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단과 미장로교단 헌법(정치규례)의 비교

한국장로교단과 미장로교단 헌법(정치규례)의 비교

 

황규학 목사의 플로리다 신학교(Florida Center of Theological Studies) 2004년 박사학위(D.Min) 논문 요약으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발표된 바 있다.
 

1. 서 론

이 논문의 목적은 미장로교 헌법과 한국 장로교의 헌법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한국교회 상황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는 데 있다. 한국헌법은 19세기말 한국에 도착한 미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작성되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 기초한 미장로교 헌법의 틀을 갖고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장로교의 헌법의 틀을 거의 채택했지만 일부는 전통주의에 입각하여 유교의 정신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것이 사실이다(권사와 부목사, 장로, 집사제도). 그래서 장로교 헌법은 한국적 전통을 일부 반영한 한국적 헌법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실제로는 헌법이라기보다는 교회생활에 우선 편리한 대로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조례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빈약한 성문법이기에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관습과 판례규정을 끊임없이 요청한다.

그러한 열악한 한국적 헌법의 토대 하에 있는 한국의 교회들과 이민교회들은 교회에서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특히 미국교단 내에 있는 이민교회들은 미국헌법에 관하여 한국적 관점을 갖고 해석하거나 대처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교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감수했다.

그 이유는 헌법의 허술한 면도 있지만 장로교의 짧은 역사와 이미 시민혁명을 거쳐서 완성된 서구의 교회 헌법 및 장로교 문화에 익숙지 못한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서 종교는 법이 아니라 관행과 체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기독교는 칼빈의 종교개혁 이후 400년 이상의 역사가 있고 그 이전에도 가톨릭을 통한 기독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 역사는 약 2,000년 정도 된다. 그러므로 이제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 남짓한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최근 들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 헌법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테스탄트 운동 초기부터 종교개혁자들은 교회 법(규례)을 만들고 발전시켰다. 그것의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다. 그 신앙고백은 오늘날 우리가 헌법이라고 하는 장로교 정치규례와 권징규례, 예배모범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주로 교단의 철학과 신학이 반영된 교회법을 기초하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 선교와 전도, 설교, 심방, 기도 등 교회 부흥에 관련된 실천적 요소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교회의 현저한 성장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 성장 이후의 후유증 및 부작용은 주로 미흡한 교회의 법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질수록 법이 필요하듯이 교회 역시 성장하고 제도화되면서 갖가지 발생하는 여러 상황에 대응할 만한 교회법의 구성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교회는 21세기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헌법은 아직도 20세기 초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므로 요즈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따라서 본고는 한국 헌법에 미친 미장로교 헌법의 영향을 밝히고, 양국 교회 헌법의 토대가 되는 양 교단의 신학 및 규례조항들을 비교하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교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실천적 대안으로서 미장로교의 헌법을 적용해보고자 한다.

2. 한국 장로교단의 신학과 헌법

한국의 진보신학자 김재준 교수는 한국 장로교단의 신학을 근본주의를 따르는 선교사들에 의하여 이식된 신학으로서 근본주의 신학이라고 정체화했다. 주재용은 그의 저서《한국신학의 뿌리》에서 근본주의 신학은 한국 신학의 한 분야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는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한국의 신학을 세 분야라고 설명했다. 하나는 근본주의,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 마지막 하나는 토착화 신학이라고 결론지었다.

한국 초기의 신학은 근본주의라 말할 수 있다. 이는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초기의 미선교사들은 프린스톤 신학교와 프린스톤과 학풍을 같이 하는 맥코믹 출신이었다. 16명이 프린스톤 출신이고 11명이 맥코믹 출신이며, 4명이 샌프란시스코 출신이었다. 뉴욕 유니온 출신이 3명, 다른 신학교 출신이 4명이었다.

맥코믹신학은 프린스톤 신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또 다른 프린스톤 신학교에 불과했다. 프린스톤 신학은 보수적 개혁신앙의 19세기 표현이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들은 정통 개혁신학을 견지하고 있는 Archibald Alexander(1772∼1851), Charles Hodge, B. B. Warfield였다. 이러한 보수 근본주의의 프린스톤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근본주의 신학의 노선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신학은 근본주의 신학으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영적인 차원에서는 대각성운동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오순절적 색채를 띠어 부흥회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것은 1907년 대부흥운동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한국교단의 신학은 프린스톤 신학의 영향으로 근본주의 색채를 띠게 되고 신앙면에서는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오순절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순절주의 신앙의 토대 역시 근본주의 신학이다.

