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김화자 사모의 환송을 받으시다.

* 김화자 사모와 함께 한 김인식 목사
미국장로교 세계선교부 아시아 총무로 교단에서 공식적인 사역을 마친 김인식 목사님께서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2026년 7월 18일 오후 8:37 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는 소식이다. 한국교회와 일본교회와 중국교회 부흥과 성장를 위해 헌신하셨고 북한 봉수교회와 평양신학교 와 북한 성경 출판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신 분이라는 증언이다. 한국인으로 미국장로교단에서 김인식목사는 최고위직으로 비숫한 시기에 활동하시고 먼져 소천하신 고 이승만목사는 미국 NCC회장도 역임한 바 있는 데 미국 내 한인지도자들이었다.
평화 통일, 민족화해를 위해서 미국과 남과 북을 오가시며 많은 일을 하셨고 1995년 북한이 대홍수로 말미암아 식량난이 왔을때 평양에 봉수 국수공장과 사리원에 국수공장을 세워 고아들과 식량난으로 인해 고통 속에 있는 주민들에게 국수를 공급하도록 하셨다. 이 땅에서 의 모든 수고를 마치시고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김화자 사모님과 은퇴 노후를 보내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938년 10월 31일 황해북도 개풍리에서 태어난 김인식 목사는 6.25 전쟁 이후 1951년 1.4 후퇴 때 피난을 내려왔다. 김포에서 공항 재건 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그의 영어실력을 알아본 미국 군인 덕에 장비관리실에서 일을 하게 된 그는 이 일로 인해 야간학원을 다니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김 목사는 1966년 숭실대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3학기를 수학한 뒤 1967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엘스킨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콜게이트 로체스터신학대 및 밴더빌트대를 졸업했다. 1973년 미국남장로교 총회 국제선교부 아시아-태평양 총무로 시무한다.
1973년부터 미국교회협의회 선교파트에서 활동을 시작한 김 목사는 1988년부터 미국장로교 총회 세계선교부 아시아-태평양 총무로 사역한 바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목사는 30여년 간 먼져 가신 이승만 목사와 함께 미국 장로교총회에서 한인 동포로써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 선교정책을 담당하신 것이다.
22년 전인 1986년 4월, 첫 방북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30여차례 미국 장로교 임원 자격으로 북한을 드나들며 북한 교회와의 협력 관계를 모색해왔다고 한다. 또한 PCK- YOITH(장청)을 위하여 여러모로 돕고 격려하신 것 외에도 총회창립 100주년 기념관을 비롯해 숭실대학교 도서관,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관, 여전도회전국연합회관 등 국내의 다양한 선교 시설 건립을 위해 미국 장로교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