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노예를 피하려면

편집인 유재무
최근 보수진영의 큰 지도자 박영선목사의 무리한 금전적 요구가 있었다는 소리에 대하여 비판여론이 드높다. 한 교회와 목사의 문제지만 그 이상 영향을 주는 데 이는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의 영향을 받는 데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되나 이를 이용하여 개인의 욕망을 위장하여 영적 노예화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교회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믿음을 강조하고 순종을 가르친 결과 맹신도를 양산한 것이다. 그렇치 않아도 신앙이나 영적인 것은 영향력이 큰 데 이것들이 공교회성이나 건강하지 않게 왜곡되므로 그 폐해가 크다. 사실 한국에 많은 교파만 봐도 이면에는 모두 잘난 분들 덕이고 그들의 이기주의다. 내가 왕이고 최고라는 의식 때문이며 남에게 배우지 않고 내가 제일이라는 결론이다.
서로 대장되려고 온갖 성경적 신학적 영적 이유들을 갖대 대지만 결론은 하나다. 나는 왕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구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교만이다. 그 결과 아무런 차이 없는 교파분열이다. 호주나 카나다 뉴질랜드 태국의 교회들은 처음에는 장로교 감리교 하는 교파가 있었지만 그후 연합교회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교파를 통합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해외선교도 경쟁적으로 교파 이식을 하는 중이다. 이런 것을 극복하려면 생각하는 신앙 질문하는 신앙 남과 함께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특히 개척자들은 내것 교회 것 구분없어 사례도 없이 유지하느라고 고생들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가 몫이 좋아 자립하면 다행이다. 어쩌다가 자가 건축도 하고 조직교회되고 목회성공 자랑하러들 나돌면 유명세를 탄다. 그렇게 한 몇십년하다가 보면 안하무인격이다. 그리고 은퇴 쯤 되면 후임과 예우중 선택을 해야 하는 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러다가 보니 사고가 난다. 보통 개척시 가족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그것도 패거리교회 되기 쉽상이다. 그 희생과 예우는 인본주의적이지만 한국 정서로는 지우기도 쉽지 않다. 그 적정선이 아디인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그런데 박영선목사 부자만 비판하고 대형교회 지도자들 비판 타령만 해서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어중이 떠중이 나서서 감정적 비판은 사실 의미없다. 그런 가운데 우리교단 이상갑목사라는 분의 페이스 북 공개 글이 의미있어 보인다. 자신의 미숙했던 시절을 고백하면서 건강한 신앙을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선목사 사건은 한국교회의 자화성이며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영웅들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문제는 그 교회에 맡기도 한국교회의 내일 고만해야 할 때다.
그런데 거기다가 누가 더 나쁜 놈이라는 등 비판 글을 버젖이 써서 공개하는 분들을 보면 할일들이 그렇게 없나? 하는 아쉬움이다. 박영선목사 사건은 아직 진행중이고 그 교회와 대화를 통하여 어떤 결론이 날 것이다. 말만 갖고 마녀사냥을 하지 말고 우리 시대의 자화상으로 좀 더 지켜보면 좋을 듯하다. 다만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한국교회는 느리지만 진보하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를 진단한다(3)
이상갑목사(산본교회 위임목사로 1947년 서울 영락교회 전도로 시작된 교회다. 1995년 강윤구 목사가 부임하여 2016년(21년) 목회 은퇴후 후임으로 부임하여 저서와 강연을 활발히 하는 목회자다. 무학교회 부목사를 지냈다))
- 지금은 목사지만 나도 가스라이팅 당하고 앵벌이에 동원된 시간이 있었다. 영적 분별력이 없을 때였다. 청년 시절 믿음의 초기에 부흥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공산화된다고 두려워 떨었다. 종말 심판에 불안하였다. 곧 이슬람에 장악된다고 긴급 기도제목을 보면서 염려하였다. 잠이 오질 않았다.
- 목사가 된 지금은 북한을 위해 생명 걸고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안다. 동시에 북한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도 분별하고 안다. 이슬람권에서 생명 걸고 사역하는 신실한 주의 종들을 알고, 이슬람 포비아를 조장하며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도 안다. 선교를 외치지만 진짜가 있고, 가짜도 있다.
