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국 총리 담화

                                「전후 80년에 부쳐서」

이시바 시게루는 일본 수상으로 길지 않은 1년여 정도 집권하고 선거에서 패해 이달 말에 그만 둔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국내의 정치적 격변기속에서도 이전 보다는 진전된 느낌이다. 이시바가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외유로 부산을 방문한 것도 의미가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 ‘전후 80년 소감’에서 "전후 50년, 60년, 70년 총리 담화를 바탕으로 역사 인식은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제2차 세계) 대전(大戰)의 반성과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길 것을 맹세했다"고 언급하기는 했으나, 기존 담화에 나오는 표현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거듭해 말하지는 않았다.

아울러 메시지에는 한국과 중국 등 인접 국가에 대한 기술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시바 총리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반성이라든가 사죄라든가 그런 기분을 포함해서 이것(기존 담화)을 계승한 것"이라며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집권 자민당 보수파는 2015년 ‘아베 담화’로 역사 문제에 대한 마침표를 찍었으며, 추가 담화나 메시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이시바 총리를 압박해 왔다.

특히 강경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신임 총재는 지난달 25일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는 실로 미래 지향적이고 최고였다"며 "그 이상 메시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메시지에서 당시 일본 정부가 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를 일본제국 헌법, 정부, 의회, 미디어, 정보 수집·분석 등 5가지 주제로 나눠 분석하는 데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전쟁 이전 헌법에 정치와 군사를 적절히 통합하는 체제가 없어 정치 지도자가 군대를 통제하는 ‘문민통제’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굴하지 않고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정치가의 긍지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보다 정신적·정서적 판단이 중시돼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그르치는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제언했다.  앞서 일본 총리들은 전후 50년인 1995년부터 10년 간격으로 패전일인 8월 15일께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담화를 발표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전후 50년 담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전후 60년 담화에서 각각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해 왔다"며 ‘과거형’으로 사죄하고 후대 아이들에게 사죄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번 메시지는 각의를 거친 기존 담화와 달리 총리 개인 입장으로 A4 용지 7장, 6천 자 분량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국 총리 담화

2024.10.~25.10. 제101대 일본 총리, 1957년 2월 4일생,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법률학과 졸업, 자유민주당

【서문】 
지난 대전의 종전으로부터 80년이 흘렀습니다.  이 80년 동안 우리나라는 일관되게 평화국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힘써왔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분들의 고귀한 생명과 고난의 역사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저는 3월의 이오지마 방문, 4월 필리핀 카릴라야의 일본 전몰자 위령비 참배, 6월 오키나와 전몰자 추도식과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 방문,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식, 그리고 종전기념일의 전국 전몰자 추도식 참석을 통해, 지난 대전의 반성과 교훈을 다시금 깊이 가슴에 새길 것을 다짐했습니다. 

