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천 목사 재심판결에 항소
“36년 전의 강제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나야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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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중에 한 발언으로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및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임영천 조선대학교 명예교수(국어국문학과)가 재심 판결에서 3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명예교수는 이번 재심에서 긴급조치 9호 건은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반공법 위반 건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아 상급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항소했다.
광주지법 재판부(이상현 부장판사)는 지난 2월 14일 임 교수에 대한 재심에서 1977년 조선대학교 강의실에서 행한 강의 내용과 관련해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북괴를 고무 찬양했다고 판결한 부분에 대해서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임 명예교수는 선고유예 판결에 불복해 2월 21일 법무법인 덕수(윤천우 변호사)를 통해 광주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선고유예 판결은 사실상 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법리상 무죄와 엄연히 다르다는 의미에서 임 교수가 항소한 것으로 보인다.
임 명예교수는 1977년 6월 강의 중에 북한은 우리가 식량을 원조해준다고 하더라도 국제여론이나 체면 때문에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 등으로 그해 9월9일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및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돼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고법에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또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역시 기각되어 2년 4개월째 형을 살던 중 10·26사태를 맞아 1979년 말 석방됐다. 1980년 2월 말 특별사면복권과 함께 3월 초에 조선대학교에 복직했으나 5.18로 인해 다시 해직되었다. 그후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77기로 입학하여 졸업하고 목사안수도 받았다. 그리고 1988년 조선대학교에 2번째로 복직했다.
임 교수는 조선대학교에 복직해 인문대학장을 역임하고 2007년 2월 정년퇴임을 했다. 임 교수 구속사건은 유신 시절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임영천 명예교수는 “36년 전의 강제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항소를 하게 되었다”라며 “앞으로 재판을 통해 완전한 명예회복을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라고 말했다.
2007년 2월 정년 퇴직을 하면서 ‘문학과 민주 정신’이라는 주제의 고별강연을 통해 러시아 문예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이 스탈린 독재 치하에서 소설의 여러 주인공이 각기 독자적인 세계관과 행동양식을 갖고 기능하고 있다는 ‘다성악(多聲樂)’ 이론을 통해 독재체제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항거한 사례를 들어 문학과 민주화의 관계를 설명했다.
임 교수는 톨스토이의 작품이 작가의 목소리가 주도하면서 이끄는 단성악적 구조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제 목소리를 내며 마치 오케스트라의 화음과 같은 다성악적 구조의 카니발리즘을 구현하고 있다며 염상섭의 작품 ‘삼대’를 다성악 이론으로 분석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해직교수 시절인 1981년부터 만 5년 동안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신학대학원 및 일반대학원에서 세계교회사를 공부했으며 문학과 역사신학이 만나는 기독교 역사소설을 연구해 왔다.
임 교수는 조선대를 거쳐 서울시립대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인문과학대학장, 고전연구원장,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학비평가협회장, 한국문학비평학회장, 한국기독교문학평론가협회장, 세계한인문학가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광나루문학상, 한국비평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 문학상, 농민문학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정년퇴임 기념논총 ‘한국 현대문학과 작가들'(도서출판 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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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총에는 임 교수의 염상섭론 ‘한국 현대소설과 도스토예프스키 영향’을 비롯하여 유재엽 신구대학 교수의 조명희론, 홍성암 동덕여대 교수의 김기진론, 채수영 신흥대 교수의 박팔양론, 김봉군 가톨릭대 교수의 이하윤론 등 국문학자들의 논문 34편이 수록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