이러한 근본주의 신학은 초기 헌법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헌법은 당시의 신학을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진 법체계이기 때문에 항시 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근본주의 신학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만이 우리의 신앙고백인 양 채택하기에 이르렀고 아직도 헌법에 성차별 및 수직적인 구조의 조항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한국 장로교단의 신학은 근본주의의 신학의 울타리 안에 아직도 갇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장측의 경우에는 여성 안수나 사회적인 역할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진보적인 주장을 포함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헌법의 내용이나 틀에서는 여전히 미장로교 헌법의 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3. 미장로교단의 신학과 헌법

미장로교단의 신학은 교단 자체의 합병과 분리를 거듭하면서 근본주의적인 ‘reformed 신학’에서 계속 쉬지 않고 개혁하는 ‘reforming 신학’으로서 변해갔다. 그것이 조금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에큐메니칼 신학이다. 장로교단 신학은 구 프린스톤 학자들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보수적이며 근본주의적인 신학을 추구한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기는 것이라 하여 하나님의 특권과 초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미장로교(PCUSA)의 신학을 어떤 면에서 조금 liberal하거나 급진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그것 역시 존 칼빈의 개혁신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같은 부류의 개혁교단의 신학일 뿐이다. 그러나 미장로교단은 ‘reformed 신학’에 머무르지 않고 분리와 통폐합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면서 그때 그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reforming 신학’을 채택하고 있다. 미장로교 헌법 G-2.0200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부르심에 따라 ‘개혁했고 또 항상 개혁하는 교회'(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ta)”임을 표명하고 있다. 즉 신학은 끊임없이 개혁되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은 에큐메니칼 신학으로서 헌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The Book of Order (G15.0100-G.15.0105)는 세속적인 단체를 포함한 비기독교 세력과 다른 기독교 세력과의 에큐메니칼적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G-3.0401은 “교회는 세상에서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에큐메니칼 교회로서 계속 개혁을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 개방성을 갖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말한다. 특히 미장로교단은 인종과 민족주의를 초월하여 복음적 정신을 갖고 교제하기 위하여 WCC에 가입하였다. 미장로교단은 이처럼 개혁교단만이 아니라 그 어떠한 교파와도 접촉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몰트만은 ‘reformed 신학’은 ‘reforming 신학’이라 했다. 미장로교단 신학 역시 ‘reformed 신학’을 ‘reforming 신학’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reforming 신학’이 교단의 헌법에 그대로 배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요약하면 미장로교단의 신학은 개혁신학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요구하는 ‘reforming 신학’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하나이면서 다양한 공동체를 위한 보편주의와 에큐메니즘을 슬로건으로서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에 입각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채택하고 다양한 신앙고백을 채택하고 있으며 인종과 성, 민족을 초월하는 에큐메니칼 개념을 충분히 헌법에 반영하고 있다.

4. 한국 장로교단의 헌법의 역사(신경과 정치규례)

한국의 교회헌법은 처음부터 선교사들의 강한 영향력 속에서 형성되었다. 선교 초기에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1892년에 ‘장로교 정치형태를 채택하는 선교공의회’라는 협력체를 구성하여 조선 자유 독립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공의회는 1904년 회의에서 공의회의 목적을 “갱정교(更定敎) 신경을 신인(信認)하고 장로교 정치를 사용하는 연합 독립교회를 조선에 설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헌법과 규칙을 채용하였다. 주요 구성원은 미장로교의 남북 선교사들과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이었다.

이 공의회는 장로교를 세운다는 전략으로 장로교 헌법을 기초하고자 1901년에 장로회 헌법 번역위원과 공의회 규칙 제정위원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 문답, 정치형태, 권징조례, 예배규칙 등 이미 선진 장로교단의 규례를 조사하고 번역할 준비를 하였다. 이처럼 한국 장로교회는 1901년에 이미 신경과 헌법의 정치규례를 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1904년에 ‘조선 자유교회 설립 의정위원’들은 본격적으로 신앙고백과 정치규례를 만들 헌법위원회의 조직을 건의하였다.

