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배우는 교회사 이야기 2 – 신부영입운동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 교회사)





이승훈이 정약종에게 준 영세 영장(성직자가 없던 시대 이승훈은 영세를 주었다) 1801 신유박해 이후 10년이 흘렀다.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권철신의 조카 권기인을 중심으로 교회재건운동이 일어났다. 1816년 정하상은 신부영입운동을 전개한다. 1827년 교황 레오 12세는 조선을 중국교구에서 독립시키고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 선교를 담당하게 했다. 포르투갈 신부들은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조정해서 조선교회가 초대교구장 부루기에르(파리외방전교회)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그는 조선에 입국도 못하고 1835년 만주에서 죽었다. 조선교회는 중국신부의 농간을 깨닫고 다시 신부를 파송해 달라고 교황청에 요청을 하게 되었다. 다음 사진은 조선신자들이 교황 그레고리 16세에게 보낸 편지 (1835.1.19.)이다.
“주(문모) 신부님이 처형된 후 우리나라에는 30여 년 동안이나 목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중략) 저희가 모두 함께 천국에 올라갈 수 있도록 구원의 손을 뻗쳐주실 것을 의심치 않겠습니다. 그러면 이 얼마나 큰 행복이겠나이까. 이후 다른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에 오기를 원하시면, 다 같이 성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모셔 들이겠습니다. 저희들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키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부 지도자들은 교회의 선교적 대의보다도 자기의 소아적 이권에 집착하여 대의를 그르치는 경우가 참 많다. 나 자신도 그런 경우가 참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