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해방운동가 고 김주영 추모식을 다녀왔다.

 장애해방운동가 고김주영 추모식을 다녀왔다. 3일째 출근했다.

 

   
 

34세의 나이로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태어 났다.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아이들이 모였단다.

공부를 잘해 항상 교무실을 다니며 교사와 잘 어울렸는데 그 휠체어를 두세명이 함께 끌며 다녔단다. 그녀는 참으로 숨차게 활동을 이어 왔다. 삼육재활학교 고등부를 졸업하였지만 세상은 그녀를 반기는 곳은 없지만 차별은 오히려 그녀의 꿈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2005년엔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 이야기를 다룬 작품 ‘외출 혹은 탈출’을 연출하여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2006-2007년엔 ‘나는 장애인이다’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했다.

혼자서는 살림은 물론 식사나 용변, 옷갈아입고 휠체어에서 내리기도 어려운 중증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 누구보다 활동보조인의 절실함을 알았던 그녀인지

라 장애인 차별 금지법 제정투쟁, 장애인 이동권 투쟁, 장애등급제 폐지투쟁, 부양의무제 폐지투쟁 까지전국장애인차별 철폐연대와 함께 장애인권운동의 맨 앞에서 그녀는 온 몸을 내던져 투쟁했다.

 

   
 

 

그녀와 동지들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2007년부터 활동보조제도 시행되어 첫해 한달 최대 80시간, 다음해 한달 최대 100 시간, 나중엔 독거장애인 특례로 한달 최대 180시간을 받게 되었다. 고작 하루 6시간으로는 생존 조차 위태로웠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립생활을 꾸려나가며 운동을 했다. 서울시를 상대로 추가지원 투쟁을 했고, 그결과 지난해 부터는 한달 360시간, 하루12시간 꼴로 활동보조를 받을수 있게 되었다. 다른지역

장애인보다 나은 환경이라곤 하지만 24시간 활동보조가 보장돼지 않은 상태에

서 그녀의 자립생활은 여전히 목숨을건 모험이었다. 그사실이 죽음으로 확인 되었다. 활동보조가 없어 화재에 대피하지 못해 불과 몆발작만 걸으면 살수있는길을 그녀의 나이 34세 꽃다운 나이로 영면했다.

 

   
 

그녀가 원하는 길은 단순하다.

ㅡ 장애우들이 모든차별을 철폐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24시간 활동보조를 받는 것이다. 고 장애해방가 김주영동지의

뜻에 함께 하려면

ㅡ발인10월30일9시30분(한양대)

ㅡ노제 11시 광화문 – 안국동 보건복지부 ㅡ박경석 국민은행 031601-04-005802

ㅡ장례위원 개인 만원. 단체3만원

ㅡ공동장례위원장 십만원

 

   
 

 

  고 김주영 장애해방활동가 노제 갔다가 춥고 배고프고 

떨리고 ᆢ 

정치가 몇ᆢ

종교인 몇ᆢ

개신교는 딸랑 하나 ᆢ

 

다들 가버리고 
장애인들끼리 안국동 보복부까지 행진
조개사쯤까지 와서 경찰대치 몇시간인지 ᆢ
결국 인천서 국제회의중이라 챙피했던지 ᆢ
해산 시키고 상임대표와 둘만 협상하러 들어간거
기다리다 인터뷔하고 왔습니다.
함께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합니다.  (정태효 목사 페이스 북에서…)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