전후 50년, 60년, 70년의 각 이정표마다 내각총리대신 담화가 발표되어 왔으며,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저 역시 계승하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 세 차례의 담화에서는 “왜 그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전후 70년 담화에서도 “일본은 외교적·경제적 막다름을 힘의 행사로 해결하려 했다. 국내 정치 시스템은 그것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을 뿐, 그 이상의 세부 논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정치 시스템은 제어장치가 될 수 없었는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가 총력전의 시대에 들어서 있었던 가운데, 전쟁 전 내각이 설치한 ‘총력전연구소’나 육군성이 설치한 ‘아키마루 기관’ 등의 분석에 따르면, 패전은 필연이었습니다. 많은 식자층이 전쟁 수행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정부와 군부의 수뇌부 또한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을 피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무모한 전쟁으로 돌진하여 국내외의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결과가 되었는가. 전 총리 요나이 미쓰마사가 “지리한 궁핍을 피하려다 한꺼번에 몰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근본적인 노선 전환을 하지 못했는가. 전후 80년의 이 시점에서, 국민 여러분과 함께 깊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대일본제국헌법의 문제점】
먼저 제도적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정치와 군사를 적절히 통합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일본제국헌법 아래에서 군을 지휘하는 통수권은 독립된 권한으로 간주되었고, 정치가 군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문민통제’의 원칙이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내각총리대신의 권한도 제한적이었습니다. 제국헌법하에서 내각총리대신을 포함한 각 국무대신은 대등한 관계로 간주되었으며, 총리는 내각의 수반으로서의 지위를 가지되 내각을 지휘·명령할 권한은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러일전쟁 무렵까지는 ‘원로’들이 외교, 군사, 재정을 통합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무사 출신으로 군사를 잘 이해한 원로들이 이를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표현을 빌리면, “헌법을 초월한 존재인 원로·중신들의 매개”가 국가의 의사 일원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원로들이 세상을 떠나고 비공식적 조정 메커니즘이 쇠퇴한 뒤, 다이쇼 민주주의 아래에서 정당이 정치와 군사의 통합을 시도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세계 질서가 크게 변동하는 가운데 일본은 국제협조의 주요 주체 중 하나로서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되었고, 1920년대의 시라하라 외교 등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억제했습니다. 그 시기 여론은 군에 비판적이었고, 정당은 대규모 군축을 주장했습니다. 군인은 위축감을 느꼈으며, 이러한 반발이 쇼와기에 군부가 대두한 배경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당시 문민통제의 부재라는 제도적 문제를 원로, 그리고 정당이 운영상으로 보완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정부의 문제】
점차 통수권의 의미가 확장되면서 군부는 이를 정부와 의회의 통제를 배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정당내각 시대에는 정권 획득을 위한 스캔들 폭로전이 이어져 정당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1930년, 야당 입헌정우회는 해군 일부와 손잡고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비준을 둘러싸고 ‘통수권 침해’라 주장하며 정부를 공격했습니다. 1935년에는 헌법학자 미노베 다쓰키치의 ‘천황기관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군부까지 휘말리는 정치문제로 비화했습니다. 당시 오카다 내각은 학문적 문제는 학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며 거리를 두려 했으나, 결국 군부의 요구에 굴복해 ‘국체명징 성명’을 두 차례 발표하고 미노베의 저작을 금서로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정부는 군부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의회의 문제】
군을 통제해야 할 의회 또한 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0년의 사이토 다카오 의원 제명 사건입니다. 그는 본회의 연설에서 전쟁의 수렁화를 비판하고 정부의 전쟁 목적을 추궁했는데, 육군은 이를 모욕이라 반발했고, 압도적 다수(찬성 296표, 반대 7표)로 제명되었습니다. 의회 내에서 책임 있는 발언을 하려 했던 드문 사례였지만, 당시 회의록의 3분의 2는 아직도 삭제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예산 심의에서도 의회는 군에 대한 견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1937년 이후 군사비는 특별회계로 처리되어 내역이 공개되지 않았고, 심의는 비공개·단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육해군 간에는 조직 이익과 체면을 걸고 예산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다이쇼 말기부터 쇼와 초기에 걸쳐 15년 동안, 현직 총리 3명을 포함한 수많은 정치인이 국수주의자나 청년 장교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국제협조와 문민통제를 중시한 인물들이었습니다. 5·15사건과 2·26사건을 포함한 이런 테러들은 문민들이 군의 정책과 예산을 논의하는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켰습니다. 

【언론의 문제】
언론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1920년대 언론은 팽창정책에 비판적이었고, 이시바시 단잔은 식민지 포기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만주사변 이후 언론은 전쟁 지지로 돌아섰고, 전쟁 보도로 신문 판매는 급증했습니다. 1929년 세계대공황 이후 보호무역이 확산되며 일본의 수출이 타격을 받자, 불황과 함께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당이 득세했습니다. 자유주의·민주주의·자본주의가 끝났다는 인식이 퍼지며 전체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수용하는 토양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관동군 일부가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국민의 열광을 부추겼습니다. 1937년 이후 언론 통제가 강화되어 정부 비판은 사라지고 전쟁 찬양만이 남았습니다. 

【정보 수집·분석의 문제】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로 평화내각이 총사퇴한 사건은 일본이 국제정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정보 수집, 분석, 공유 체계 모두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전후 일본은 문민통제를 제도적으로 확립했습니다. 내각총리대신과 국무대신은 모두 문민이어야 하며, 자위대는 총리의 지휘 아래 있습니다. 내각의 통일성과 책임 구조가 헌법상 보장되었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설치되어 외교·안보의 종합조정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제도는 운용이 제대로 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정치가 자위대를 이해하고 활용할 능력과 식견을 갖추어야 합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대세에 따르지 않는 정치가로서의 자존과 책임이 필요합니다. 

