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협력자는 누구입니까?
= “고립과 마비의 치유” (눅 5;16-20) =
“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누가 5:12)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공생애 부분의 치유 이야기로 들어갔는데
오늘 우리가 다룰 치유이야기는 문둥병 환자의 고립의 치유와
중풍병자의 마비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우선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문둥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볼수 있습니다,
문둥병은 그자체로 사람들에게 꺼려지는 병이지만
이 병의 진짜 무서움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이 병에 걸리면
그들은 사람이 접근하면 "나는 불결한 사람입니다" 하고 알려서
사람들의 접근을 경계 해야 하는
사회적으로 완전 고립된다는 점에서
정말 무서운 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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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대판 대표적 문둥병을 ‘히키코모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왜 문밖을 나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 때문입니다,
고립은 처음에는 사회로부터 사람간에 고리가 꾾겨진 단절 상태를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바로 퇴행과 위축이 되어
그런데 이 고립감은 결국 위축과 퇴행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축적되면 바로 두려움과 공포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두려움과 공포가 대중의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으로 전환되면서
거기에서 싹트는 집단적 광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대중의 고립과 불안을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나치금과 파시즘과 같은 대중 독재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는데
우리는 이것이 오늘 한국인의 대중적 광기의 정신적 상황과 흡사하다는 분석도 있는 것 입니다.
"멘붕’의 실체를 찾아라" (우석대 배문정 교수 :프레시안)
왜 우리가 오늘 한국 사회를 사는 우리 대중들이
나치즘과 파치즘과 같은 광기에 빠진것 같이 보이는가?
최근에 이 비밀을 풀게 되었은데 그것에 도움을 준 책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상당히 저명한 정신과 의자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마크 고울스톤의 “뱀의 뇌에 말을 걸리 말라”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 의하면 우리인간의 뇌는 3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1. 가장 원시적인 파충류 즉, 뱀의 뇌,
2. 중간층인 포유류의 뇌,
3. 그리고 가장 바깥층인 인간의 뇌가 그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보통 공포심이나 본능적인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뱀의 뇌’상태라고 하는데,
바로 그 뱀의 뇌에게 말을 걸으면 어떠한 대화도 설득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머릿속 ‘뱀의 뇌’에 대고 말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가장 안쪽이나 중간에 있는 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사나 고객,
배우자나 자녀에게 말을 하고 있다면, 그건 궁지에 몰린 파충류 뱀이나 기껏해야
잔뜩 흥분한 포유류 토끼에게 말을 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가장 바깥쪽에 있는
영장류의 ‘인간의 뇌’에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 배려, 고려한다면 가장 안쪽의 파충류의 뇌를
가장 바깥쪽의 인간의 뇌로 만든 다음에 대화를 시도한다면
만사형통이라는 논리적인 내용의 책입니다.
이책을 통해 오늘 우리 한국 사회를 분석해 본다면
오늘 우리 사회가 왜 이처럼 불안과 공포로 서로 의존할 수 없고,
저마다 자신의 절벽에 떠밀려 버둥거리는 개인의 불안이 횡횡하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시대가 마치 나치와 파시즘의 시대와 같은 광기의 시대가 되어
죽은 유신 독재 시대의 망령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떨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광기에 대한 대안으로
오늘 우리가 마을만들기와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과 같은 협동적 공동체를 꿈꾸면서
꼭 기억해야 할것은 오늘 우리 사회가
“왜 우리는 더불어 사는 능력이 세계 꼴찌일까?”라는 책에서도 나왔듯이
왜 이처럼 협동하기가 힘든가를 먼져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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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회적 고립과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려면 오늘 중풍병자를 치유한 이야기 처럼
사회적 협동을 하여야 하는데 일단 우리가 사회적 고립과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면
이러한 사회적 협력이 불가능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 비밀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 가운데 파충류의 두뇌가 준동 하기에
우리가 다시는 협력하지 못하지 않고 이 광기에 물들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 입니다 .
“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누가 5:18-19)
오늘 이 본문에서 중풍병 환자라는 마비를
침낭을 든 친구들의 협력으로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서 치유를 받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협동이 인간을 치유하고 성장시킨다는
협동의 의미를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성공학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이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많은 나름 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을까요?
열심히 일을 해서? 남보다 야근을 많이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머리가 좋아서?
또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해서?
최근 연구 결과는
1. 결론은 이들도 혼자서는 결코 성공의 레이스에 올라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성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영리한 사람일수록 실패하기 쉽다고도 합니다.
좋은 학벌이 꼭 더 빠른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결국 이들의 성공을 깊이 연구한 사람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공이란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 입니다.
3. 다시말해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좋은 파트너를 만난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구가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보물을 찾아라.
당신과 함께 달릴 수 있는 적토마 즉 파트너를 찾아라.
그가 당신을 성공으로 데려갈 것이다,
다시 말해 파트너와의 협동을 잘하는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한단계 더 나가 봅시다,
최근 한창 논쟁이 되었던
우리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가 우세한가 이타적 유전자가 우세 한가입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출발로 우리 인간은 타고나면서
이기적 유전자가 우세하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데 반해서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이 등장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만이 아니라
‘이타적 유전자’가 있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1.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타적인 사람은 버텨낼 수 없지만 이타적인 사람들이
여럿 모여 협력하기 시작하면 이면 이기적 사람들보다
훨씬 강력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것 입니다.
2. 이타적인 사람들이 협력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타적인 사람들의 집단은 이기적인 사람들까지 하나둘 변화시켜 끌어들이게 되고
그 이타적 집단의 제도는 이타적 행동을 확산하는 쪽으로
잡히게 되어 이타적인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3, 그래서 ‘인간의 정신은 이기적 유전자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은 사회성과 협동성과 신뢰성을 지향한다는 것 입니다’
4.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선행을 가르칠 때 선행이란 단기적으로 어렵지만
선행은 장기적으로 보답이 있으므로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협동에 관한 가장 최근에 결정판으로 마틴 노왁이란 분이
"초 협력자"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초협력자』라는 책에서 이기와 이타, 배신과 협력 사이의 갈등으로 가득한 삶에서 어떻게 경쟁 대신
서로 협력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탐구한 하면서
최후의 승자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협력하는 우리들이다!라고 주장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초협력자라는 책에서 마틴 노왁는 바로 생명의 기원, 언어의 진화, 세포의 진화,
공공재의 문제 등등 모든 관계에서 협력이야말로 진화의 힘이라고 결정적 증언을 합니다,
(“협력은 40억 년에 걸친 진화의 주요한 골자다!”)라고 갈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고립과 불안과 마비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파충류의 뇌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영장류의 이타적 유전자로 진화되는것임을 믿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둥병과와 중풍병자의 치유이야기를 읽고 우리의 질문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당신의 경쟁자는 누구입니까? 라는 낡은 질문에서 당신의 협력자는 누구입니까?
지금 나는 누구와 함께 일을 하느냐, 누구의 협력을 받는가가
이제 우리의 질문의 핵심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 입에서
“ 저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저의 협력자입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온전히 치유받은 성숙한 그리스도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