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민중의 영웅 우고 차베스(Hugo Chávez) 의 생애
3월 5일 58세로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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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를 위하여 쿠바를 방문해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와 대담중 | ||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이 투병중에 오후 4시25분 카라카스 군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 2011년 중순 암 판정을 받고 지난 1년 6개월 간 투병 생활을 해왔다.
지난해 12월 10일에는 쿠바의 한 병원에서 네 번째 암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 1998년부터 베네수엘라를 통치해왔으며 작년 10월 4선에 성공한 바 있다.
한편, 남미 좌파동맹의 맏형으로 불리우던 차베스는 반미 노선을 줄곧 걸어 서방 사회에서는 독재자로 알려졌으나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는 빈민층을 위한 정책으로 그들의 ‘영웅’으로 통했다.
1992년 유혈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던 우고 차베스는 199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뒤 1999년 2월 2일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취임했다. 부패추방에 중심을 둔 대대적인 정치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차베스는 급진 좌파정당인 제5공화국운동(Fifth Republic Movement/MVR)을 이끌고 선거에서 56%를 상회하는 지지를 얻었다.
차베스는 4년 간의 대통령 임기 동안 낡은 라틴아메리카식 정치를 완전히 뿌리뽑고 베네수엘라의 정체된 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높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차베스가 부르짖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배후에 지나친 권력욕, 나아가 절대적 권위가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또한 예전의 쿠데타 기도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믿지 않았다.
우고 차베스 프리아스는 1954년 7월 28일 베네수엘라의 사바네타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그는 군에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웠으며, 이후 베네수엘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학 학위를 받았다. 1975년 그는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해 낙하산 부대에 들어갔으며, 1990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에 매료된 그는 카라카스의 시몬볼리바르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92년 쿠데타 기도 이후 투옥되었다가 1994년 라파엘 칼데라 대통령이 차베스의 석방을 요구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화해의 조치로 그를 석방함으로써 정치무대에 복귀했다. 차베스는 석방되자마자 군의 지원을 받아 MVR를 창당해 부패한 정부 관리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전국을 돌면서 민주 헌법을 재건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를 대통령 임기중 수행해야 할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12월 국민투표에서 새 헌법개정안이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됨으로써 차베스는 정치구조 및 사회구조 개혁을 위한 굳건한 토대를 마련했다
차베스는 한때 반대 진영의 쿠데타(2002년)와 대통령 탄핵 투표(2004년) 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매 순간 고비를 잘 넘겨 2006년과 2012년 두 차례의 임기를 더 이어갔다.
차베스는 일관되게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질서를 비판했으며, 이에 기초해 미국의 외교 노선과 대립각을 세웠다. 또 에콰도르, 쿠바, 이란, 북한 등 반미 노선을 걷는 국가들과는 친선 관계를 유지했다. 차베스의 좌클릭 때문에 서방 국가들은 그에게 ‘독재자’란 꼬리표를 달아줬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빈곤 퇴치와 평등 사회 구현 노력으로 베네수엘라 내부에선 ‘빈민층의 영웅’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제 사회 역시 차베스의 죽음에 엇갈린 견해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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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베스의 관을 잡고 오열하는 국민들 | ||
우고 차베스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EC%9A%B0%EA%B3%A0_%EC%B0%A8%EB%B2%A0%EC%8A%A4
차베스의 페북
https://www.facebook.com/ChavezCorazonPatria
차베스의 도서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9400553
그외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