그 결과 헌법위원회가 구성되어 신앙고백과 장로교 규례를 작성해서 1905년 공의회에 제출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정치규례이다. 그러나 이 헌법은 지키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1907년 선교사 공의회에서는 보다 간단한 정치를 제정해서 노회에 제출했다. 그래서 1907년 미국 남북장로교 및 캐나다 장로교, 호주 장로교가 연합하여 독노회로서 조선의 역사적인 교회를 출범시키려 할 때 그 신경과 정치규례를 임시로 1년간 채택하게 되었다.

1907년 선교공의회가 독노회에 제출한 정치규례는 전문 4조 14항과 세칙 7항으로 된 간단한 조항이었다. 정치규례 제1조는 교회편으로 2개항의 규정을 두어 교회의 일반적 정의를 하고 있으며 제2조는 예배 절차를 나열하여 질서 있는 예배를 독려하고 있으며 제3조는 교회 직원 편으로 목사, 장로, 집사와 관련한 6개 조항을 두었고, 제4조는 교회의 치리로 당회와 노회, 총회에 대해서 설명하는 등 5개항의 내용을 첨가하고 있다. 특히 5항의 규칙개정에 대해서는 지교회 조직, 강도인과 조사, 목사택정, 장로 안수, 장정 절차 등을 규정하였다.

신경은 웨스트민스터를 신앙기준으로 하고 있는 영국 장로교의 24신조를 본 따서 만든 인도 자유장로교의 12신조를 우리의 신조로 삼았다. 이 신경은 그 핵심적 구성이 웨스트민스터 신경과 성경 요리문답, 대소책자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인도 자유장로교회에서 채택한 신경이 특별히 조선 형편에 적합해서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 채택하였던 것이다. 이 신경이 장차 아시아의 모든 장로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교사들의 바람이었다. 결국 신경과 규칙은 1910년 노회에 가서야 비로소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1915년 제4회 총회 시는 선교사들이 미장로교의 1789년 헌법을 번역하여 장로회 정치원리와 권징조례를 만들고, 1916년 제5회 총회에서는 정치 편집위원을 확장하고 정치위원과 합병하여 정치개정을 준비케 하였고, 1917년 제6회 총회에서는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은 웨스트민스터 책과 미남장로교, 호주 장로교, 일본장로교, 한국 장로교에서 중요한 부분을 취하여 편집해서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를 향하여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헌법은 웨스트민스터를 기본으로 하고 미장로교 헌법의 틀과 호주 장로교, 캐나다 장로교회, 일본 장로교, 인도 장로교의 부분적 영향을 받아 편집된 형태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1919년 제8회 총회에서는 J.A. 하지의《장로교 규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참고서로 정식 채용한다. 이 책은 웨스트민스터와 미장로교 헌법을 요약해서 해석한 일종의 질의문답 집이다.

1921년 제10회 총회에서는 정치편집부에 의하여 기초된 헌법, 신경,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을 이미 출간, 배포한 것을 각 목사와 장로의 교열을 거쳐 교정 보고하고 채용하여 각 노회에 수의하고 1년간 임시 사용하기로 하였다.

1922년 제11차 총회에서는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을 노회에 수의한 결과 전 노회의 찬성으로 가결하였다. 신경, 소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이 완성되었다. 정치, 권징 조례는 북장로교, 예배모범은 남장로교 모형에 가깝고 부분적으로 캐나다와 호주 장로교의 것을 수용하였다. 이때 확정된 헌법은 총 24장으로 되어 있고 부록이 첨부되어 있었다.

1927년 제16차 총회는 헌법수정위원회를 두어 수정안을 작성토록 하였고 1928년 제17차 총회는 헌법수정위원회의 보고를 축조 심의하여 소요리문답은 수정 없이, 권징, 예배모범은 약간 자구 수정 후 채택하였다. 정치규례 역시 많은 부분을 수정 채택하고 수의키로 가결하였다.

