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교회(1926-2026) 100년 회고

                                창립기념 주일, 4월 5일 임직식   
영등포노회 소속 도림교회(정명철목사)가 올해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과 행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과거 영등포는 마포와 같이 배로 왕래하던 시절 배들이 닿는 포구에서 유래한다. 당시 행정명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의 한리에서 한일병탄후 1931 읍으로 승격된다. 이후 경성구 영등포 출장소로 승격되면서 일제에 의한 산업기반 시설인 공장들이 들어선다. 또 경부, 경인선 철도의 개통으로 영등포는 수도권 교통 요충지가 된다.

한강 이북 첫도시로 번창하면서 가장 먼져 세워진 교회는 영등포교회(1903년)로 여기 출석하던 모랫말(도림천의 구명) 교인 5가정이 사촌교회(두가지 설이 있는 데 장마철에 관악산에서 흐르는 물에 모래가 많아서 였다는 설과 인근 문래동등에서 모재라는 풀이 많아 사촌리라고 불렸다가 이후 도림정)라는 이름으로 분가 개척이 된다.

당시 총회적으로나 경기노회에 가장 오래된 교회는 1885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새문안교회지만 이후 1903년에 세워진 영등포교회, 1906년 노량진교회 1907년 양평동교회가 세워진 것을 보면 인구나 도심확장의 구도를 알 수있다. 당시 인근의 문래동은 베를 짜던 이름에서 유래해 이후 방림방적이나 종연방식, 동양방직등이 들어선다. 그 외에도 많은 공장들이 생기면서 전국각지에서 일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영등포로 몰려든다.

당시 제 4회 경기노회 보고서에 성찬 참여자 수를 연동(229명) 새문안(196명) 승동(182명) 안국동(122명) 남대문((118명) 영등포(70명) 묘동(61명) 노량진 (50명) 양평리(50명)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시흥교회등이 세워지면서 경기노회의 중요한 일원들이 된다(도림교회 70년사 인용(1997년 간행)

초기 교역자로는 배진성, 차상진, 정인과 목사에 이어 3대 목사로 유병관목사가 1946년에 부임한다. 그는 청주 출생으로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을 나와 영등포교회 전도사를 거쳐 행신리, 응암리교회서 시무한 바 있다. 유목사는 27년간 시무후 은퇴하는 데 시무기간중 일제하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시대을 맞아 이를 목양에 적용한 것으로 안다. 그리고 1973년 은퇴할 때 부목사로 사역중인 3남 유의웅을 당회 만장일치로 후임으로 청빙한다.

유의웅목사 취임시 도림교회 회집 인원이 350여명이었는  3년후인 1976년 50주년 창립 행사 통계를 보면 교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650여명이라고 보고된다. 선친 때 부터 시작한 산업부등을 선교적 중요과제로 협력한 부교역로 신상길목사(이후 현대교회 시무)와 양신석목사(총회 본부 총무 역임)가 있었다. 산업선교는 경기노회 산하 영등포교회 양평동교회 시흥교회 도림교회등이 모두 합력한 결과였다.

도림교회는 선진적으로 1970년에 목회자 휴가 제도을 도입했고 1960년에 관내 신도, 원광(대림)교회도 개척한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조지송, 인명진목사가 사역한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사역에 크게 협력한 것이다. 당시 시대적으로는 군사독재정권으로 노동자에 대하여 천시하고 노동운동도 불온시할 때였다. 그러나 1957년 공장전도와 예배에서 시작하여 노동조합과 소구룹이 확장되면서 이후 기업가들이나 관과 이해관계가 대척점에 선다.

그러나 경기노회 중진들인 계효언, 방지일, 이정학, 차관영, 박순경, 이정규, 조남기 목사로 이어지는 영산위원회는 산선 활동을 적극지원하면서 한국노동운동사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후 1980년 이후에는 산업선교를 산업전도회로 바꾸려는 시도와 총회적으로 기업가 출신 평신도들의 주장으로 한 때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도림교회는 현 정명철목사가 부임한후 영등포산선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유의웅목사 부임(1973-2006)

유의웅목사는 부친의 대를 이어 교회의 근간인 예배와 전도를 심화시키는 한편 산업선교를 지역사회 봉사로 확장하여 나눔 목회를 실천한 분이다. 도림 어린이집과 군선교 후원, 1992년 성경통독과 성경필사도 처음으로 도입한다. 1986년에는 도림청년부에서 장청운동에 양승천등 당시 교회 청년들이 니왔다. 그러나 시대적 조류로 이념문제가 대두되면서 교회서 운동권 논쟁이 인다. 이런 문제는 도림교회만이 아니었는 데그런 일토 가장 먼져 대학부를 창설한 새문안교회는 대학부를 해체한다.

도림교회 산업부의 대표적 인물로는 박영혜 장로로 장신대을 졸업한 고 이상양전도사(망원교회 시무중 별세) 사모가 된다. 대림동의 원풍모방 출신으로 이후 영등포산선 신용조합 간사를 지냈으며 이후 도림유치원 원장에 이어 시무장로가 된다. 당시 도림교회 야학도 유명했는 데 교사를 지낸 유승희(이화여대, 전 민주당 의원)와 신두영(서울대 기독학생회 회장) 박석분(수도사대, 효순 미순 기념사업회) 등이 있었다. 이들은 노동자 의식화냐 검정고시를 위한 야학이냐는 논란과 갈등으로 이후 모두 교회를 떠난다. 

