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영근 3주기 추모축제 이후 새로운 선교 축제를 기대한다.>

                  목사 고영근 3주기 추모축제 이후 새로운 선교 축제를 기대한다

기독교 언론 협동조합과 기독교 문화운동의 새로운 불길이 일길  

   
 

 “3월 1일 오후 5시, 기독교회관 2층 대강당에서 마쳐진 추모축제에 함께 해 주신 장청 선배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가지로 바쁘신 중에도 기꺼이 목사 고영근과 함께 해 주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오시지는 못하셨어도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 주셨으리라 생각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로운 문화적 접근으로 시도해 본 추모축제였습니다. 공연이 잘되고 못됨을 떠나서 추모의 의미를 새롭게 해보고 오히려 미래를 열어가는 가능성을 열어가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첫발이니 미흡한 것이야 오죽하겠습니까마는 거기에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내딛고자 합니다. 2010년대의 목사 고영근의 모습은 나날이 변화 발전할 것입니다.  장청 선배님들의 끊임없는 지지와 후원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이번 고영근 목사 추모 축제를 주도했던 고성휘 집사님이 장청 동우회 페이스 북에 남긴 감사의 글이다.   

   
 

고성휘 집사는 이번 3주기 추모축제는 예배가 아닌 문화제 형식이 될 것이라 했고,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연극배우가 목사 고영근의 역을 맡게 되고 그것의 효과를 더 크게 확대하기 위해 현악사중주, 바이올린 독주, 남성중창, 영상, 기타곡, 춤 등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롤 표현했는데 ,,,

예장뉴스에 보도 된 기사에 보면   

"류태선 목사(생명길을 여는 사람들 총무)의 기도로 시작되 현악 4중주와 유창수 선생(소풍 대표)이 고 목사님의 일생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중간 중간에 남양주 시립 합창단(장남 고성진 이 지휘자)과 각종 음악으로 응답하는 형식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특히 고 목사님이 생전 옥중에 계실 때에 차녀 고성휘 가 어버지에게 보낸 서신에 그 아들이 곡을 써서 직접 부른 노래는 마치 아버지와 자녀가 이야기를 하듯이 주고 받는 형식도 매우 새로웠다. 그 외 젊은 세대들을 대표하여 B-boy 팀 진현호와 LOOK이 보여준 댄스는 다소 지루할 것 같은 분위가 흥겨워지는 추모행사에 백미였다. 끝으로 목회자들이 나와서 70년대 민주화 운동가로 많이 부른 춤의 왕(The Lord Dance)도 과거 민주화운동시절 길거리와 집회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였다.” 라고 보도 했듯이 이번 추모제는 한국 기독교의 추모문화의 한획을 긋는 새로운 시도였다고도 볼수 있을것 같다. 

   
 

 그리고 이번 3주기 추모 축제가 이미 추모 축제 전 페이스 북에서 추모분위기가 형성되었듯이 추모제 이후 이만열 교수과 지승용 목사의 페이스북에서 그 추모축제의 열기가 지속된것도 특이할 만 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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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이만열 교수님께서 <옥중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페북에 올려주신 글을 친구들이 좋아요가 715명. 수많은 댓글. 깜짝 놀랐습니다. 이만열교수님의 힘을 새삼 느낍니다. 훌륭하신 학자를 아버님을 통해서 뵐수 있다는것 역시 은혜입니다. 전 교수님의 글에 올려진 댓글과 지승룡목사님 글에 올려진 댓글을 모두 모아 모자이크를 만들려 합니다. 물론 허락을 받아야겠지만요. 댓글중엔 목사 고영근과의 추억이 담긴 글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성휘 집사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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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예장 편집부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이렇게 새로운 매체로 추모열기가 시작되고 지속된 이 추모 축제의 새로운 문화의 향후 방향이다,

 이미 고성휘 집사는 “담쟁이책놀이터(북카페)에서 한달에 한번씩 작은 음악회를 여는데요. 가족 음악회를 언제고 한번 해보시면 어떨지요?”하는 제의에 대해…

   
 

 “이번 3주기를 마치면서 음악에 너무 게을렀다 생각했습니다. 작곡.편곡 공부와 피아노 노래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인데 이거 원 나이가 좀 되서 할수 있을지..” 하는 추모축제가 새로운 기독교 문화 운동으로 전환되길 기도하는 움직임이 감지 되고 있고 .. 

   
 

 고목사님 추모 3주기에 모인 예장뉴스 편집위원들은 그날 저녁 기독교회관 앞 “던컨 도너스”에서 예장 뉴스 편집회의를 하였는데 그날 잠정적으로 우리 예장뉴스가 언론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로 가기로 결정하면서 예장뉴스가 사회적 협동을 하게 되면 예장뉴스 산하에 교육 문화 협동조합을 세워 기독교 언론뿐 아니라 교육 문화 협동조합을 통해 기독교 언론 교육 문화에 큰 기여를 할수 있으리라고 보고….. 

