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폐지법’ 가짜뉴스

  •                           교회는 비영리법인 아닌 ‘비법인 사단’

지난 2월 5일 국회 의안 정보시스템을 보면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여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하는 등 반사회적 행위를 자행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나, 이를 효과적으로 제재할 법적 수단이 미비하다”며 “주무관청이 위법행위를 인지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조사 권한이 명확하지 않아 실효성 있는 감독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이에 설립 허가 취소 사유 구체화, 주무 관청 조사 권한 명문화, 반사회적 법인의 잔여재산 국고귀속 제도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제출한다고 전했다. 이른바 ‘정교유착 방지 법안’ 이다. 그간 순수했고 중도적이었던 종교단체나 지도자들의 정치적 발언을 넘어 정당에 가입해 영향력을 행사한 일로 확실히 문제가 되고 있다. 또 부산의 고신파 교회서 목회하는 손현보목사라는 분은 설교 중 특정 정치인 이름 언급하며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이 문제가 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교계가 주장하듯 이 법안은 교회를 겨냥한 법이 아니다. 당초 법이 규정하는 것은 ‘비영리법인’인데, 대부분의 교회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단 총회 유지재단이나 기독교 방송국, 한교총 같은 교계 연합기관은 ‘법인’으로 그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일반 교회는 ‘비법인 사단’이다. 비영리법인은 주무관청에서 설립 허가를 내주지만, 비법인 사단은 별도의 허가 없이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면 그만이다. 그런의미에서 문제가 된 사랑제일교회나 세계로교회 등 ‘개별 교회’ 를 해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정교유착방지법’이 제정된다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등 정부에 비협조적인 주장을 할 경우 해산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차별금지법 반대 진영에서 반복해 온 ‘허위·왜곡 정보’ 에 불과하다. 법안에는 “헌법이 정한 정교분리 원칙이나 공직선거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하여 선거, 정당 또는 후보자와 관련해 조직적·체계적으로 정치 활동에 조직적·반복적으로 개입하여 공익을 현저히 해한 때”에 법인 설립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금법 반대자들이 만든 가짜뉴스

현행법에는 강단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거나 입법 반대 활동을 한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만약 보수 교계의 반대를 넘어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처벌 조항은 고용, 재화·용역 공급 및 이용, 교육기관, 행정 서비스 영역에만 국한되지, 설교 같은 종교 행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설교 시간에 동성애 반대하면 수갑 채워 끌고 간다”는 말이 가짜 뉴스인 이유다. 

알다시피 손현보목사는 선거법으로 전광훈목사는 서부지법 난동의 배후혐의로 실형을 받고 재판을 받는 중이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실정법 위반을 정치 탄압으로 간주하는 등 가짜뉴스를 생산했다. 이에 종교단체나 지도자들이 정치행위를 하거나 정치색을 보이는 것은 원래 취지와 어듯나므로 종교법인에 대하여 규정을 강화하고 해산까지 할 수 있는 법안을 만는 것으로 홍보를 하는 것이다. 즉 정교분리에 대한 강화된 입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법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정교유착을 막는다는 명분의 개정안발의에 대하여 문제가 된 신천지와 통일교에 대한 제재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헌법이 정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에 민법 개정보다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반사회적 행위를 규제할 특별법 제정이 맞다는 목소리가 높은 데 진보적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박승렬 목사)도 “행정관청의 자의적 법 집행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장치가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며 “법인의 위법성과 책임을 판단하는 일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김정석 목사)도 “종교를 법으로 규제하는 시도는 그 의도가 어떻든 종교자유, 정교분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고경환 목사)는 “일부 사례를 근거로 종교 전반을 일반화해 규제하려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교총 한기총 NCCK 세 연합기관이 한목소리를 내는 건 드문 일이다.

그러나 정교분리라는 말은 한국교회나 사회에서 정치와 종교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 다는 의미로 해석되왔는 데 이에 변화가 온 것이다. 그 어원이나 시초는 서로 간섭안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권과 속권의 주권논쟁에서 비롯된다. 이런 이론의 기원은 오래전으로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신권과 속권의 대립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언약도들을 통해서 본 정교 분리

1638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그레이프라이어스교회(GreyFrias Kirk)에서 있었던 국민언약(National Covenant)에서 이 개념이 등장하는 데 여기 언약도Covenanters)가 장로교의 기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정교분리의 의미는 국가와 종교가 분리된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즉 왕과 의회는 교회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교회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예배할 지 왕이 정하지 말고 교회가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이유로 국교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는 데 이 개념이 미국 수정헌법에 채택되었고 미국 헌법을 원용한 대한민국 헌법에도 들어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원적 의미를 모르는 다수 국민, 정치인 심지어 목사들도 정교분리를 국가와 종교의 상호분리인 것으로 오해하는 데 국가와 의회는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지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종교인이든지 모두 국민인데 어찌 국가와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수가 있냐고 하면서 어떤 종교이든지 관계없이 실정법을 위반하면 그것만 합법적으로 처벌한다고 하면서 선거법을 어겼다면 그 단체가 동창회이든지, 노인정이든지, 교회나 절이나 똑같이 처벌하면 되지만 정교분리는 정치와 종교의 상호분리가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종교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무엘 러더퍼드는 누구인가?