- 안타깝게도 성도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슬람 포비아, 북한, 조선족, 고려인 포비아를 외치는 이들이 어용인 줄 잘 모른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가스라이팅 당하여서 수많은 이들이 혐오와 배제의 길로 간다.
- 개인적으로 영적 분별력이 커갈수록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민족, 역사>를 보게 된다. 그리고 포비아를 통해 돈벌이 하는 이들이 가짜임을 보았다. 그들의 기도, 그들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인 경우가 많았다. 포비아 현상으로 향하는 그들의 설교는 선동임을 깨닫는다.
- 진정한 복음 사역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포비아가 아닌 십자가로 접근한다.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 한국은 2024년 이주민 인구 통계를 보면 271만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OECD 기준 아시아 최초의 다인종· 다문화 국가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2%가 이주민이다. 출산율 0.75%의 한국은 불가피하게 더욱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 그러므로 이제 선교는 해외에서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가능하다.

- 가끔 인도네시아 선교, 몽골, 선교, 중국 선교를 떠나곤 한다.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이다. 1월에는 태국 선교를 방콕으로 가지만 , 2월에는 몽골 선교를 중곡동으로 간다. 지하에서 예배 드리는 몽골인들이 모인 교회의 부흥회를 위해서이다. 여름에는 중국 선교를 가리봉동으로 간다. 조선족 동포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이다.
- 하나님은 한국으로 이미 271만명을 보내셨다. 중국 유학생 예배를 통해서 함께 예배들 드리고 제자훈련을 하면서 중국 유학생 가운데 중국으로 돌아가 가정 복음화를 이룬 청년을 보았다. 또 그들 가운데 북한 선교 헌신자가 나오고, 장신대 신대원에 들어간 청년이 나왔던 경험을 통해 우리 곁의 이주민 선교의 중요성을 배웠다.
- 언젠가 장년 제자 훈련반과 함께 중국 유학생들을 위한 엄마 밥상을 차린 적이 있다. 중국으로 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 땅에 온 중국 유학생들을 밥상으로 섬기자고 했더니 정말 놀라운 잔치 자리가 차려 졌다. 중국 유학생들은 너무나 기뻐하였다. 이것은 빵과 함께 복음을 전한 경우이다. 그 날 우린 선교를 하는 기쁨이 넘쳤다.
- 중국 선교에 있어서 중국에 가서 목숨 걸고 복음 전하는 선교도 필요하지만 우리 곁의 중국 유학생과 이주민을 향한 환대의 영성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 또 주목할 것은 청년과 다음 세대이다. 이들은 선교적으로 섬겨야 한다. 이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제외한다면 청년과 다음세대의 실질적인 그리스도인의 비율도 점점 하락하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교회 학교가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회에서 점점 들리지 않는다.
- 일론 머스크 는 ‘인구 절벽’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사례로 한국을 거론하며 이런 말을 한다. “한 나라가 바른 경로로 가지 않는다는 신호 중 하나는 성인용 기저귀가 아기용 기저귀보다 많아질 때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보다 더 심각하다.
- 단순히 인구감소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역자들 사이에서는 청년과 다음세대를 타문화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청년과 다음세대가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대학생 집회를 섬길 때면 한번 더 고민한다.
- 청년과 다음 세대는 개발 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이다. 기성세대와 사고가 다르다. 언어가 다르다. 문화가 다르다. 혹시 <야르> 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가? 외계 언어도 아닌데 알아듣기 힘이 든다. 그렇다고 외국어도 아니다. 야르는 어린이들이 ” 좋다 좋아” 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다.
- 이제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면서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기본에 충실하되 방법론과 문화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으려는 창조적 고민이 필요하다.
- 이제 전도는 교회 밖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필요한 시대이고 세대이다. 우리 자녀 세대가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가 되어 간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 간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한 차원 더 깊은 성육신적 영성으로 목회적 관점에서 선교적 관점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