자위대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의견을 제시해야 합니다. 정치는 조직 간의 분열을 넘어 국가이익을 통합해야 합니다. 육해군의 대립과 내부 불통으로 국가 의사가 일원화되지 못해 전쟁으로 치달았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는 항상 국민 전체의 복지와 이익을 생각하며, 장기적·합리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용감한 구호나 감정적 결단이 환영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은 냉정함을 잃고 파멸로 향했습니다. 정부의 오판을 막는 것은 의회와 언론의 책임입니다.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권한으로 정부를 견제해야 하며, 여론영합이나 인기영합의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감을 지닌 언론과 건전한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대전 당시 언론이 국민을 무모한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사실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상업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차별·배외주의를 용납해서도 안 됩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폭력에 희생된 사건을 포함하여, 폭력에 의한 정치의 유린, 자유로운 언론을 위협하는 차별적 언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기반은 역사를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성실성, 타인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관용, 이것이 진정한 리버럴리즘이며, 건강하고 강건한 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통찰했듯, 민주주의는 완전한 제도가 아닙니다. 비용과 시간이 들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하며,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자위와 억지력을 위한 실력 조직을 보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 폭주한다면 민주주의는 단숨에 붕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문민 정치가의 오판으로도 전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민통제와 적절한 정군 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의회, 정부, 군, 언론 모두가 이를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사이토 다카오 의원은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정복하는 것이 전쟁이다. 성전(聖戰)의 이름 아래 국가의 백년대계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고 현실주의적 정책의 중요성을 주장하다가 제명되었습니다. 이듬해, 공습 시 시민의 대피를 ‘전쟁 지속 의지의 결여’로 본 육군의 발언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지만, 의회의 책임 포기, 정신주의의 만연, 인명과 인권 경시의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역사에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는 밝은 미래를 열 수 없습니다. 전후 일본이 가장 복잡한 안보 환경에 처한 지금, 우리는 다시금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합니다. 전쟁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는 지금이야말로, 젊은 세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미래에 살려야 합니다. 그것이 평화국가로서의 토대를 더욱 견고히 하는 길입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지난 대전의 다양한 교훈을 가슴에 새기며, 다시는 그러한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戦後70年の安倍晋三首相の談話全文は以下の通り。2015(平成27)年8月14日に出された

