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신앙칼럼

입추를 지나고도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는 더위를 잠시나마 피하고자 한 계곡을 찾는다. 잘 정비된 계곡은 피서하기엔 안성맞춤, 챙겨온 김밥 등속을 가볍게 취식하고 그늘진 너럭바위에 누워 잠시 낮잠을 청한다.
그러다가 문득 배낭을 열어 책을 한 권 꺼낸다. 헤르만 카를 헤세(Hermann Karl Hesse)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발행, 『데미안(Demian)』이다.
고교 시절이었는지 대학 시절이었는지, 아무튼 아주 오래전 읽은 기억은 나는데, 되새겨지는 건 불량 학생에게 맥없이 당하는 주인공과 흑기사처럼 나타났던 ‘데미안’, 그리고 ‘아브락사스’ 정도다. 그래서 인근 도서관에서 대출해 계곡까지 휴대하고 온 거다.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시인, 소설가, 화가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1946년)이기도 한 헤세가 쓴 이 책은, 한 인간이 거짓된 안락함을 깨고 나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치열한 성장 과정을 그린 자전적 성장 소설(Bildungsroman)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책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싱클레어는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며,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누구나 그 상태를 향해 나아간다고 말한다.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싱클레어는 성경 말씀이 지배하는 ‘밝은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집 밖의 ‘어두운 세계’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다 프란츠 크로머라는 불량배에게 하찮은 거짓말을 하다가 덜미가 잡혀 거의 종노릇을 하는 처지가 된다.
크로머의 집요한 괴롭힘으로 지옥 같은 나날 속에 정신적 피폐함이 극에 달했을 때, ‘막스 데미안’이라는 학생이 전학온다. 어른스럽고, 묘한 카리스마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데미안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통찰력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그는 성경 속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싱클레어를 당황하게 만든다.
“아벨을 살해한 카인은 악마가 아니라 강인하고 용기 있는 인간이었고, 나약한 아벨의 후손들이 카인의 당당함과 강함에 두려움을 느껴,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카인에게 ‘저주받은 표식’이 감돌고 있다는 소문을 지어낸 것”이라고.
이 해석은 싱클레어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있어 눈엣가시였던 크로머 문제까지 깔끔하게 해결해 준다.
몇 년 후,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가톨릭의 ‘견진성사’를 받기 위한 교육 캠프에서 재회한다. 청소년이 된 싱클레어는 성적인 충동과 사춘기의 혼란 속에서 다시금 방황하고 있던 터였다.
데미안은 성경 속 ‘예수 옆에 못 박힌 두 도둑’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싱클레어의 종교적 가치관을 뒤흔든다.
“만약 네가 오늘 그 도둑들 중 하나를 친구로 택해야 한다면, 혹은 둘 중 누구를 더 신뢰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야 한다면, 그건 아주 분명히 이 징징거리는 개종자 쪽은 아닐 거야. 다른 쪽이야, 회개하지 않은 도둑이야말로 사나이잖아.—(중략)—어쩌면 그도 카인의 후예일 거야”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데미안은 현재의 종교 체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고향과 부모, 그리고 데미안이라는 정신적 지주를 모두 잃어버린 채 낯선 도시의 기숙학교에 도착한 싱클레어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다 거의 매일 밤을 폭음과 방탕으로 허송한다.
그러던 어느 봄날, 공원을 산책하다가 한 품위 있는 여성을 보게 된다. 그녀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싱클레어는 그녀에게 단번에 매료되어 단테의 시에 나오는 여인의 이름을 따 “베아트리체”라고 부르기 시작하며 삶의 태도도 180도 바꾼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것은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아니었다. 베아트리체 같기도 하고, 데미안 같기도 했으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얼굴이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싱클레어는 기묘한 꿈을 꾼다. 거대한 매가 자신의 고향 집 대문 위에 새겨진 문장(紋章)을 쪼아 먹고, 그 매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나비처럼 부풀어 오르는 꿈이었다.
싱클레어는 잠에서 깨어나 꿈속에서 본 새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뒤, 오직 ‘막스 데미안’이라는 이름만 적어 예전 고향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얼마 후, 싱클레어는 자신의 교과서 사이에 끼워져 있는 의문의 쪽지를 발견한다.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었다. 그 쪽지에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유명한 명구가 적혀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의 의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수업 시간에 우연히 들은 바에 의하면, 아브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동시에 결합하고 있는 고대의 신비로운 신이었다.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뛰어넘어, 우주의 모든 대립물을 하나로 포용하는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찾던 구원의 실체가 바로 이 신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아브락사스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중, 싱클레어는 동네의 작은 교회에서 들려오는 장엄하고 고독한 오르간 소리에 이끌린다. 연주자는 ‘피스토리우스’라는 이름의 음악가이자 신학을 공부한 남자였다. 두 사람은 불을 피워놓고 불꽃을 바라보며 깊은 내면의 대화를 나눈다.