1929년 제18차 총회에서는 몇 가지 조항만 빼놓고 대부분이 수정 가결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해마다 총회 시에 조금씩 수정을 가해서 장로회 총회 헌법의 골격이 갖추어져 갔다.
요약하면, 한국 장로교단의 헌법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미장로교 헌법, A.J 핫지의 정치문답 규례, 그리고 호주, 캐나다, 일본, 인도 장로교회의 헌법들을 토대로 하여 조금씩 편집하고 수정한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단의 헌법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매년 규칙이나 조항을 조금씩 수정 첨가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으며, 아직도 미완의 헌법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5. 양 교단 헌법의 비교연구

a. 원리

미장로교 헌법과 한국 장로교 헌법만이 ‘원리’라는 조항을 갖고 있다. 이는 한국 장로교단이 미장로교단의 헌법을 채택했다는 증거이다. 이처럼 ‘교회 정치원리’를 서두에 표명하는 교단은 미장로교단과 한국 장로교단 밖에 없다. 그러나 미장로교단은 헌법이 만들어진 1789년 이래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헌법의 수정과 첨가가 계속 이루어져 ‘교회정치 원리’에 다양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교회의 머리,’ ‘교회의 위대한 목적,’ ‘교회 질서의 역사적 원리,’ ‘교회 정치의 역사적 원리,’ ‘미장로교단이 채택한 신조들’이다.

한국 장로교회 헌법에서 교회정치 제 1장의 ‘원리’의 내용은 미장로교단의 ‘교회 질서의 역사적 원리’만을 가져온 것으로 그 내용은 ‘양심의 자유,’ ‘교회의 자유,’ ‘진리와 행위,’ ‘교회의 직원,’ ‘치리,’ ‘권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장로교단의 헌법의 ‘교회질서의 역사적 원리’의 내용은 ‘판단의 권리'(Right of Judgement), ‘집단적인 판단'(Corporate Judgement), ‘교회 직원'(Officers), ‘진리와 행위'(Truth and Goodness), ‘의견의 차이'(Differences of Views), ‘교인에 의한 선거'(Election by the People), ‘교회의 권한'(Church Power), ‘교회의 권징'(Church Discipline)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1789년에 미장로교가 헌법을 처음 만들 때 교회정치의 원리로서 채택한 것이다. 그 중 ‘판단의 원리'(한국교회 헌법에서는 ‘양심의 자유’로 표현)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0장에 나오는 ‘양심의 자유’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집단적인 판단'(교회의 자유)은 교회라는 단체가 판단하는 ‘양심의 자유’로서 ‘판단의 권리'(양심의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국가나 시공무원의 압력 없이 교회의 신령한 일들의 행사를 교회의 권한으로 교회 스스로 선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양심의 자유’가 나오게 된 배경은 스튜어트 왕조인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청교도와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에게 영국 국교의 예배형식과 감독제를 강요하는데 따른 것이다. 청교도들이 중심이 된 의회는 1643년 웨스트민스터 회의를 허락했고 3년간에 걸친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0장에서 신앙의 자유를 짓밟는 왕들의 폭정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난 인간의 계명과 명령을 거부할 ‘양심의 자유’를 선포했던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절대왕정의 체제에서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왕과 의회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장로교단이 1789년 헌법을 작성함에 있어 기본원리로서 ‘양심의 자유’를 채택한 것도 1776년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끝나고 시민사회가 형성될 무렵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침탈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원리’ 편은 사실상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너무 동 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고백에 기초한 우리의 ‘원리’가 필요한 것이다.

b. 교회

한국 장로교회는 헌법에서 교회와 관련한 규례에서 1장을 할애하여 ‘교회의 정의,’ ‘교회의 구별,’ ‘지교회,’ ‘지교회의 설립,’ ‘지교회의 분립과 합병,’ ‘지교회의 폐지’를 모두 취급하고 있지만 미장로교회 헌법인 Book of Order는 ‘교회와 신앙고백,’ ‘교회와 선교,’ ‘교회와 일치,’ ‘교회와 교인,’ ‘교회와 제직원,’ ‘개체교회,’ ‘교회와 그 재산에 관한 내용’을 각 장으로 할애하여 전체 25페이지 정도로 빽빽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 장로교 헌법은 ‘교회의 정의’에 대하여 “교회는 성도라는 무리들이 모인 집단으로서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 하나님의 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구별’에 대해서도 칼빈이 말한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만 말하고 있다. 그 외에는 지교회의 정의와 설립, 분립 합병, 폐지에 대한 기본 규례를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미장로교 헌법은 ‘교회와 신앙고백’에서 교회가 무엇을 고백하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행하도록 결심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신앙고백은 보편교회의 신앙을 증거하며 니케아 신조와 사도신경의 형성과 채택을 인정하는 교회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미장로교는 그 신앙고백들안에서 종교개혁의 주장들을 확인한다. ‘은총만으로,’ ‘믿음만으로,’ ‘성경만으로’를 받아들임으로서 개혁전통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신앙을 바탕으로 사회정의를 추구하고 사회변혁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름 받았다는 것을 신앙고백으로 하고 있다(G-2.0500).