安倍晋三首相

 終戦70年を迎えるにあたり、先の大戦への道のり、戦後の歩み、20世紀という時代を、私たちは、心静かに振り返り、その歴史の教訓の中から、未来への知恵を学ばなければならないと考えます。
100年以上前の世界には、西洋諸国を中心とした国々の広大な植民地が、広がっていました。圧倒的な技術優位を背景に、植民地支配の波は、19世紀、アジアにも押し寄せました。その危機感が、日本にとって、近代化の原動力となった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アジアで最初に立憲政治を打ち立て、独立を守り抜きました。日露戦争は、植民地支配のもとにあった、多くのアジアやアフリカの人々を勇気づけました。
世界を巻き込んだ第1次世界大戦を経て、民族自決の動きが広がり、それまでの植民地化にブレーキがかかりました。この戦争は、1000万人もの戦死者を出す、悲惨な戦争でありました。人々は「平和」を強く願い、国際連盟を創設し、不戦条約を生み出しました。戦争自体を違法化する、新たな国際社会の潮流が生まれました。
当初は、日本も足並みを揃(そろ)えました。しかし、世界恐慌が発生し、欧米諸国が、植民地経済を巻き込んだ、経済のブロック化を進めると、日本経済は大きな打撃を受けました。その中で日本は、孤立感を深め、外交的、経済的な行き詰まりを、力の行使によって解決しようと試みました。国内の政治システムは、その歯止めたりえなかった。こうして、日本は、世界の大勢を見失っていきました。
満州事変、そして国際連盟からの脱退。日本は、次第に、国際社会が壮絶な犠牲の上に築こうとした「新しい国際秩序」への「挑戦者」となっていった。進むべき針路を誤り、戦争への道を進んで行きました。
そして70年前。日本は、敗戦しました。
戦後70年にあたり、国内外に斃(たお)れたすべての人々の命の前に、深く頭を垂れ、痛惜の念を表すとともに、永劫(えいごう)の、哀悼の誠を捧げます。
先の大戦では、300万余の同胞の命が失われました。祖国の行く末を案じ、家族の幸せを願いながら、戦陣に散った方々。終戦後、酷寒の、あるいは灼熱(しゃくねつ)の、遠い異郷の地にあって、飢えや病に苦しみ、亡くなられた方々。広島や長崎での原爆投下、東京をはじめ各都市での爆撃、沖縄における地上戦などによって、たくさんの市井の人々が、無残にも犠牲となりました。
戦火を交えた国々でも、将来ある若者たちの命が、数知れず失われました。中国、東南アジア、太平洋の島々など、戦場となった地域では、戦闘のみならず、食糧難などにより、多くの無辜(むこ)の民が苦しみ、犠牲となりました。戦場の陰には、深く名誉と尊厳を傷つけられた女性たちがいたことも、忘れてはなりません。
何の罪もない人々に、計り知れない損害と苦痛を、我が国が与えた事実。歴史とは実に取り返しのつかない、苛烈なものです。一人一人に、それぞれの人生があり、夢があり、愛する家族があった。この当然の事実をかみしめる時、今なお、言葉を失い、ただただ、断腸の念を禁じ得ません。
これほどまでの尊い犠牲の上に、現在の平和がある。これが、戦後日本の原点であります。
二度と戦争の惨禍を繰り返してはならない。
事変、侵略、戦争。いかなる武力の威嚇(いかく)や行使も、国際紛争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もう二度と用いてはならない。植民地支配から永遠に訣別(けつべつ)し、すべての民族の自決の権利が尊重される世界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先の大戦への深い悔悟の念と共に、我が国は、そう誓いました。自由で民主的な国を創り上げ、法の支配を重んじ、ひたすら不戦の誓いを堅持してまいりました。70年間に及ぶ平和国家としての歩みに、私たちは、静かな誇りを抱きながら、この不動の方針を、これからも貫いてまいります。
我が国は、先の大戦における行いについて、繰り返し、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してきました。その思いを実際の行動で示すため、インドネシア、フィリピンはじめ東南アジアの国々、台湾、韓国、中国など、隣人であるアジアの人々が歩んできた苦難の歴史を胸に刻み、戦後一貫して、その平和と繁栄のために力を尽くしてきました。
こうした歴代内閣の立場は、今後も、揺るぎないものであります。
ただ、私たちがいかなる努力を尽くそうとも、家族を失った方々の悲しみ、戦禍によって塗炭(とたん)の苦しみを味わった人々の辛い記憶は、これからも、決して癒え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
ですから、私たちは、心に留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
戦後、600万人を超える引揚者が、アジア太平洋の各地から無事帰還でき、日本再建の原動力となった事実を。中国に置き去りにされた3000人近い日本人の子どもたちが、無事成長し、再び祖国の土を踏むことができた事実を。米国や英国、オランダ、豪州などの元捕虜の皆さんが、長年にわたり、日本を訪れ、互いの戦死者のために慰霊を続けてくれている事実を。
戦争の苦痛を嘗(な)め尽くした中国人の皆さんや、日本軍によって耐え難い苦痛を受けた元捕虜の皆さんが、それほど寛容であるためには、どれほどの心の葛藤があり、いかほどの努力が必要であったか。
そのことに、私たちは、思いを致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寛容の心によって、日本は、戦後、国際社会に復帰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戦後70年のこの機にあたり、我が国は、和解のために力を尽くしてくださった、すべての国々、すべての方々に、心からの感謝の気持ちを表したいと思います。
日本では、戦後生まれの世代が、今や、人口の8割を超えています。あの戦争には何ら関わりのない、私たちの子や孫、そしてその先の世代の子どもたちに、謝罪を続ける宿命を背負わせてはなりません。しかし、それでもなお、私たち日本人は、世代を超えて、過去の歴史に真正面から向き合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謙虚な気持ちで、過去を受け継ぎ、未来へと引き渡す責任があります。
私たちの親、そのまた親の世代が、戦後の焼け野原、貧しさのどん底の中で、命をつなぐことができた。そして、現在の私たちの世代、さらに次の世代へと、未来をつないでいくことができる。それは、先人たちのたゆまぬ努力と共に、敵として熾烈(しれつ)に戦った、米国、豪州、欧州諸国をはじめ、本当にたくさんの国々から、恩讐(おんしゅう)を越えて、善意と支援の手が差しのべられたおかげであります。
そのことを、私たちは、未来へと語り継いで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歴史の教訓を深く胸に刻み、より良い未来を切り拓(ひら)いていく、アジア、そして世界の平和と繁栄に力を尽くす。その大きな責任があります。
私たちは、自らの行き詰まりを力によって打開しようとした過去を、この胸に刻み続けます。だからこそ、我が国は、いかなる紛争も、法の支配を尊重し、力の行使ではなく、平和的・外交的に解決すべきである。この原則を、これからも堅く守り、世界の国々にも働きかけてまいります。唯一の戦争被爆国として、核兵器の不拡散と究極の廃絶を目指し、国際社会でその責任を果たしてまいります。
私たちは、20世紀において、戦時下、多くの女性たちの尊厳や名誉が深く傷つけられた過去を、この胸に刻み続けます。だからこそ、我が国は、そうした女性たちの心に、常に寄り添う国でありたい。21世紀こそ、女性の人権が傷つけられることのない世紀とするため、世界をリードしてまいります。
私たちは、経済のブロック化が紛争の芽を育てた過去を、この胸に刻み続けます。だからこそ、我が国は、いかなる国の恣意(しい)にも左右されない、自由で、公正で、開かれた国際経済システムを発展させ、途上国支援を強化し、世界の更なる繁栄を牽引(けんいん)してまいります。繁栄こそ、平和の礎です。暴力の温床ともなる貧困に立ち向かい、世界のあらゆる人々に、医療と教育、自立の機会を提供するため、一層、力を尽くしてまいります。
私たちは、国際秩序への挑戦者となってしまった過去を、この胸に刻み続けます。だからこそ、我が国は、自由、民主主義、人権といった基本的価値を揺るぎないものとして堅持し、その価値を共有する国々と手を携えて、「積極的平和主義」の旗を高く掲げ、世界の平和と繁栄にこれまで以上に貢献してまいります。
終戦80年、90年、さらには100年に向けて、そのような日本を、国民の皆様と共に創り上げていく。その決意であります。