이후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엄청난 사상적 자극을 주는 새로운 멘토가 된다. 그는 싱클레어에게 인간의 내면에는 인류의 모든 역사와 신화, 가능성이 다 들어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뿐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대학생이 된 싱클레어는 여전히 고독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중 거리에서 우연히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된다. 데미안의 초대로 간 그의 집에서 싱클레어는 오랫동안 꿈과 환상 속에서 갈망해 마지않았던 존재,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난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가 그린 베아트리체의 초상화, 꿈속의 여인과 똑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이자 남성이었고, 어머니이자 연인이었으며, 대지이자 우주 그 자체였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이마에 있는 ‘카인의 표식’을 알아보고 그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의 곁에서 생애 가장 완벽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말한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해요”라고.
데미안의 집에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처럼 이마에 ‘카인의 표식’을 지닌, 즉 깨어있는 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다가올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영적 연대였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현 유럽 사회가 낡고 썩어 문드러졌으며, 조만간 거대한 파멸과 전쟁이 닥쳐와 이 알을 깨부술 것임을 직감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데미안은 장교로, 싱클레어는 소총수로 징집된다. 싱클레어는 전쟁터의 참혹함 속에서 중요한 진리를 깨닫는다.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잠재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원초적인 파괴와 탄생의 욕구’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거대한 세계의 알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겨울날, 싱클레어는 전선에서 폭격을 맞아 중상을 입고 야전병원으로 후송된다. 그의 옆 침대에는 똑같이 부상하고 실려 온 데미안이 누워있었다. 데미안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날 거야.—(중략)—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달려오질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는 걸.”
데미안은 에바 부인이 전해달라고 했다며, 싱클레어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남긴다.
그 후 싱클레어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상처가 아물고 성인이 된 싱클레어는 살아가면서 종종 고통스럽고 힘겨운 순간을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두운 거울 속으로 깊이 내려간다. 그 거울 속에는 더 이상 나약하고 방황하던 소년 싱클레어는 없다. 거울 속에서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는, 이제는 자신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린, 자신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막스 데미안의 모습이었다. 싱클레어 스스로가 온전히 새로 태어나 자아를 완성했음을 보여주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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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데미안(Demian)』의 반(反)기독성에 관한 논쟁
헤르만 카를 헤세의 『데미안(Demian)』은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 관점에 비추어 반기독교적이라는 시각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일부 보수적 기독교계는 소설이 ‘악마적 요소’를 품고 있다고 강경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이 몇 가지 파격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고 해서 이 작품을 반기독교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본질은 ‘기독교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초월과 통합’에 가깝다는 것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 평론가들의 비평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소설이 왜 기독교 교리 관점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헤세가 전달하려 했던 진짜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자,
- 데미안이 반기독교적으로 평가되는 이유
주인공의 호위무사 역할을 하는 인물 데미안은 기존 기독교가 세워둔 이분법적 도덕관과 성경 해석을 완전히 뒤집는 발언으로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를 당황하게 한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의 재해석: 기독교 전통에서 카인은 최초의 살인자이자 악인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카인을 “우월한 정신과 강한 의지를 가진 존재”로, 그 이마의 표식(일명 ‘타인의 표식’)을 “범접할 수 없는 당당함의 표식”으로 재해석한다.
◇십자가 곁 두 도둑의 비유: 예수 옆에 매달린 두 도둑 중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도둑을 두고, 데미안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개성 있는 인물”로 묘사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빛과 어둠의 이분법 거부: 싱클레어가 자란 부모님의 세계는 ‘빛, 도덕, 깨끗함’이지만, 싱클레어가 끌리는 현실은 ‘어둠, 금기, 욕망’이다. 기존 기독교는 어둠을 배척하라고 가르치지만, 데미안은 두 세계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신적인 존재 ‘아브락사스(Abraxas)’의 등장
『데미안』을 관통하는 가장 유명한 구절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탄생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선함, 빛, 도덕’만을 상징하는 절반의 신이라면, 아브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 선과 악, 빛과 어둠을 모두 포용하는 신이다.
헤세는 인간이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교회나 사회가 정해준 선악의 기준에 갇히지 않고, 내면의 어두운 본성과 선한 본성을 모두 직시하고 통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 결론: ‘반기독교’가 아닌 ‘기독교의 초월과 자아 확립’
『데미안』을 단순한 ‘기독교 공격 소설’로 보기는 어렵다. 기독교와 데미안의 시각차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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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성경/전통 기독교 『데미안』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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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선을 추구하고 악을 배척함 선과 악 모두 인간 내면의 일부로 인정함
구원 외부의 신(예수)을 통한 구원 자기 내면을 마주하고 깨어나는 자아 확립
태도 교리와 계율에 대한 순종 기존 규범에 대한 비판적 의문과 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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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를 무너뜨리려 했다기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제도화된 기독교가 보여준 위선과 경직성을 비판한 것이다. 맹목적으로 기존의 도덕을 따르기보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사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독단적 교리에 도전하는 소설은 맞지만, 그것은 ‘반(反)기독교’라는 맹목적 반발이 아닌 인간 본연의 성찰과 자아실현을 향한 모색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상기 논쟁은, 일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