‘교회와 선교’에서는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한다. G-3.0100은 “교회의 선교는 성경에서 말하고 신앙으로 이해되는 것과 같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활동에 의해 형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활동에 따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활동,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한다(G-3.0101, G-3.0102, G-3.0103). 성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고, 남녀를 공동체 안에서 살게 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에서 자유하게 하셨고, 성자 하나님은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만 백성을 구속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화해의 활동이 계속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선교와 연속선상에서 교회는 자신의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할지라도 이 같은 선교를 완수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G-3.0400). 곧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G-3.0400은 “교회는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이런 형태의 가능성과 위엄에 대해서도 새로운 개방성을 갖고 신실성과 유용성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교회와 일치’는 ‘보편교회와 개체교회,’ ‘교회의 일치,’ ‘장로교 정치원리,’ ‘다양성과 포괄성’의 내용을 포함한다. 보편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고백하는 모든 신앙의 공동체로 구성된다”고 정의한다(G-4.0100). ‘교회의 일치’는 주께서 주신 은총의 산물임을 표현하고 있고(G-4.0201)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한 성령의 지배를 받는 교회는 하나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각 교회와 성도가 가시적 동일성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일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G-4.0203).

‘장로교 정치원리’에서는 교회는 장로들에 의해서 치리된다는 것과 장로들은 단순히 교인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 보다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할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상급치리회는 하급치리회를 다스린다는 원칙을 말한다. ‘다양성과 포괄성’의 내용은 교회는 세상에 있어서 여러 문화에 적합한 형식, 실천, 언어, 프로그램, 그리고 양육과 봉사의 다양성을 보일 수 있어야 하고(G-4.0400) 이러한 다양성은 모든 종족 그룹, 연령의 차이, 성 차이, 각종 신체장애인, 다양한 지역, 개혁교회 전통에 일관성이 있으면서 다른 신학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다양한 형태의 결혼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포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G-4.0403).

‘교회와 제직원’에서 목회는 ‘그리스도 은총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명령 하에서 서로 섬길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교단이 인정하는 직책은 성경에 따라 장로(말씀과 성례전의 목사와 장로)와 집사임을 명시한다(G-6.0102). 그리고 G-6.0105는 남녀가 교회의 직책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규정하여 성차별을 초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직책에 있어서 어떤 한 개인이 선출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해당기관에 의한 선출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장로교는 대의정치이며 직분을 선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에 결국 성도들이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c. 기타사항 : 목사, 부목사, 장로, 집사, 제직회, 예산, 치리회장

(1) 목사

미장로교단

① 미장로교 목사의 명칭 : 담임목사, 동사목사, 부목사, 보조목사, 노회지정 목사
② 지교회와의 관계 : 영구관계, 임시관계, 임명관계
③ 목사의 기간
a) 영구적 목사 : 담임목사, 부목사, 보조목사
b) 임시목사(2-4년) : 노회 지정목사, 임시 동사목사, 임시 부목사, 잠정 설교목사
*동사목사 : 목회를 위해 동등한 책임을 가지고 청빙받고 취임받은 목사이다.
*부목사, 보조목사 : 곧바로 담임목사를 승계할 수 없다.
*임명목사 : 개교회의 청빙위원회와 노회의 목회위원회를 걸쳐서 기간을 허락받아서 노회가 임명할 수 있다. 청빙위원회는 항시 인종, 종족, 연령, 결혼신분, 연령이나 신체 부자유 없이 해야 한다. 2년의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당회의 동의를 얻은 다음, 임명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할 공동위원회를 소집한다.
*잠정설교자 : 잠정설교자는 설교한 지 6개월이 지난 다음에 부목사나 담임목사로 청빙받을 수 있다.
*담임목사, 부목사 : 교인들이 선출, 노회에서 인준
④ 목사의 소명
교회는 노회를 통하여 말씀과 성례전의 목사의 책임과 직책을 수행하도록 그들을 부른다. 말씀과 성례전의 영구직책은 목사와 부목사이다(G-6.0202).
⑤ 목사의 목회관계 해소
공동의회의 역할 중 목회관계의 해소요청이나 동의, 거절하는 사안이 들어있다(G-7.0304).
⑥ 목사의 정년 : 없다
⑦ 목사의 청빙 : 근무처, 사역시간, 휴가시간, 월급 및 주택비, 연금과 의료보험, 최저 생계비 보장. 가장 중요한 것은 월급 명세서이다.