戦後60年の小泉純一郎首相の談話全文は以下の通り。 2005(平成17)年8月15日に出された

小泉純一郎首相

 私は、終戦60年を迎えるに当たり、改めて今私たちが享受している平和と繁栄は、戦争によって心ならずも命を落とされた多くの方々の尊い犠牲の上にあることに思いを致し、二度と我が国が戦争への道を歩んではならないとの決意を新たにするものであります。
先の大戦では、300万余の同胞が、祖国を思い、家族を案じつつ戦場に散り、戦禍に倒れ、あるいは、戦後遠い異郷の地に亡くなられています。
また、我が国は、かつて植民地支配と侵略によって、多くの国々、とりわけアジア諸国の人々に対して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ました。こうした歴史の事実を謙虚に受け止め、改めて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するとともに、先の大戦における内外のすべての犠牲者に謹んで哀悼の意を表します。悲惨な戦争の教訓を風化させず、二度と戦火を交えることなく世界の平和と繁栄に貢献していく決意です。
戦後我が国は、国民の不断の努力と多くの国々の支援により廃虚から立ち上がり、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を受け入れて国際社会への復帰の第一歩を踏み出しました。いかなる問題も武力によらず平和的に解決するとの立場を貫き、ODAや国連平和維持活動などを通じて世界の平和と繁栄のため物的・人的両面から積極的に貢献してまいりました。
我が国の戦後の歴史は、まさに戦争への反省を行動で示した平和の60年であります。
我が国にあっては、戦後生まれの世代が人口の7割を超えています。日本国民はひとしく、自らの体験や平和を志向する教育を通じて、国際平和を心から希求しています。今世界各地で青年海外協力隊などの多くの日本人が平和と人道支援のために活躍し、現地の人々から信頼と高い評価を受けています。また、アジア諸国との間でもかつてないほど経済、文化等幅広い分野での交流が深まっています。とりわけ一衣帯水の間にある中国や韓国をはじめとするアジア諸国とは、ともに手を携えてこの地域の平和を維持し、発展を目指すことが必要だと考えます。過去を直視して、歴史を正しく認識し、アジア諸国との相互理解と信頼に基づいた未来志向の協力関係を構築していきたいと考えています。
国際社会は今、途上国の開発や貧困の克服、地球環境の保全、大量破壊兵器不拡散、テロの防止・根絶などかつては想像もできなかったような複雑かつ困難な課題に直面しています。我が国は、世界平和に貢献するために、不戦の誓いを堅持し、唯一の被爆国としての体験や戦後60年の歩みを踏まえ、国際社会の責任ある一員としての役割を積極的に果たしていく考えです。
戦後60年という節目のこの年に、平和を愛する我が国は、志を同じくするすべての国々とともに人類全体の平和と繁栄を実現するため全力を尽くすことを改めて表明いたします。

