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술목사(1920-2004) 기념사업회 출발

 복음교단 전 총회장으로 통일운동가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했던 조용술 목사의 21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사)조용술 목사 기념사업회가 공식적인 설립 절차를 마무리하고 창립대회를 개최한다. 평생을 평화통일의 길에 바친 조용술 목사의 뜻을 잇는 이번 사업회 출범은, 남북 간의 긴장 완화를 모색하는 새 정부의 노력에 민족 화해와 협력의 씨앗을 심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20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고(故) 조용술 목사는 한국신학대를 졸업하고 복음교단 목회자로 헌신했다. 특히 1980년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과 초대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군부 독재 시절 이 땅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다. 그는 인권 문제의 근원이 분단에 있으며, 평화통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소신 아래 통일운동에 헌신하였다.

조목사는 범민족대회 공동본부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고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고문 등을 지내며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그는 1990년 베를린범민족연합남북회의 실무회담 남측대표로 참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1993년 사면복권되기도 했다. 조 목사는 2004년 11월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사후 20년만에 시작하는 기념사업 

조용술 목사 기념사업회는 조목사가 세상뜨신지 시간이 많이 갔다. 그러나 NCC회원교단 복음교단으로써는 중요한 지도자로 한 사람에 대한 기념을 넘어 교단적으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시무하시던 군산복음가 이후 갈등을 딛고 현 담임인 전진택목사가 부임한 후 뜻이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기념사업회는 고인의 정신을 계승하여 냉랭해진 남북 관계에 따뜻한 훈풍을 불어넣고,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새로운 물꼬를 트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용술 목사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창립대회는 조 목사님이 평생 꿈꾸셨던 ‘평화로운 한반도’를 향한 우리 모두의 의지를 새롭게 다짐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평화 노력에 힘을 더하고, 민족 화해의 정신을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11월 15일(토) 11시 모란공원묘지 조용술 목사 묘역(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 2110번길 8-102)를 참배한 후 창립 대회는 오후 3시 종로 서울복음교회서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후원으로 열린다. 행사 문의: 010-5268-7107(최당현) 010-4873-1551(전진택)

조용술목사 

전북 군산 출신으로 한신대와 동(同)대학원을 나와 전북 옥구, 이리, 군산 등에서 목회활동을 해왔으며 1982~84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지냈고 기독교방송(CBS) 이사를 역임했다. 조 목사는 또 기독교농민회전국연합회 이사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고문, 민주개혁국민연합 상임고문 등을 지내며 남북통일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유족으로는 장남 조성범(趙星汎) 민화협 남북협력 사업단 사무처장과 차남 조준호(趙俊虎)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 등이 있다.

복음교단

기독교대한복음교회(基督敎大韓福音敎會)는 1935년 12월 22일 최태용 목사가 창립한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단이다. “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어라, 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라, 교회는 한국인 자신의 교회이어라”를 교회의 방향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의 한국 토착화를 주장하는 진보적 성향의 교단이며, 퀘이커 영향인 무교회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자생적 개신교 교단이다. 창립 초기부터 민족운동과 관련있는 교단으로서 지금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현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원교단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탄압받았고, 해방 이후에는 급진적 퀘이커 사상인 무교회주의 때문에 대한민국 기독교계에서 이단 여부를 확인받아야 했다. 신학적으로는 기존 개신교 신학사상과 교회 제도를 수용하며, 교회 전통보다 성경을 중시하는 성향으로 종교개혁사상의 ‘재건주의’ 범주에 있으며, 진보적 칼뱅주의에 가까운 경향을 보인다. 현재는 정통 개신교 교단으로 인정되며, 규모는 작지만 진보적이고 민족적인 교단으로 활동한다.

교육기관은 총회 산하 대학원 과정의 신학교육원이 있으며, 초교파 계열의 신학대학원 출신 졸업자들이 교육과 훈련과정을 거쳐 목사안수 받기도 한다. 주로 전북특별자치도 및 서울특별시 지역에 교회들이 분포하고 있다. 비슷한 이름의 오순절주의인 대한예수교복음교회와는 전혀 다른 신학 배경을 가진 교단이며, 1970년 창립한 대한예수교복음교회보다 창립시기도 빠르다.

최태용 목사는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로 그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무교회주의를 부르짖었으나 무교회주의의 성경을 가르치면서도 복음 전하는 교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1935년 기독교대한복음교회를 창설하면서 그가 부르짖었던 무교회주의의 입장을 폐기하였다. “나는 내촌(內村)[1]의 무교회주의에서 기독교의 교리적 방면의 새 건설도, 또한 이로써 교회문제의 적극적인 해결도 보지 못하였다”

군산출신 백남용(白南鏞)이 최초의 목사로, 문천의 박임하(朴林夏)가 최초의 장로로 임명되고, 김원준(金元俊) 등 11명을 교회대표자로 임명했으며, 1939년에는 이덕봉(李德鳳)이 추가로 장로에 임명되었다. 1974년에 재단법인으로 등록한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이를 계기로 종래의 감독제 · 이사장제를 총회제도로 개편하고, 현재 총회장 · 교단임원회 · 총무 · 선교부 · 교육부 · 교회와 사회부 · 재정부 등의 기구를 두어 운영하고 있으며, 4개 지방회에 50여 개의 교회, 1만여 명의 신도가 있다.

이 교단이 창설 초기에 이단시된 것은 삼위일체를 부인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이를 시정하고, 목사 지동식(池東植)이 이사장이던 1966년부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하였고, 1978년 복음교회 창립 50주년을 기하여 교세확장과 내실화를 위한 새 전략을 세워 선교활동을 펴고 있다. 복음교단 신학은 개방적으로 소속 목회자들중 NCC 총무를 역임한 김관석 목사,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역임한 오충일목사, 연세대 이양호 교수 등이 있으며 김상근 전 기장총무도 복음교단 출신이다.

* 군산복음교회 전진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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