그들은 존 녹스(John Knox)가 목회하던 에딘버러(Edinburgh)시의 세인트 자일스 교회(St. Giles Church)에서 불과 200 미터 거리에 있는 Grass Market 이라는 좁은 공터에서 모두가 교수형으로 순교하며 신앙을 지켰고, 그들의 후예들은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서 일부는 Pittsburgh, Pennsylvania에 본부를 둔 RPCNA(Reform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 즉 북미주 개혁장로교단이 되었고, 일부는 Greenville, South Carolina에 본부를 두고 ARPC(Associate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즉 합동개혁장로교단으로 조직화되었다.

그들 중 “언약도의 성자”라 불리며 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Mentor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인 러더포드는 1600년 스코틀랜드의 록스버러샤이어(Roxburghshire)주 니스벳(Nisbet)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617년 에딘버러 대학에서 성경과 라틴어, 헬라어, 교회사,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하고 1621년에 문학석사(Master of Arts) 학위를 받고 졸업하여 모교의 라틴어(Latin)어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그 후 얼마 못가서 사소한 일로 오해를 받아 교직을 물러나야만 했다.

졸업직전 20세 전후 그는 회심을 체험하고 주의 일에 헌신하게 되었다. 1627년에 커크커드브라잇샤이어(Kirkcudbrightshire) 앤워스(Anwoth)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고 1636년까지 목회를 하다가 그해 그의 개혁주의 신앙으로 인하여 영국 왕에게 형벌을 받아 애버딘(Aberdeen)에서 투옥되었다. 동시에 같은 해 아르미니우스 감독에 의해 목사직이 박탈되는 수난을 겪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였고 개혁신앙의 전파에 힘썼다.

옥중에서 그는 그가 목회하던 앤워스에 있는 교인들에 가는 365가지의 편지를 썼다. 이는 그 교인들에게 설교하는 형식으로 영적 성장을 위한 것으로 유배 도중 쓴 많은 편지를 모아 “서한집”을 남겼다. 이 편지는 개혁교회가 내놓을 수 있었던 모든 문헌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경건의 서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1638년 석방되자 Anwoth에서 18개월 목회하다가 St. Andrews 대학에서 신학교수가 되었다. 1647년 St. Andrews 대학의 St. Mary College의 학장이 되었고, 나중에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

이 무렵 영국 London 에서 영국의회가 영국교회의 예배 형태를 재고하자는 취지로 모이고 있었는데 이 모임은 나중에 Westminster 신앙고백서 기초위원회로 변신하였다. Samuel Rutherford 는 1643년 Scotland 대표 중 한 사람으로 London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기초위원회에 참석하였는데 그의 해박한 지식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서 작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4년간 London에서 활동하는 동안 고향에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 둘이 병으로 죽었다.

그는 1648년과 1651년 두 번이나 유럽대륙에서 화란의 대학의 교수로 청빙을 받았으나 Scotland에서 할 일이 남았다고 하며 거절했다. 1660년 영국에는 왕권신수설과 절대군주론을 주창한 Charles II(‘Charles 1세’가 Oliver Cromwell이 이끄는 영국 의회파 議會派에게 죽임을 당한 후, 그의 뒤를 이은 아들)가 등극하여 종교탄압과 개혁주의 목사들을 공개 처형하는 일이 심해지던 무렵 “Lex Rex 법과 국왕”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남아 있는 모든 책을 소각하라는 왕명에 따라 아까운 책이 모두 소실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또한 그는 왕의 소환장을 받아 1661년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성 앤드류스(St. Andrews) 주변 그의 묘지에는 “어떤 인간의 혀나 펜이나 솜씨가 그 유명한 러더포드에게 명할 수 있을까? ~~~ 그는 가장 정통적이고 건전한 신학자였으며 수많은 신학적 오류를 바로잡은 설교자로 그는 시온의 왕과 시온의 영화와 스코틀랜드의 언약적인 법 조항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앞서간 선배인 John Knox처럼 한 평생 세상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왕이신 주님에게만 충성했던 Scotland의 개혁가 중 최고의 개혁가로, 신앙이 바로 서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양심가이며, 진실된 개혁주의 학자요, 목회자였다. 한마디로 그는 스코틀랜드의 영적 거인으로 그 땅의 영적 부흥을 견인한 거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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