준이 이어온 삶으로 정착하지 못한 떠돌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 축사를 하시는 박상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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