당시 부목사로 윤의근, 박기백, 한재엽, 이동수, 노강국, 고성균, 신문수, 배한숙,박진석, 김혜란, 박영국, 안용성이 있었다. 1981년에는 우리교단 최초로 지역사회 개발원을 세워 초대 원장으로 유병헌장로를 새워 지역사회 조사를 도입하여 과학적이고 입체적인 지역 분석 작업을 한다. 여기서 도림 신협과 의료선교, 지역신문, 한글반, 공부방 도서관, 경로식당을 운영한다.

이외에도 고 유병관목사 형제들인 유병헌, 유병선장로와 도림 70년사를 미국에서 집필한 유의영장로(서울대 사회학과 나오고 U-PEN에서 Ph.D 를 받고 UCLA 사회학과 교수)였다. 풍년 압력솥밥을 개발한 가문이 바로 유장로로 유승희 의원 부친도 유의웅목사 숙부다. 산업부 출신들은 장로가 된 이들도 많치만 목사도 여럿이 나왔고 교회의 중직이나 지도력으로 성장한다. 영등포 일대의 회사에서 성실히 일한 산업전사들로 교회봉사도 앞장선 신실한 일꾼들이 었다.

평신도 지도자들로는 총회적으로 크게 활동한 이만영 장로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초 전국남선교회연합회 부회장과 노회 부노회장도 역임했으며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총회자선사업재단 이사 겸 안양원로원 원장, 1985년에는 청소년 선도사업에 공헌한 일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1986년에는 평신도회보사 사장도 역임한다. 1986년 총회자선사업재단에 1억 원을 헌금하였고 1992년 영등포노회 장로회 회장과 영등포노회 부노회장을 역임했다. 또 자신의 소유인 여의도의 아파트를 유의웅 담임목사에게 헌납하기도 하였다.

유의웅목사는 1988년 제 83회 교단총회장이 되는 데 당시만 해도 최연소 나이로 기록된다. 그는 목사의 아들 답게 미션스쿨인 배재고를 나오고 외국어대로 진학한다 그리고 장신대 재학중 영등포노회 영은교회 박조준목사를 모시고 목회훈련을 했으며 1969년 목사로 안수받고 공군군목으로 입대한다. 1973년에 제대후 도림교회 부목사로 청빙을 받고 부친이 목회하던 교회를 물려받은 것인데 당시만 해도 아들이 목회의 대를 잇는 것은 장려되던 때로 영세교회 김종수목사 후임은 아들 김충렬목사가 신성교회 이일목사도 아들인 이휘수목사가 대를 잇는 다.

정명철목사 부임(2007-)

2007년 유의웅목사 장년 은퇴후 교회는 노회가 파송한 당회장 인명진목사를 모시고 5대 위임목사로 정명철목사를 청빙한다. 정목사는 장신대 학부와 신대원과 풀러에서 D. Min을 했다. 상주 신봉교회를 거쳐 대구중앙교회서 시무중이었다. 정목사 부임 후 새성전을 건축하였고 코로나로 어려운 때인 2017년 도림교회서 총회를 연다. 현재 정목사는 19년째 목회중으로 올해 100주년 기념사업에 진력중으로 임직식과 주성민 목사 초청 부흥회, 음악회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중이다. 100년사는 올해 모든 행사를 마무리한 후 내년에 출간 예정으로 안다.

정목사 부임후 교회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전국적인 지명도도 높아졌다. 오직 목양일념에 교회로 전통적인 구조인 예배, 선교, 교육, 봉사, 섬김,교제를 자신만의 칼라로 하여 현대화 한 목회을 하는 중이다. 과거부터 행하던 어르신 복지, 아동 청소년,저소득층 돌봄, 평생교육, 지역공동체, 장애인 돌봄사업등이다. 그 외에도 예닮원 아카데미, 도림 제자학교, 신협, 카페, 십자가 전시실등이 있다. 2019년 총건평 7,600평에 달하는 10층 규모의 ‘비전센터’를 건축했다.

13명의 시무장로에 오는 4월 5일 창립기념일에 16명 장로(여성이 8명)들을 임직하는 데 양성평등의 시대을 앞당기는 것으로 평가 받는 다. 그 외에도 41명의 은퇴장로(원로장로 3명), 그리고 30여 명의 부교역자가 한마음으로 목회와 섬김에 전념하고 있다. 정목사는 자기 노회 노회장외 총회 부서장이나 무엇이 되기 위하여 기웃거리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100주년인근에서는 얼굴을 볼 수 없는 분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총회나 공교회가 하는 일에는 적극협력하는 자세인데 100년 역사의 교회다운 자세다.

2026년 올해 111회 총회가 도림교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것으로 공지가 되었다. 현재 정목사는 영등포산선위원장과 노회장을 역임하였고 대한성서공회 이사, 숭실대 이사, 대전신대 이사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설교집외에 10여편이 있으며 장신대 동문회 회장을 역임했다. 정 목사의 목회 철학은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고, 교회에 헌신하며, 사람에게 겸손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먼져 지도자가 솔수수범하여 스스로를 비워내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교회의 본질인 ‘영혼 구원’에 집중할 것과 항상 낮은 자세로 변화할 것을 교인들과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가장 낮은 데서 출발하여 비전센터의 둥근 계단을 거쳐 높은 하늘 정원(가브리엘 정원)에 오르듯, 정명철 목사와 도림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해 오늘도 묵묵히 한 걸음 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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