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세브란스 영안실 6호실에 안치

* 2011년 조선호탤서 열린 금영균목사 미수 모임에서 사모님과 뒤에는 신영호은퇴목사회 회장
성덕교회 원로 금영균목사께서 4월 20(월) 노환으로 별세하셔서 세브란스에 안치되셨다. 장신대가 광나루로 이전하고 신대원 3년제 첫세대다. 또 문교부 첫 학사이기도 해 자부심들이 있었다. 평양부터 하면 59기고 장신대 졸업후 50년 홈커밍데이도 시작했다. 장신대 첫 운동권이라고 하는 ‘새시대 선교회’ 라는 모임을 1960년대 재학 중 동기들과 조직해 함께 했다. 이후 동기들이 총회 중심세력들이 되자 교단 총회를 앞두고 개혁적 의제를 제안하는 모임을 연다. 이후 장신대에 그 정신을 잇는 후진들이 1970년대 ‘현대목회연구회’, 1983년 ‘현대신학연구회’ 가 출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기들로는 윤두호목사(공릉교회 은퇴)와 홍성현목사(수송교회 은퇴) 김덕재(성광교회 은퇴) 김종렬목사(전 대구 영신 총장) 고 윤용일목사(산돌교회)등이 계시다. 금목사는 1987년 직선제 챙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냈고 이 사건으로 옥고도 치루셨다. 우리교단 원로목사회 회장과 목회자 신문사 사장, 총회인권위원장도 지내셨고 박근혜 탄핵과 윤석열 탄핵 시위 때는 거리로도 나오셨다. 청년시절 당산동교회에 출석하면서 전국 장청 회장도 지내고 양평동교회로 이정학목사(당시 문호리 교회 시무중)을 부임토록 하셨다.
군대 일화도 대단하신 데 1950년 해군 군악대로 입대를 하셔서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시다. 이후 조선신학교(현 한신대)로 입학을 하셨다. 이후 장신대를 졸업하시고 동료들과 달리 사업도 하시는 등 다른 길로 가셨지만 이후 포천의 나환자정착촌 실로암교회서 목회를 하시다 서노회지역의 성덕교회를 설립하셨는 데 정치목사라고 가입을 오랜동안 거부당하신적도 있었다. 후임은 조영식목사로 조목사도 은퇴를 하였고 현재는 후임자가 목회중이다. 최근 까지 매주 은퇴목사회 사무실에 나오시며 상담역도 하셨는 데 작년에 사모님을 먼져 보내시더니 따라 가셨다.
금목사님 장례식은 생전에 시신을 기증하여 입관식은 없으며 22일(수) 오전 11시 병원 예배실에서 고별예배가 드려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