   
 

이번 추모축제를 계기로 기독교 언론 협동조합과 기독교 교육 문화 협동조합에 관한 새로운 토론이 시작되어 앞으로 고영근 목사님의 추모사업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큰 영감을 얻어 보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번에 책내용의 감동은 물론 온갖 정성으로 탄탄하고 깔끔한 편집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고영근 목사님의 옥중서간 “옥중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서문에 쓴 고성휘 집사의 인사말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하나님의 물맷돌을 잡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온 삶을 바쳐 온 믿음의 조상들의 모습을 성경을 통하여, 역사를 통하여 보아 왔다.  하나님은 민중이 폭압으로 시달리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셔서 이들과 함께 역사하심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산 희망을 새롭게 보여주셨다. 구약시대의 정의의 예언자들이 바로 그들이며, 로마의 압제 하에서 목숨을 걸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지킨 초대교회의 사도들, 독일 나치즘 시대에 제국교회의 압력과 파시즘의 탄압에 맞섰던 고백교회, 일제 강점기에서 신사참배거부운동으로 고난을 받았던 출옥성도,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의 압제에서 정면 도전했던 기독교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게도 암울한 역사에서도 이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하나님의 음성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하나님은 과거에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장차 그 어떤 시대가 와도 영원불변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과거의 것이라고 과거를 위한 것만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로부터 전해진 하나님의 메시지를 더욱 더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시련을 겪어 왔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36년이라는 긴 폭압의 세월을 견뎠고, 군사독재의 말도 안 되는 압박의 세월을 연달아서 겪었다. 가장 폭압적인 시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보면서 말이다.

   
 

나치즘에 맞서 싸웠던 독일의 고백교회와 칼 바르트, 본회퍼 등의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독일 국민들이 파시즘에 광적으로 열광할 때, 독일교회가 하나님의 복음을 버리고 민족교회라는 미명아래 파시즘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바뀔 때,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는 것을 눈감아주는 그런 폭압적 상황을 맞이했을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의연하게 “Nein!!!”을 외쳤다. 불의 앞에 하나님의 복음은 “아니요!” 라고 외치는 것임을 알게 해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독일교회는 대대적인 반성의 작업을 살을 깎는 아픔으로 감내하였다. 파시즘에 동조했던 과거를 참회하면서 파시즘에 “Nein!!!"이라고 외쳤던 칼 바르트와 본회퍼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메시지였음을 고백하는 독일교회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독일교회처럼 진정한 회개를 하고 있는가?   공간을 뛰어 넘어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폭압적인 상황의 일제 강점기를 보자. 한국교회가 황국신민화의 압력에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부끄러운 명목을 가지고 신사참배를 결정했을 때 “아니요!!”라고 외쳤던 출옥성도들.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지켜 낸 그들, 시간을 뛰어 넘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시대에서 “아니요!!” 라고 부르짖던 하나님의 사람들. 이들을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으면서도 한국교회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이다. 

역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복음’이다. 그들은 복음을 사수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며 역사의 소용돌이에 투신하였다. 그 어떤 사상이나 정치적 결단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복음을 사수하기 위한 목숨을 건 헌신이었다.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복음은 날쌘 검이 되어 오늘의 우리를 기독교인답게 지켜주고 있다.   

지금도 우리 앞에는 거대한 바알상이 존재한다. 물질의 바알, 진리의 눈을 가로 막는 거짓의 바알, 권력욕의 바알 등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교묘히 둔갑해 가는 거대한 바알상을 향해 과감히 정면도전할 수 있는 힘은 당연 ‘복음’의 능력이다.  

   
 

거대한 파시즘에 온 몸으로 맞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손에 쥐고 있던 본회퍼의 물맷돌,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황국신민화의 압력에 순교로 맞섰던 출옥성도의 손에 주어진 물맷돌,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목사 고영근의 손에 주어진 물맷돌은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바알을 향한 우리의 손에는 과연 그러한 물맷돌이 있는가?  

   
 

 고(高), 영(永), 근(根) 으로 나누면서  목사 고영근이 평소에 말했던 인생의 삼대 목적이 있다.  하나님 제일주의, 동포 제이주의, 나 제삼주의 이다. 이 말을 다시 돌아보니 그것은 그의 삶의 고백이었다. 

고(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던 그의 삶이 말해주는 하나님 제일주의는 하나님을 향한 굳센 믿음과 열정, 그리고 그 속에 빛나는 영성으로 나타난다. 그가 고난을 인내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그의 모든 목적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영(永); 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그의 목사로서의 리더십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우선한다. 나라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온유한 목자로서의 심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람을 진정으로 섬길 수 있었고 자기의 가진 것을 온전히 나눌 수 있었다. 세월도 사람도 생각도 모두 변한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사랑과 온유의 마음으로 나타나는 섬김과 나눔의 삶은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지도자상이다. 섬김 줄 아는 지도자, 나눌 줄 아는 지도자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근(根); 목사 고영근이 치열한 삶 속에 빠뜨리지 아니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구속과 구류, 연행 속에서도 그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그의 뿌리는 가정에 있었고 자신을 실현시키는 근거를 가정에 두었다. 사랑은 주었으나 받을 욕심이 없었던 목사 고영근. 하나님을 위한 선교사역과 정권에의 정면도전을 감수한 고난의 선택, 민족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과 가정을 돌보는 절실한 마음이 상호연관성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기이한 일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정리를 위하여 애써주신 여러 분들이 계신다. 맨 처음 옥중서신과 옥중에서 받은 편지를 보고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한숨 쉬고 있을 때 “고. 영. 근에 답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 민들레 영토의 지승룡 목사님, 목사 고영근의 삶을 시대의 예언자의 삶으로 보라고 칼 바르트와 본회퍼 목사님을 계속 주지시켜 주신 이원돈 목사님, “이 분의 마음에는 온유가 있다”며 예언자의 삶에서 따스한 가정이 있음을 돌아보게 해 주신 김정건 목사님, 교정에 애써주신 김철남 목사님 외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목사 고영근의 옥중서신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혹시 부족한 이야기 전개로 인하여 오히려 이렇게 빛나는 편지들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을 이겨내도록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의 애정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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