한국 장로교단

① 목사의 명칭 : 위임목사, 임시목사, 부목사, 전도목사, 기관목사, 원로목사, 공로목사
② 목사의 자격 : 무흠한 입교인으로서 7년을 경과하고 나이 30세 이상이며 대학원 졸업 후 2년 이상 교역경험이 있어야 하고 행위가 복음에 합당한 자라야 한다. 미장로교는 목사의 자격에 대하여 교회의 역사적 표준들에 순응하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의 언약을 맺어 정결하게 살거나 독신으로 순결하게 사는 사람이라야 한다.
③ 목회관계 해소 : 사실상 법적으로 적용할 항목이 없다.
④ 목사의 직무 :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며, 성례를 거행하고, 교인을 축복하며,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한다.
⑤ 목사의 정년 : 70세
⑥ 목사의 청빙 : 당회의 결의와 공동의회의 출석회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세례교인(입교인) 과반수가 서명 날인한 청원서, 이력서, 당회록 사본, 공동의회록 사본을 첨부하여 청빙서를 노회에 제출한다.

(2) 장로

미장로교단

① 치리의 책임 : 목사와 더불어 치리와 지도권, 권징을 행사하며 개교회 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칼 관계를 포함하여 타교회와도 교류해야 한다.
② 목사와의 관계 : 장로는 말씀과 성례전의 목사와 똑같은 관계를 갖고 참여하며 투표하며 어떤 직책에도 피선될 자격이 있다.
③ 임기 : 3년이며 투표에 의하여 6년 연임할 수 있고, 연임 후에는 1년 휴무한 다음 선출 되면 다시 3년씩 할 수 있다.
④ 노회의 허락하에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 평신도 목회자로 안수를 받고 목회자가 없는 특별한 지역에서 설교를 하고 성례전을 집행할 수 있다.

한국 장로교단

① 장로는 무흠 입교인으로서 7년이 경과하며 40이상 된 자라야 한다.
② 교인의 절반이 시무를 원치 않으면 권고 사임할 수 있다.
③ 정년은 70세이다.
④ 원로장로, 은퇴장로라는 말이 있다.

(3) 집사

① 미장로교단은 무조건 안수집사이며 여자도 할 수 있다.
② 한국은 무흠세례교인으로 5년이 지난 다음 30세 이상 된 남자라야 한다.

(4) 제직회

① 미장로교단은 제직회는 없으며 재정에 관해서는 재정에 사리가 밝은 사람들로서 따로 재정위원회를 조직한다.
② 미장로교단은 제직회 대신 집사회가 있어서 봉사활동을 주로 한다.

(5) 예산

교회 예산은 반드시 공인회계사나 재정 전문인에게 감사를 받도록 되어있다.

 (6) 치리회장

치리회장은 질서유지 및 치리회의 효과적인 사무처리를 위해 필요한 권위를 갖는다. 그/그녀는 치리회 자체의 조처에 따라 치리회를 소집하고 폐회해야한다(G-9.0200).

통합측 헌법은 “치리권은 온 교회가 택하여 세운 대표자로 행사한다. 치리권의 행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준봉하며 전달하는 것뿐이다”(52조)라고 되어 있다.

6. 결 론

미장로교헌법은 1장의 원리와 2-5장까지 교회와 관련한 섹션(section)에서 교단 헌법의 신학과 장로교 정치원리, 교단 운영철학이 잘 드러나고 있다. 미장로교단은 초기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정해서 채용했고 특히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교리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여 에큐메니칼 신학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장로교단의 헌법은 아직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틀과 미국 초기 장로교 헌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현사회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슈를 최대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민족의 신앙고백보다도 미국과 영국의 사회적 상황이 헌법에 반영되어있다. 교리는 보편성을 갖고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나 헌법은 사회적 상황과 신앙고백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나 아직도 근본주의 신학과 유교 정신의 영향을 받아 성차별 조항과 수직적 구조의 흔적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더군다나 성문 헌법의 틀을 갖고 있기는 하나 매년 규칙이 수정되거나 새로이 만들어지며 판례가 새로이 조성되는 ‘관습법’의 형태를 띠고 있기에 법 첨가와 개정을 통한 보완이 절실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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