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운동가, 평화창조자가 되자!
이 시대에 정의, 평화, 상생을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했던 팔레스타인의 비통한 소식에 예수님의 음성을 압도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흉악한 횡포체제 아래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탄생을 천사들은 평화와 즐거움의 노래로 우주적 합주를 연주하였습니다. 오늘의 팔레스타인 …… 수 천명의 양심수…… 수 백 명의 어린이 양심수…… 점령군대의 무단정치, 점령되어 식민 정착촌의 확대, 인권과 생존권의 탄압정치의 억압 속에서 짓 눌려 사는팔레스타인의 땅의 사람들에게 평화는 무엇인가요? 팔레스타인 민족은 강요된 분단의 나라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남아공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상황을 인종분리체제(Apartheid)와 같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출생 직후 에집트로 망명의 피난길에 오른 것처럼.. 오늘 수백만의 팔레스타인은 피난민이 되어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피난민 신세, 해외에서도 피난민신세가 되어 떠돌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의 평화는 무엇인가? 이는 로마제국의 “평화를 위장한 압제와 점령”에.. 그 빌라도의 총독무단정치……그 헤롯의 분봉군주압제에대한 저항이 아니었던가요! “내가 주는 평화는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평화는 것 어떤 것인가요? “땅의 사람들”이 바빌론의 압제에서 포악하게 죽어가고 억압 속에서 살 때 될 때 창조의 비전 — 모든 생명체가 상생하는 생명의 정원의 비전, 에집트 제국체제에서 노예가 된 “합 비루의 사람”들에게 정의와 해방의 계약, 남과 북이 하나가 되게 하겠다는 영원한 평화의 계약, 제국의 횡포에 시달리는 “땅의 사람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평화의 도성의 비전, 제국의 안보와 안전을 평화라고 위장한 PAX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거짓 평화, 거짓평화라고 위치는 절규 —– 이런 비전과 계약과 절규를 절정에 달하게 하여 PAX ROMANA에 저항하는 것이 예수의 평화가 아닌가요! 그는 분명히 "평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예수의 평화에서는 굶 주린 자와 가난한자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평화에서는 병든 자와 약한 자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평화에서는 몸과 맘이 분열된 자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평화에서는 적대관계의 이데올로기가 용인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평화에서는 종교적 차별과 배타주의가 절대로 허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평화는 모든 생명체를 상생하게 하는 우주적 사랑의 실현이다. 삼라만상기운데 넘치는 자비와 측은지심을 무한히 수렴할 것입니다.. ...