「戦後50周年の終戦記念日にあたって」 995(平成7)年8月15日に出された、

村山富市首相の談話全文は以下の通り。

 先の大戦が終わりを告げてから、50年の歳月が流れました。今、あらためて、あの戦争によって犠牲となられた内外の多くの人々に思いを馳(は)せるとき、万感胸に迫るものがあります。
敗戦後、日本は、あの焼け野原から、幾多の困難を乗りこえて、今日の平和と繁栄を築いてまいりました。このことは私たちの誇りであり、そのために注がれた国民の皆様一人一人の英知とたゆみない努力に、私は心から敬意の念を表わすものであります。ここに至るまで、米国をはじめ、世界の国々から寄せられた支援と協力に対し、あらためて深甚な謝意を表明いたします。また、アジア太平洋近隣諸国、米国、さらには欧州諸国との間に今日のような友好関係を築き上げるに至ったことを、心から喜びたいと思います。
平和で豊かな日本となった今日、私たちはややもすればこの平和の尊さ、有難(ありがた)さを忘れがちになります。私たちは過去のあやまちを二度と繰り返すことのないよう、戦争の悲惨さを若い世代に語り伝え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くに近隣諸国の人々と手を携えて、アジア太平洋地域ひいては世界の平和を確かなものとしていくためには、なによりも、これらの諸国との間に深い理解と信頼にもとづいた関係を培っていくことが不可欠と考えます。政府は、この考えにもとづき、特に近現代における日本と近隣アジア諸国との関係にかかわる歴史研究を支援し、各国との交流の飛躍的な拡大をはかるために、この2つを柱とした平和友好交流事業を展開しております。また、現在取り組んでいる戦後処理問題についても、わが国とこれらの国々との信頼関係を一層強化するため、私は、ひき続き誠実に対応してまいります。
いま、戦後50周年の節目に当たり、われわれが銘記すべきことは、来し方を訪ねて歴史の教訓に学び、未来を望んで、人類社会の平和と繁栄への道を誤らないことであります。
わが国は、遠くない過去の一時期、国策を誤り、戦争への道を歩んで国民を存亡の危機に陥れ、植民地支配と侵略によって、多くの国々、とりわけアジア諸国の人々に対して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ました。私は、未来に誤ち無からしめんとするが故に、疑うべくもないこの歴史の事実を謙虚に受け止め、ここにあらためて痛切な反省の意を表し、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いたします。また、この歴史がもたらした内外すべての犠牲者に深い哀悼の念を捧(ささ)げます。
敗戦の日から50周年を迎えた今日、わが国は、深い反省に立ち、独善的なナショナリズムを排し、責任ある国際社会の一員として国際協調を促進し、それを通じて、平和の理念と民主主義とを押し広め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同時に、わが国は、唯一の被爆国としての体験を踏まえて、核兵器の究極の廃絶を目指し、核不拡散体制の強化など、国際的な軍縮を積極的に推進していくことが肝要であります。これこそ、過去に対するつぐないとなり、犠牲となられた方々の御霊(みたま)を鎮めるゆえんとなると、私は信じております。
「杖るは信に如くは莫し(よるはしんにしくはなし)」と申します。この記念すべき時に当たり、信義を施政の根幹とすることを内外に表明し、私の誓いの言葉といた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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